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요정 (제 2 동화집)

2012.06.20 09:00

홍영순 조회 수:858 추천:53



                호기심 요정

                                      

모란 초등학교 뒷골목에 문방구가 새로 생겼어요.
그런데 문방구 이름이 '개구쟁이 문방구'입니다. 문방구 주인은 만날 졸고 있는 잠꾸러기 할머니이고요.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 근처에 있는 문방구 중에서 개구쟁이 문방구를 제일 좋아합니다.
문방구 한쪽을 작은 독서실로 꾸며놨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방구에 오는 아이들은 누구나 독서실에 앉아 음악도 듣고 책도 읽을 수 있어요.  
  
왁자지껄 떠들며 오던 아이들이 개구쟁이 문방구가 보이자 조용해졌어요. 문방구 문은 열려있고, 잠꾸러기 할머니는 책을 들고 꼬박꼬박 졸고 있어요.
“쉬~이, 할머니 주무신다.”
아이들은 살금살금 독서실로 갔어요.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고, 열어놓은 창문으론 달콤한 사과향이 살랑살랑 들어왔어요.
“와아! 이 노래는 새 동요잖아? 참 아름답다.”
“저 그림도 봐, 모두 새 그림으로 바꿔 놓으셨어.”
“여기 이 동화책들도 봐. 모두 새 책이야.”  
“우리학교 도서관보다 여기가 더 좋지?”
“난 여기가 우리 집보다도 더 좋다.”
“그런데 저 잠꾸러기 할머니는 돈을 버시는 거야? 손해 보시는 거야?”
“그러게. 매달 우리들 읽으라고 새 책 사오시고, 학용품 값은 싸니 뭐가 남겠어?”
“그것도 그렇지만 만날 저렇게 졸기만 하시니 누가 물건 다 가져가도 모르시겠다.”
꾸벅꾸벅 졸던 할머니가 책을 뚝 떨어트렸어요.
깜짝 놀란 할머니가 책을 집어 들고 읽더니 다시 좁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보며 ‘크크 쿡!’ 웃었어요.

점심시간이 되자 개구쟁이 문방구가 복작복작해졌어요. 아이들은 요것 저것 만져봤어요.  
“짤그랑!”
일학년 여자아이가 발뒤꿈치를 들고 크레파스를 꺼내다 떨어뜨렸어요. 크레파스가 떨어지면서 밑에 칸에 있는 구슬 통을 엎었어요.
또그르르... 때구르르... 땍때구르르 .......
알락달락한 구슬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리조리 굴러갔어요. 깜짝 놀란 여자아이 눈에 금방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할머니는 얼른 구슬들을 주워 통에 넣고 크레파스도 제자리에 놓았어요.
“아가, 사탕 먹어라. 놀랐을 때 사탕 먹으면 금방 웃음이 난단다.”
할머니는 겁에 질린 아이에게 막대사탕을 들려주었어요.
응앙! 울음을 터트릴 것 같던 아이가 사탕을 빨며 배시시 웃었어요.

