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이야기

2007.10.16 16:47

신기정 조회 수:50 추천:11

냉장고 이야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신기정



지난 여름 동안 냉장고 문에 박제된 초파리들의 흔적을 치우려던 게 안쪽까지 청소하기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혼자만의 객지 살림임에도 칸칸이 놓여진 반찬이며 음식재료들이 만만찮은 양이다. 안쪽 깊숙한 곳의 기일을 넘긴 음식을 치우면서 평소 서울 집에서 빼곡히 들어찬 냉장고를 두고 아내와 신경전을 치르던 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을 지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 다음을 기약했다가 잊어버린 것들이었음을 이해한 까닭이다. 함께하는 식솔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격이다.

예전 고향 집에 냉장고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7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지금은 김치에서 화장품 보관까지 용도별로 구분해서 쓸 정도로 냉장고가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냉장고가 있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였다. 깊은 우물이나 마을 뒷산의 토굴이 냉장고를 대신했었기 때문이다.

밥은 연료도 아낄 겸 여러 끼니 분을 함께 지은 뒤 뚜껑이 달린 대바구니에 넣어 처마에 걸어 두었다. 파리 등 해충을 피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일이나 야채도 비슷한 방법으로 보관하였다. 김장김치도 지금처럼 계절 구분 없이 먹을 수 없었기에 여름날에는 열무김치가 대신했다. 보관은 작은 옹기에 담아 깊은 우물에 매달아 두었고, 꽁보리밥에 곁들여 먹는 시원한 열무김치는 별미였다.

냉장고가 있어도 여름날 그 속에 보관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김치와 처마 밑의 대바구니를 대신한 식은 밥 보관이 보통이었다. 간혹 수박이나 참외 등 과일이 추가되었다. 가장 인기를 끈 것은 역시 뜨거운 여름에 맛보는 얼음이었다. 시원한 오이냉국이나 미숫가루 물을 맛보는 것도, 분말주스로 ‘아이스케끼’를 만들어 먹는 것도 냉장고가 없는 집 아이들에겐 부러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냉장고를 처음 들여놓던 날 그 냉장고 앞에서 가족끼리 기념사진을 찍은 시인이 있었을까?

우스운 것은 당시 어지간한 집에선 여름 한철을 보내고 나면 냉장고에 포장을 씌워 따로 보관했다는 사실이다. 만만찮은 전기요금 때문에 냉장고의 편리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뒤 에너지 절약형 모델이 등장하면서 보급량이 늘고, 사용시기 역시 여름 한철에서 사계절로 바뀌게 되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삼성, 금성, 대우 등 가전 3사가 늘 새로운 기능을 갖춘 제품으로 인기연예인들을 앞세운 광고전쟁을 치른 것도 보급이 늘어난 게 원인이었다. 사활을 건 당시의 업체간의 경쟁이 요즈음 우리 백색가전제품이 세계시장을 휩쓰는 원동력이 된 듯도 하다.

요즘에는 냉장고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가 없다. 대형 할인점에서의 대량구매로 점점 더 덩치 큰 냉장고의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커진 덩치에 비례하여 버려지는 음식의 양도 많아지고, 장기 보관의 이점이 더욱 신선한 재료의 선택을 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허용용량 이상의 포식으로 끙끙거리는 냉장고의 소음도 문제다. 일정 온도 유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가동과 중지를 반복하는 냉장고는 잠 못 이루는 밤의 또 다른 불청객이다. 해결책은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적당한 비움뿐이지만 큰 것과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쉬운 선택은 아닌 듯하다.

우리가 생활의 편리함만 쫓다가 잃어버린 것들이 어찌 한둘이랴? 비록 여름 한철에만 쓰던 냉장고였지만 대사를 치른 이웃의 음식을 대신 보관해주고, 손님이 든 이웃에 시원한 김치 한 보시기로 정을 건네던 그 때 그 시절! 자꾸 허우대만 커지고 속은 비어가는 세상에 대한 갈증이 불편해도 찰진 인절미 같은 정을 간직했던 고물 냉장고의 들들거리는 소음까지도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2007.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