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3만리

2019.06.01 07:45

정남숙 조회 수:3

엄마 찾아 3만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달력상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첫날이다. 폭염에 시달릴 거라는 여름걱정을 할 틈도 없이 새벽부터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손자의 고등학교 졸업식동영상이 내 아침잠을 깨웠다.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3년 동안 부모와 떨어져 잘 견뎌준 손자가 대견했다. 3년 전, 억지로 헤어져 홀로 떠나야만 했던 그 손자는 밤낮으로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며, 맘속으로 '엄마 찾아 3만리'를 헤맸을 것 같아 마음을 졸여야 했다. 나는 손자에게 엄마가 그리우면 언제나 하던 공부 그만두고 귀국하라며, 비행기 표와 엄마의 꾸지람을 할머니가 책임지겠노라고 했었다.

 

  9시 출근했는데 박물관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 주말이라 카운터를 맡은 직원이 조금 늦게 출근하는 편이다. 야외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바로 앞에 있는 연못에 눈을 돌렸다. 전에 없었던 뭔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전북대박물관 앞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대학 초창기부터 ‘새내기 연못’이라 불리며 있었는데, 박물관건립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이후 2017년 개교 70주년을 맞아 이 연못을 추억하는 많은 대학가족들의 요청으로, 원래 있던 곳에 동일한 크기와 형상으로 복원되었다. 또한 과거 연못주변에 심어져 있던 버드나무는, 개교 70주년을 상징해 7그루를 여기저기 심었고 연못 중앙 둥근 섬을 가득 채운 철쭉 가운데, 우뚝 선 배롱나무는 원래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식되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이 나무를 기념하기위해 ‘배롱나무 연못’이라 부른다는 안내 돌비도 세워져 있다.

 

  나는 가끔 틈을 내어, 박물관이 세워질 때 측면에 있던 정자를 연못가로 옮겨놓은 ‘고향정(古香亭)’에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철따라 피는 철쭉꽃과 배롱나무꽃을 보다 연못 속에서 제법 큰 물고기 두 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누가 방생한 것인지 언제부터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행여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다 유유히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발견하면 안도의 숨을 내 쉬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뭔가 물길을 헤치며 떠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얼른 달려가 보니 작은 엄마오리가 갓 부화한 아기오리 6마리를 데리고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처음 보는 상황이기에 신기하여 직원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내 것인 양 자랑하며 인증샷 찍기에 신이 났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아기오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가보니 어미오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린 새끼오리 6마리가 이리저리 흩어져 ‘짹짹짹’ 소리를 내며 엄마를 찾고 있었다.

 

 엄마오리는 아기들을 떼어놓고 어디로 갔을까? 먹이를 구하러 갔나? 새끼 돌보느라 피곤하여 잠시 혼자 쉬고 싶어 아기들을 떼어 놓았을까? 잠시 동안 별별 생각을 다하며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연못 중앙 철쭉꽃나무가 흔들리더니 그 속에서 엄마오리가 나오고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미처 생각도 하기 전 머리에 노란 1자를 그은 새끼오리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갓 부화된 것 같았다. 작은 몸을 둘러싼 까만 깃털이 채 마르지도 않은 채 세상을 향한 첫걸음마로 물속에 뛰어들고 있었다. 이제야 오리가족 탄생의 실마리가 잡혔다. 오늘 아침 한 마리씩 시간차를 두고 알에서 깨어 나와 우리 눈에 보인 게 6마리 가족이었고, 다시 한 마리가 추가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와 7마리의 새끼들이 행복하게 물길은 가르고 있어 안심하고 데스크로 돌아왔는데, 또 다시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 보태서일까. 아까보다 조금 더 자라서일까 울음소리가 제법 더 크게 들렸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연못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학생 하나가 보였다. 그 학생도 오리가족이 신기해 따라다니고 있나보다. 새끼울음소리를 듣고 나와 보니 그 학생 손에 아기오리 3마리가 들려있었다. 엄마 잃고 헤매며 울고 있는 새끼들이 불쌍해 구해주려는 것 같았다. 그 학생은 나를 보더니 “애들이 추워 떨고 있어 몸을 말려주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오리가 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강은 짐작이 되고 있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새끼오리를 떼어놓은 것은 방치가 아니라, 아직 남은 다른 새끼의 부화를 도우려 줄탁동기(啐啄同幾) 중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오리가 잠시 나와 '까악 깍' 부르면 아기오리들은 이쑤시개 같은 작은 발가락을 움직여 쏜살 같이 달려간다. 아기오리들을 안심시킨 엄마오리는 또 둥지로 들어갔다. 둥지 속에 아직도 부화될 알이 몇이나 남았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한 번 들어간 어미오리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아기오리들이 엄마를 찾아 온 연못을 빙빙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그 학생과 나는 아기오리들이 외롭지 않도록 같이 연못을 돌아주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애타게 어미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를 우리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어미에게 오를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걸쳐주었다. 안델센의 동화 ‘미운오리새끼’가 생각났다. 외모가 다른 모습을 한 아기오리로 태어나 다른 오리들로부터 괴롭힘을 받게 된다. 다른 오리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아기오리는 태어난 연못을 떠나 여러 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이 된 아기오리는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다. 너무도 앙증맞게 작은 새끼오리들을 바라보며 이 중의 하나가 백조였으면 하고 상상해 보았다. 백조가 끼어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다른 오리들에게 따돌림이나 미움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넓은 아파트 같은 큰 호수는 아니어도 작은 연못 전체가 이 오리가족만의 오봇한 행복의 보금자리이니, 이웃의 눈치나 시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엄마오리를 찾아 연못을 헤매는 아기오리들을 보살피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숨쉬기 운동으로 족하다며 걸음 걷기를 한사코 버티는 나에게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만보기를 설치해 주었다. 아기오리를 따라 연못주위를 몇 바퀴 돌다보니 만보기는 숫자로 내 운동량을 보여준다. 1,200걸음 0,8km, 60kcal 가 소비된 것으로 되어있다.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어미오리가 품고 있는 알에서 몇 마리의 아기오리들이 나타날지 주일을 지나고 월요일에 만나야 할 것 같다. 얼마나 많을 새끼오리들을 데리고 다닐까 궁금해도 참기로 했다. 그런데 아기오리들의 울음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고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자동차 좌우 신호 소리도 아기오리 울음소리 같고, 가로수 수풀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아기오리 울음으로 들린다. 지금쯤 엄마를 만났을까?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한 편이 떠올랐다. 헤어지고 소식이 끊긴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걸어 다른 나라까지 가서 결국 엄마를 찾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 '엄마 찾아 삼 만리'다. 아기오리들이 엄마를 찾아 연못을 누비며 그 작은 몸과 발로 물질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엄마 찾아 3만리'에 버금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마르코의 이야기며, 내 손자의 미국생활 3년과 아기오리들의 엄마 찾아 헤매는 보습에서 용기와 희망, 그리고 모험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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