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웠던 4월은 가고
2007.05.07 16:16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4월은 참으로 힘든 달이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이 한인으로 밝혀진 이후 한인들은 죄책감으로 한동안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사건 발생 후 한인사회는 사태의 추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4.29폭동을 경험했던 터라 한인들이 혹시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 시시각각 모두들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부는 교회에 나가 추모미사를 드렸고 몇몇 단체는 희생자를 위한 성금모금을 시작했다. 한국정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앞장서서 발 빠르게 사과와 유감의 뜻을 전해왔고, 동포들은 그런 처사들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미국의 반응은 달랐다. 범인이 한국계이긴 하지만 엄연한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앞장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건의 원인을 총기관리 소홀을 비롯한 미국내부의 사회적 모순에서 찾았다.
사건을 수습해가는 과정도 침착했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떠들어대지 않았다. 총장이나 경찰책임자가 면직되지도 않았다. 32명의 학생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하게 마무리를 했다. 사건의 동기를 조사하여 재발을 막으려는데 조용히 힘을 모으고 있다.
그들은 범인을 포함한 33명의 희생자를 함께 추모했다. 범인의 추모석 앞에 “네가 힘들어 할 때,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쪽지가 꽂히고, 꽃다발과 성조기를 놓고 갔다.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행여 한인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부근의 한인업소를 방문하여 위로하기도 했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5년 전 한국에서 여학생 두 명이 미군병사의 과실로 인해 사망 했을 때 전국이 반미 촛불시위로 환했던 일이 떠올랐다. 병사의 과실치사 사건이 전국적인 반미시위를 촉발시켰던 모습과 자국민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간 한인 살인자의 죽음에 오히려 동정을 보이는 서로 다른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반성할 점은 없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사건을 보는 시각과 일처리의 방향이 다른 것은 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 내 아내가 아니라 우리 마누라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를 앞세우는 한국문화와 개인을 중시하는 미국문화의 다름에서 기인되는 현상이 아닐까. 한국 대통령이 세 번씩 사과를 했던 것도, 한국정부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미국의 태도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 될 수 있다.
범인 조군이 어릴 때 이민 와 미국에서 교육 받고 자란 미국인이라고 하지만, 명백한 것은 조군이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범죄임과 동시에 한인사회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건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조군 부모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 자라야 할 아이는 늘 외로웠고, 그것이 지나쳐 우울증까지 앓았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이민을 왔다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에 메여 살아가고 있다. 뭉칫돈을 가지고 온 사람이면 모를까,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소중한 아이는 뒷켠으로 밀리게 된다.
아이는 어떤가. 학교에 가면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학교가 파하면 썰렁한 집에 혼자 있게 된다. 부모는 영어를 못하고 아이는 한국어에 서투르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속 깊은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문화의 차이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아빠가 야단칠 때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가 “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서 빤히 쳐다보냐”며 뺨을 맞고 울었다는 어떤 아이의 얘기는 좋은 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도록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국내에 사는 사람은 짐작조차 어렵겠지만 엄정한 현실이다. 아이는 기댈 곳이 없게 된다. 많은 이민 가정이 겪고 있는 실상이자 고민이다.
이번사건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민생활이 어른만 힘든 게 아니라 아이도 힘들다는 것을 간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 바라는 부모의 교육관은 옳은 것이었는지. 그것이 자녀들의 행복감과 일치하는 것이었는지 등. 문제점을 찾아내어 반성하고 있다.
무거웠던 4월은 갔다. 푸르름이 넘실대는 5월이다. 모두가 크게 기지개를 켜는 오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7년 5월 9일 광주매일>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3459 | (3)3rd Book: 안식처 | 연규호 | 2007.04.24 | 46 |
| 3458 | (2)2nd manuscript | 연규호 | 2007.04.24 | 55 |
| 3457 | (1)첫 작품:First book | 연규호 | 2007.04.24 | 48 |
| 3456 | 그런 가을이었다 | 배희경 | 2007.05.03 | 51 |
| 3455 | 선택 | 배송이 | 2007.05.01 | 47 |
| 3454 | 달과 다알 | 배희경 | 2007.05.01 | 46 |
| 3453 | 어머니 날과 넥타이 | 배희경 | 2007.05.01 | 49 |
| 3452 | 어머니날의 엄니 생각 | 김사빈 | 2007.04.30 | 44 |
| 3451 | 법은 법이네 | 배희경 | 2007.04.30 | 50 |
| 3450 | 사진 속에서 “문학세계" 2001년 | 배희경 | 2007.04.30 | 52 |
| 3449 | 어찌 남을 알까 | 배희경 | 2007.04.30 | 47 |
| 3448 | 기린 | 이기윤 | 2007.04.30 | 43 |
| 3447 | 서있던 자리에 오늘을 함께/하늘에 쓰는 편지 | 김영교 | 2007.04.30 | 42 |
| 3446 | 영령들이여 천도하소서! | 신영철 | 2007.05.07 | 44 |
| 3445 | 와쯔타워 | 배희경 | 2007.05.08 | 42 |
| » | 무거웠던 4월은 가고 | 정찬열 | 2007.05.07 | 37 |
| 3443 | 영화관 앞에서 | 배희경 | 2007.05.07 | 45 |
| 3442 | '오아시스'를 보았다. | 성민희 | 2007.09.22 | 34 |
| 3441 | 환한 새날 | 이기윤 | 2007.04.24 | 44 |
| 3440 |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 | 정찬열 | 2007.04.24 | 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