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퍼주는 아이
2006.02.06 13:18
밥 퍼주는 아이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어린 시절 엄마가 안 계시면 얼마나 쓸쓸하였던가. 학교에서 돌아와 사립문을 열면서 제일 먼저 부르는 소리는 "엄마~"였다. 닫힌 사립문을 여노라면 딸랑딸랑 방울소리에 엄마보다 먼저 삽살개가 꼬리치며 마중 나왔다. 엄마는 들녘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텅 빈집인 줄 알면서도 혹시 엄마가 있을까 방문을 열어보곤 했었다. 엄마가 없는 빈집엔 바람만 휘~이 불었다. 미루나무에 걸린 석양이 마당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찔레꽃 핀 언덕에 앉아 시린 가슴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의 부재로 쓸쓸하였던 유년의 아린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아이들만큼은 이런 쓸쓸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맞벌이로 나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세상 속에 던져졌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해도 혼자 병원에 가라고 매몰차게 떠밀었다. 그런데 치과에까지 혼자 보낸 건 너무했다. 어른도 무서워서 가기 싫어하던 치과가 아닌가. 치과에 갔다 온 후 아이들은 영웅이 되었다. “엄마! 나 치과에서 울지 않았어.” 전화기 너머로 울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한껏 뽐내고 있었다. 처음엔 못한다고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들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니, 땡볕에서 자란 잡초가 더 짙푸르던 이치가 아니던가.
딸아인 반장을 하고 싶어했다. 한 번은 출근하는 등 뒤로
“엄마, 나 반장선거에 나가볼까?” 갑작스런 말에 머뭇거리자
“아니야, 내가 반장이 되면 엄마가 학교에 자주 와야 하는데 엄마는 직장 일이 바빠서 올 수 없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혼자서 묻고 대답하는 딸애의 힘 잃은 표정에 마음이 서걱거리면서도 나는 모른 체했다.
딸애가 초등하교를 졸업하던 날, 엄마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간의 일들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그때는 직장에서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늘 바빴고, 내 개인사정으로 인해 옆 동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융통성 없는 직장생활로 쓸쓸한 유년을 보냈을 딸애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터져 나오는 회한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소낙비 쏟아지던 날, 친구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왔는데 자기는 아무도 없어서 슬펐다는 딸아이의 푸념이 떠올랐다. 또 운동회 날, 좋은 자리 맡아놓을 테니 일찍 오라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근무하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겨우 학교로 뛰어 갔는데, 엄마가 언제나 올까 고개를 쑤욱 빼고 연신 교문 밖을 살피던 딸아이의 애처롭던 모습도 떠올랐다. 이제라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줘야지 다짐했을 때 아이는 이미 훌쩍 커버렸다. 지난해 3월, 중학생이 된 딸에게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혜야 반장선거에 나가보렴, 이젠 엄마가 학교에 갈 수 있는데……."
"아니, 뭐 하러 반장을 해요? 저는 급식소에서 밥 퍼 주는 일을 할 거예요."
어리광 피우던 유아의 모습에서 어느새 당찬 소녀로 변한 딸애는 결연하게 자기 의사를 피력했다. 나는 내 귀한 아이가 학교에서 험한 일을 한다는 것에 유쾌하지 않았다. 밥 퍼주는 아이보다 반장이 더 좋다며 출마를 권유했지만 끝내 아이는 밥 퍼 주는 봉사자가 되고 말았다. 딸애는 서운해하는 내게 미안했던지
"하지만 엄마, 반장 선거에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서기'에 출마했어. 몇 명의 후보자가 나왔는데 글씨를 제일 예쁘게 쓰는 사람을 뽑는다며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써 보라고 했어. 투표결과 내가 당선되었어.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헤헤헤…….“
나는 아이들한테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가르쳤다. 사회 구성원 속에 누군가는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낮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될 때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일을 낙(樂)으로 여기도록 세상을 바라보는 지경을 넓혀주고 싶었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던 내가 막상 딸애가 궂은일을 하겠다고 하니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던지.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급식이 시작되자 딸애는 매일같이 교복에 음식을 묻혀왔다. 숙련되지 않은 몸짓으로 덜렁덜렁 밥과 반찬을 퍼주다가 교복에 김치 국물을 묻혀오기 일쑤였다. 교복에 묻은 반찬 얼룩 때문에 세탁소에 자주 가야했다. 걸핏하면 교복에 음식을 묻혀오는 딸아이에게 어떤 대책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함께 밥 퍼주는 다른 아이들 것까지 앞치마 5개를 샀다. 그러나 딸애는 펄쩍 뛰며 싫다고 했다.
"엄마가 그러는 거 뇌물이야!"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앞치마를 강요할 수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로만 생각하였던 딸애가 ‘뇌물’이라는 어른스러운 표현을 쉽게 쏟아놓자 나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결국 딸아이의 완강한 거부로 앞치마 5개를 반품했다. 그러나 나는 딸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반장하는 것보다 밥 퍼 주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일인지, 엄마의 생각을 말해주고 싶었다.
