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나온 당나귀 (제 1 동화집)

2007.04.04 03:28

홍영순 조회 수:1184 추천:152


아이들이 하나 둘 경호 책상을 둘러쌌어요.  
“와, 멋지다! 이 집을 정말 네가 만들었니?” 수정이가 물었어요.
“응, 경호가 만들었어.” 경호 짝 호준이가 자랑스럽게 대답했어요.
“만들기 반에서 이런 것도 만드니?”
“......” 경호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어요.
“불도 켤 수 있니?” 반장인 명수가 물었어요.
“전기나 건전지로 불을 켤 수 있어.” 또 호준이가 대답했어요.
“그럼 한번 불을 켜봐.” 아이들이 말했어요.  
경호가 작은 단추를 누르자 집에 불이 환하게 켜졌어요.
“참 신기하다. 요렇게 작은 집에다 어떻게 창문을 만들었지?”
“이 조그만 굴뚝 좀 봐. 정말 앙증맞다.”
아이들이 경호 책상을 둘러싸고 집을 보고 있는데 철주가 왔어요.  
“뭔데? 나도 좀 보자!”
철주는 아이들을 밀치며 집을 번쩍 쳐들었어요.
“탁, 와지끈!”
인형의 집이 아이들 어깨에 걸려 교실바닥에 떨어졌어요.
인형의 집은 부서지고 방마다 환하던 불도 다 꺼졌어요.
철주가 머쓱하니 서있자 호준이가 소리쳤어요.
“철주야, 너 왜 이래? 경호가 이 집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네가 뭔데 참견이야?” 철주가 호준이에게 소리쳤어요. 그때까지 멍하니 서있던 경호가 철주에게 말했어요.
“네-네-네가 고-고-고쳐 놔.”
“내-내-내가 왜- 왜 고-고-고치니?”
철주가 경호 흉내를 내며 교실 앞으로 도망갔어요. 경호가 쫓아가자 철주는 교탁과 선생님 책상을 돌며 다시 약을 올렸어요.
“히히히, 나-나-날 자-자-자-잡아봐라.”
철주가 계속 말더듬이 흉내를 내자, 경호가 선생님 책상에 있는 어항을 번쩍 쳐들더니 철주에게 물을 확 끼얹었어요. 뒷다리가 갓 나온 올챙이들이 물과 함께 철주 얼굴에 쏟아졌어요.
“푸- 푸우~푸푸!”
철주는 올챙이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푸-푸” 거렸고, 올챙이들은 교실 바닥에 떨어져 팔딱팔딱 뛰었어요.
“아 하하하, 오 호호호!” 구경하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어요.
바로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시며 호통을 쳤어요.
‘야, 너희들 이게 무슨 짓이냐?”
아이들은 웃음을 참느라 “쿡쿡, 크크” 거리며 제자리에 앉았어요.
“경호하고 철주는 손들고 있어.”
선생님은 우선 올챙이들을 잡아 다시 어항에 넣고 물을 부었어요. 올챙이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엄을 치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어요.
설명을 다 들은 선생님은 철주에게 말했어요.
“철주는 친구의 소중한 작품을 부순 것도 잘못인데 친구를 놀린 게 더 나쁘다. 앞으로 3일 동안 반성문 써가지고 와서 친구들 앞에서 읽어라.”
“경호야, 넌 이유야 어떻든 우리 반 아이들이 관찰하고 있는 올챙이를 죽일 뻔 했으니 하루 반성문 써와라.”
경호는 머리를 숙인 채 눈물만 글썽였어요.    

