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따돌리기 (제 2 동화집)

2008.02.15 04:09

홍영순 조회 수:1194 추천:172

   엄마 따돌리기
                        
                
  캐빈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엄마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어요.
“학교 잘 갔다 왔니? 얼른 손 씻어라.”
“엄마, 나 지금 배고파요. 어제 먹던 피자 주세요.”
캐빈이 피자 먹을 생각에 후딱 손을 씻고 나오자 엄마가 딸기를 주었어요.
“엄마, 피자 달라니까요?”
캐빈은 딸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피자를 달라고 졸랐어요.
“넌 과일은 안 먹고 피자만 먹니? 제철딸기라 달고 맛있어. 어서 먹어 봐.”
엄마가 잘 익은 딸기 하나를 캐빈 입에 넣어주었어요.
“배고프다니까요. 오늘 점심은 샌드위치였는데 맛이 없어 안 먹었어요. 집에 오면 피자 먹을 생각에 배고픈 걸 간신히 참았단 말이에요.”
“피자먹으면 밥 못 먹잖아. 일찌감치 김치찌개 끓이고 밥 해줄게.”
캐빈은 김치찌개 해준다는 말에 억지로 딸기 몇 개를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또 잔소리를 했어요.
“게임은 숙제를 다 한 후에 하라고 했잖아. 숙제 먼저 해.”
“조금만 더 하고 숙제 할게요.”
“게임 많이 하면 뇌가 나빠지고 성격도 이상해진대.”  
캐빈은 ‘어휴~!’한숨을 쉬며 침대에 벌렁 누웠어요. 숙제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때 맞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촌 형, 알렉스가 놀러왔어요. 캐빈은 얼른 텔레비전을 켰어요. 엄마가 아무리 잔소리 대장이지만 사촌형과 같이 텔레비전을 보면 잔소리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캐빈과 알렉스가 신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왔어요.
“좀 쉬었다 봐라. 한 시간 이상 텔레비전 보면 눈도 나빠지고 허리에도 안 좋다는 것 알고 있지?”
엄마가 가자 캐빈이 텔레비전을 끄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못 말려. 우리 엄마 잔소리는 아무도 못 말려!”
“너 엄마 잔소리가 그렇게 싫으니?”
“응. 정말 넌더리가 나.”
“엄마 잔소리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긴 있는데......”
“뭔데?”
“엄마가 한국말로 말하면 무조건 못 알아듣는 척 하면 돼.”
“그럼 엄마가 영어로 말하겠지.”
“아니, 우리 엄마나 너의 엄마는 영어로 말 안 할 거야.”
“왜?”
  "큰고모가 잔뜩 겁을 주셨대.”
“큰 고모가 엄마에게 무슨 겁을 주셨는데?”
“우리들이 학교가면 영어만 하고 한국말은 다 잊어버린다고 하셨대.”
“그럼 어때? 우린 미국사람이고 미국에 살건대.”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생각하는 것도 완전히 미국사람이 된다는 거야. 그럼 한국에서 자란 엄마하고는 남남처럼 멀어진다고 하셨대.”
“우리 엄마는 내가 미국사람이지만 한국 사람이기도 하데. 그래서 한국말을 배워야 한대.”
“엄마아빠가 다 한국 사람이니까 그 말도 맞아.”  
“그건 그렇고 형이 한국말 못 알아듣는 척 하니까 큰엄마가 잔소리 안하셔?”
“응. 요즘은 거의 잔소리 안 해.”  
“그럼 나도 형처럼 할 거야. 나중에 엄마하고 남남처럼 되든 말든 몰라. 난 지금 엄마 잔소리 듣는 게 제일 싫으니까.”
그날부터 캐빈은 엄마 말은 무조건 못 알아듣는 척했어요.
  
