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속의 햇빛' 테메큘라

2023.05.13 15:27

조형숙 조회 수:17

  봄을 부르는 세찬비와 폭풍우가 테메큘라를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로 만들었다. 
 
  엘레이에서 눈이 온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믿지 못할 일이라고 했을테다. 그런데 30년만에 이변이 일어났다.  테메큘라에 있는 티나의 집 마당에서함박눈을 맞으며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빅베어의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이고 그 밑으로는 스키니 호수가 가로로 길게 드러누워 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햇빛과 사납게 부는 바람의 향연 속에 샘을 내던 함박눈이 머리와 어깨를 때렸다. 어떤 봉우리에는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어떤 봉우리는 녹아내린 눈으로 진초록이 간간이 보였다. 녹아내린 눈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  호수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신은 세상만물의 생명을 위해 빛을 주었다. 사랑과 따사로움으로 강물을 녹여주고 잔설을 물로 바꾸어 준다. 대지는 기지개를 켜서 하품하고 생기를 마실 준비를 한다.  대지의 큰 하품이 전염되어 잎새가 나고 꽃이 핀다. 봄볕이 반가운 것은 긴 겨울을 무사히 지내온 탓일게다. 햇살이 주는 온기를 품고 테메큘라의 매화는 핑크색의 볼을 살며시 드러냈다. 이제 곧 오색의 꽃으로 수채화가 펼쳐질 것이다. 한 눈에 볼 수 있는 올리브, 아보카도, 복숭아 과목들은 상큼한 향기를 불러 올 것이다.
 
  언덕을 굽이 굽이 돌아 올라온 산 위에 티나의 집이 있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도도하게 서 있는 집은 아름다웠다. 정문이 천천히 열리고 또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사이프러스는 길가에 나란히 서서 키를 재고 있었다. 메마른 곳에서도 잘 자란다 하여 심어 놓았다 한다. 어제밤 폭풍과 눈보라에도 끄떡하지 않고 잘 버티고 서있다. 안주인 티나가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층계와 화분대가 상큼하게 손님을 맞이해 주었다. 타일을 이용해  만든 둥글고 작은 여러개의 정원들 속에 옹기종기 꽃들이 모여 웃고 있었다. 현관 앞 왼쪽으로는 나란한 장독들이 비를 맞아 정갈하게 씻기어 있었다. 직접 장을 담구어 먹는다는 티나의 손길이 아름답다.
 
  깔끔하고 단정한 집안을 구경하고 있을 때 티나는 따뜻한 과자를 구워 향기나는 차와 함께 우리를 대접했다. 벽난로의 불길이 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큰 유리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글 쓰는 다섯 사람의 열기도 함께 했다. 우쿠렐레와 하모니카로 반주하고 많은 노래를 불렀다. 문 밖 수영장의 물이 더 푸르게 비를 맞고 있었다. 티나도 열기에 함께했다. 
 
   집 둘레를 빙돌아 구경을 하고 언덕 아래 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걸어 내려갔다. 간밤에 내린 눈이 비와 섞여 흙이 젖어 있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둘씩 손을 잡았다. 본 채 보다 앞마당이 넓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안에는 탁구대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한바탕 게임을 했다. 날씨가 추운데 이열치열이라면서 내어다 주는 아이스바는 차고 달콤했다. 
 
   게스트하우스 현관 옆에 높이 세워진 부엉이의 집은 크고 깨끗했다. 부엉이 세마리가 한 가족이다. 새집을 만들어 달고 난 얼마 뒤 우연히 부엉이가 찾아와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새끼가 커서 날을 수 있는 가을에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났다. 봄이 되면 부엉이가 다시  찾아와 식구를 불릴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부엉이는 작은 동물이나 쥐를 잡아 먹는다. 숲이 많은 집 주위에 쥐들을 잡아주니 힘들여 가꾸어 놓은 텃밭의 피해를 줄여 준다 했다. 눈이 크고 우직하게 생긴 부엉이가 쥐를 먹고 산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텃밭을 방해하는 쥐를 잡기 위해 부엉이를 키운다는 의미도 되지만 사실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서 살아간다는 결론이 된다. 
 