집으로 가던 경호는 책가방을 멘 채 시장으로 갔어요. 생선비린내가 풀풀 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고무함지박에 조개나 생선을 놓고 팔고 있었어요.
경호는 동태를 토막 내고 있는 엄마 앞에 발을 멈췄어요. 엄마는 경호를 보자마자 대뜸 나무랐어요.
“빨리 집에 가서 숙제하지 여긴 왜왔어?”
경호가 머뭇거릴 때 한 아주머니가 동태를 사러왔어요. 엄마는 손짓으로 경호를 쫓고는 동태를 파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경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옆에서 홍합을 팔던 아주머니가 경호 엄마 옆구리를 꾹 찌르고는 경호에게 말했어요.
“경호야, 너 어디 아프니?”
그제야 엄마가 경호를 쳐다봤어요.
그러나 경호는 이미 저만치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경호가 간 곳은 집이 아니고 학교 은행나무 밑이었어요. 경호는 가끔 이 은행나무 밑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다 갔어요.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는 빈집이니 차라리 학교가 안전하고 쓸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호는 깍지 낀 손을 베고 벤치에 누웠어요. 초록빛 은행잎들 사이로 애태우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어른거렸어요.  
“엄마, 나 이제 엄마 말대로 4학년이에요. 그리고 혼자 집에 가서 숙제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 엄마한테 가고 싶었어요.”
경호는 은행잎들이 뿌옇게 보이고 코가 얼얼해 졌어요. 눈물이 주르륵 흘러 귓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경호를 불렀어요.
“경호야, 너 여기 있었구나.”
경호가 깜짝 놀라 벤치에서 일어나 보니 담임선생님이 서있었어요. 경호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푹 숙였어요.
“난 야단을 맞으면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마침 두 개니 너도 하나 먹어보겠니?”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말했어요.
“우리 반이 연속 석 달째 일제고사에서 꼴찌란다. 선생님들 다 계신데서 교장선생님한테 꾸중 들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처럼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으며 멋쩍게 웃었어요. 경호는 웃고 있는 선생님이 쓸쓸해 보였어요.
“다-다-다음번에 일-일등 하면 되-되잖아요.”
경호 말에 선생님이 “허허 허!”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래, 다음에 우리 반이 일등 하면 되지 뭐. 우리 반이라고 맨 날 꼴지만 하라는 법 있냐? 그러니까 우리 아이스크림 먹고 힘내자.”
선생님은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쓱쓱 핥았어요. 경호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혓바닥으로 싸악~싹 핥았어요.  
선생님이 경호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어요.
“경호야, 너 우물에서 나온 당나귀 이야기 아니?”
“모-모-몰라요.”
“그래? 그럼 내가 이야기 해주지.
한 농부가 당나귀를 길렀어. 그 당나귀는 짐을 싣고 다니며 열심히 농부를 위해 일했지. 그런데 당나귀가 늙자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됐어. 그러던 어느 날, 그 당나귀가 오래전에 쓰던 빈 우물에 빠졌어.  
당나귀가 우물에서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우물이 깊어서 나올 수 없었어. 당나귀는 꺼내달라고 울부짖었어. 농부도 당나귀를 구하려고 별짓을 다했지만 꺼낼 수 없었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던 농부는 결심을 했어.
‘당나귀는 늙어 쓸모가 없고, 우물도 메우려던 참이었으니 당나귀를 꺼낼 필요가 없어. 그냥 우물을 메워 버리면 돼.’
농부는 이웃사람들을 불러 도와 달라고 했어. 곧 이웃사람들은 삽 하나씩 들고 와서 우물 안에다 흙을 퍼붓기 시작했지.
우물에 빠진 당나귀는 흙이 쏟아지자 더 크게 울부짖었어. 그런데 얼마 후 당나귀가 갑자기 조용하더래. 이상해서 우물을 드려다 보던 농부는 깜짝 놀랐어. 당나귀가 자기 몸에 떨어지는 흙을 털고 그 흙 위로 올라서더래.
사람들이 한 삽 한 삽 흙을 퍼부을 적마다, 당나귀는 한발 한발 그 흙을 딛고 올라섰어. 한 참 후 당나귀는 우물 밖으로 나와 뛰어갔어.
당나귀를 우물에 파묻으려던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지.”
  선생님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어요.  
“경호야, 사람들이 흙을 퍼 부었을 때 당나귀가 우물에서 나오는 걸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겠니?”
“우-우-우물 소-소-속에 파-파-파묻혔겠지요.”
“너 아이들이 놀리니까 말 안하지? 창피하다고 말을 안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니?”
“......”
경호는 머리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어요.
“너는 말더듬이란 우물에 빠진 것 같다. 너 이제 그 우물에서 나와라.”
경호는 발끝으로 땅바닥을 툭툭 걷어차며 말했어요.
“어-어-어떻게요?”
“너도 퍼붓는 흙을 딛고 나오면 되잖아.”
“서-서-선생님, 저-정말 나-나올 수 이-있을까요?”
“매주 책 한권을 읽고 특별활동 시간에 독후감을 발표하면 어떻겠니? 책은 내가 책임지고 빌려다 줄게,”
“채-채-책이요?”
“못 하겠니?”
“해-해-해보겠어요.”
“오늘은 철주가 너에게 흙을 퍼부었으니까 흙을 털고 그 위로 올라설 수 있지?”
“예.” 경호가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경호가 집에 오니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어요.  
“어-어-엄마, 어-어-어떻게 버-벌써 지-집에 와-왔어요?”
“어디 갔다 이제야 오니? 오늘은 동태가 일찌감치 다 팔렸어.”
“그-그-런데 이-이-게 무-무-슨 내-냄새에요?”
“너 통닭 먹고 싶다고 했잖아. 어서 들어가서 식기 전에 먹어.”
“저-저-정말 토-통닭 사-사-사왔어요?”
“그래, 그런데 너 낮에 무슨 일 있었니?”
“아-아-아니요.”
“경호야, 너 아까 섭섭했지? 엄마도 네가 시장에 오면 반갑지. 그렇지만 엄마가 동태 장사하는 것 너 창피할까봐 가라고 했어.”
“아-아-알아요.”
“경호야, 미안하다. 너 힘든 것 다 알아. 그렇지만 암도 고치는 세상에 말더듬이야 왜 못 고치겠니? 넌 꼭 고칠 수 있어.”
경호는 눈물이 조금 나왔지만 엄마 몰래 얼른 훔치고 웃으며 말했어요.
“어-어-엄마! 거-걱정 마-마세요. 흐-흙을 터-털고 그-그 위로 오-올라설게요.”
“뭐? 흙을 털고 어딜 올라가?”
“우 하하하, 어-어-엄마. 그-그-그런 게 이-있어요.”
경호가 기쁘게 웃자 엄마도 덩달아 웃었어요.
  