소풍갔다 온 날입니다.
숙제가 없어 캐빈이 신나게 컴퓨터게임을 하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 엄마가 불렀어요.      
“캐빈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다 읽었니?”
“뭐라고요?”
캐빈은 엄마 말을 알아듣고도 못 알아들은 척했어요.
“내일 도서관에 책 반납하는 날이잖아. 빌려온 책 다 읽었냐고?”
“영어로 말하세요. 못 알아듣겠어요.”
캐빈은 여전히 게임을 하면서 말했어요.
“벌써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못 알아들었니?”
엄마 목소리가 커졌어요.
“그러니까 영어로 말하라니까요.”
캐빈이 짜증스레 말했어요.
“영어로 말하라고? 그럼 영어보다 더 쉬운 말로 하지.”
엄마가 긴 자를 들고 와서 컴퓨터 책상을 ‘탁!’ 쳤어요. 그제야 캐빈이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봤어요.
“엄마, 왜 이러세요?”
“왜 이러냐고? 네가 엄마 말 못 알아들으니까 이렇게 말하려고 그런다.”
엄마가 자를 쳐들자 캐빈이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악을 썼어요.
“엄마, 소리칠 거예요!”
순간 자를 든 엄마 손이 파르르 떨렸어요.  
“마음대로 해, 소리치든 알렉스처럼 폴리스를 부르든 네 맘대로 해!”
“정말 소리칠래요. 폴리스가 와도 난 몰라요.”
캐빈이 거실로 도망가며 소리쳤어요.
“그래, 폴리스를 불러라!”
  엄마가 도망가는 캐빈 엉덩이를 한대 때렸어요.
바로 그때 현관 벨이 울렸어요.
  “딩동 딩동 딩동!”
캐빈이 재빨리 뛰어가 문을 열었어요. 알렉스가 농구공을 들고 서 있었어요. 캐빈은 생쥐보다 더 잽싸게 문을 빠져나가며 소리쳤어요.
“알렉스 형이랑 농구할게요!”
엄마는 자를 등 뒤로 숨긴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캐빈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작은엄마가 너 때렸니? 미국에서는 자식을 때려도 아동학대라고 말씀 드렸어?”
아파트 놀이터로 가던 알렉스가 캐빈에게 말했어요.
“엄마도 다 안단 말이야. 그래도 소용없어.”
“그러다 너 정말 큰일 난다.”
“형 말대로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척 하니까 엄마가 잔소릴 덜 해. 그런데 엄마는 그게 더 속상한가봐. 한 번씩 저렇게 폭발을 하면 무서워.”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엄마처럼 포기하겠지. 우리 엄마는 이제 나하고 이야기 할 생각도 안 해.”
“좋겠다.”
“...... 글쎄.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잔소리 안 들어 좋다면서 나쁜 건 뭔데?”
“나 학교 가고부터 점점 한국말을 잊어버렸어. 그런데 엄마하고 말도 안하니까 이러다간 진짜 엄마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캐빈도 그 말엔 입을 다물고 시무룩해졌어요. 캐빈도 학교 가기 전에는 한국말을 잘했는데 학교에 가면서부터 한국말보다 영어가 쉬워졌어요. 또한 엄마 잔소리가 줄어드는 만큼 한국말을 잊어버리게 됐어요. 그래도 캐빈은 엄마가 때린 게 속상했어요. 알렉스 형이 안 왔으면 분명 엉덩이를 몇 대 더 맞았을 걸 생각하니 화가 났어요.
캐빈은 좀 망설이다가 알렉스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날 못 때리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글쎄.”
“형, 큰 엄마가 때렸을 때 정말 폴리스 불렀어?”
“옆집에서 불렀어.”
“옆집에서 어떻게 알고 폴리스를 불러?”
“옆집에서 들으라고 내가 일부러 크게 비명을 질렀거든. 결국 내가 폴리스를 부른 거나 마찬가지야.”
“제시카랑 3일 동안 아동 보호소에 있었다면서 괜찮았어?”
“야, 뭐가 괜찮니? 제시카는 꼬박 3일 동안 집에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지, 나는 다시는 엄마아빠하고 못사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3일이 30년은 되는 것 같더라.”
“어휴, 그건 아니야. 엉덩이 몇 대 안 맞으려다 엄마아빠랑 못살게 되면 어떻게 해?”
케빈은 머리를 흔들었어요.
“형, 그 후론 큰엄마가 안 때려?”
“때리지는 않지만 엄마하고는 더 멀어졌어.”
알렉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푸-우!’ 한숨을 쉬었어요.
놀이터로 간 캐빈이 아이들과 농구시합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불렀어요.
“캐빈, 캐빈아!”
캐빈은 힐끔 엄마를 보고는 못 본척했어요. 아까 엄마가 자로 엉덩이 때린 것도 아직 속상하고, 분명 그만 놀고 집에 가자고 왔을 테니까 못 들은 척 하고 농구를 계속했어요.
“캐빈아, 외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데. 같이 가자. 아빠도 할머니한테 직접 가신다고 했어.”
엄마가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말했어요. 캐빈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던 아이들과 함성을 지르며 공만 쫓아다녔어요. 엄마도 아까 캐빈을 때린 게 미안해서 농구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소리쳤어요.
“가기 싫으면 넌 큰 아버지 댁에 가서 알렉스랑 놀고 있어. 나중에 데리러 갈게.”
캐빈은 엄마가 자꾸만 큰 소리로 부르는 게 창피했어요. 그래서 엄마 말을 못 알아듣고도 알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어요.  
“캐빈아, 그럼 엄마 갔다 올게.”
엄마는 캐빈이 알아들은 줄 알고 농구장을 떠났어요.
  
