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생각
2007.10.07 12:03
엉뚱한 생각
김 학
나는 지금까지 평생 자격증 하나와 면허증 하나밖에 딴 일이 없다. 자격증은 대학 졸업 때 땄던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이고, 면허증은 88서울 올림픽 때 땄던 운전면허증이다. 나는 그 두 가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교사 자격증은 제대 후 H고등학교에서 6개월 간 교사생활을 할 때나 필요했지 지금은 무용지물이고, 운전면허증은 앞으로도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증명서다. 승용차를 타고 외출할 때 혹 주민등록증은 빠뜨려도 상관없지만 운전면허증은 꼭 가지고 나가야 한다.
국가가 공인하는 운전면허증을 땄지만 19년 동안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자잘한 접촉사고를 많이 냈다. 두 번째 구입한 지금의 승용차도 여기저기 긁혀서 싸움개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내가 운전을 잘못하여 긁히기도 했지만, 남의 실수로도 긁혔고, 원인불명의 상처도 없지 않다. 그것이 내 승용차의 현실이다. 돈 내고 자동차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을 배워 면허증을 땄는데도 실제 운전을 하다보니 이렇게 잦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자격증이나 면허증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아빠가 되었다. 내가 운전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연습을 했던 것은 안전한 운전사가 되려는 준비과정이었다. 정식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뒤 운전을 해도 그렇게 실수가 잦았는데, 아무런 준비나 연습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된 내가 과연 제대로 아빠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아빠들도 나와 대동소이할 것이고, 엄마들도 다를 바 없을 줄 안다. 우리는 준비도 하지 않고 경험도 없는 초보부모이자, 공인 자격증이나 면허증도 없는 무자격무면허 아빠엄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나 무면허운전사를 단속하는 교통경찰은 있지만 무자격무면허 아빠엄마를 단속하는 경찰은 없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2남1녀를 두었다. 그 아이들 가운데 큰아들과 막내딸은 이미 결혼을 하여 첫아들 하나씩을 낳아 기르고 있고, 둘째 아들도 2년 전에 결혼하여 둘째 며느리가 지금 임신 중이다. 물론 큰아들과 딸 내외도 준비 없이 어느 날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우리 부부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오십보백보다. 내 아이들은 자라면서 내 말 한 마디와 행동 한 가지를 허투루 보지 않고 귀담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그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보여준 행동이 모두 제대로 된 가르침이었고 시범조교와 같은 본보기였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세 아이들에게 교육적 목적으로 말과 행동을 하기보다는 내 기분, 내 생각대로 했던 게 더 많았을 것 같다.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던 적도 더러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범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선생님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교사자격증을 받는다. 그러고서도 또 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학교에서 선생님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보다 더 자녀들에게 영향력이 막중한 부모들에게는 왜 그런 교육절차가 생략된 것일까? 부모자격증이나 부모면허증을 주는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결혼만 하면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될 수 있다니, 이건 진짜 모순이 아닌가?
무자격무면허 부모들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 망원경을 깊이 들이대 보면 별의 별 희한한 일들이 많다. 12살 난 자기 친딸을 유흥업소에 팔아넘긴 엄마가 있는가 하면, 아들딸을 부모의 전유물처럼 여기고 고층 아파트에서 창 밖으로 내던져 목숨을 잃게 하는 부모도 있다. 어린아이의 손발을 묶어놓고 때리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은 채 방에 가둬두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자기 아이를 굶겨서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게 하기도 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동반자살부모도 없지 않다. 동물도 감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온갖 잔혹한 일들을 태연히 저지르는 부모들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이러한 아동학대 부모들의 친권을 박탈하려 하겠는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큰아이보다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 부모가 사랑을 쏟는다는 말이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무자격무면허부모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준비나 경험도 없이 부모가 되니 큰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고 익히며 실습할 수밖에 없으리라. 연습 삼아 낳아 기르는 게 큰아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큰아이보다는 둘째 셋째로 내려가면서 숙달된 부모, 자녀양육전문부모가 되어 훨씬 수월하게 밑엣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초보운전자가 번잡한 거리에서 충분히 주행연습을 하여 노하우를 쌓아 유능한 운전자가 되듯 초보부모도 그런 실습과정을 거쳐 진짜 능력 있는 부모가 되지 않았을까.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오래 전의 가족계획 구호를 다시 활용해야 될 실정이다. 오죽하면
"결혼한 지 1년 안에 임신하고, 두 아이를 서른 살 안에 낳아 기르자!"
