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의 등록금

2006.02.09 08:03

이은재 조회 수:252 추천:76

올케의 등록금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올케는 도시 아가씨다. 남동생 하나 믿고 시골로 시집와서 십 수 년째 내 부모님과 동고동락하며 산다. 건축기술자인 남동생은 전원주택 짓는 일을 하고 있다. 남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십 년여 동안 임금을 주지 않았다. 전원주택 팔아서 그간의 대가를 한꺼번에 계산해 주겠다는 논리만 늘어놓았다. 그러나 사장은 충청남도 금산과 공주에 지은 전원주택을 처분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돈을 줄 수 없는 당위성을 내세웠다.

남동생은 그 오랜 세월동안 속으면서도 사장을 미워하지 않았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여도 어떤 끈끈한 인간적 관계 때문인지 사장의 상황을 이해하려고만 했다. 나는 사기꾼 같은 사장을 고발하자며 분개했지만 그때마다 남동생은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사장님 나쁜 사람 아니야.” 도리어 나를 설득했다. 그러던 남동생이 얼마 전에 그 사장과 결별했다.

남동생은 계산적이지 못했다. 사장과 싸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찾는 게 더 현명하다며 인부 몇을 데리고 하도급 공사를 맡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밑천 없이 소규모 공사를 하다 보니 이윤도 적었을 것이다. 인부들에게 들어가는 푼돈은 내게 기댔다. 며칠 전에도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누나, 내가 데리고 일하는 사람의 부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비 등 100만원이 필요하대. 돈 좀 줘." 그 순간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 녀석, 지는 10년 넘게 일을 하고도 제대로 봉급다운 돈 한 푼 받지 못하였으면서 자기가 데리고 일하는 사람에겐 노임의 의무를 다한다. 그 의무가 당연한 것인데도 나는 화가 났다.
"네가 받을 것엔 양보를 하면서 줄 것엔 왜 그렇게 의무를 다하는 것이냐? 이 멍청하고 답답한 녀석아……." 화를 내면서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엄동설한에 아이를 낳고 돈이 궁한 가난한 부부를 생각하니 그것 또한 가슴이 아파서였다.

돈을 주려고 남동생을 만났을 때 지고지순하던 고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앙상한 자작나무 껍질처럼 남루한 모습이었다. 터진 손등 틈새로 흙물이 쌓여 땟국을 만들고 그을린 얼굴엔 자외선만 깊었다. 화가 나서 전화로 한 바탕 일갈했지만 막상 만나서 우수에 찬 까칠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여름내 공사판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살아갈 전원주택을 지은 허름한 공사판 촌놈은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을 사장에게 헌신했던 것이다. 사장은 남동생의 우직한 충정을 악용했던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한 몫 떼어주겠다는 등 온갖 회유로 남동생을 자기 사업체에 붙잡아 놓았다.

남동생을 보내고 돌아서서 울었다. 기왕 주는 돈 곱게 주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던 말들이 마음에 걸렸다. 돈 몇 푼 주어놓고 동생을 홀대하고 나무랐던 것들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화가 나 심한 말을 해 놓고서 마음 아파 울고 있는 이 누나의 마음을 그 녀석은 알기나 할까? 보증 서 달라는 걸 어렵게 뿌리치고 마음이 쓰려서 며칠 동안 눈물지었던 이 누나의 심정을 그 녀석은 알고 있을까?

가난한 농촌, 믿었던 남편마저도 어정쩡한 돈벌이에 올케는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활까지 위협받으며 상실감도 컸을 것이다. 엄마가 딸기농사를 지어 얻은 소산물은 남동생의 사업자금으로 번번이 사라지곤 했다. 남동생의 경제공황으로 생활이 어렵게 되자 올케는 버섯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항상 술을 사다 드렸다.


올케는 벼랑 끝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새롭게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선택한 희망의 보루는 사물놀이였다. 그간 부단히 노력하여 연마한 끝에 장구부문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올케의 실력은 괄목할 만 했다. 올케는 사물놀이 자격증으로 농촌학교 특기적성 강사를 꿈꾸고 있다. 강사가 되려면 학위가 필요했다. 올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합격을 하고서도 330만원의 입학금이 없어서 등록을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너무도 안타까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내 부모님을 지극히 모셨던 올케였기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었다. 백수나 다름없는 남편을 무시하지 않고 받드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서 귀감이 되었다. 농촌으로 시집와서 그동안 고생만 한 착한 올케에게 용기를 줘야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올케에게 전화를 했다.
"등록금 때문에 대학교 포기하지 마. 그 등록금 내가 마련해 볼께."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올케의 젖은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형님! 고마워요." 올케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눈물이 맺혔다.


330만원의 등록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당장 3백여 만 원의 거액을 선뜻 내어놓을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민 끝에 연금 대출을 받았다. 대출이라도 쉽게 받을 수 있는 공무원 신분인 내가 참 감사했다. 올케의 등록금을 송금하러 은행으로 달려가던 날, 함박눈이 송이송이 내렸다. 아름답게 비행하는 순백의 눈꽃들은 머지않아 다가올 희망의 봄꽃처럼 나목(裸木) 위로 부활하고 있었다. 등록금을 입금시켰다는 전화를 올케한테 하면서 나도 몰래 눈물이 글썽거렸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이처럼 가슴 뿌듯한 일인 줄을 나도 미처 몰랐었다.


엄마 생신 날이었다. 올케가 장구를 쳤다. 적막한 밤에 울리는 장구소리는 고향 하늘로 흥겹게 퍼져나갔다. 한 때 엄마도 장구실력가이셨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부지깽이로 장구장단을 연습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깨너머로 풍월을 읊은 덕분인지 나도 간단한 장구 가락은 흉내낼 수 있다. 엄마의 장구실력은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났었다. 동네에서 잔치가 있을 때면 엄마는 늘 장구재비가 되어 분위기를 선도했었다. 잔치가 무르익으면 장구 줄에 지폐가 두어 장정도 매달려 있었다. 장구 줄에 걸려 있는 돈은 누구 것인가. 엄마일까?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것이 너무도 중요했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장구에 대한 엄마의 집념과 열정들은 덧없이 잊혀졌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사장되었던 젊은 날의 장구를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 불을 지펴 준 사람은 올케였다. 장구를 치고 있는 올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엄마는 갑자기 장구채를 빼앗더니 장구를 치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심한 농사일로 가운데 손가락이 굳어서 펴지지 않아 수술을 받으셨다.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아픈 손가락이었는데도 엄마는 장구를 치셨다. 잃어버린 지난날의 혼이 되살아나 아픔도 마비시킨 것일까. 장구를 치며 행복해 하시는 엄마의 몸짓에 한 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그 웃음꽃의 중심엔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올케가 있었다.


올케는 예술단단원들과 함께 양로원, 고아원 등 시설기관을 순회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작은 그 무엇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하는 올케의 마음 씀씀이가 참 기특하다. 올케의 희망대로 전공을 살려서 농촌학교 국악강사의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농촌 학교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폐교되지 않는 농촌학교에서 내 올케의 사물놀이 풍악이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 올케에 대한 고마웠던 마음을 이렇게나마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어서 뿌듯하다.


상모를 흔드는 사물놀이패 속에서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맞춰 북소리와 징 소리, 장구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언젠가 내 올케가 염원하는‘희망’의 깃발이 나부낄 것을 믿는다. 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