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2007.10.09 21:35

이의 조회 수:47 추천:10

아궁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이의


  산골마을이나 가야 볼 수 있는 아궁이를 TV에서 보며 따듯한 아랫목이 생각나고 가마솥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밥 냄새가 그리워진다. 두 노부부만이 사는 부엌에 가마솥이 걸려있고 장작불이 활활 타는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처마 밑에는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있어 겨우내 땔감 걱정 없는 푸근한 겨울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의 난방은 백제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아궁이는 우리민족과 뗄 내야 뗄 수 없는 주거생활의 한 방법으로 굳어졌다. 땅을 파서 움집에서 살던 일반 백성들이 습기로 인하여 여러 가지 병이 생기자 개선책으로 생겨난 온돌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겨울은 몹시 추워 난방과 취사용으로 아궁이는 꼭 있어야 했다. 아궁이는 부엌살림을 하는 여자들과는 가장 밀집한 관계다. 물을 덥히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과정도 아궁이에 불을 때야만 가능했다. 그 시절 겨울철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는 맛은 낭만적이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였던 그때는 아궁이 속 불더미는 감자, 고구마, 밤을 굽는 군것질의 공급처가 되었으니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잘 마른 땔감으로 불 때는 시간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가 졸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날씨가 흐리거나 청솔가지라도 때면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어 눈물을 흘릴 때는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들쑤시며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도 했을 것이다. 눈치 없이 따듯한 아궁이를 찾아드는 강아지를 얄미운 시뉘대신 부지깽이로 때리기도 하고, 떠나 온 친정을 그리워하며 여자로 태어났음을 한탄도 했으리라.

  아궁이의 열은 아랫목을 따뜻하게 해서 자연히 그 아랫목이 상좌 구실을 하였다. 귀한 손님이 오면 아랫목으로 모셨고, 집안 어른의 자리도 바로 아랫목이었다. 이런 상등석이 없어지자 남존여비사상도 퇴색되어 여권(女權)이 신장되었다. 자고, 먹고, 태어나고, 임종의 자리이기도 한 다용도실 안방이 사라졌다. 아궁이가 없어지니 아랫목이 없어졌고, 중심이 흐트러져 갔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핵가족화 되어 노인들만 사는 가정이 늘어나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독신주의자가 많아지고 인구가 감소되어 국가적인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196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화장실과 부엌이 개량되면서 아궁이는 연탄보일러로 교체되었다. 보일러로 전환되며 윗목 아랫목이 없어지고, 안방문화가 사라지며 가장의 권위가 실추되어 갔다. 나무꾼이 사라지니 산은 푸르러졌고 자연재해도 많이 예방되었다. 또 연탄이 귀한 인명을 빼앗아갔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였다.

지금은 19공탄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다음 세대에는 어떤 연료를 사용하게 될까? 지구의 온난화를 막고자 천연 에너지를 개발하는 연구가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육지에서 채굴할 자원이 고갈되자 바다 속 깊은 곳에서 가스, 석유, 광물질을 캐내기 위한 국제전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둥근 지구를 계속 파헤치면 아름다운 지구가 비명을 지를 날이 올 것 같아 두려워진다.

나무 때던 아궁이가 연탄아궁이에서 보일러로 바뀌면서 사랑방이 사라지고, 여권이 신장되고 있다. 여권신장도 좋으나 TV속 아궁이가 활활 타는 그런 풍경이 그립고 그 속에서 살던 때가 진정한 평화로운 삶이 아니었나 싶다.     (200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