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선교여행

2023.05.05 22:28

조형숙 조회 수:14

익숙했던 하늘이 새 땅에 발을 딛고 섰을 때 새로운 하늘이 되었다. 밤 11시20분에 출발하여 캄캄한 밤 하늘을 5시간 날아 과테말라에 도착했다.  멀리서 동이 트이는 붉은 햇살의 황홀함을 버릴 수 없어 새벽 창문 살짝 열고 사진 한장 남겨 두었다. 창가에 앉을 수 있는 행운으로 구름위를 나르는 신비함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침 해를 타고 서서히 보이는 과테말라의 지붕들은 한국의 60-70년대의 느낌을 주었다. 죽늘어선 주택을 보며 우리나라도 저렇게 지낼 때가 있었는데 생각하 고 있는 순간, 거대한 비행기의 날개는 세개의 문짝을 위로 올려 바람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서서히 순조로운 숨을 쉬며 과테말라의 땅으로 들어섰다. 

 

 12명의 과테말라 컴패션 선교팀이 드디어 기다리던 여행을 떠났다. 컴패션의 본부는 콜로라도에 있고 본부에서 파송한 조 영훈목사는 시에틀에서, 컴패션 봉사자인 미셀은 미네아폴리스에서 떠나 우리 팀에 합류했다. 아침 6시30분 과테말라 시티 공항에 도착후 과테말라 컴패션 센터에서 나온 Juan, Gloria, Alejandra 에게 안내를 받았다. 새벽 거리는 복잡하고 버스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유는 학교가 일찍 시작하여 일찍 끝나고, 직장도 멀리 가는 장거리가 많아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트래픽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과테말라 시내에는 도둑이 많다 했다. 쇼핑몰의 문 앞에는 두명씩의 경비원이 완전무장을 한 채 서 있었다. 아주 작은 마켓조차도 같은 상황으로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인데 우리는 별다른 일은 보지 못했다. 

빵을 직접 구워내는 큰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컴패션 사무실에 들려 서로를 소개하고 함께 찬송하고 예배를 드렸다.  예배후 세부적으로 하는 일들을 각 부서에서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열성적이고 진솔된 모습으로 여러가지 일을 설명해 주었다. 돕는 아동은 보통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18세까지 돕는데우리가 돕는 비용의 80%를 아동들이 받을 수 있다니 후원기관중 최고의 도움울 준다는 의미가 된다. low income가정과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이 컴패션에 신청해 놓았다가 후원을 받는다고 했다. 

치카치스라는 피자식당에서 후원받는는 아동과 후원자들이 만났다. 어음보는 사람들이지만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반갑고 눈물겨운 만남이었다. 주어진 3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쉬운 헤어짐을 했다.

우리 일행은 다음 목적지 코반이라는 도시로 떠났다. 거리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차들은 아주 낡아 있었다. 중고차를 사다가 수리해서 쓴다고 했다. 새차들이 자꾸 쏟아져 나오니 이런 곳이 없다면 어떻게 소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깊은 계곡의 비탈을 따라 내려가며 양철 지붕과 시멘트 블록으로 담을 쌓은 집들이 위태롭게 서있다. 일년중 6개월은 열대성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나무와 풀은 푸릇푸릇 잘자라고 초록의 천지였다. 소나무와 도토리 나무가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마치 구비구비 돌아가는  한국의 설악산 길을 닮아 있었다.  5시간을 꼬불꼬불 돌아  도착한곳은 아주 작고 예쁜 마을의 숙소였다. 어느 부자가 이곳에 호텔을 짓고 휴양지로 쓴다고 했다.  

