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낙원에서 얻은 값진 교훈
2008.04.04 10:58
참사랑 낙원에서 얻은 값진 교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정경순
토요일! 몇 해 전만 해도 출근준비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반공일이다. 그러나 주5일근무제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황금 같은 공휴일로 자리매김 되어 근로자들에게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체력단련을 위하여 등산도 하고, 요가학원을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또 지난 한 해 동안은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따고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드나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은 자원봉사를 하러가려고 집을 나섰다. 개인적으로 자원봉사업무를 맡아 봉사단도 만들어 운영했던 터라 웬만큼 자원봉사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조가 활동하기로 한 곳은 정신장애인들의 요양시설인 ‘참사랑 낙원’이라기에 그다지 탐탁치 않았다.
옛날에는 이곳을 ‘갈멜산 정신요양원’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섭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옛날 우리 고향 성일정신요양원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교인들과 함께 그 요양원에 갔었는데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굵은 쇠창살 속에 갇혀서 손이 묶인 채 우리들을 향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섭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오늘은 내가 스스로 택한 자원봉사이기에 토요일 몇 시간이지만 소중하고 값진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봉사활동! 그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책을 기획하고 수요처를 개발해준 전주시 완산구청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조는 내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활동적이고, 모범적이며, 미와 멋을 겸비한 분으로만 구성된 전천후봉사단원이다. 남 직원 9명과 여직원 5명 등 14명이었다. 그중에는 남편을 따라 자진하여 봉사활동을 신청한 김안수 계장님의 천사 사모님도 있었다.
공무원 봉사활동 첫날이라서 완산구청에 모여 출발하라 했기에 우린 구청에 모였다. 그곳에는 많은 동료들이 와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 한창 집에서 어린 자녀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해야 할 후배공무원들이 더 많았다. 그동안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스스로 자책하며 후배공무원들의 야심 찬 도전에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조별로 인원을 점검한 뒤 활동조끼를 입고 출발한 20분 뒤에 우리 조는 대성동 참사랑 낙원에 도착하였다. 참사랑 원장님의 간단한 시설소개와 현재 130여 명의 생활인이 있으며 시설 입․퇴소는 자유이기 때문에 항상 숫자는 다르다는 설명을 들었다. 흉악한 범죄 사건을 정신장애인들이 저지른 일로 보도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시며 여기 오신 자원봉사자들이라도 우리 가족(생활인)들을 진솔하게 보아 달라고 당부했다.
남자 직원들은 이불을 내다 널어 일광소독 하는 일을 맡고, 여직원들은 사회복지사의 안내를 받아 여자 시설병동으로 들어가 계단의 때를 제거하고 마른걸레로 윤을 내는 작업을 하였다. 처음엔 쉬웠으나 오랜 시간 쭈그리고 앉아 걸레질을 하려니 모악산 등산 때보다 더 많은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 땀 흘리고 그 땀만큼 행복을 느끼는 지금 이순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이 아닌가?’
1시간 남짓 열심히 청소를 끝내자 이젠 생활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사회복지사의 또 다른 주문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한 방에 4~5명의 생활인들이 누워 있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등 다들 제각기 다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 방에 자리를 잡고 둥글게 둘러앉게 하니 이 방 저 방에서 생활인들이 들어와 앉았다. “경자 언니, 노래 좀 불러 봐! 얼른! 사회복지사의 채근이 끝나기 무섭게 경자 언니는 구성지게도 흘러간 노래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게 불렀다. “낙동강 강바람에 ~” 세월의 모진 한들이 그 노래에 묻어 한숨과 함께 구슬픈 노래로 표현되었고, 또다시 노래는 계속되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우리는 노래방의 공해아닌 공해로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한 곡도 생각나지 않는데 시설인 경자언니는 어쩜 그렇게 구슬프게 노래를 잘하는지. 잘한다는 칭찬에 또 한곡을 수줍은 새색시 마냥 끝내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손 마이크를 다른 이에게 넘겼다. 랩을 무슨 주문 외우듯이 숨도 쉬지 않고 냅다 부르는 수경이 처녀. 우리가 보기엔 서른 살이 가까워 보이는데 나이를 물으니 배시시 웃으며 몇 번이나 ‘열일곱’ 살이라고 했다. 모든 기억이 그 나이에 멈춰 버리고 그 고통의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저려왔다. 너무나 얌전하고 교양 있게 존경어를 쓰는 송씨 아주머니는 “이모 나이가 몇이에요?”라고 물으니 134살이라고 했다. “후유, 그렇게나 많아? 그럼 띠는 무슨 띠야?” 라고 물으니 말띠 용띠라 답한다. 우린 유쾌하게 웃었다. 그녀도 깔깔깔 따라 웃었다. 우린 그네들과 한살이 되었다.
