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있는 거리에서

2023.05.05 21:38

조형숙 조회 수:10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이 한낮의 거리로 쏟아진다. 실눈을 뜨고 오른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어 본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말이 실감났다. 잠깐 동안 눈 한 쪽만 빛을 가렸을 뿐 쏟아져 내리는 뜨거움은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리틀 도쿄 몰에서 매일 만나는 참새가 있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갑자기 공중에서 검은 것이 후두둑 떨어져 내려와 깜작 놀랐다. 새는 벤자민 가지 사이의 무수한 잎새 속에 숨어 태양을 피하고 있다가 체온이 좀 떨어지면 테이블로 내려 앉았다. 
손이 닿을 만큼에서 재재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먹을거 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까맣고 예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계란 노른자를 꺼내어 ㅉㅉㅉㅉ하며 테이블 위에 부수어 주었더니 나를 쳐다보다가  단단하고 작은 부리로 쪼아 먹기 시작했다.흰자는 먹지 않았다.  무전을 치는지 톡을 하는지 텔레파시를 보내는지 친구들이 따라오고  금방 일곱 마리로 늘어났다.  노른자를 말끔하게 먹어 치우고는 나무 위로 포르르 날아 올랐다. 
 
  나는 그렇게 참새와 만났다. 다음날부터 참새들이 점심시간이 되면 테이블로 날아오기 시작했다.그 때 부터 계란을 여러개 삶아 가져갔다.  아마 가족에게 소문을 낸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가면 맛있는 먹거리가 있다는 것을 참새가 알았나보다. 
 "참 좋은 아줌마가 있어. 시간 맞추어 가야해 기다려봐 내가 보고 올께" 
 
리틀도쿄 거리 중앙에는 동그랗게 꾸민 분수대가 있고 그 앞으로 선물가게, 빵집과 마켓이 마주보고 있다. 화장품 가게와 식당, 옷가게가 나란히 거리를 연결하고 있다. 거리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 누구라도 빈 의자에 앉아 쉴 수도 있고 식사나 간식을 먹을수도 있다. 그 때 나는 일본 선물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빈 테이블이 없으면 몇 사람이 한 테이블에  함께 앉을 때가 있다. 돌아보아도 새가 보이지 않아 나무 위쪽을 바라보며 ㅉㅉㅉㅉㅉ했더니 어디선가 두마리가 먼저 날아와 나를 올려다 본다. 참새가 계란먹는 모습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유심히 바라본다. "정말 먹어요?"  "그럼요. 보실래요? " "ㅉㅉㅉㅉ 먹어봐 ' 하면 부수어 놓은 노른자를 콕콕 쪼아 먹는다. "스즈메가 스고이네!!" 박수를 친다.  참새가 정말 내 소리를 알아 듣는지, 노른자를 먹을 시간에 오는지 그 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섯마리가 더 날아와 함께 먹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와우"  "스고이"하며 놀라워 한다.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인이 말한다. "와! 저 새가 오야붕 일까요?"  자세히보니 몸이 다른 새보다 조금 크고 통통하다. 아주 가느다란 것이 두마리, 그리고 나머지는 보통이다.  오야붕 인 것 같은 새는 먹지 않고 둘레를 빙빙 돌며 작은 새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주고 있다.  
 
반 뼘도 안되는 참새의 등은 갈색이고 검은색 줄무니가 있었다.  머리 숱이 많고 풍성하며 목 뒤에는 흰색의 가로줄이 쳐있다.  새까만 눈이 반짝인다. 손 안에 쏘옥 들어올 것 같은 조그마한 새는 아주 똑똑하고 센스가 있다. 그 작은 귀로 부르는 소리 알아듣고 그 작은 주둥이로 먹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내 앞에 와서 귀여운 눈으로 쳐다보며 먹고 싶다고 말하는 새와 놀다가  쉬는 시간을 넘기고 놀라서 일터로 뛰어 들어 갔다.  그렇게 참새와 놀았다. 
 
   먼 친척일까 같은 항렬일까 한국에서 만났던 참새와  닮았다. 염곡동은 양재동에서 남쪽(분당)으로 내려가다가 왼쪽에 위치한다. 오른쪽으로는 교육회관이 있고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된다. 경부고속도로 초입에서 왼쪽을 보면 숲이 많고 낮은 산이 있는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 녹지대로 되어 있어 집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녹지대가 되기전 있던 집을 리모델링한 몇채의 집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산쪽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언제나 참새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늘 궁금했다. 어제 저녁 아랫동네 참새아빠가 다리를 다쳤다더라. 골목입구에 있는 쌀집에 가서 떨어진 쌀알들을 모아보자. 한입씩 물어다 주고 힘내라고 말해주자. 그런 이야기들을 할까?  차를 운전해 지나 갈 수 가 없었다. 참새들의 반상회를 방해할 수 없었다. 혹 다른 참새 아빠가 다칠수 있으니까 조금 기다린다. 
의견이 일치했는지 아랫동네 아빠 참새를 응원하러 후루룩 모두 날아갔다. 모두 날아 간  후에야 차를 움직여 집으로 갔다. 
 
새들이 머리가 나쁘다고 '새대가리'라고 말하지만 새는 아둔하지 않다. 다 제 살 궁리를 하고 있다. 혼자 먹지 않고 친구를 부른다. 세상에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태어난 생명을 유지하려고 열심을 내고 살아가고 있다. 새는 볏짚을 물어다 큰 나무 깊은 곳 가지에 둥우리를 짓는다. 주둥이가 헐고 깃털이 다 빠져가도 자식을 향한 사랑으로 부지런히 집을 짓고 새끼들을 정성으로 보살핀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새가슴으로  키운다. 새가슴으로 사는 것이 나쁜 의미만은 아닌 진한 사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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