 다음날  방문한 컴패션센터는 넓고 깨끗했으며 분위기는 활발하고 밝았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문 양쪽에 나누어 서서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들을  하나 하나 환영해 주었고 악수와 허그로 교실에 안내 되었을 때 과테말라의 전통 악기인 마림바를 9명의 아이들이 힘차고 경쾌하게 연주했다. 학교 이름이 'Rabi'였고 19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3세에서 17세까지 Level대로 나누어 교육하고 있었다. 강당은 하나님 사랑의 날개 아래 있었고, 후원하는 우리와 동역하는 봉사자들이 함께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또 교육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어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 "말로 할 수 없는 큰 것을 주신 예수는 우리 하나 하나를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당신들이 정말 귀하고 놀라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계속 당신들과 함께 사랑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봉사자들과 서로 어깨동무로 기도했다. 그리고는 껴안고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울었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영혼을 뜨겁게 하는 것이로구나!! 이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참 선교사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두번째 학교는 ' Iglesia Del Nazareno' 로 교회에서 운영하는 'Torre Fuerte' 실업학교였다. 조금 큰 아이들이 각 분야의 직업을 위한 기술교육을 받고 있었다. 학생도 교사도 조금 의젓하고 성숙해 보였다. 컴퓨터교실, 전기기술반, 꽃꽂이반, 요리교실 에서 배우며 실제로 배운 기술로 일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Elmel 이라는 이름의 디렉터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다가 디렉터가 되었는데 후원자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컴패션의 후원자들이 학생들의 삶을 터치해주고 아이들의 전인적인 부분까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많은 아이들이 술과 마약을 하고 있는데 컴패션을 통해 구원을 받고 사회에 쓰임 받는 일꾼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너무 고마운 일이 많아 말문이 막힌다고 말하는 디렉터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컴패션에서 후원 받는 7살 크리스의 집을 방문했다. 부모와  9남매가 살고 있는 집은 도로에서 한참을 올라가야하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가파른 길을 가족은 매일 오르내린다. 낮에도 미끌어질 까 두려운 길을 엄마는 밤일을 마치고 어둠속을 더듬어 집으로 오른다. 나무판으로 만든 두개의 침대에서 아이들이 나누어 자고 아버지와 큰아들은 바닥에서 잔다. 매일 90개의 또르디아를 만들어 팔면 5불의 수입이 생긴다했다. 돈이 필요한 엄마는 시내에 나가 대문을 두드려 청소일을 찾는데 그것도 5불을 넘지 못한다. 남편은 집 주위에 옥수수와 아보카도 토마토를 심어 식구들을 먹인다. 우리는 가족과 빙 둘러서서 9명의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마지막날에 내가 후원하는 Keyla Marleny를 만났다. 6살에 후원은 시작했는데 12월에 10살이 된다. 케일라의 부모는 농사를 짓고 있으며 딸이 5명인데 모두 공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케일라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고 열심히 공부하여 꼭 의사가 되겠다고 한다. 큰 언니와 센터의 디렉터가 함께 나왔는데 아이들은 예수를 굳게 믿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눈은 사랑스럽고 신중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안고 있어도 또 안아주고 싶었다. 떠나는 버스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고 버스가 방향을 바꾸면 또 다른쪽 유리창 앞으로 달려와 손을 흔들었다. 몸은 헤어졌지만 그 아이와 나는 컴패션으로 연결되어 있어 오래도록 교제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어 참 좋다.
 
   과테말라 선교여행은 특별한 의미와 보람을 주는 여행이었다. 나는 찬양선교로  많은 나라를 찬양하며 여행했다. 언제나 감동을 받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지만, 돌아오면 그들과는 추억속의 한 페이지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컴패션은 많이 다르다. 내가 밟은 새 땅에서 내가 후원하는 아동을 직접 만나고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모습을 보았고, 꿈을 나누었다.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계속해서 교감하며, 기회가 있을 때 도울 수있다. 내 가정과 마를레니의 가정이 하나가 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선교와의 차이점이다.  봄에 멕시코 선교를 다녀온 후에 느낀 선교의 의미와 보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나이가 들어 간다면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했다. 세상 살 동안 선교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마침 컴패션에서 6살의 Keyla의 사진을 보내왔을 때 보고싶은 마음이 뜨겁게 일어났다. 곧바로 과테말라 선교를 신청했다. 이제 컴패션의 운영과 시스템을 자세하고 확실하게 알았고 또 확신을 가지고 알려줄 수 있어 나의 일생에 아주 큰 보람이 될 것이다. 다녀오면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의 편견이었다. 더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행복하다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과테말라에서 한 시간거리에 있는 옛 수도 안티구아로 갔다. 안티구아 (Antigua Guatemala)는 스페인에 의해 1543년 3월10일에 건설된 세번째 수도이다. 200년을 번성하던 안티구아는 16번의 지진과홍수로 1773년 7월29일에 없어지게 되었다.  안티구와는 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웅장한 화산 아구아(Agua) 와 푸에고 (Fuego),  아카테낭고(Acatenango)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아늑하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네번째 수도가 과테말라다. 과테말라는 Old Tree라는 뜻이다. 스페인의 식민지로 250년을 지냈다.
산토도밍고 수도원은 지금은 오성호텔로 쓰이고 있다. 스페인 식민통치 시대의 건축물을 대표하는 화려한 역사적 건물과 화산으로 힘겨웠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벽돌을 사용하면서도 일반돌을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회반죽을 써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공법을 썼는데 이 것은 마야시대의 피라미드공법을 그대로 살린 것 이라고 한다. 무너진 담이나 그들이 쓰던 부엌, 죽은자의 해골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특히 울리는 시간이 되면 은은하게 퍼지는 차임벨의 늘어진 모양이 화려했다. 
 
