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기행문/강재원 목사

2011.04.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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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필자인 강재원 목사님과 나는 지난 2월 16-18일 사이에
       멕시코 선교지역을 다녀왔습니다. 7월에 보낼 단기선교
       팀을 위한 사전 답사였는데 그 결과 오는 7월 18-22일
       사이에 20여명의 선교팀을 파견하게 됩니다.(오정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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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기행문/강재원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데, 이번 달에는 국경선을 두 번이나 넘었습니다. 지지난 주에는 서북부 지방회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려서 북쪽 국경선을 넘어갔다 왔고, 이번 주에는 멕시코 선교지 답사를 위해서 남쪽 국경선을 넘어 L.A.로부터 왕복 650마일을 내려갔다 왔습니다.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리는 포틀랜드 공항을 출발하여 오장로님과 함께 LA 공항에 내리자 조성현 선교사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캘리포니아의 날씨도 오레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차량에 탑승하자 선교지에 갖다 줄 온갖 물품과 음식들이 잔뜩 실려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맛 좋다는 한인 타운의 국밥 한 그릇 뜰 여유도 없이 바로 San Diego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이 이미 지났으므로 햄버거로 때우기로 합의를 하고 이왕이면 유명한 In-N-Out햄버거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San Diego를 거의 다 가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햄버거 메뉴가 겨우 3개뿐이었는데도 손님들이 북적거렸고, 즉석에서 생감자를 잘라서 튀겨주는 French Fry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simple해도 fresh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하는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언제 넘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훌쩍 멕시코 땅에 들어와서, 국경도시인 티후아나(Tijuana)를 제일 먼저 방문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교단에서 새운 신학교와 출감자 숙소, 중환자 숙소 등의 시설이 있습니다. 티후아나 시가지를 지나가는데 낯선 스패니시 간판에도 불구하고 매우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과거의 성남 모란시장을 지나가는듯한 착각이 일었습니다. 제일 먼저 출감자 숙소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멕시코 땅을 밟았습니다. 우리를 반겨주는 Amigo(친구)들은 가난하고 초췌했지만 대부분 태평하고 웃는 모습들이었습니다. 현지 신학생 90여 명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멕성신학교도 방문했습니다.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해서 파송하는 선교방식이 멕시코에서 크게 주효해서 현재 33개의 현지인 목회자가 담임하는 교회들로 멕시코 성결교단도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영어와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기술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산동네에 위치해있었는데 반대편 산동네의 빼곡한 판잣촌이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오래 전 한국의 달동네를 연상시켜주는 광경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환자 숙소에는 거동하지 못하는 불쌍한 환자들이 누워있었습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떤 환자는 다리가 썩어서 임시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픈 환자를 위해서 기도해주는데 눈물만 나오고 뭐라 기도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할 뿐.....

  운전을 교대해 줄 현지인 호와낀 목사를 태우고 티후아나 시내에서 주유를 했습니다. 비 오는 밤길이었고 군데군데 안개도 껴있었지만 선교센터가 있는 ‘산 퀸틴’(San Quintin)을 향해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새벽기도회부터 시작된 일정에 피곤했는지 뒷좌석에서 꾸벅 꾸벅 조는 사이 어느 덧 선교차량은 타코로 저녁을 먹기로한 중간 기착지 엔세나다(Ensenada)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오장로님과 함께 뒷좌석에 앉아 눈을 붙인 중에도 앞좌석의 조선교사님과 호아낀 목사의 스패니시 대화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비 오는 창밖으로는 여전히 어둡고 낯선 지형들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점점 캄캄하고 깊은 지역으로 들어간다는 불안감이 있었고 이것을 물리치려고 기도하는 중 갑자기 환한 불빛과 함께 제법 화려한 시가지가 나타납니다. 어느덧 선교차량은 엔세나다(Ensenada)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엔세나다에는 영화 타이타닉호를 연상시키는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해있었고, 늦은 시간이지만 시가지는 매우 활기찼습니다. 선교사님은 내일 아침에 끓여먹을 해물탕거리를 사기 위해 수산 야시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러나 야시장은 이미 막장 즈음이었기에 싱싱한 왕새우를 한 봉지만 달랑 사서 나왔습니다. 시장입구에는 들어주는 관중도 없건만, 5-6명으로 구성된 거리악단 ‘마리아치’(mariachi)가 자기 흥에 겨워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매우 낙천적으로 보였습니다.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도착한 곳은 비교적 깨끗한 노상 타코집이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길가 포장마차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돈을 벌어서 점포 안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소고기를 즉석에서 바베큐 해서 또르띨라(tortilla) 속에 콩과 함께 넣어주는데 아주 맛있었습니다.

