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꽃무릇

2018.10.30 06:38

신효선 조회 수:6

선운사 꽃무릇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반 수요반 신 효 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한낮엔 덥다. 일교차가 크고 맑은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가을 햇살을 머금고 잘 익어가는 곡식들, 쾌청한 하늘, 시원한 바람, 조금씩 가을 색으로 갈아입는 잎새들이 손짓하면 몸이 어딘가로 떠나자고 조른다.

 이때면 내가 꼭 만나야 하는 가을 손님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 선홍색 불꽃처럼 타오르는 꽃무릇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올라서 내 가슴을 흔들어 놓을 꽃무릇을 보려고 남편과 함께 선운사를 찾았다.  

  작년에는 너무 일찍 서둘러서 반 정도 핀 꽃을 보고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다. 올해는 때를 잘 맞추어 와서 선운사 입구에서부터 꽃무릇은 선홍빛을 띄며 흐드러지게 피었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껏 꾸민 신부의 고운 자태처럼 절정의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꽃, 그 붉은 색은 오염되지 않아 순수한 색이다. 꽃잎에 흐르는 연분홍과 짙은 빨강의 그라데이션은 신의 손이 아니고는 그려낼 수 없는 조화의 감동이다.

 긴 연초록 꽃대에 청량하게 붉은 꽃잎이 절정의 곡선을 만들며 피어있는 꽃무릇의 요염한 자태는 우리의 발걸음을 몇 번이고 멈추게 했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참사랑’이다. 화려한 선홍빛의 꽃잎이 화사한 붉음을 그려내고 있는데, ‘상사화’라고도 부르는 이름 때문인지 어딘가 슬퍼 보여 꽃말과 잘 어울린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비슷한 점이 많아 구별하지 못하기 쉬운데, 꽃 모양도 다르고 개화 시기와 꽃의 모양과 색깔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6~7월 잎이 진 뒤 분홍색 꽃을 피우는데 반해, 꽃무릇은 가을에 잎이 나와 월동을 한 후 봄에 잎이 지고 죽은 듯 있다가, 추석을 전후로 꽃대가 솟아올라 붉은 꽃을 피운다. 꽃무릇은 열매를 맺지 않고 비늘줄기로 새끼치기를 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상사화는 꽃대가 굵고 꽃잎은 넓다. 연분홍색 꽃잎은 요조숙녀의 단아한 모습이다. 한편, 꽃무릇의 꽃대는 가늘고, 좁은 꽃잎의 가운데는 분홍에 가까운 색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짙게 붉어진다. 꽃수술은 미인의 긴 속눈썹처럼 요염하고 그 끝에는 노란 꽃가루를 품은 꼭대기가 영락처럼 달랑거린다. 그 가늘고 한껏 치켜세운 속눈썹처럼 휘어 오른 꽃술의 자태는 내가 젊었더라면 얼른 내 눈에 붙이고 싶을 만큼 멋들어졌다.

 

  광주에서 살던 때부터 이맘때면 영광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로 꽃무릇을 보러 갔었다.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는 꽃무릇 축제가 열리는 대표 여행지 3곳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몇십 년 전 용천사 꽃무릇이 지금만큼 많이 피지 않을 때, 소문을 듣고 찾아갔더니, 꽃은 이미 다 져 버리고 비가 온 뒤라 산에 꽃 비늘줄기가 흩어져 있어 몇 개를 주워와 화단에 심었다. 이듬해 어느 꽃에 비교할 수 없이 황홀한 꽃의 자태를 보았을 때 너무 반가워 그 꽃이 질 때까지 힐링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 뒤로는 화단의 꽃무릇이 선명한 빛깔로 인사를 할 때쯤 불갑사와 용천사로 꽃구경을 갔다.

 꽃은 잎을,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는 애틋한 전설이 있다. 어느 깊은 산속의 절에서 열심히 불도를 닦던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여름날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사찰 마당 나무 아래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젊은 스님이 비에 젖은 아리따운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스님은 식음을 전폐한 채 오직 그 여인만을 연모하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 노 스님이 불쌍히 여겨 그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가을이 시작될 무렵 긴 꽃줄기가 올라와서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붉은 피를 토하며 죽은 젊은 스님의 넋이라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 꽃을 붉은 상사화相思花라 불렀다 한다.

  선운사의 꽃무릇은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끝간데없이 피어있는 붉디붉은 꽃무릇은 도솔천의 광활한 숲에 선홍빛 주단을 펼쳐 놓은 듯하다가 다시 보면 붉은 안개가 덮인 듯 몽환 지경을 보여준다. 선운사 입구 선운천 건너편 덩굴식물이 벼랑에 붙어 온통 뒤덮고 있는 수령이 200~300년쯤 된 두릅나뭇과에 속한 천연기념물 제367'송악'도 구경할 수 있다. 송악 앞에는 하천이 흐르고 물에 반사한 상사화와 숲과 송악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루었다.

  내 고향 부안에도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끼고 도는 마실 길 제2코스에 해마다 8월 하순경이면 노랑 상사화가 피어난다. 부안 내소사에는 노랑 상사화가 군락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야기만 들었지 아직은 꽃이 필 때 가보지 못했다.

  위도 상사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북 부안 위도에서만 자생하는 꽃이라 한다. 해마다 8월 말에서 9월 초순경 꽃망울을 터트려 장관을 이루고, 처음 필 때는 미색인데 나중엔 하얀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위도에 있는 상사화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고, 위도 상사화를 다른 곳에 심으면 점박이 상사화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위도 상사화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위도 해수욕장에 가면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꽃이 필 때 꼭 가보아야겠다.

 

 남편은 꽃무릇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팔려 무아지경이다. 붉은 꽃무릇 사이로 부는 산사의 선선한 가을바람은 내 나이조차 잊게 하여 소녀의 가슴처럼 마냥 높고 맑은 하늘로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금산사 근처 전통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데, 문득 찻잔 속에 그 붉은 속눈썹이 비치는 듯 꽃무릇이 그리웠다.

 

(2018.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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