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서 “문학세계" 2001년
2007.04.30 12:52
사진 속에서 “글마루" 게재 2001년
누구 손에 이 한 장의 사진이 묻어 넘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사진 속 어느 한 사람도 갖고 오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북에서 넘어오지 못한 반의 친척을 빼고서다. 사진 한 장쯤 지니고 왔음직도 한데 아무도 안 했다는 것은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 자체면 되었지 사람을 찍은 사진이 뭐 필요하다고 생각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아님을 오랜 후에야 알았다. 아무도 그 때를 이렇게 그릴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어느 날 오후였다. 넷째 동생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알려왔다. 육십 여 년 전의 우리 가족사진이 발견되었으니 와서 보라는 것이다. 우리 여섯 형제는 당장 모여들었다. 동생은 벌써 사진을 크게 확대해 놓고 한 장씩 안겨 주었다. 만감을 안고 우리들은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날은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들께 가족사진을 찍으니 단정히 준비하라 시고 나가셨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옷을 챙기시느라 부산했고, 내게는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 온 나비 옷이 있었다. 나는 그 나비 옷을 나비 같이 하늘하늘 입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밖이 춥다면서 굳이 옷 밑에 목면 내의를 입혀 주셨다. 어슴프레 그 내복이 입기 싫다고 틀었던 기억이 나는데, 사진 속의 나는 아무 일도 없은 듯 밝은 얼굴로 앉아있다. 손목까지 내려온 내복에 걸친 나비 옷은 내가 지금껏 생각하고 있었던 그 나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깨 죽지에 주름 잡힌 소매가 그리 풍성치도 않게 달려 있었고, 목 둘레에 넓적한 목깃이 있을 뿐이었다.
내 아버지는 단 한 분 형제인 누님 식구까지 불으신 모양이다. 그들도 들이닥쳐 집안이 웅성거렸다. 고모는 딸 셋에 또 딸을 낳았다. 그 딸은 모진 천덕꾸러기로 이름도 되는대로, 세차다고 세천이라 지었다. 나와 동갑인 그녀가 사진 속에 서 있다. 치마 앞에 손수건을 쫙 펴들고 서 있다. 천대받던 그녀는 오직 그 손수건 한 장이 귀중한 소유물이었는지 모른다. 손수건 한 장으로 자기 입장을 표현한 그녀가 가슴에 와 박힌다. 숙연히 그녀와 그녀의 손수건을 번갈아 보며, 결코 풍요치 못했던 그 시절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손수건에 그녀는 코 한번 풀어 보지 못했으리라.
내 할아버지이다.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갓 까지 쓰셨다. 사진관에서 사진 찍는 것이 그리도 대단한 일이었을까. 관가라도 출입하실 차림새다. 당당히 서 계시다. 할아버지는 성질이 급하셨다. 손자들을 야단치실 때면 의치가 입천장에서 떨어져 말을 더듬었다. 그 입도 꼭 다무셨다. 옆에 말썽꾸러기 손자 둘이 부동자세로 서 있으니 야단치실 일이 없지 않은가.
작은오빠는 사진을 보며 불평한다. “항상 형의 퇴 물림 만 입었군. 이 교복 소매 좀 보오. 뎅가당 올라가지 않았소.” 옆에 앉았던 큰오빠는 자기 잘못이나 되듯 멋적게 대꾸한다. “나는 물려 입을 사람이 없지 않았니.” 과연 그랬다. 큰오빠의 교복은 목깃이 밧딱 섰고, 단추가 주루룩 달려서 뉘 집 귀공자 같았다. 그러나 작은오빠는 달랑 올라간 옷소매에, 장난치러 뛰어나갈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 누군가에 부렁 부렁 불평을 토할 만도 했다.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는 다섯 째 아이를 안고 계셨다. 그 어머니는 아이 다섯을 낳은 여자 같지 않게 (후에 쌍둥이도 낳았다)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아주 잘 안다. 어머니는 일생을 남편을 열애하며 사셨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으로 평생을 사신 어머니다.
아버지! 패기에 넘쳐있는 아버지는 누구나 좋아할 풍채를 가겼다. 사진관에서도 아버지 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간청해서, 한 때 아버지 사진이 진열대에 걸린 일도 있었다. 오빠들은 그것이 부끄러워 멀리 돌아서 그 앞을 피해 다녔다고 했다.
모두 그리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그 때 일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라도 한 장 남아있지만 내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 사진 한 장 없이 떠나온 자기를 다시없는 불효자로 알고 살았다. 그러나 세상 뜨기 얼마 전부터 아침마다 거울 속에서 그립던 아버지를 대한다고 했다. 자기가 자기와 헤어질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자기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진은 우리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 하면 아주 버리고 싶은 사진도 있다. 그것은 여권 사진 같은 것이다. 십 년 전 일이다. 사진을 준비하지 못하고 여권 발급소에 갔다. 칸막이 사진 실에서 사진을 찍으란다. 코앞에서 터뜨린 후랫쉬에 찍혀 나온 내 사진은 오십 여 년 전, 신문에서 본 여 공비였다. 땀구멍이 숭숭 나 보이고 얼굴이 검 죽죽하다.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죄수들을 찍던 기계를 이런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 말이다. 수긍이 갔다.