밥 퍼주는 딸애를 응원하려고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어느 봄날 점심시간에 친정에서 농사지은 딸기를 한 아름 안고 학교로 찾아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반쯤 먹어버린 도시락, 어느 땐 모두 먹어버린 빈 도시락을 불심검열에 걸려 도시락을 들고 복도에서 벌을 받으면서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즐겁기만 하였던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났다.
지금은 학교마다 급식을 하기에 도시락에 대한 추억도 없으리라. 양은 도시락에 꾹꾹 눌러 담은 보리밥을 난로 위에 층층이 쌓아놓고 공부를 하였던 그런 낭만은 아예 없으리라. 이 학교는 급식소가 없어서 교실에서 식사를 한다. 남자애들이 수레에 음식을 날라 오면 여자아이들이 밥과 반찬을 퍼 준다. 교실 창문 너머로 살짝 엿보니 밥 퍼 주는 딸애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딸기바구니를 들고 갑자기 출몰한 내 모습을 보고 딸아이는 많이 놀랐을 것이다. 미리 얘기하면 또 뇌물이라고 거절할까봐 말하지 않았는데 딸기마저도 뇌물이라며 펄쩍뛰면 어쩌나 내심 걱정스러웠다. 기우였다. 딸아인 학급 친구들에게 딸기를 나눠주며 즐거워했다. 그간 딸애의 학교생활에 비협조적이었던 엄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만회한 것 같아 뿌듯했다. 딸애와 반 친구들은 교문 밖까지 나와서 배웅해줬다. 함빡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4월의 햇살이 영롱하게 쏟아졌다.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던 ‘워즈워드’의 ‘무지개’란 詩가 떠올랐다. 워즈워드는, 소싯적이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마냥 뛴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마음은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색깔을 칠하든 원색 그대로 그려진다. 그간 나는 어른의 잣대로 내 아이가 그린 원색 위에 수많은 색깔들을 덧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앞치마 5개를 뇌물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어떤 계산이 숨어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다. 그래서 아이는 때때로 어른의 아버지가 되는 가보다.
반장이 아니어도, 공부는 조금 못해도, 나는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밥 퍼 주는 자세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청포도처럼 싱그럽게 알알이 웃음 지으며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파랑새로 남아있기를 소망한다.
"밥 퍼주는 내 아이, 아이쿠! 너무도 예쁘기만 한 고놈……."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어린 시절 엄마가 안 계시면 얼마나 쓸쓸하였던가. 학교에서 돌아와 사립문을 열면서 제일 먼저 부르는 소리는 "엄마~"였다. 닫힌 사립문을 여노라면 딸랑딸랑 방울소리에 엄마보다 먼저 삽살개가 꼬리치며 마중 나왔다. 엄마는 들녘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텅 빈집인 줄 알면서도 혹시 엄마가 있을까 방문을 열어보곤 했었다. 엄마가 없는 빈집엔 바람만 휘~이 불었다. 미루나무에 걸린 석양이 마당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찔레꽃 핀 언덕에 앉아 시린 가슴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의 부재로 쓸쓸하였던 유년의 아린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아이들만큼은 이런 쓸쓸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맞벌이로 나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세상 속에 던져졌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해도 혼자 병원에 가라고 매몰차게 떠밀었다. 그런데 치과에까지 혼자 보낸 건 너무했다. 어른도 무서워서 가기 싫어하던 치과가 아닌가. 치과에 갔다 온 후 아이들은 영웅이 되었다. “엄마! 나 치과에서 울지 않았어.” 전화기 너머로 울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한껏 뽐내고 있었다. 처음엔 못한다고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들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니, 땡볕에서 자란 잡초가 더 짙푸르던 이치가 아니던가.
딸아인 반장을 하고 싶어했다. 한 번은 출근하는 등 뒤로
“엄마, 나 반장선거에 나가볼까?” 갑작스런 말에 머뭇거리자
“아니야, 내가 반장이 되면 엄마가 학교에 자주 와야 하는데 엄마는 직장 일이 바빠서 올 수 없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혼자서 묻고 대답하는 딸애의 힘 잃은 표정에 마음이 서걱거리면서도 나는 모른 체했다.
딸애가 초등하교를 졸업하던 날, 엄마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간의 일들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그때는 직장에서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늘 바빴고, 내 개인사정으로 인해 옆 동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융통성 없는 직장생활로 쓸쓸한 유년을 보냈을 딸애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터져 나오는 회한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소낙비 쏟아지던 날, 친구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왔는데 자기는 아무도 없어서 슬펐다는 딸아이의 푸념이 떠올랐다. 또 운동회 날, 좋은 자리 맡아놓을 테니 일찍 오라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근무하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겨우 학교로 뛰어 갔는데, 엄마가 언제나 올까 고개를 쑤욱 빼고 연신 교문 밖을 살피던 딸아이의 애처롭던 모습도 떠올랐다. 이제라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줘야지 다짐했을 때 아이는 이미 훌쩍 커버렸다. 지난해 3월, 중학생이 된 딸에게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혜야 반장선거에 나가보렴, 이젠 엄마가 학교에 갈 수 있는데……."