경호가 반 아이들 앞에서 독후감을 발표하는 첫날이었어요.
긴장한 경호가 더 말을 더듬자 아이들이 킬킬거리며 웃었어요.  
경호가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못하자, 교실 뒤에 있던 선생님이 흙을 털고 그 위로 올라서는 시늉을 했어요. 경호는 용기를 얻어 독후감 발표를 끝냈어요.
그 후로도 경호가 말더듬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았어요. 혓바늘이 돋도록 연습을 해도 아이들 앞에 서면 번번이 말이 더듬어졌어요.
어느 날은 발표하다 말고 도망치고 싶었고, 어떤 때는 눈물이 났지만 선생님이 웃고 계시기 때문에 꾹 참고 계속했어요.
올챙이들은 앞다리도 나오고 꼬리가 없어지자 폴짝폴짝 어항을 뛰어나왔어요. 경호의 말더듬도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조금씩 좋아졌어요.
여름이 지나가자 경호는 더듬지 않고도 말하게 되었어요. 킬킬거리던 아이들은 오히려 경호의 독후감 발표를 재미있게 들었어요.

경호네 학교는 가을이면 교내 웅변대회를 했어요.
각반에서 예선을 하여 한 명씩 결승에 올라가는데, 경호네 반에서는 경호가 반대표가 되었어요.  
경호는 「우물에서 나온 당나귀」란 제목으로 웅변을 했어요. 우물에 빠진 당나귀가 우물에서 나온 이야기와, 말더듬이였던 경호가 웅변을 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말더듬는 흉내를 내면, ‘그래, 흙을 퍼부어라. 흙을 많이 퍼부을수록 난 빨리 우물에서 나갈 수 있다.’ 라며 용기를 냈습니다. 혓바늘이 돋아 밥은 못 먹어도 말 연습은 쉬지 않았습니다.”  
경호의 웅변이 끝나자 모두들 강당이 떠나가도록 손뼉을 쳤어요.  

공부가 끝나자 경호는 은행나무 밑에 누웠어요. 초록색이던 은행잎이 어느덧 노랗게 단풍이 들었어요. 그때 약속이나 한 듯 경호 담임선생님이 은행나무 밑으로 왔어요.  
“경호 여기 있었구나!”
경호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했어요.
“경호야, 난 칭찬을 받으면 사과를 먹는데 마침 두 개니 하나 먹어보겠니?”
경호가 사과를 받으며 빙그레 웃었어요.  
“교장선생님이 칭찬 하셨어요?”
“그래, 이번 달 일제 고사에서 우리 반이 1등을 했잖아. 그리고 오늘 웅변대회에선 네가 2등을 했으니 당연히 칭찬을 받아야지.”
경호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어요.  
“선생님, 아이스크림보다 사과가 훨씬 맛있어요!”
“나도 아이스크림보다 사과가 훨씬 맛있다.”
경호와 선생님은 나란히 앉아 “허허, 하하” 웃으며 사과를 맛있게 먹었어요.
은행나무가 두 사람을 축하해주듯 화르르 노란 단풍잎을 뿌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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