그러나 이것을 기계 탓만으로 돌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유대 관계이다. 찍는 사람의 생각이 어디에 초점을 두었는지 그 것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의 예술 사진을 논하는 것은 나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을 정성을 담아 찍으면 틀림없이 실망하지 않는 사진이 찍힌다. 그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 자연, 사물, 인물을 사랑하고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사진도 찍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모습을 가장 당신답게 찍어주는 사람이 당신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나는 가끔 청탁 받은 글을 제출할 때가 있지만, 사진까지 요구받을 때는 딱 질색한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니어서 불만이다. 오늘의 내가 내가 아닌데서 고민이 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다는 것은 나를 아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와 같은 것일까. 그러나 그 불만스럽던 사진들이 몇 해가 지나고 나면 제법 좋게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으로 해명할 수 있을까. 현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둔자의 설음이다.
사람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 또 평생을 두고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사진에서도 그렇다. 나도 오래 전부터 아끼며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이 있다. 내 방에는 그 사진 한 틀만이 걸려있다. 그림이나 가족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는 이유는 그림이 싫어서도 가족을 소홀히 해서도 아니다. 내가 가진 사진 은 모든 것을 다 담은 바다이기 때문이다.
밥상 위에 빵 한 조각과 숟가락이 꽂힌 국그릇이 있다. 그 옆에 두텁고 낡은 성경책이 있고, 위에 안경이 놓인 것으로 보아 막 책장을 덮고 난 후임에 틀림없다. 그 앞에 수염이 성성한 노인네가 합장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이다.
그 그림은 누구나 한 번이면 마음속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흔해서 원치 않는 사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사색이 있고 믿음이 있고 철학이 있다. 사진 속의 노인은 유명한 종교인이고 철학자이다. 진지한 사색을 하고 있는 동안 사람은 선해 진다. 종교는 한 분의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밟지만, 삶의 철학은 내가 감사하며 바르게 살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에서, 지표를 제시해 주는 믿음이다. 나는 여러 이유로 이 사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십 여 년 전의 가족사진은 내 핏줄의 뿌리를 찾은 기쁨이고, 내 방 벽에 걸린 이 사진은 내 삶의 근원을 일깨워주고, 나를 정화시켜 주는 샘이다. 기도할 줄 모르면서 어느새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쁘다.
누구 손에 이 한 장의 사진이 묻어 넘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사진 속 어느 한 사람도 갖고 오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북에서 넘어오지 못한 반의 친척을 빼고서다. 사진 한 장쯤 지니고 왔음직도 한데 아무도 안 했다는 것은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 자체면 되었지 사람을 찍은 사진이 뭐 필요하다고 생각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아님을 오랜 후에야 알았다. 아무도 그 때를 이렇게 그릴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어느 날 오후였다. 넷째 동생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알려왔다. 육십 여 년 전의 우리 가족사진이 발견되었으니 와서 보라는 것이다. 우리 여섯 형제는 당장 모여들었다. 동생은 벌써 사진을 크게 확대해 놓고 한 장씩 안겨 주었다. 만감을 안고 우리들은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날은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들께 가족사진을 찍으니 단정히 준비하라 시고 나가셨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옷을 챙기시느라 부산했고, 내게는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 온 나비 옷이 있었다. 나는 그 나비 옷을 나비 같이 하늘하늘 입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밖이 춥다면서 굳이 옷 밑에 목면 내의를 입혀 주셨다. 어슴프레 그 내복이 입기 싫다고 틀었던 기억이 나는데, 사진 속의 나는 아무 일도 없은 듯 밝은 얼굴로 앉아있다. 손목까지 내려온 내복에 걸친 나비 옷은 내가 지금껏 생각하고 있었던 그 나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깨 죽지에 주름 잡힌 소매가 그리 풍성치도 않게 달려 있었고, 목 둘레에 넓적한 목깃이 있을 뿐이었다.
내 아버지는 단 한 분 형제인 누님 식구까지 불으신 모양이다. 그들도 들이닥쳐 집안이 웅성거렸다. 고모는 딸 셋에 또 딸을 낳았다. 그 딸은 모진 천덕꾸러기로 이름도 되는대로, 세차다고 세천이라 지었다. 나와 동갑인 그녀가 사진 속에 서 있다. 치마 앞에 손수건을 쫙 펴들고 서 있다. 천대받던 그녀는 오직 그 손수건 한 장이 귀중한 소유물이었는지 모른다. 손수건 한 장으로 자기 입장을 표현한 그녀가 가슴에 와 박힌다. 숙연히 그녀와 그녀의 손수건을 번갈아 보며, 결코 풍요치 못했던 그 시절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손수건에 그녀는 코 한번 풀어 보지 못했으리라.
