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의 날과 조국의 반미운동

2004.03.09 14:04

정찬열 조회 수:186 추천:11

켈리포니아 주의회와 LA 시의회가 1월 13일을 한국의 날로 제정했다. 100년 전 하와이에 처음 한인이 도착한 그 날을 미주 한인의 날로 미정부가 공인한 것이다. 이제 미주 한인들은 이민 백년의 역사 끝에 마침내 '우리의 날'을 갖게 되었다.
이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 속에서 코리언 어메리칸이 명함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자긍심을 가질만한 이정표적 사건이라고도 할만하다.
그러나 이번 한인의 날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다. 이 날을 제정하기 위해 10여명이 넘는 의원 보좌관들을 비롯한 젊은 한인 2세들이 똘똘 뭉쳐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2세들의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한국의 날 제정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루실 루이발 알라드 연방하원의원이 연방하원에도 매년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켈리포니아에 이어 연방차원에서도 기념일로 제정하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게됐다. 이렇게 미주 내의 한인사회가 착착 터를 잡아가는 것은 미국 속의 한인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만만찮은 힘을 축적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집온 며느리가 시집의 가풍에 웬만큼 익숙해져 사랑과 귀염을 받고 있는데 친정집 식구들이 시집의 욕을 한다거나 흉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며느리의 입장이 참 난감할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심정을 미국에 사는 많은 동포들이 느끼고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 대학생 59%와 식자층 58%가 미국을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뽑았다고 한다. 북한보다도 미국이 한국의 안보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한국전쟁에 파병된 4만 4천명의 미군이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한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미국의 역할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미국은 한국의 안보나 외교 경제, 무역 등 모든 면에서 필수 불가결한 우방이다.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미국과 잘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말이 아니다.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한겨레신문과의 새해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주'를 자주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듣기에 좋은 말이다. 나라를 위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인줄로 안다. 그러나 지구촌 시대에 완전한 자주를 실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자주란 무엇인가. 국가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국제관계와 각국의 사정에 따라 자주의 의미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본 자민당 간사장 아베 신조의 최근 발언 "이 나라를 지킬 결의"라는 발언을 음미해보면 일본의 자주는 '친미'이고, 심지어는 북한도 '자주' 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은 자주를 주장하며 반미를 외쳐대고 있다.
'반미 반미' 소리치면서도 한인들의 미국 이민 행렬은 줄을 잇는다. 없는 사람들은 방문이나 학생비자로 눌러 앉고, 있는 사람들은 투자비자로 영주권을 획득한다. 멕시코나 케나다 국경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고 원정출산을 해서라도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따주려고 애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반미가 자주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입술로 자주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참아야 할 건 참는 게 진정한 자주다. 묵묵히 실력을 키워야 한다. 자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속에 '한국의 날'을 제정하게 된 것은 미국이라는 다민족 사회에서 한인의 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동포들이 이민생활의 온갖 어려움을 다 극복하면서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날 제정이 기쁘다. 그러나 바다 건너 고국에서 건너오는 반미 소식에 착찹함을 금할 수 없다.
(2004년 2월 11일 광주매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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