  또 다시 산을 넘어 목적지인 산 퀸틴을 향해 달렸습니다. 산 중턱에서 군인들의 삼엄한 검문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트럭 속까지 찔러보는 것이 아마도 마약 유통 때문인 듯 했습니다. 초행길이고 밤이라 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비포장도로를 거쳐 드디어 목적지인 선교 센타 건물에 도착하자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이웃집 개 세 마리였습니다. 모두들 피곤해서 간단하게 기도한 후 배정 받은 숙소에서 곤한 잠자리에 빠져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화창한 일기였습니다. 아침 경건회를 드리고 숙소와 예배실이 있는 2층에 올라가 주변 경관을 살폈습니다. 서부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황량한 벌판과 그 뒤로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밤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전날 저녁에 사온 새우로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하다가, 일부는 다져서 라면에 넣고 일부는 새우 깐풍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재료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제법 맛을 낼 수 있었습니다. 중국식 요리가 생소한 현지인 Abraham목사도 맛있다고 호평해주었습니다. 온수가 안 나와서 대충 씻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우리 교단에서 세운 교회 세 곳을 방문해서 목회자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고 여름에 단기 선교를 와서 어떤 사역을 할 수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점심에는 세 분의 목회자 부부를 피자집으로 초청해서 특대 사이즈 피자를 실컷 먹었습니다. 그동안 배운 스패니시로 인사를 하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허그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디오스 레 밴디가!’ (God bless you!). 지질이도 가난하지만 순박함과 정이 남아있는 세상이었습니다. 티후아나로 돌아오는 길에 집단 농장 (Rancho)을 잠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양철 판자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빈민촌이었는데 그 특이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잠시 방문한 ‘란초’(rancho)는 영어로 하면 ranch인데, 멕시코의 그곳은 사실상 ‘집단 농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농업 경기가 안 좋아서 농장들이 대부분 철수해서 그런지 집단 거주지는 인적이 없었습니다. 산기슭 아래 자리 잡은 여러 동의 양철 막사들 주위에는 한국 토종닭처럼 생긴 닭 몇 마리만 서성거렸고, 빨랫줄에 걸어놓은 옷가지들을 볼 때, 사람들이 살기는 사는 듯 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일회용 아기 기저귀를 빨랫줄에 말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한지를 짐작하고 남았습니다. 그나마 사는 사람들도 어디론가 일거리를 찾아 나갔는지 끝내 주민을 만나보지 못하고 휘휘하게 바람만 나뒹구는 운동장을 뒤로 한 채 큰 길로 나왔습니다.

   티후아나로 돌아오는 길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한 번 왔던 길이라서 그런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태평양 바다에 반사되는 오후의 햇빛이 눈부셨습니다. 선교차량 뒤에서 낯선 이국땅을 바라보는데, 괜히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가난한 삶을 목격해서 흘리는 동정의 눈물인가? 아니면 이렇게 못사는 사람들에 비해서 미국에서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풍요로움을 깨달은 감사의 눈물인가?’ 처음에는 그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묵상해보니까, 선진국 문명사회라는 곳에서 무한 경쟁을 하며 오직 생존경쟁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우리 자녀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잘 산다고 생각했고, 선교지의 주민들은 무지하게 못산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우리가 되게 ‘못사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무선통신 등이 과연 우리들을 편리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얽어매고 있는 것일까요?

   온통 흙투성이가 된 선교차량을 티후아나 시내의 세차장에서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미국보다 저렴하고 잘 닦아 주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일행은 선교사님의 강권으로 구두도 닦았습니다. 얼마나 싸고 새 구두같이 만들어놓았는지 감탄했습니다. 경력을 물어보니까 한 자리에서 20년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거의 장인 수준이었습니다. 드디어 미국 국경을 넘어오는데 예상외로 빨리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 검문소에서 4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국경 근처에 오니까 휴대전화가 재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밀려있던 메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비싼 스마트폰도 우리의 세상을 벗어났을 때에는 바보가 되고 작은 고철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천국 문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현란한 소유들은 물거품처럼 스러져버릴 뿐입니다. 이민국 직원이 여권과 영주권 등의 신분증을 보더니 기분 좋게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우리 앞의 차량은 어떤 이유에선지 재조사 구역으로 불려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천국 문 앞에 섰을 때에도 일사천리로 통과되어야지 옆문으로 불려갔다가 쫓겨나면 정말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거리는 잘 정돈되고 깨끗했지만 왠지 모르게 침울하고 어둡게 느껴졌습니다. 짧은 선교여행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이번 여름에 많은 교우들이 선교지를 방문해서 신앙의 큰 도전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온누리성결교회 주보에 3회에 걸쳐 게재됨.(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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