  문방구는 다시 조용해지고 할머니는 또 책을 들고 졸기 시작했어요. 몇 몇 아이들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몇 명은 학용품을 고르고 있었어요.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할머니가 일어나더니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얘들아, 나 뒤뜰에 잠간 갔다 올게 그동안 너희들이 학용품 값 받아줄래?”
“예, 할머니. 정가대로만 받으면 되죠?” “그럼, 내 금방 갔다 올게.”
할머니는 뒤뜰로 나가다가 색연필을 고르는 준혁이 어깨를 톡톡 쳤어요.
“어? 할머니 왜요?”
  준혁이가 화들짝 놀라자 할머니가 속삭였어요.
“준혁아, 뒤뜰에 사과나무가 있는데 사과 따먹으러 갈래? 친구들한테 말하지 말고 너만 와.”
쭈뼛쭈뼛 하던 준혁이가 슬그머니 할머니를 따라갔어요. 뒤뜰에는 정말 큰 사과나무에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어요.
“준혁아, 내가 요즘 팔이 아파서 사과를 못 따는데 좀 따주겠니?”
“예. 제가 사과 따드릴게요.”
준혁이는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고, 할머니는 사과를 받아 소쿠리에 담았어요. 빨간 나뭇잎도 소쿠리에 들어오고, 가을햇살도 소쿠리에 내려앉았어요.
“너 호기심요정을 아니?”
“호기심요정이요? 그런 요정도 있나요?”
“그럼, 호기심요정이 있지. 호기심요정은 아이들을 좋아 해.”
“왜요?”
“아이들은 호기심요정 꾐에 잘 빠지거든.”
“그럼 호기심요정은 나쁜가요? 저는 요정은 다 좋은 줄 알았는데요?”
“요정은 대개 다 좋지만 나쁜 요정도 있어. 그리고 난 호기심요정도 좋은 요정이라고 생각해. 호기심요정이 없으면 아이들도 다 어른 같아서 세상은 하나도 재미없을 테니까.”
“할머니는 호기심요정을 보셨어요?”
“아직 호기심요정을 봤다는 사람은 없지? 나도 호기심요정을 못 봤어. 그렇지만 속삭이는 소리는 들었지.”  
“호기심요정이 말을 해요?”
“호기심요정은 마음의 귀에다 속삭이지. ‘요거 해보면 재미있겠다, 조거 해보면 신나겠다.’ 라고.”
“그래서 뭘 해보셨어요?”
“산과 들로 쏘다니며 신나고 재미있는 건 다 해봤지. 처음 보는 거나 신기한 건 궁금해서 못 참게 만드는 게 호기심 요정이거든.”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나뭇잎들이 꽃처럼 예쁘던 봄이었어. 호기심요정이 달콤한 목소리로, ‘너 꿩 병아리 봤니? 뒷동산에 가면 엄마 꿩이 알을 품고 있다.’ 라고 속삭였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날마다 학교 갔다 오면 뒷동산에 갔지. 그러던 어느 날, 까투리가 얕은 구덩이에 마른 풀을 깔고 알을 품고 있는 걸 봤어. 그런데 엄마 꿩이 알을 품고 있으니 알을 볼 수가 없잖아.”
“그래서 꿩 알을 못 보셨어요?”
“봤지. 몰래 숨어 있다가 엄마 꿩이 잠시 먹이를 먹으러 나가자 얼른 가봤지. 계란보다 좀 작고 노르스름한 예쁜 알이 열두 개나 있더라. 나는 꿩 알들을 조심해서 들고 신나게 집으로 뛰어갔어.”
“꿩 알을 어떻게 했어요?”
“꿩 알을 집에 가지고 갔더니 아버지가 도로 둥지에 갖다 놓으라고 하셨어. 아기 꿩들이 그 알에서 나올 때까지 엄마 꿩이 품어 줘야 한대. 그래서 꿩 알을 도루 제자리에 갖다 놨어.
“알에서 아기 꿩이 나왔어요?”
“그럼, 어느 날 가보니 병아리보다 훨씬 작은 꿩 병아리 열두 마리가 엄마 꿩이랑 있더라. 꿩 병아리가 어찌나 귀여운지 집에서 기르고 싶었어.”
“집에서 길렀어요?”  
“아냐, 가끔씩 몰래 숨어서 봤어. 꿩 병아리를 꺼병이라고 해서 못생겼는지 알았더니 아주 귀엽고 예쁘더라.”      
“진짜 재미있었겠어요.”
“가을이 되자 호기심 요정이, ‘윗마을 순호가 다람쥐 굴에서 밤 한말을 캐왔대. 너도 다람쥐 굴에 밤 있나 파보고 싶지 않니’ 라고 속삭이는 거야. 난 밤을 무척 좋아하거든. 거기다 내가 밤을 한말씩 다람쥐 굴에서 캐오면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우리 집은 밤나무가 없었거든.”
“그래서 다람쥐 굴을 파 봤어요?”
“그럼, 날마다 밤나무 밑에 굴이란 굴은 다 파봤지.”