산토 도밍고 뒤편에 있는 전망대 입구에는 나무로 조각해 만든 큰 못이 박힌 예수의 발이 있다. 보는 순간 모두의 가슴이 뭉클하고 숙연해지면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줄을 섰다. 전망대의 식당은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물이 솟구쳐 올라와 홍수를 이루었다는 물화산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가능했다. 물화산으로 힘이 들었을 그 때를 잊은 듯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은 세상에서 제일 푸르고 아름다운 코발트 색깔이었다.  해가 뜨자 마자 보아야 잘 보인다는 물화산의 봉우리를 서둘러 올라온 덕분에 볼 수 있었다. 자갈로 만들어진 도로 (cobblestone) 와 풍경이 잘 어우러지는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볼 수 있는 주택들은 스페인 특유의 지붕색과 건축물이었다. 스페인의 부자들이 은퇴후에 와서 살고 있는 동네라고 하는데 아주 평화롭고 귀티가 났다.  오래전에 합창연주로 갔었던 스페인의 똘레도 작은 골목들의 돌길이 생각났다. 
 
내려오는 길에 큰 십자가 언덕 (Carro de la Cruz)으로 갔다. 안티구아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계획도시인 이곳의 도로는 방사선형이 아니라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고, 유럽풍의 깨끗한 집들이 나란하게 서 있었다.
 화산과 홍수 (온 사방이 물에 잠기었다가 물이 빠지는데 4일이 걸렸다고 한다) 를 이겨내고 복원하여 아름다움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물화산을 볼 수 있었다. 
 
카프치나 수녀원은 수도원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고 허술하다. 둥그렇게 둘레를 쌓아 축대를 만들고 매끈한 돌을 드문드문 얹어 놓아 빨래를 할 수 있게 만든 빨래방은 긴장속에 사는 수녀들의 유일한 웃음과 대화의 장소일 것 같았다.  원기둥모양의 큰 돌기둥이 빨래방 옆에 있었다.  벽을 빙 돌아가며 사람이 서있을 만큼의 크기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잘못을 저지른 여인을 공간 안에 세워놓고 두 손을 사슬로 묶어 숨이 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던 곳이다. 끔찍했다. 
 
Central Park는 현지주민과 여행자들이 북적거리는 공원이다. 손에 가득 어깨에 가득 물건을 들고 공원을 누비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번잡하고  분주하다. 과테말라의 국조인 *케찰로 만든 키고리가 가장 많이 눈에띄고 아주 작은 비즈로 만든 목걸이가 많았다. 거절을 해도 끝까지 따라붙어 열정적으로 사달라고 강요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5개국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를 통치하던 총독관저를 지금을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원은 시청 앞 광장에 있다. 건물의 문들은 쇠로 만들어 위험에서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인구 3만의 안티구아는 작은 도시지만 옛 왕국의 수도답게 곳곳에 유적이 있다. 복원중인 대성당은 동쪽을 향하여 세워져 있고 서쪽에는 상가를 만들고 남쪽과 북족에는 중앙청사를 세웠다. 공원 중앙에 분수대에서는 종일 물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필라델피아 커피농장을 들렀다. 커피나무는 아주 낮게 자라는데, 꼭 암수가 있는 나무 밑에서 자란다고 한다. 나즈막하게 모여있는 커피나무를 처음 보았다. 온화하고 따사로운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그들의 전통시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우리의 여정을 마쳤다.
 
 
*케찰은 국기의 중앙에 그려있는 새다. 화페의 단위로도 쓰이며 신성한 새로 여겨 성조라고 하고 국조라고도 한다. 만일어떤 사람이라도  잡거나 죽이면 그 벌이 크다고 한다. 30년형을 받는다고 한다. 케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끼체족의 왕인 떼꾼우만 (Tecun Uman) 이 스페인 군대에 대항 했으나 활과 창으로는 총을 이길 수가 없었다.  스페인의 총에 맞아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왕의 심장을 작은 새가 머리와 온몸으로 막았다고 한다. 그 새가 케찰이고 새의 가슴색깔은 왕의 피로 아주 진하고 붉다.
 
 
한솔문학 9월호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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