청동 문고리

2023.01.31 13:29

조형숙 조회 수:61

"여보 남을 돕고 사는 것이  참 좋구려"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했다. 곱게 쪽진 머리에 꽂은 은비녀는 은근히 화려했다.  저고리의 동정은 백옥같이 희었다. 늘 깔끔했다. 선비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다소곳한 아내가 늘 편안하고 좋았다. 아내는 남편이 든든해서 좋았다.  
 
대문은 바깥 경계에 있었다. 대문에 달려있는 청동의 문고리는 언제 만들어 달아놓았던 것일까.  문의 *배목은 아주 깊이 강하게 박혀 있어 제 책임을 다 하고 있다.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문고리는 닳은 흔적도 없이 여전했으나, 밑으로 둥글게 패인 나무는 긴 세월을 부르고 있다. 문고리가 달린 아래 쪽의 나무가  움푹 파인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났으리라는 것은 말 안해도 알 수 있었다 
 
사람 좋은 곳에 사람이 모인다 했다. 관대하고 시비를 가리지 않는 황희정승을 닮은 선비가 살고 있을까? 너그럽고 후하게 사람을 대하고 불화와 갈등을 원만히 풀어주는 중재의 귀인이 살고 계실까?  그 안채에는 어떤 부인이 살고 있을까?  마을 사람들은 늘 궁금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진 선비와 단아한 아내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도 찾아왔다. 아내는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작은 상을 차려 일일이 대접했다.  선비는 사람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상담해 주었고 필요한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주었다.
문패도 없는 대문은 매일 두드려졌다.  사람들은 신문고를 두드리듯이 선비의 집 대문을 두드렸고 둥근 문고리를 찍어댔다. 문고리 밑의 나무는 조금씩 깊게 패어가고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깊이 패어가는 흔적은 마치 동네 사람들이 선비와 그의 아내에게 바치는 존경의 낙관과도 같았다.
 
탁 트인 마당에 옆집과의 경계를 친 돌담이 있다. 담 안쪽에 튼실한 감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담장 양 옆으로 뻗은 가지에는 주홍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가을이면 언제나 풍성풍성 감이 열렸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열매의 맛은 더 달았다. 
사드락 사드락 감나무 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환한 달빛이 더 고왔다. 
"반가워요 달님." 
"그래요 꽃님." 
선비는  감나무 밑에 눈처럼 내리는  하얀 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아내에게 걸어 주었다.
 
세월을 따라 조금은 기울어진 문틈으로 볕이 들어와 마당으로 스민다. 스며드는 햇살은 밝고 따스했다. 
대문 안의 빗장을 열면 안쪽 벽에 많은 것이 걸려있다. 가마니와 온갖 농기구, 비료 포대, 쭉정이를 고르는 키도 걸렸다. 조금 안쪽에는 마늘과 시레기도 얌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여름 한껏 향기를 뽐내던 장미도 다발로 엮어 걸었다. 대문 안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멀리 대청마루 안쪽 벽에는 긴 족자와 액자들이 서로 바라보고 걸려 있다.  고조할아버지의 글씨를 담은 족자도 있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선비의 집은 넓었다. 
처음 시집왔을때는 넓기만 했던 이 집에 사람들이 드나들며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니 아내는 너무 좋았다. 다른 집은 대문의 위, 아래, 중간에 무늬있는 작은 쇠붙이를 달아 모양을 냈으나 선비는 그 것도 아꼈다.  어느 집은좋은 주물이 아니어도 사자의 모양이나  국화꽃 모양의 주물을 대문에 장식했다. 선비는 그것도 필요없었다. 손잡이만 튼튼하면 되었다. 부귀와 안녕이 가득한 단아한 대문이면 되었다. 어려운 이들과 소통만 되면 되었다 . 선비와 아내는 마을의 대소사를 챙겨 주었다.
 
"마님! 양순네가 지금 막 사내 아이를 낳았대요." "그랬구나. 쌀과 미역과 고기를 잘 챙겨서 가져다 주거라."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라에 커다란 외침이 있었다.
연로한 선비는 삿갓을 내려놓고 젊은이들을 따라 전장으로 나섰고 지아비를 떠나보내기 어려웠던 아내도 선비를 따라 나섰다. 그 모습을 배웅하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대문 앞을 지나면서 문고리로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선비와 부인이 어서 돌아와 쥐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멀리 멀리 퍼져나간다.
 
언젠가는 선비와 부인이 다시 돌아오리라. 돌아와 마을과 함께할 것이다. 마을을 지나던 낯선 과객도 마을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대문과 청동 문고리를 다시 한 번 더 바라보고 지나간다.어떤이는 고리를 잡아 문을 두드린다. 낮게 조용히...
 
선비와 부인이 안채에서 오순도순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옛날 집의 문고리 사진을 보고 쓴 글이다
참고로 현재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문고리 밑에는 동그란 쇠붙이가 달려있다. 문이 패이지 않게 하는 역할이다. 
문고리의 구조는 고리와 사슬 *배목으로 구성된다. 낙랑시대의 유적에서도 청동으로 만든 문고리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문고리는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목 : 고리와 겹쳐서 걸기 위해 다른 쪽에 박아 넣을 수 있게 만든 쇠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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