"아니, 뭐 하러 반장을 해요? 저는 급식소에서 밥 퍼 주는 일을 할 거예요."
어리광 피우던 유아의 모습에서 어느새 당찬 소녀로 변한 딸애는 결연하게 자기 의사를 피력했다. 나는 내 귀한 아이가 학교에서 험한 일을 한다는 것에 유쾌하지 않았다. 밥 퍼주는 아이보다 반장이 더 좋다며 출마를 권유했지만 끝내 아이는 밥 퍼 주는 봉사자가 되고 말았다. 딸애는 서운해하는 내게 미안했던지
"하지만 엄마, 반장 선거에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서기'에 출마했어. 몇 명의 후보자가 나왔는데 글씨를 제일 예쁘게 쓰는 사람을 뽑는다며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써 보라고 했어. 투표결과 내가 당선되었어.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헤헤헤…….“
나는 아이들한테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가르쳤다. 사회 구성원 속에 누군가는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낮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될 때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일을 낙(樂)으로 여기도록 세상을 바라보는 지경을 넓혀주고 싶었다. 낮은 위치에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던 내가 막상 딸애가 궂은일을 하겠다고 하니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던지.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급식이 시작되자 딸애는 매일같이 교복에 음식을 묻혀왔다. 숙련되지 않은 몸짓으로 덜렁덜렁 밥과 반찬을 퍼주다가 교복에 김치 국물을 묻혀오기 일쑤였다. 교복에 묻은 반찬 얼룩 때문에 세탁소에 자주 가야했다. 걸핏하면 교복에 음식을 묻혀오는 딸아이에게 어떤 대책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함께 밥 퍼주는 다른 아이들 것까지 앞치마 5개를 샀다. 그러나 딸애는 펄쩍 뛰며 싫다고 했다.
"엄마가 그러는 거 뇌물이야!"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앞치마를 강요할 수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로만 생각하였던 딸애가 ‘뇌물’이라는 어른스러운 표현을 쉽게 쏟아놓자 나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결국 딸아이의 완강한 거부로 앞치마 5개를 반품했다. 그러나 나는 딸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반장하는 것보다 밥 퍼 주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일인지, 엄마의 생각을 말해주고 싶었다.
밥 퍼주는 딸애를 응원하려고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어느 봄날 점심시간에 친정에서 농사지은 딸기를 한 아름 안고 학교로 찾아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반쯤 먹어버린 도시락, 어느 땐 모두 먹어버린 빈 도시락을 불심검열에 걸려 도시락을 들고 복도에서 벌을 받으면서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즐겁기만 하였던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났다.
지금은 학교마다 급식을 하기에 도시락에 대한 추억도 없으리라. 양은 도시락에 꾹꾹 눌러 담은 보리밥을 난로 위에 층층이 쌓아놓고 공부를 하였던 그런 낭만은 아예 없으리라. 이 학교는 급식소가 없어서 교실에서 식사를 한다. 남자애들이 수레에 음식을 날라 오면 여자아이들이 밥과 반찬을 퍼 준다. 교실 창문 너머로 살짝 엿보니 밥 퍼 주는 딸애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딸기바구니를 들고 갑자기 출몰한 내 모습을 보고 딸아이는 많이 놀랐을 것이다. 미리 얘기하면 또 뇌물이라고 거절할까봐 말하지 않았는데 딸기마저도 뇌물이라며 펄쩍뛰면 어쩌나 내심 걱정스러웠다. 기우였다. 딸아인 학급 친구들에게 딸기를 나눠주며 즐거워했다. 그간 딸애의 학교생활에 비협조적이었던 엄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만회한 것 같아 뿌듯했다. 딸애와 반 친구들은 교문 밖까지 나와서 배웅해줬다. 함빡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4월의 햇살이 영롱하게 쏟아졌다.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던 ‘워즈워드’의 ‘무지개’란 詩가 떠올랐다. 워즈워드는, 소싯적이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마냥 뛴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마음은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색깔을 칠하든 원색 그대로 그려진다. 그간 나는 어른의 잣대로 내 아이가 그린 원색 위에 수많은 색깔들을 덧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앞치마 5개를 뇌물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어떤 계산이 숨어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다. 그래서 아이는 때때로 어른의 아버지가 되는 가보다.
반장이 아니어도, 공부는 조금 못해도, 나는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밥 퍼 주는 자세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청포도처럼 싱그럽게 알알이 웃음 지으며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파랑새로 남아있기를 소망한다.
"밥 퍼주는 내 아이, 아이쿠! 너무도 예쁘기만 한 고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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