노래가사를 외우고 기억하는 건 그네들이 훨씬 정확하였다. 우리 보고도 노래를 부르라는 주문을 했다. 우리 여직원들의 대표인 허양 언니가 “울고 넘는 박달재”란 노래를 한 곡 멋지게 선사했다. 역시 경륜은 못 속이나 보다. 준비도 없었는데 오늘의 리크레이션 리더 역할을 수준에 맞게 진행해준 허양언니를 바라보며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님을 실감케 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함께 하는 동안 그네들과 소박한 정을 느끼며 그들의 보이지 않는 아픔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병이 나아 다음 주에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진숙 아줌마! ‘결혼했느냐고 물으니, 결혼은 했는데 그 사람에게는 못가고 친정으로 간단다. 그래도 집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꾸자꾸 자랑했다.
그래! 이렇게 살기 좋은 시절에 물질문명이 넘쳐나고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의술이 발달한 지금에도 왜 저들은 고통과 괴로움을 잊은 채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불만을 머금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못내 부끄럽게 느껴졌다. ‘분별심을 버리라’는 우리 절 스님의 말씀이 뇌리에 스쳤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의 대화가 뜸해질 즈음 우리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포옹으로 작별을 대신하며 1층으로 내려와 남자 직원들과 합류하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린 오늘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참사랑 낙원과 낙원 식구들! 옛날 내 기억속의 편견과는 많이 달라진 그들이지만 항상 보호시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주는 밥을 먹고 감시받는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도 하루 빨리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춰지길 기원하면서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다음에 다시 올 것을 다짐했다. 그들과 함께한 오늘,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정경순
토요일! 몇 해 전만 해도 출근준비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반공일이다. 그러나 주5일근무제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황금 같은 공휴일로 자리매김 되어 근로자들에게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체력단련을 위하여 등산도 하고, 요가학원을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또 지난 한 해 동안은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따고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드나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은 자원봉사를 하러가려고 집을 나섰다. 개인적으로 자원봉사업무를 맡아 봉사단도 만들어 운영했던 터라 웬만큼 자원봉사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조가 활동하기로 한 곳은 정신장애인들의 요양시설인 ‘참사랑 낙원’이라기에 그다지 탐탁치 않았다.
옛날에는 이곳을 ‘갈멜산 정신요양원’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섭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옛날 우리 고향 성일정신요양원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교인들과 함께 그 요양원에 갔었는데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굵은 쇠창살 속에 갇혀서 손이 묶인 채 우리들을 향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섭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오늘은 내가 스스로 택한 자원봉사이기에 토요일 몇 시간이지만 소중하고 값진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봉사활동! 그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책을 기획하고 수요처를 개발해준 전주시 완산구청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조는 내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활동적이고, 모범적이며, 미와 멋을 겸비한 분으로만 구성된 전천후봉사단원이다. 남 직원 9명과 여직원 5명 등 14명이었다. 그중에는 남편을 따라 자진하여 봉사활동을 신청한 김안수 계장님의 천사 사모님도 있었다.
공무원 봉사활동 첫날이라서 완산구청에 모여 출발하라 했기에 우린 구청에 모였다. 그곳에는 많은 동료들이 와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 한창 집에서 어린 자녀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해야 할 후배공무원들이 더 많았다. 그동안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스스로 자책하며 후배공무원들의 야심 찬 도전에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조별로 인원을 점검한 뒤 활동조끼를 입고 출발한 20분 뒤에 우리 조는 대성동 참사랑 낙원에 도착하였다. 참사랑 원장님의 간단한 시설소개와 현재 130여 명의 생활인이 있으며 시설 입․퇴소는 자유이기 때문에 항상 숫자는 다르다는 설명을 들었다. 흉악한 범죄 사건을 정신장애인들이 저지른 일로 보도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시며 여기 오신 자원봉사자들이라도 우리 가족(생활인)들을 진솔하게 보아 달라고 당부했다.