내 할아버지이다.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갓 까지 쓰셨다. 사진관에서 사진 찍는 것이 그리도 대단한 일이었을까. 관가라도 출입하실 차림새다. 당당히 서 계시다. 할아버지는 성질이 급하셨다. 손자들을 야단치실 때면 의치가 입천장에서 떨어져 말을 더듬었다. 그 입도 꼭 다무셨다. 옆에 말썽꾸러기 손자 둘이 부동자세로 서 있으니 야단치실 일이 없지 않은가.
작은오빠는 사진을 보며 불평한다. “항상 형의 퇴 물림 만 입었군. 이 교복 소매 좀 보오. 뎅가당 올라가지 않았소.” 옆에 앉았던 큰오빠는 자기 잘못이나 되듯 멋적게 대꾸한다. “나는 물려 입을 사람이 없지 않았니.” 과연 그랬다. 큰오빠의 교복은 목깃이 밧딱 섰고, 단추가 주루룩 달려서 뉘 집 귀공자 같았다. 그러나 작은오빠는 달랑 올라간 옷소매에, 장난치러 뛰어나갈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 누군가에 부렁 부렁 불평을 토할 만도 했다.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는 다섯 째 아이를 안고 계셨다. 그 어머니는 아이 다섯을 낳은 여자 같지 않게 (후에 쌍둥이도 낳았다)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아주 잘 안다. 어머니는 일생을 남편을 열애하며 사셨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으로 평생을 사신 어머니다.
아버지! 패기에 넘쳐있는 아버지는 누구나 좋아할 풍채를 가겼다. 사진관에서도 아버지 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간청해서, 한 때 아버지 사진이 진열대에 걸린 일도 있었다. 오빠들은 그것이 부끄러워 멀리 돌아서 그 앞을 피해 다녔다고 했다.
모두 그리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그 때 일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라도 한 장 남아있지만 내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 사진 한 장 없이 떠나온 자기를 다시없는 불효자로 알고 살았다. 그러나 세상 뜨기 얼마 전부터 아침마다 거울 속에서 그립던 아버지를 대한다고 했다. 자기가 자기와 헤어질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자기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진은 우리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 하면 아주 버리고 싶은 사진도 있다. 그것은 여권 사진 같은 것이다. 십 년 전 일이다. 사진을 준비하지 못하고 여권 발급소에 갔다. 칸막이 사진 실에서 사진을 찍으란다. 코앞에서 터뜨린 후랫쉬에 찍혀 나온 내 사진은 오십 여 년 전, 신문에서 본 여 공비였다. 땀구멍이 숭숭 나 보이고 얼굴이 검 죽죽하다.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죄수들을 찍던 기계를 이런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 말이다. 수긍이 갔다.
그러나 이것을 기계 탓만으로 돌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유대 관계이다. 찍는 사람의 생각이 어디에 초점을 두었는지 그 것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의 예술 사진을 논하는 것은 나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을 정성을 담아 찍으면 틀림없이 실망하지 않는 사진이 찍힌다. 그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 자연, 사물, 인물을 사랑하고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사진도 찍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모습을 가장 당신답게 찍어주는 사람이 당신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나는 가끔 청탁 받은 글을 제출할 때가 있지만, 사진까지 요구받을 때는 딱 질색한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니어서 불만이다. 오늘의 내가 내가 아닌데서 고민이 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다는 것은 나를 아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와 같은 것일까. 그러나 그 불만스럽던 사진들이 몇 해가 지나고 나면 제법 좋게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으로 해명할 수 있을까. 현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둔자의 설음이다.
사람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 또 평생을 두고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사진에서도 그렇다. 나도 오래 전부터 아끼며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이 있다. 내 방에는 그 사진 한 틀만이 걸려있다. 그림이나 가족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는 이유는 그림이 싫어서도 가족을 소홀히 해서도 아니다. 내가 가진 사진 은 모든 것을 다 담은 바다이기 때문이다.
밥상 위에 빵 한 조각과 숟가락이 꽂힌 국그릇이 있다. 그 옆에 두텁고 낡은 성경책이 있고, 위에 안경이 놓인 것으로 보아 막 책장을 덮고 난 후임에 틀림없다. 그 앞에 수염이 성성한 노인네가 합장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이다.
그 그림은 누구나 한 번이면 마음속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흔해서 원치 않는 사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사색이 있고 믿음이 있고 철학이 있다. 사진 속의 노인은 유명한 종교인이고 철학자이다. 진지한 사색을 하고 있는 동안 사람은 선해 진다. 종교는 한 분의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밟지만, 삶의 철학은 내가 감사하며 바르게 살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에서, 지표를 제시해 주는 믿음이다. 나는 여러 이유로 이 사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십 여 년 전의 가족사진은 내 핏줄의 뿌리를 찾은 기쁨이고, 내 방 벽에 걸린 이 사진은 내 삶의 근원을 일깨워주고, 나를 정화시켜 주는 샘이다. 기도할 줄 모르면서 어느새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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