며 정부가 123운동을 시작했을 것인가? 그런데 그에 앞서 부모교육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부 종교기관에서 부모교육을 시키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 즉 기혼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교육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처녀총각들을 대상으로 결혼 전에 부모로서의 바람직한 소양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제도마련이 더 화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부가 부모교육기관을 만들어 그곳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처녀총각들에게는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주어 결혼하도록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존경받는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전주시예술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교수/
e-mail: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창작 노트>
가정의 달 5월에 문득 떠올린 착상
수필은 자기 자랑의 문학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문학이다. ‘내 덕, 네 탓’이 아니라 ‘네 덕, 내 탓’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 챙겨야 할 날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해마다 월급쟁이로서는 이 가정의 달이란 강을 건너기가 벅찰 일이다.
자녀들 챙기랴, 친가와 처가 등 양가 부모 챙기랴, 초․중․고․대학 등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수많은 스승까지 챙기려면 허리가 휠 것이다. 그렇다고 5월에 갑자기 월급이 두툼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5월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달일지도 모른다.
지난 5월 어버이 날, 2남1녀 아들딸들이 서울에서 전주까지 3시간이나 걸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찾아와 선물과 용돈을 주고 간 적이 있다. 물론 연례행사지만 그 아이들을 돌려보내면서 문득 아버지인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상을 얻어 쓴 게 이 작품이다.
“노인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라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그 속담은 농경사회 시절에나 유효하지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이미 용도 폐기된 속담이다. 새로 생기는 아파트단지의 이름이 혀가 잘 돌지 않는 외국어로 변하고 있고, 모든 시설은 비밀번호를 알아야 드나들거나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늙은 부모들이 자주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이건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개나리 아파트, 무궁화 아파트라고 할 때는 늙은 부모도 열쇠만 있으면 만사 OK였다. 그러나 지금 새 고급 아파트에서는 열쇠조차 사라졌다. 자녀들의 아파트단지 이름과 출입구의 비밀번호를 암기하거나 수첩에 기록해둬야 겨우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이러한 시대상을 되짚어보노라니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한 편의 수필로 정리하고 나니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콜럼버스 꼴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필이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문학이라고 믿기에 내가 이런 글을 빚었던 것이다.
김 학
나는 지금까지 평생 자격증 하나와 면허증 하나밖에 딴 일이 없다. 자격증은 대학 졸업 때 땄던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이고, 면허증은 88서울 올림픽 때 땄던 운전면허증이다. 나는 그 두 가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교사 자격증은 제대 후 H고등학교에서 6개월 간 교사생활을 할 때나 필요했지 지금은 무용지물이고, 운전면허증은 앞으로도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증명서다. 승용차를 타고 외출할 때 혹 주민등록증은 빠뜨려도 상관없지만 운전면허증은 꼭 가지고 나가야 한다.
국가가 공인하는 운전면허증을 땄지만 19년 동안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자잘한 접촉사고를 많이 냈다. 두 번째 구입한 지금의 승용차도 여기저기 긁혀서 싸움개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내가 운전을 잘못하여 긁히기도 했지만, 남의 실수로도 긁혔고, 원인불명의 상처도 없지 않다. 그것이 내 승용차의 현실이다. 돈 내고 자동차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을 배워 면허증을 땄는데도 실제 운전을 하다보니 이렇게 잦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자격증이나 면허증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아빠가 되었다. 내가 운전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연습을 했던 것은 안전한 운전사가 되려는 준비과정이었다. 정식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뒤 운전을 해도 그렇게 실수가 잦았는데, 아무런 준비나 연습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된 내가 과연 제대로 아빠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아빠들도 나와 대동소이할 것이고, 엄마들도 다를 바 없을 줄 안다. 우리는 준비도 하지 않고 경험도 없는 초보부모이자, 공인 자격증이나 면허증도 없는 무자격무면허 아빠엄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나 무면허운전사를 단속하는 교통경찰은 있지만 무자격무면허 아빠엄마를 단속하는 경찰은 없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2남1녀를 두었다. 그 아이들 가운데 큰아들과 막내딸은 이미 결혼을 하여 첫아들 하나씩을 낳아 기르고 있고, 둘째 아들도 2년 전에 결혼하여 둘째 며느리가 지금 임신 중이다. 물론 큰아들과 딸 내외도 준비 없이 어느 날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우리 부부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오십보백보다. 내 아이들은 자라면서 내 말 한 마디와 행동 한 가지를 허투루 보지 않고 귀담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그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보여준 행동이 모두 제대로 된 가르침이었고 시범조교와 같은 본보기였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세 아이들에게 교육적 목적으로 말과 행동을 하기보다는 내 기분, 내 생각대로 했던 게 더 많았을 것 같다.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던 적도 더러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범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선생님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교사자격증을 받는다. 그러고서도 또 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학교에서 선생님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보다 더 자녀들에게 영향력이 막중한 부모들에게는 왜 그런 교육절차가 생략된 것일까? 부모자격증이나 부모면허증을 주는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결혼만 하면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될 수 있다니, 이건 진짜 모순이 아닌가?
