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과 넥타이

2007.05.01 04:00

배희경 조회 수:49

        
     어머니날과 넥타이          “한국일보” 게재 2000년        

   어머니날에 엄마에게 보낸 어린 손녀의 카드다. 어리긴 하지만 자기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나이인 손녀다. 지 엄마가 공개해서 읽어준 첫 머리에 기쁜 어머니날과 이른 아버지날에 당신의 딸 아무개가 보냅니다 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왜 어머니날에, 더욱이 아이들에겐 엄마가 전부인 날에 아버지를 들먹였을까. 아마도 그녀는 엄마와 아빠의 소중함에 그리 차를 느끼지 않았던 모양인가, 그래서 엄마만 추켜세우기가 미안했을까.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엄마만 갖는 특권으로 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을 훨씬 능가한 절대 사랑으로 알고 있다. 맞다. 그러나 그것이 꼭 사실은 아닐 것이다. 여자는 감정의 동물이 여서 자기의 사랑 혹은 미움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표현한다. 그러나 남자는 다르다. 감정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다. 자식에 대한 태도를 오히려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게 까지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바로 며칠 전 신문에서였다. 딸의 실종이 확인된 한 딸의 아버지가 기자회견에 임하기 직전에 보인 모습이다. 양어깨를 앞으로 모으고 두 손이 붙어버린 듯 합장하고 있었다. 딸의 생존을 간절히 갈망하는 기도였다. 지상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가 만나고 있는 진지한 순간이었다. 그 상을 보면서 나는 어찌 아버지 사랑이 엄마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아니 못하다고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들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한 아버지가 투덜거리며 하는 말이다. 칠십 평생 아버지날이라고 받아 본 것은 카드 몇 장 밖에 없다고.  또 다른 아버지는 아버지날이란 장사꾼이 넥타이를 팔기 위해 만들어 놓은 날이라고 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차라리 그런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들은 비꼬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며 많은 아버지들은 농담으로 끝내지만, 어떤 아버지는 자기를 걸고 싸운다. 그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런 후 딸을 뺏기게 될 까 두려워 딸을 빼 돌려 십 여 년을 숨어살았다. 드디어는 붙잡혀 감옥에 갔지만 처량한 아버지다. 물론 엄마의 고통도 지옥과 같았겠지만, 나는 그 아버지의 딸에 대한 간절한 마음에 더 흔들렸다.

   그러나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런 고통, 자식을 빼앗기는 고통은 없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 그 전 세대에는 아버지가 자식을 도맡아 가르쳤다. 세월이 흘러 여자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여자가 자식을 돌보게 되었고, 나는 아이들께 자주 매를 들었다. 그 중 한 녀석은 매 한번 맞지 않고 자란 놈도 있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이 내가 자기를 미워했다고 생각한다면 도리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것 같지 않아서 기쁘다.

   내 아버지는 아주 엄한 분이었다. 교육에 대한 열성이 대단해서 자주 자식들에게 매를 들었다. 아버지헌데서 맞은 일이 내게 두 번 있다. 아들이 많은 중에 딸이 하나니 많이 참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만은 아버지도 매를 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성적이 푹 떨어져 밖에서 놀지 말고 공부하라 하셨는데 놀아버렸다. 매채로 궁덩이를 호되게 얻어맞았다. 아버지 매가 그런 것인 줄 처음 알았다. 눈물이 쑥 빠지도록 아팠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세상이 싫어서 아침에 글을 써 놓고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기쁨과 슬픔의 매를 내게 주었다. 네가 없어지고 난 후의 부모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 보았는가 고 하시면서였다. 그것은 더욱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지난 어머니 날 주간에 나는 직장에 있는 한 여자와 두 남자 꽃 디자이너에게 그들 어머니에 대한 느낌을 흥미 삼아 물었다. 의례히 다정한 어머니 상을 그려 주리라 기대하면서 나도 함께 끼고 싶었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 사람 다 자기 어머니는 자기를 미워했다고 말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여기 가엾은 사람들은 심하게 야단맞았던 일, 또는 매 맞았던 일들을 죽어도 잊을소냐 하며 기억하고 있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매에서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다시없이 불행한 인간이 아닐까. 눈물을 먹음고 매를 든 아버지나 어머니의 채찍이 사랑이 아니고 미움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세상에 사랑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이 나라에서는 아동학대 죄로 부모가 감옥에 가는 세상이 되었지만, 매와 학대의 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어머니날을 맞아 아버지를 더 생각한 이유는 어머니 그늘에 가려진 아버지가 측은해서이다. 아버지 상(想)도 어머니상과 다를 수가 없다고 고발하고 싶다. 그렇다고 어머니날에 아버지를 부상시켜 어머니 상을 가릴 일은 더 더욱 없겠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 안됐다. 또 어머니인 나는 목숨과 바꿀 자식들이다. 다만 나는 어머니 사랑 속에 아버지 사랑이 파묻혀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염으로 꺼끄럽게 생각되었던 아버지 모습이 어머니의 부드러웠던 눈 보다 더 그리운 때가 있다. 어머니날, 어머니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아버지 생각이 떠오를 때다. 나는 내 손녀같이 어머니날에도 아버지를 똑 같이 아낀다고 가만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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