“정말 다람쥐가 밤을 한말씩 굴속에 숨겨놨어요?”
“아니야, 겨우 몇 톨         밖에 못 찾았어. 윗마을 다람쥐보다 우리 동네 다람쥐가 더 똑똑한가 봐. 밤을 어디다 감쪽같이 숨겨놨는지 못 찾겠더라.”
“다람쥐들은 자기가 숨겨놓은 밤이나 도토리를 못 찾아 겨울에 배고프대요.”
“그럼 다람쥐들은 헛 똑똑하네. 그 다음해 봄이었어. 봄 소풍을 산으로 갔는데 산 개울에 도롱뇽 알이 있는 거야. 당연히 호기심요정이 집에서 도롱뇽을 기르면 재미있겠다고 꼬드겼지. 난 도롱뇽 알을 건져 올 데가 없어서 물병에 넣어왔어. 집에 와서 도롱뇽 알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놀았지. 그런데 부엌에서 엄마가 비명을 지르는 거야. 놀라서 뛰어 가보니 엄마가 파랗게 질려서 물병을 가리키며, ‘뱀, 뱀, 물병에 뱀이 있어!’ 하시는 거야. 내가 물병을 들여다보니 정말 도롱뇽 알이 뱀처럼 보이더라.”
“도롱뇽을 길렀어요?”
“오빠랑 길렀어. 도롱뇽도 귀여워.”
“할머니는 어렸을 때 참 재미있었겠어요.”
“호기심 요정 때문에 늘 재미있었지. 개똥벌레 잡아다 병에 넣고 그 빛으로 책 읽고, 맹꽁이배 뽈록해지는 것 보려고 뒤집어 놓고 막대기로 약 올리고, 여왕개미 찾는다고 개미굴 파고, 꿀 먹는다고 벌집 건드렸다 벌들이 쫓아와서 혼나고, 열매란 열매는 다 따서 맛보다 배 아프고 입술 부르트기도 했지.”  
“호기심요정은 언제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만 하라고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딱 한 가지만 빼놓고 다 재미있었어.”
“딱 한 가지가 무엇인데요?”
“문방구에 갔는데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복작복작 했어. 주인할아버지는 혼자 계산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쁘셨지. 그때 갑자기 호기심 요정이, ‘야, 지금 저 할아버지 저렇게 바빠서 정신없는데 지우개 하나 슬쩍 주머니에 넣으면 아실까 모르실까? 궁금하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번 해 볼래?’ 라고 속삭이는 거야. 나는 호기심요정이 자꾸 속삭이니까 정말 궁금해졌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나쁜 줄 알면서도 호기심요정 꾐에 넘어갔어. 나는 가슴을 콩닥거리며 할아버지 몰래 지우개 하나를 슬쩍 주머니에 넣었어. 할아버지는 나를 안 보시는데도, 나는 다리가 발발 떨리고 숨을 못 쉬겠더라.”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들키지 않고 무사히 문방구를 나와 집으로 왔지. 그런데 재미는커녕 양심가시가 찔러서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오더라. 할 수 없이 며칠 뒤 몰래 그 지우개 다시 갖다 놨다. 난 그때 양심에 따가운 가시가 있다는 걸 알았지.”  
준혁이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들먹이다가 말았어요.
“자, 이제 사과 먹자.”
할머니와 준혁이는 평상에 앉아 빨갛게 익은 사과를 먹었어요. 그런데 준혁이는 가슴이 따끔거리고 아파 사과를 먹을 수 없었어요.
“할머니 저 먼저 갈게요. 천천히 잡수시고 오세요.”
“그래. 난 사과 다 먹고 갈게. 내일 또 만나자.”
문방구로 돌아온 준혁이는 윗옷 안주머니에서 샤프를 꺼내 제자리에 놨어요.

개구쟁이 문방구 할머니는 오늘도 책을 읽다 졸고 있어요.  
왁자지껄 떠들며 오던 아이들이 개구쟁이 문방구 앞에 오자 조용해졌어요.
“쉬~이, 할머니 주무신다. 조용히 들 해!”
아이들은 살금살금 독서실로 갔어요.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고, 사과 꽃향기가 창문으로 살랑살랑 들어왔어요.
동화책을 읽는 아이들은 지난 가을보다 반 뼘씩은 더 자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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