무자격무면허 부모들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 망원경을 깊이 들이대 보면 별의 별 희한한 일들이 많다. 12살 난 자기 친딸을 유흥업소에 팔아넘긴 엄마가 있는가 하면, 아들딸을 부모의 전유물처럼 여기고 고층 아파트에서 창 밖으로 내던져 목숨을 잃게 하는 부모도 있다. 어린아이의 손발을 묶어놓고 때리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은 채 방에 가둬두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자기 아이를 굶겨서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게 하기도 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동반자살부모도 없지 않다. 동물도 감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온갖 잔혹한 일들을 태연히 저지르는 부모들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이러한 아동학대 부모들의 친권을 박탈하려 하겠는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큰아이보다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 부모가 사랑을 쏟는다는 말이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무자격무면허부모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준비나 경험도 없이 부모가 되니 큰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고 익히며 실습할 수밖에 없으리라. 연습 삼아 낳아 기르는 게 큰아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큰아이보다는 둘째 셋째로 내려가면서 숙달된 부모, 자녀양육전문부모가 되어 훨씬 수월하게 밑엣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초보운전자가 번잡한 거리에서 충분히 주행연습을 하여 노하우를 쌓아 유능한 운전자가 되듯 초보부모도 그런 실습과정을 거쳐 진짜 능력 있는 부모가 되지 않았을까.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오래 전의 가족계획 구호를 다시 활용해야 될 실정이다. 오죽하면
"결혼한 지 1년 안에 임신하고, 두 아이를 서른 살 안에 낳아 기르자!"
며 정부가 123운동을 시작했을 것인가? 그런데 그에 앞서 부모교육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부 종교기관에서 부모교육을 시키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 즉 기혼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교육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처녀총각들을 대상으로 결혼 전에 부모로서의 바람직한 소양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제도마련이 더 화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부가 부모교육기관을 만들어 그곳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처녀총각들에게는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주어 결혼하도록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존경받는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전주시예술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교수/
e-mail: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창작 노트>
가정의 달 5월에 문득 떠올린 착상
수필은 자기 자랑의 문학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문학이다. ‘내 덕, 네 탓’이 아니라 ‘네 덕, 내 탓’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 챙겨야 할 날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해마다 월급쟁이로서는 이 가정의 달이란 강을 건너기가 벅찰 일이다.
자녀들 챙기랴, 친가와 처가 등 양가 부모 챙기랴, 초․중․고․대학 등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수많은 스승까지 챙기려면 허리가 휠 것이다. 그렇다고 5월에 갑자기 월급이 두툼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5월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달일지도 모른다.
지난 5월 어버이 날, 2남1녀 아들딸들이 서울에서 전주까지 3시간이나 걸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찾아와 선물과 용돈을 주고 간 적이 있다. 물론 연례행사지만 그 아이들을 돌려보내면서 문득 아버지인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상을 얻어 쓴 게 이 작품이다.
“노인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라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그 속담은 농경사회 시절에나 유효하지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이미 용도 폐기된 속담이다. 새로 생기는 아파트단지의 이름이 혀가 잘 돌지 않는 외국어로 변하고 있고, 모든 시설은 비밀번호를 알아야 드나들거나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늙은 부모들이 자주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이건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개나리 아파트, 무궁화 아파트라고 할 때는 늙은 부모도 열쇠만 있으면 만사 OK였다. 그러나 지금 새 고급 아파트에서는 열쇠조차 사라졌다. 자녀들의 아파트단지 이름과 출입구의 비밀번호를 암기하거나 수첩에 기록해둬야 겨우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이러한 시대상을 되짚어보노라니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한 편의 수필로 정리하고 나니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콜럼버스 꼴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필이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문학이라고 믿기에 내가 이런 글을 빚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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