   테메큘라는 '물안개 속의 햇빛'이라는 의미인데 원주민들이 쓰던 단어라고 한다.  많은 와이너리가 있고 카베르네 소비용, 시라, 영국 여왕이 마셨다는 여왕의 와인 샤도네이 등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와인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캘리포니아의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자랑하는 와인의 성지다. 주민 수는 10만명정도이고 인디언 루이제노 부족이 살았다고 한다. 동네는 구불구불한 언덕을 오르게 되어있고 지중해를 연상하게 하는 온화한 기후가 특징이라고 한다. '미라몬테 와이너리'에 멤버십이 있는 티나 부부가 우리를 그 곳으로 초대해 주었다. 인기 있는 카베르네 소비용 와인과 피자와 샐러드를 곁들여 점심을 했다.
 
 
   벤추라에서 아나파카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려고 계획 했던 날이었다. 이상 기온으로 태풍이 몰려온다 하여 배가 뜰 수 없었다. 한껏 부풀어 있던 여행시간을 그냥 주저앉아 보낼 수는 없었다. 동행중 한사람이 티나의 집을 방문하도록 연결해 주었다. 티나 부부의 섬김과 인품이 고마웠다. 따뜻한 마음에 많이 고마웠는데 집을 떠나올 때 각각 한병씩 선물로 주는 와인은 소중하고 귀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억척스레 쏟아지는 빗줄기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테메큘라를 떠났다.
 
    바람이 분다. 돌풍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비가 오면 비를 찍어야 하고 바람불면 바람을 찍어야 하는데 떨어져 내리는 진눈개비를 또 어쩌나. 몸이 젖어도 사진을 찍어야했다. 내리는 눈을 어깨에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자연은 인간의 힘보다 훨씬 강하고 뚝심이 있으니 인간이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물안개 속의 햇빛 (Sunshine Through Mist) : 아침이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물안개가 온 땅을 덮었다가 낮이 되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테메큘라의 독특한 날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기후는 천혜의 포도산지로 만든다.
*우쿨렐레는 악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리하고 쉽게 배울 수 있고 합주 할 때는 마음을 합하여 즐길 수 있는 악기이며 언제 어디서든 연주가 용이하다. 플랫 사이가 좁아 손이 크지 않아도 가능하다. 
*하모니카는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거나 빠져 나올때 리드라는 울림판을 떨리게 만듦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다. 하모니카의 시작은 시계공이었던 Matthias Hohner로 볼 수 있다.
 
미주문협 2023년  가을호에 올린 글이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 나그네 조형숙 2024.01.30 18
94 바벨의 보고서 조형숙 2024.01.30 24
93 신데렐라의 구두는 왜 바뀌지 않았을까? 조형숙 2024.01.30 16
92 할머니의 복주머니 조형숙 2023.07.01 22
91 좋은말 조형숙 2023.05.13 17
» '물안개 속의 햇빛' 테메큘라 조형숙 2023.05.13 17
89 사투리 조형숙 2023.05.13 15
88 멕시칼리 조형숙 2023.05.13 15
87 과테말라 선교여행 조형숙 2023.05.05 14
86 팜트리 조형숙 2023.05.05 14
85 참새가 있는 거리에서 조형숙 2023.05.05 10
84 부차드 가든 조형숙 2023.05.05 5
83 뿌리 조형숙 2023.05.05 8
82 가뭄과 장마 조형숙 2023.03.24 21
81 노아의 방주 조형숙 2023.03.21 10
80 등수 조형숙 2023.03.04 10
79 우체통 조형숙 2023.03.04 16
78 초멍 조형숙 2023.03.04 12
77 터널 조형숙 2023.02.01 12
76 10월의 어느 멋진 날 조형숙 2023.02.0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