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은 아무나 보내나
2008.04.05 14:08
청첩장(請牒狀)은 아무나 보내나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자반 은 종 삼
맏딸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낼 대상을 선정하노라 무척 고심하였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가수 태진아의 히트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정말 청첩장은 아무나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청첩장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남을 청하는 글발’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청간(請簡) 청찰(請札)과 같이 쓰이며 줄임말로는 청장(請狀), 청첩(請牒)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혼사는 예로부터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 중 가장 경사스러운 일로서 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단어들이 만들어진 게 아니겠는가.
물론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혼인 신고만 해도 결혼은 성립된다. 아마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아들딸을 낳고 사는 부부도 꽤 있으리라. 산속 절간에서 하객 없이 스님의 예불만으로 약식 결혼식을 올렸다는 부부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극히 드문 일일 것이며 사회 통념상 인정할 수 없는 경우라고 본다.
결혼식은 신랑〮․신부 둘만의 약속이 아니라 만인에게 성혼(成婚)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는 신(神)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객(賀客)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혼례의 첫 번째 일이 하객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다. 곧 결혼식에서 청첩장은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그런데 청첩장은 반가운 일면도 있지만 받고나면 물질적 정신적 부담도 따른다. 그러니 하객을 선정하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알려야 할 사람에게 꼭 알려서 성스러운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게 해야 좋다. 청첩장을 너무 남발하면 축하보다는 빈축(嚬蹙)을 살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주의해야 한다. 누구나 당하는 애경사(哀慶事)에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미덕을 드러내는 축조의금을 챙기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한 반대로 이른바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꼭 알려야 할만한 분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삭막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첩장을 보낼 때 ‘대상 선정기준’을 나름대로 정하였다. 첫째로 6촌 이내의 일가친척, 현재 내가 참여하는 각종 모임의 회원과 소속단체의 장, 삼년 이내 애‧경사에 동참했던 친지, 오래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나 동창생, 연수동기생, 또는 업무협조로 자주 만나 마음이 통했던 옛 친구 친지 중 떠오르는 분을 가려 선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낼까말까 망설이다가 한 번 보내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시험 삼아 몇 장 보냈다. 실로 심사숙고 끝에 262명의 청첩장 주소록이 만들어졌고, 이 분들은 나의 선택을 받으신 참으로 귀한 하객이 되셨다. 그러나 예식장 뷔페 식권의 기본이 250장이라는데 과연 250명이 채워질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참고로 3년 전 아들 결혼 때에는 학교장이란 직함 덕인지 472명에게 청첩장을 보냈었다.
노란 산수유 꽃이 손짓하는 3월 29일 황금보다 더 귀한 토요일 오후 1시, 전주역 앞 「웨딩의 전당 2층 드림홀」은 서울, 부산 등 원근 각처에서 친척, 친구, 친지, 동창 등 하객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정말 바로 이게 행복이 로구나 느껴졌다. 특히 부산에서 팔순을 넘기신 숙부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하시니 마치 돌아가신 아버님이 살아오신 것 같았다.
누가 큰일을 치르고 나면 세상인심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딱 맞는 말이었다. 삼년 전 아들 결혼 때는 별 생각 없이 혼사를 치렀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방명록을 보니 보여야 할 만한 이름들이 많이 빠져 있었다. 만일 내가 현직에 있다면 발 벗고 나설 분들이었다. 심지어 최근 애‧경사를 당해 인사를 드렸던 분들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낸 청첩장을 받자마자 휴지통에 넣지 않았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고, 또 실제로 이사를 하여 반송된 것도 상당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분들은 청첩장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가하면 나에게 감동을 주는 하객들도 꽤 있었다. 모르는 분이 있어 봉투에 적힌 전화번호로 누구시냐고 했더니 아들이 고등학교 때 제자 아무개 아버지라고 했다. 어떤 분은 신문에서 결혼안내를 보고 왔다고도 했고, 10여 년 전 함께 근무했던 한 선생님은 어찌 알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교장선생님에게 보낸 청첩장을 보았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왜 나한테는 청첩장을 안 보냈느냐며 다른 사람에게 듣고 왔노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사실은 청첩장을 보냈는데 배달이 잘 안된 것 같다고 했지만 서운한 감정이었다. 또 어떤 하객은 신랑 측 청첩장을 받아보고 알았다며 축의를 표했다. 38년 전 초임교사 시절 한 동료는 나의 근황을 알게 되어 축의를 전달했다. 이와 같이 생각지도 않은 하객들도 상당 수 있었다. 이래서 세상은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 고맙고 또 고맙다. 이 고마운 마음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모름지기 결혼식은 성스러워야 하며 하객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청첩인은 청첩장을 신중히 보내야 하고, 청첩장을 받은 사람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동참하고 여의치 못하면 축전, 서신, 전화로라도 축하하여 반드시 청첩장을 받았음을 알리는 것이 도리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딸을 출가시키면서 나는 또 하나의 소중한 개달음을 덤으로 얻었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자반 은 종 삼
맏딸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낼 대상을 선정하노라 무척 고심하였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가수 태진아의 히트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정말 청첩장은 아무나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청첩장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남을 청하는 글발’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청간(請簡) 청찰(請札)과 같이 쓰이며 줄임말로는 청장(請狀), 청첩(請牒)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혼사는 예로부터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 중 가장 경사스러운 일로서 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단어들이 만들어진 게 아니겠는가.
