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2008.02.25 18:06

이의 조회 수:717 추천:2

엄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이의

        

  일요일 오후 모처럼 딸과 손자랑 TV앞에 둘러 앉아 ‘엄마’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 집안에 살면서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가 일주일이면 한두 번밖에 없다. 그런데 이 귀한 시간을 TV앞에서 보내야하나 하며 망설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덧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 함께 웃고 공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두심이 엄마로 분장해 열연을 펼치며 극을 이끌어 나갔다. 남쪽 어느 농촌마을에 살고 있는 시골 여인인 엄마에게 어느 날 큰 고민거리가 찾아왔다. 딸이 목포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목포까지 가야했다. 엄마는 어지럼증으로 차를  못 탄다. 그리하여 가마를 타고 가려 하지만 그것도 안 되고 지게를 이용하려 해도 어지럼증으로 불가능하여 결국은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딸과 사위, 아들이 구간을 맡아 동행하지만 200여 리나 되는 먼 길을 늙은 여자가 가기에는 너무 멀고 힘들었다.

68세의 엄마는 결국 예식장에 도착해 신부측 부모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딸의 결혼식 진행 중에 눈을 감고 생을 마감한다. 스님인 둘째딸 영옥이가 엄마의 죽음을 알아보고 눈물의 합장을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허수아비아저씨가 식장 한 귀퉁이에서 한 여인의 죽음을 알아보고 슬퍼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어머니, 나를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서는 올 수 없는 이 자리에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거울이셨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임종 전 엄마의 독백 같은 짧은 기도는 자식과 엄마라는 차원을 떠나서 언제나 유기(有機)적인 파장 속에 맺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발적으로 언제나 공존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네어귀 길가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본인도 허수아비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던지는 알쏭달쏭한 남자, 그 남자는 어지럼증 때문에 딸의 결혼식에 갈 수 없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남자다. 길을 떠나는 할머니로부터 태양을 가려줄 양산을 선물로 받는다. 그 남자는 딸에게 줄 선물로 할머니에게 부적을 주지만 가는 도중 잃어버린다. 허수아비아저씨는 잃어버린 부적을 들고 여행 중간에 재회하며 할머니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또한 마지막 순간에 그의 존재를 부각시킨 것은 단순히 엄마와 자식간의 사랑을 넘어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Communication]을 말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별도의 존재가 아니고 하나라는 우주의 원리를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돌볼 수 없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영화 중간중간에 자주 등장하는 둘째딸 영옥이가 출가(出家)를 하자 엄마는 딸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사랑에서 좀 더 넓은 의미의 중생에 대한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 엄마의 사랑을 보다 폭 넓게 포괄적으로 해석하려고 한 것 같다. 단순히 자식만의 한정된 사랑이 아닌 이웃간의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한 사랑까지도 담아보고 싶은 감독의 의지가 보였다.

엄마는 어지럼증 때문에 평생 차를 타고 타지로 나가 본 적도 없이 고된 일과 자식에 대한 기대와 헌신으로 보낸다. 조건 없는 엄마의 사랑으로------. 이 엄마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그 엄마도 밤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에대한 사랑, 감사, 연민은 가슴이 저리도록 미안하여 기도와 눈물로 밤을 홀로 지새우기도 한다. 어렵고 힘들 때 끌어주는 힘은 어머니라는 존재다. 나를 사랑하여 생명까지도 접을 수 있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알고 있기에, 위기상황에 몰리면 하느님을 찾듯 엄마, 어머니를 찾는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바라보는 존재, 내게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은 존재, 방황으로 헤맬 때도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며 기도하여 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 올 수 있다. 어쩌다 수배범이 된 둘째아들이 엄마의 여행 중에 나타나 엄마에게 기쁨을 주고, 아들은 엄마가 있는 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200리 도보여행도 그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산을 넘고 또 넘고 냇물에 빠져 위급한 상황을 극복하면서 딸의 결혼식장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사랑하여 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 어머니를 찾으며 기도하며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눈을 감기 전에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죽는다.

여행의 끝 무렵에 등장한 스님인 둘째딸 영옥은 산 중턱 갈림길에서 어머니를 기다린다. 멀리서 허우적대며 오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눈시울을 적시며 독백을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찬밥덩이로 점심을 드셔도 되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는 하루 종일 논이나 밭에 나가 땡볕에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계속 일을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는 친정에 일년 내내 안가도 되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많다. 그 중에도 엄마의 길만큼 사랑과 고난이 함께하는 길도 없지 싶다. 스님인 딸의 독백은 어머니의 존재에 경외감을 느끼며 한없이 큰 사랑과 희생의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나도 세 아이들의 엄마다. 과연 엄마라는 존재는 어느 만큼의 무게가 실린 걸까?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처음 설을 맞아보고야 내 나름대로 깨달음이 전해 왔다. 어머니란 존재는 그냥 옆에만 있어줘도 힘이 되고 가슴이 따뜻한 존재라는 것을, 한 번 간 어머니는 다시 볼 수 없지만 그리운 고향 같고, 안온(安穩)한 양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20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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