남자 직원들은 이불을 내다 널어 일광소독 하는 일을 맡고, 여직원들은 사회복지사의 안내를 받아 여자 시설병동으로 들어가 계단의 때를 제거하고 마른걸레로 윤을 내는 작업을 하였다. 처음엔 쉬웠으나 오랜 시간 쭈그리고 앉아 걸레질을 하려니 모악산 등산 때보다 더 많은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 땀 흘리고 그 땀만큼 행복을 느끼는 지금 이순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이 아닌가?’
1시간 남짓 열심히 청소를 끝내자 이젠 생활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사회복지사의 또 다른 주문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한 방에 4~5명의 생활인들이 누워 있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등 다들 제각기 다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 방에 자리를 잡고 둥글게 둘러앉게 하니 이 방 저 방에서 생활인들이 들어와 앉았다. “경자 언니, 노래 좀 불러 봐! 얼른! 사회복지사의 채근이 끝나기 무섭게 경자 언니는 구성지게도 흘러간 노래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게 불렀다. “낙동강 강바람에 ~” 세월의 모진 한들이 그 노래에 묻어 한숨과 함께 구슬픈 노래로 표현되었고, 또다시 노래는 계속되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우리는 노래방의 공해아닌 공해로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한 곡도 생각나지 않는데 시설인 경자언니는 어쩜 그렇게 구슬프게 노래를 잘하는지. 잘한다는 칭찬에 또 한곡을 수줍은 새색시 마냥 끝내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손 마이크를 다른 이에게 넘겼다. 랩을 무슨 주문 외우듯이 숨도 쉬지 않고 냅다 부르는 수경이 처녀. 우리가 보기엔 서른 살이 가까워 보이는데 나이를 물으니 배시시 웃으며 몇 번이나 ‘열일곱’ 살이라고 했다. 모든 기억이 그 나이에 멈춰 버리고 그 고통의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저려왔다. 너무나 얌전하고 교양 있게 존경어를 쓰는 송씨 아주머니는 “이모 나이가 몇이에요?”라고 물으니 134살이라고 했다. “후유, 그렇게나 많아? 그럼 띠는 무슨 띠야?” 라고 물으니 말띠 용띠라 답한다. 우린 유쾌하게 웃었다. 그녀도 깔깔깔 따라 웃었다. 우린 그네들과 한살이 되었다.
노래가사를 외우고 기억하는 건 그네들이 훨씬 정확하였다. 우리 보고도 노래를 부르라는 주문을 했다. 우리 여직원들의 대표인 허양 언니가 “울고 넘는 박달재”란 노래를 한 곡 멋지게 선사했다. 역시 경륜은 못 속이나 보다. 준비도 없었는데 오늘의 리크레이션 리더 역할을 수준에 맞게 진행해준 허양언니를 바라보며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님을 실감케 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함께 하는 동안 그네들과 소박한 정을 느끼며 그들의 보이지 않는 아픔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병이 나아 다음 주에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진숙 아줌마! ‘결혼했느냐고 물으니, 결혼은 했는데 그 사람에게는 못가고 친정으로 간단다. 그래도 집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꾸자꾸 자랑했다.
그래! 이렇게 살기 좋은 시절에 물질문명이 넘쳐나고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의술이 발달한 지금에도 왜 저들은 고통과 괴로움을 잊은 채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불만을 머금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못내 부끄럽게 느껴졌다. ‘분별심을 버리라’는 우리 절 스님의 말씀이 뇌리에 스쳤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의 대화가 뜸해질 즈음 우리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포옹으로 작별을 대신하며 1층으로 내려와 남자 직원들과 합류하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린 오늘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참사랑 낙원과 낙원 식구들! 옛날 내 기억속의 편견과는 많이 달라진 그들이지만 항상 보호시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주는 밥을 먹고 감시받는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도 하루 빨리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춰지길 기원하면서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다음에 다시 올 것을 다짐했다. 그들과 함께한 오늘,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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