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꽝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 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
(『아도(啞陶)』. 창작과비평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