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2008.02.24 21:12

김학 조회 수:728 추천:2

*그것이 알고 싶다
                                                            김학



나이가 들수록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이순(耳順)의 문턱을 넘으면 경험과 지혜가 쌓여 유식해질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궁금한 일만 늘어간다.

21세기는 변화가 눈부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아니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은 많이 쌓여도 활용도가 떨어지는 경험일 뿐이다.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탓이다. 그러니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앞 파도가 뒤 파도에 밀리듯, 언제 어디서나 후배들에게 쫓기며 살아야 한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후배들에게 밀린다. 언제 어디서고 상황은 다를 바 없다. 선인들이 일찍이 갈파하신 후생가외(後生可畏)란 가르침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의 선인들은 농경사회에서 살면서 어떻게 그런 철학을 터득했을까?

농경사회 시절에는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노인들은 나이와 더불어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많은 교훈을 줄 수가 있었다. 그 교훈이 소득과도 연계가 되었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보탬이 되었으며, 원활한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기에 그 시절에는 노인들이 항상 존경의 대상으로서 추앙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노인들은 가정에서도 즐비한 가전제품 하나 마음대로 동작시키지 못한다. 행여 고장이나 나지 않을까 저어하여 작동을 꺼린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새롭게 개발된 갖가지 기기(器機)들이 등장하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니 후배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고, 선배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이러다 니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다. 설명서만 있으면 척척 기기를 설치하고 작동할 줄 아는 후배들을 경탄의 눈으로 망연히 쳐다볼 수밖에 없다. 핸드폰도 고작 오는 전화나 받고 필요한 곳에 전화나 걸 줄 알 뿐이다. 다양한 기능은 써먹지도 못하고 써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게 나이 든 사람들의 통폐다. 그러니 오늘의 노인들이 농경사회 시절의 노인들처럼 어찌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다. 젊었을 때는 귀담아 듣지 않았던 말이다. 그냥 노인들이 자기 최면(催眠)을 위하여 해본 이야기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 대열에 끼고 보니 어떤 명언보다도 그 말이 내게 큰 위안을 준다. 그 말을 처음으로 창안한 이를 만나면 호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술 한 잔 대접하고 싶다.

정년 퇴직한 어느 철학교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계란에는 노른자위가 있어야 계란구실도 하고, 병아리가 부화되어 나올 수도 있지. 인생도 살아보니 계란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나이는 바로 60세에서 75세까지야."

사람은 누구나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젊어서 존경을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뛰어난 능력이나 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어도 존경의 대상이 되기는 곤란하다. 세계적인 프로 골퍼 박세리나, 프로 야구 선수 박찬호, 바둑 천재 이창호 같은 젊은이들에게 존경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존경이란 표현은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사람에게나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예순 살은 넘어야 인간적인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철학교수의 말씀처럼 존경의 대상은 계란 노른자위의 나이가 되어야 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세월로만 따진다면 나도 이제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존경은 내가 받고 싶다고 하여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이가 이순(耳順)의 문턱을 넘었다고 하여 모두 존경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던가?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향기를 뿌렸느냐 구린내를 뿌렸느냐에 따라 평가
는 달라진다. 맹자의 "내게서 나간 것이 내게로 돌아온다.[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려니 싶다.

나는 늘 궁금하게 여기는 게 있다. '가까운 남'인 나의 가족들, 이를테면 아내나 자녀들이 나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 남편 또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퍼뜩 무슨 생각을 떠올리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아니 내 동생이나 내 친구들, 또는 나의 옛 동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까운 남'인 가족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어찌 그보다 '먼 남'들로부터 존경받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봄에 씨앗을 뿌리지도 않은 농부가 가을에 추수를 하려고 덤빈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다.

나이가 들어가면 기억력은 쇠퇴해지지만 사고력은 더 높아지며, 인생의 지혜는 더 풍부해진다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르다. 확실히 기억력은 쇠퇴해지는데, 사고력이 높아지거나 인생의 지혜가 풍부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이제 "인생은 60부터"의 출발선에 서 있다. 계란의 노란 자위 같다는 이 남은 세월을 어떻게 유익하게 보내야 할 것인지 그게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내가 그 숙제를 잘 풀 때 나의 사고력도 높아지고 인생의 지혜도 풍부해질 것이며, '가까운 남'이나 '먼 남'으로부터도 존경을 받을 수 있으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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