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앞에서
2007.05.07 01:12
영화관 앞에서 “문학세계” 2005년
미국에 와서 가장 나를 슬프게 한 것이 있었다면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일이었다. 아니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았다. 알라들을 수 없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나를 더 슬프게 하고 화나게 했다. 청공간 장애자로 살아야 하는 비애는 가슴을 할퀴고도 남았다.
십 년을 접어들었을 때,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까하는 유혹도 생겼고, 또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도 만났다. 그녀는 새 양화만 나오면 나를 불렀고, 우리는 서로 거절해 본 일 없이 열심히 영화관에 드나들었다. 이년 여를 같이 다녔던 그녀가 북 가주 몬트레이로 이사 간 후, 구경도 좀 시들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꼭 보고 싶은 영하가 신문광고에 났다. 나는 영화관으로 차를 달렸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항상 갖는 설레임으로 줄을 섰다. 나 같이 혼자 온 사람도 있나 주위를 두리벙거리는 순간이었다. 줄을 섰던 한 청년이 빨강불로 차들이 정지하고 있는 차도에 뛰어 들었다. 싼타모니카 거리의 좁고 번잡한 길이다. 그는 차창에 머리를 내 밀고 있는 개에게 달려갔다. 그런 그는 개의 머리를 정신없이 쓰다듬더니 포옹까지 했다. 넓적한 귀를 철석 드리운 재는 덤덤히 제 머리를 맡기고 있었고, 개 주인은 자기 개를 예뻐해 주는 것이 기분이 좋았던지 빙그레 웃고 있었다. 파랑 신호로 바뀌자 개는 그의 포옹에서 벗어났고 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도로 돌아온 남자는 손을 높이 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나는 개와 사람과의 찰나의 만남이 너무도 당혹스러워 그대로 그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남자는 또 다시 자기의 금발 애인, 아니면 마누라일까 꼭 껴안기 시작했다. 개나 사람이나 사랑스러워 죽겠는 모양이다. 껴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있었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을 하며 그래서 자기가 행복할 때, 누구나 없이 껴안고 싶어지는 심정. 그 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보는 나도 행복했다.
영화에서의 주인공도 사랑이 넘치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배신당했고, 배신 된 사랑의 아픔으로 그녀는 언덕 위에서 때굴때굴 구르며 자학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 마음도 아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영화관에서의 일들로 가슴이 성성했다. 갑자기 생각났다. 한국을 찾았을 때 그리던 어머니를 껴안았던 일이다. 65세에 돌아가진 내 어머니! 단 한 번도 어머니가 세상을 뜨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것도 우리들이 미국에 이민을 온 두 달 후의 일이다. 일 년여를 애탄에 잠겨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이 세상엔 엄마의 어머니 밖에 없는가 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돌아가시고 꼭 이십년 만에 성묘를 했다. 왼 쪽에 어머니 묘 오른 쪽에 아버지 묘, 반석이 묵직했다. 비석을 어루만졌다. 글자 한자 한자 가슴을 후볐다.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는 나대로 타향에서 겪은 고통스럽고 아팠던 날들을 한날 한날 알려드리고 싶었다. 올 수 없었던 많은 이유였다.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곱게 입힌 떼를 쓰다듬으며 묘 주위를 돌았다. 한번 돌고 두번 돌고 또 세번을 돌았다. 어머니의 체온이 비단같이 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생존 시 그대로의 어머니를 전신에 감지했다. 살아계셨을 때와 똑 같이 어머니를 껴안았다. 영원히 가신 줄 알았던 어머니를 이렇게 만났다.
아버지 묘를 만졌다. 아버지 체온이 우물 속에 서리는 김 같이 아련히 가슴에 전해 왔다. 엄하셨지만 따듯함이 깊이 숨어있었던 내 아버지의 입김이다. 가슴이 후루루 흔들렸다. 너무도 그리웠던 사람들이다. 그 때의 현실 같은 회우는 이 글을 쓰면서도 지금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 칠년 전 일이다.
남의 개까지 안고 싶도록 사랑에 차 있었던 한 남자의 포옹, 가슴 짖기게 아파 우는 영화 속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간절했다. 그리고 이십 년 만에 어머니 묘를 어루만지며 살아계신 때와 똑 같이 그 분들을 만났던 순간은 사랑이 있었기에 이루어졌다. 간절하면 전달하고 싶고, 전달이 되면 가슴에 박히는 이치는 사랑이라는 것의 신비가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영화관에 들락거린다. 길거리서의 그런 당혹스런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보는 눈이 좀 달라졌다. 저 사람은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저 사람은 좀 슬퍼 보이는데 괜찮을까. 저 사람은 왜 혼자 왔을까. 개에게 뛰어드는 따위 극단 행위 없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자만, 그래도 짐작해 보는 재미가 생겼다.