물론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혼인 신고만 해도 결혼은 성립된다. 아마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아들딸을 낳고 사는 부부도 꽤 있으리라. 산속 절간에서 하객 없이 스님의 예불만으로 약식 결혼식을 올렸다는 부부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극히 드문 일일 것이며 사회 통념상 인정할 수 없는 경우라고 본다.
결혼식은 신랑〮․신부 둘만의 약속이 아니라 만인에게 성혼(成婚)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는 신(神)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객(賀客)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혼례의 첫 번째 일이 하객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다. 곧 결혼식에서 청첩장은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그런데 청첩장은 반가운 일면도 있지만 받고나면 물질적 정신적 부담도 따른다. 그러니 하객을 선정하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알려야 할 사람에게 꼭 알려서 성스러운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게 해야 좋다. 청첩장을 너무 남발하면 축하보다는 빈축(嚬蹙)을 살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주의해야 한다. 누구나 당하는 애경사(哀慶事)에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미덕을 드러내는 축조의금을 챙기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한 반대로 이른바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꼭 알려야 할만한 분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삭막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첩장을 보낼 때 ‘대상 선정기준’을 나름대로 정하였다. 첫째로 6촌 이내의 일가친척, 현재 내가 참여하는 각종 모임의 회원과 소속단체의 장, 삼년 이내 애‧경사에 동참했던 친지, 오래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나 동창생, 연수동기생, 또는 업무협조로 자주 만나 마음이 통했던 옛 친구 친지 중 떠오르는 분을 가려 선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낼까말까 망설이다가 한 번 보내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시험 삼아 몇 장 보냈다. 실로 심사숙고 끝에 262명의 청첩장 주소록이 만들어졌고, 이 분들은 나의 선택을 받으신 참으로 귀한 하객이 되셨다. 그러나 예식장 뷔페 식권의 기본이 250장이라는데 과연 250명이 채워질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참고로 3년 전 아들 결혼 때에는 학교장이란 직함 덕인지 472명에게 청첩장을 보냈었다.
노란 산수유 꽃이 손짓하는 3월 29일 황금보다 더 귀한 토요일 오후 1시, 전주역 앞 「웨딩의 전당 2층 드림홀」은 서울, 부산 등 원근 각처에서 친척, 친구, 친지, 동창 등 하객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정말 바로 이게 행복이 로구나 느껴졌다. 특히 부산에서 팔순을 넘기신 숙부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하시니 마치 돌아가신 아버님이 살아오신 것 같았다.
누가 큰일을 치르고 나면 세상인심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딱 맞는 말이었다. 삼년 전 아들 결혼 때는 별 생각 없이 혼사를 치렀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방명록을 보니 보여야 할 만한 이름들이 많이 빠져 있었다. 만일 내가 현직에 있다면 발 벗고 나설 분들이었다. 심지어 최근 애‧경사를 당해 인사를 드렸던 분들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낸 청첩장을 받자마자 휴지통에 넣지 않았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고, 또 실제로 이사를 하여 반송된 것도 상당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분들은 청첩장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가하면 나에게 감동을 주는 하객들도 꽤 있었다. 모르는 분이 있어 봉투에 적힌 전화번호로 누구시냐고 했더니 아들이 고등학교 때 제자 아무개 아버지라고 했다. 어떤 분은 신문에서 결혼안내를 보고 왔다고도 했고, 10여 년 전 함께 근무했던 한 선생님은 어찌 알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교장선생님에게 보낸 청첩장을 보았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왜 나한테는 청첩장을 안 보냈느냐며 다른 사람에게 듣고 왔노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사실은 청첩장을 보냈는데 배달이 잘 안된 것 같다고 했지만 서운한 감정이었다. 또 어떤 하객은 신랑 측 청첩장을 받아보고 알았다며 축의를 표했다. 38년 전 초임교사 시절 한 동료는 나의 근황을 알게 되어 축의를 전달했다. 이와 같이 생각지도 않은 하객들도 상당 수 있었다. 이래서 세상은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 고맙고 또 고맙다. 이 고마운 마음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모름지기 결혼식은 성스러워야 하며 하객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청첩인은 청첩장을 신중히 보내야 하고, 청첩장을 받은 사람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동참하고 여의치 못하면 축전, 서신, 전화로라도 축하하여 반드시 청첩장을 받았음을 알리는 것이 도리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딸을 출가시키면서 나는 또 하나의 소중한 개달음을 덤으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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