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설렁탕이라도 먹으려면

2006.02.06 16:27

박정순 조회 수:262 추천:55

늙어서 설렁탕이라도 먹으려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박정순


설날 아침을 어머니가 계신 광주에서 보내고 진안 큰집으로 세배를 가려고 4형제가 승용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50대 초반인 형과 나, 40대인 남동생과 30대인 막내 동생 등 넷이 함께 타고 가는 차안에서 형이 노후에 대한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나도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노후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던 터라 형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옛날 같으면 형은 노후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다. 일찍 결혼하여 슬하에 3형제를 두었고, 큰아들과 둘째 아들을 결혼 시켰으니 막내아들만 결혼시키면 아들 며느리의 봉양을 받으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이 많은 것이 장래 노후를 보장받는 평생보험의 의미보다 가르치고 결혼시키는 일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 결혼 후에도 공양 받는 것은 고사하고 맞벌이자녀부부를 위해 손자들을 돌봐 주는 등 오히려 노후가 편치 않다.

나도 가끔 나의 노후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노후를 보낼 것이라는 기대가 전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 24살 먹은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어려서부터 아들을 세뇌시길 요량으로 아빠 엄마는 늙어서도 아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교육을 시켰다. 나중에 결혼상대를 고를 때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수용하는 여자와 결혼해야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시켰던 것이 지금생각하면 공허하기만 하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아들 부부와 한 집에서 산다는 것에 대하여 큰 기대가 없는 것을 보면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서 노후에 대하여 얘기 할 때도 어느 한 사람 노후를 자녀들과 한 집에서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장한다. 이제 막 오십을 넘긴 우리세대들이 그나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들에게는 효도 받지 못하는 첫 세대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부모님이 고생하고 힘든 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며 자랐다. 부모님이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고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자라서 생활이 어느 정도 되면 부모님을 모시고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부모님들이 함께 사는 것을 원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6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리 세대보다 여러 가지 혜택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또한 변화가 급속한 사회를 살았기 때문에 가치관과 현실 인식 능력이 우리와는 다르다. 그래서 개인주의와 자유분방한 의식구조로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가족중심 적 사고에서 나 중심적 사고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사회생활을 일찍 접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들이 노후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우리들이 40대 초반이었던 10여 년 전만 해도 나이 50은 되어야 경험과 실력을 인정받고 정치인들은 50살이 되어도 풋내기 취급을 받았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에는 대기업에서도 40대 초반에 이사 승진을 하고 군에서도 40대 중반도 안 되어 장군 진급자가 나올 정도로 사회가 젊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40대 후반만 되어도 은퇴를 준비해야 되는 분위기가 일반화 되어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50대는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직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물론 제도상의 정년으로 인해 50대 후반에 퇴직하는 경우가 있지만 제조업 생산 공장에 가보면 50대는 관리자로도 현장의 직원으로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힘이 부쳐 일을 할 수 없거나 업무 능력이 부족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사장말고는 거의 50대 초반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오십대 중반이면 한참 때인데 현직에서 물러나면 자기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설사 일을 찾았다 해도 보수나 조건이 현직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열악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60살이 되고 70살이 되었을 때 어떠한 모습일까 생각하면 쉽게 노후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의 변화보다 훨씬 빠른 주기로 변화할 것이라는 것 외에는 예측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들이나 딸의 부양을 받으며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노후를 준비하는 게 무엇인가.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돈을 준비해야 된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준비되어 있다면 노후에 대하여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지만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은 아주 불행한 것이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어느 경제포럼에서 들었던 내용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60세 된 부부가 80세까지 20년 동안 하루 세끼 600원짜리 라면만 먹고살아도 2,600만원이 필요하고 3,000원짜리 백반을 먹으면 1억 3천만 원, 5,000원 짜리 설렁탕을 먹으려면 최소 2억 2천 원정도가 있어야 한단다.

50퍼센트 이상이 노후자금으로 6억 3천만 원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돈이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는 것이 어떨 것인지 짐작이 되었다. 평균 수명 연장으로 2020년이 되면 젊은 사람 4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되는 노령화 사회가 되어 노후에 대한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늙는 것도 서러울 텐데 돈이 없어 최소의 생활도 유지하지 못한 채 겨우 목숨만 연명하는 정도가 된다면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미래는 선진국을 보면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선진국 생활상에서 우리나라의 미래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사업에 접목시켜 큰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 지금도 기술이나 문화산업은 선진국과 차이가 있어 우리나라의 몇 년 후를 예측하려면 선진국을 보면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식구조와 편리성은 오히려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앞서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급속한 핵가족화와 저 출산, 고령화, 세대차이 등은 진행 속도가 선진국을 앞서고 있단다. 이런 현실에서 10년이나 20년 후 내가 노후를 맞을 때 는 지금보다 모든 상황이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돈을 버는 일에 참여할 기회가 적어지고, 참여한다 해도 수입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예전에는 자식들만 많이 낳으면 평안한 노후가 보장되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어른의 위치로 이동하였는데 지금은 스스로 준비해야 되는 세상이 되었다.

노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지금부터 노후준비를 위해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노후자금을 준비해야 된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면서 고향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노후를 위해 자금을 따로 저축할 만큼 넉넉하지 않다. 설날 고향 어른들에게 세배를 가는 도중 4형제가 광주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 이상 노후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50살을 넘긴 형과 나에게만 노후문제가 현실로 느껴질 뿐 30대 중반과 40대 초반의 동생들에게는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별 관심이 없었다. 동생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노후문제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 이야기로 느껴지던 젊은 날이 있었음을 생각하며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