그 이후로 나는 인간상의 진열장인 영화관 앞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을 영화 먼저 즐긴다. 포옹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완전히 내 버릇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 와서 가장 나를 슬프게 한 것이 있었다면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일이었다. 아니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았다. 알라들을 수 없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나를 더 슬프게 하고 화나게 했다. 청공간 장애자로 살아야 하는 비애는 가슴을 할퀴고도 남았다.
십 년을 접어들었을 때,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까하는 유혹도 생겼고, 또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도 만났다. 그녀는 새 양화만 나오면 나를 불렀고, 우리는 서로 거절해 본 일 없이 열심히 영화관에 드나들었다. 이년 여를 같이 다녔던 그녀가 북 가주 몬트레이로 이사 간 후, 구경도 좀 시들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꼭 보고 싶은 영하가 신문광고에 났다. 나는 영화관으로 차를 달렸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항상 갖는 설레임으로 줄을 섰다. 나 같이 혼자 온 사람도 있나 주위를 두리벙거리는 순간이었다. 줄을 섰던 한 청년이 빨강불로 차들이 정지하고 있는 차도에 뛰어 들었다. 싼타모니카 거리의 좁고 번잡한 길이다. 그는 차창에 머리를 내 밀고 있는 개에게 달려갔다. 그런 그는 개의 머리를 정신없이 쓰다듬더니 포옹까지 했다. 넓적한 귀를 철석 드리운 재는 덤덤히 제 머리를 맡기고 있었고, 개 주인은 자기 개를 예뻐해 주는 것이 기분이 좋았던지 빙그레 웃고 있었다. 파랑 신호로 바뀌자 개는 그의 포옹에서 벗어났고 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도로 돌아온 남자는 손을 높이 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나는 개와 사람과의 찰나의 만남이 너무도 당혹스러워 그대로 그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남자는 또 다시 자기의 금발 애인, 아니면 마누라일까 꼭 껴안기 시작했다. 개나 사람이나 사랑스러워 죽겠는 모양이다. 껴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있었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을 하며 그래서 자기가 행복할 때, 누구나 없이 껴안고 싶어지는 심정. 그 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보는 나도 행복했다.
영화에서의 주인공도 사랑이 넘치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배신당했고, 배신 된 사랑의 아픔으로 그녀는 언덕 위에서 때굴때굴 구르며 자학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 마음도 아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영화관에서의 일들로 가슴이 성성했다. 갑자기 생각났다. 한국을 찾았을 때 그리던 어머니를 껴안았던 일이다. 65세에 돌아가진 내 어머니! 단 한 번도 어머니가 세상을 뜨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것도 우리들이 미국에 이민을 온 두 달 후의 일이다. 일 년여를 애탄에 잠겨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이 세상엔 엄마의 어머니 밖에 없는가 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돌아가시고 꼭 이십년 만에 성묘를 했다. 왼 쪽에 어머니 묘 오른 쪽에 아버지 묘, 반석이 묵직했다. 비석을 어루만졌다. 글자 한자 한자 가슴을 후볐다.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는 나대로 타향에서 겪은 고통스럽고 아팠던 날들을 한날 한날 알려드리고 싶었다. 올 수 없었던 많은 이유였다.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곱게 입힌 떼를 쓰다듬으며 묘 주위를 돌았다. 한번 돌고 두번 돌고 또 세번을 돌았다. 어머니의 체온이 비단같이 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생존 시 그대로의 어머니를 전신에 감지했다. 살아계셨을 때와 똑 같이 어머니를 껴안았다. 영원히 가신 줄 알았던 어머니를 이렇게 만났다.
아버지 묘를 만졌다. 아버지 체온이 우물 속에 서리는 김 같이 아련히 가슴에 전해 왔다. 엄하셨지만 따듯함이 깊이 숨어있었던 내 아버지의 입김이다. 가슴이 후루루 흔들렸다. 너무도 그리웠던 사람들이다. 그 때의 현실 같은 회우는 이 글을 쓰면서도 지금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 칠년 전 일이다.
남의 개까지 안고 싶도록 사랑에 차 있었던 한 남자의 포옹, 가슴 짖기게 아파 우는 영화 속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간절했다. 그리고 이십 년 만에 어머니 묘를 어루만지며 살아계신 때와 똑 같이 그 분들을 만났던 순간은 사랑이 있었기에 이루어졌다. 간절하면 전달하고 싶고, 전달이 되면 가슴에 박히는 이치는 사랑이라는 것의 신비가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영화관에 들락거린다. 길거리서의 그런 당혹스런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보는 눈이 좀 달라졌다. 저 사람은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저 사람은 좀 슬퍼 보이는데 괜찮을까. 저 사람은 왜 혼자 왔을까. 개에게 뛰어드는 따위 극단 행위 없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자만, 그래도 짐작해 보는 재미가 생겼다.
그 이후로 나는 인간상의 진열장인 영화관 앞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을 영화 먼저 즐긴다. 포옹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완전히 내 버릇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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