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그리운 것은

2008.03.09 15:26

김학 조회 수:728 추천:2

자유가 그리운 것은
                                                        김학





남녘 창을 밀치자 기다렸다는 듯 햇살이 거실로 뛰어들어온다. 따사롭고 눈부신 초가을 햇살이다. 햇살은 주인인 나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소파에 걸터앉는다.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 어린이들 마냥 햇살은 저희들끼리 부둥켜안고 장난삼매경에 빠져 있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다. 아청빛 융단을 펼쳐놓은 듯 포근해 뵌다. 난데없이 잠자리 비행기 한 마리가 요란한 날갯짓을 하며 북녘으로 날아간다. 잠자리 비행기의 굉음이 오래도록 내 귓바퀴를 맴돈다. 어디선가 집을 짓는 목수들의 망치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활기 넘치는 초가을의 한때다.



오늘은 9월의 마지막 월요일, 아이들은 학교로 갔고, 어머니와 아내도 외출 중이다. 2층에 사는 젊은 부부도 일터로 나간 지 오래다.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출장길을 떠날 때까지는 10여 시간의 여유가 있다. 마냥 한가롭고 넉넉한 여유가 나를 설레게 한다.



직장이란 올가미에서 풀려난 나의 조그만 자유가 한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창밖으로 시선을 내민다. 대문 옥상으로 줄기차게 뻗어가는 능소화 덩굴이 눈에 잡힌다. 세 송이의 적황색 꽃이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의 자유를 축하해 주는 능소화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성싶다. 제약 없는 자유가 나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아무도 나를 간섭하는 이 없고, 누구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자유만복이다. 그동안 세상살이에 쫒겨 가족의 얼굴조차 찬찬히 바라볼 수 없었던 내가 이러한 자유를 누리게 되다니…….



노란 햇살이 알몸으로 뒹구는 마당으로 나선다. 베란다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분재에 눈길이 멎는다. 군대시절 염천하의 갈증을 떠올리며 조로에 물을 담아다 분재마다 뿌려준다. 앙증스러운 분재의 나뭇가지와 잎새가 바람결에 흔들린다. 잎새의 흔들림은 나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리라.



“미안하다. 나무들아, 너희들을 이 좁은 분기(盆器)안에 가둬두고 자유를 속박한 나를 용서해다오. 너희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도 보다시피 우리집 뜨락은 너무 좁지 않니?”



사실 내 손으로 분기에 옮겨 심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모두가 친지들로부터 선사 받은 것일 뿐.



지난해에는 분재로 받았던 소나무와 등나무, 금송 세 그루에게 자유를 주었다. 정원에 심은 것이다. 오랜 세월 움츠리고 살던 세 그루의 나무는 뿌리를 내려 활기찬 삶을 누리고 있다. 어쩌다 정원에 들어서면 그들은 다투어 나를 반겨준다, 푸른 잎새를 흔들며 나를 환영한다. 나는 노예를 해방시켜 준 링컨 대통령 부럽지 않게 뿌듯한 기쁨과 보람을 맛본다. 나는 언젠가 분재전문가 H씨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38평의 마당에는 간이온실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온실 안에는 수백 개의 분재가 줄지어 앉아 있었다. 수종(樹種)도 다양하고 나무들의 생김새도 기기묘묘하였다. 값으로 따지면 몇만 원 짜리부터 몇십만 원 짜리까지라 했다. 나는 H씨 댁의 분재군(盆栽群)에서 자유를 빼앗긴 전쟁포로를 떠올렸다. H씨 댁은‘나무 포로수용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아이들의 성화에 못 견뎌 동물원을 찾은 적이 있다. 철책에 갇혀 사는 동물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고여 있었다. 고향을 잃고, 자유를 빼앗긴 채 구경거리로 전락한 동물들의 애잔한 삶이 내 심장을 할퀴는 성싶었다. 연민의 정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수용소에 갇힌 포로나 철책에 갇힌 동물 그리고 분재의 신세가 된 나무는 비슷한 운명이려니 싶다. 삶은 삶이로되 능동적인 삶이 아니라 피동적인 삶이란 공통점을 지난 존재들.



나도 인간분재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분기에 뿌리를 담고 사는 분재나 직장에 발을 담고 사는 내가 다를 게 무엇인가. 분재가 철마다 거실에서 베란다로 옮겨지는 것은 인사발령에 따라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나의 처지와 흡사하다. C씨가 애지중지하던 분재를 내게 넘겨준 것은 내가 S방송국에서 K방송국으로 직장을 옮긴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래서 나는 분재에게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분재들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싶다. 내가 온갖 속박의 굴레에서 훨훨 벗어나고 싶듯이 나무들도 그러려니 싶어서다. 흙속에서 자유로이 뿌리를 뻗으며 자라야 할 화목(花木)들이 좁은 분기에 갇혀 살면서 인간의 구경거리와 노리개가 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 아닐까. 만일 인간이 식물을 분재로 만들듯 누군가가 인간을 분재로 만드는 날이 온다면 예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은 그럴듯한 명분과 변명을 내세우며 자연을 훼손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의 상채기는 공해라는 업보가 되어 다시 인간의 숨통을 조른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 아닐까.



                                       (19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4 친구의 빈자리 윤상기 2008.03.11 715
» 자유가 그리운 것은 김학 2008.03.09 728
572 자유를 갈망하는 가객 정원정 2008.03.09 719
571 족보 유감 정장영 2008.03.08 716
570 바다를 원망하는 여인 김병규 2008.03.08 715
569 영원한 학생 성성기 2008.03.08 715
568 자갸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 김학 2008.03.07 738
567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서 최일걸 2008.03.05 713
566 어느 선각자의 발자취 윤석조 2008.03.04 713
565 봄 편지를 기다리며 이의 2008.03.03 716
564 대통령의 지휘봉과 정서 김경희 2008.03.03 713
563 예술계의 리더십 성기조 2008.03.01 716
562 돈 錢 Money 김학 2008.03.01 734
561 제1호 국보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 살면서 김경희 2008.02.28 713
560 막걸리 윤석조 2008.02.26 714
559 퀸즈타운 와카디프 빙하호수 윤상기 2008.02.26 713
558 문외한 김상권 2008.02.25 714
557 엄마 이의 2008.02.25 717
556 그것이 알고 싶다 김학 2008.02.24 728
555 되찾은 봉급날 윤석조 2008.02.21 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