캐빈은 일부러 어둑어둑해서야 집에 가 벨을 눌렀어요.  
“어?”
지금쯤 아빠는 우체국에서 퇴근을 했고, 엄마는 저녁상을 차릴 때였어요. 그런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아무 인기척이 없고 불빛도 없었어요.
‘엄마아빠가 어디 갔지? 아까 엄마가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캐빈은 시무룩하니 문 앞 2층 계단에 걸터앉았어요. 그때 앞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첼시 엄마가 말했어요.
“캐빈, 너 왜 거기 앉아있니? 집에 아무도 없어?”
첼시 엄마 말을 듣는 순간 캐빈 머릿속에 빨간 불이 번쩍 켜졌어요.
‘큰일 났네. 열세 살 될 때 까지는 어른 없이 혼자 있으면 폴리스가 데려간다고 했는데 난 열 살이니 어떻게 하지?’
캐빈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어요.
“우리엄마 지금 오고 있어요.”
첼시 엄마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계단을 내려갔어요.
캐빈은 첼시 엄마가 쓰레기 버리고 오기 전에 큰아버지 댁으로 뛰어갔어요.
“딩동 딩동 딩동!”
캐빈이 아무리 벨을 눌러도 전혀 인기척이 없고 불빛도 안보였어요. 캐빈은 다시 캄캄해진 놀이터로 갔어요. 다행히 미끄럼틀에서 캐빈네 아파트 창문이 잘 보였어요. 캐빈은 미끄럼틀 밑에 쪼그리고 앉아 집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어요.
희미한 방범등 불빛에 나무들이 짐승같이 보이기도 하고, 도깨비 같이 보이기도 했어요. 그네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캐빈네 집은 불빛이 안 보였어요.  
캐빈은 점점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데 오줌까지 마려웠어요. 배가 아프도록 참던 캐빈이 지퍼만 내리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어요. 반쯤 오줌을 눴을 때였어요. 갑자기 커다란 고양이가 미끄럼틀 위에서 풀쩍 뛰어 내렸어요.
캐빈은 깜짝 놀라 털썩 주저앉았어요. 오줌에 젖은 모래가 바지에 잔뜩 묻었어요.
“엄마 말을 잘 들을 걸…….”
캐빈은 소리도 못 내고 울면서 모래를 털었어요.  

외할머니 댁에 간 엄마는 캐빈이 마음에 걸렸어요. 큰아버지 댁에 가 있으라고는 했지만 자로 한대 때린 게 자꾸 마음에 걸렸어요. 저녁을 하려던 엄마가 큰아버지 댁으로 전화를 하자 아무도 받지 않았어요. 엄마는 다시 큰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어요.
“형님 어디세요? 우리 캐빈이랑 같이 계세요?”
“캐빈? 지금 우리 식구는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예? 그럼 우리 캐빈은 어디 있어요?”
“집에 안 갔어?”
“아까 놀이터에서 알렉스랑 농구하기에 큰 아버지 댁에 가 있으라고 했는데요. 저는 친정어머니가 아프셔서 캐빈 아버지랑 친정에 와 있어요. 그럼 캐빈은 어디 있을까요?”
“글쎄, 알렉스랑 헤어진지가 2시간은 되었을 텐데 어디 갔을까?”
“형님, 얼른 집에 가봐야겠어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엄마가 전화를 끊자 외할머니가 걱정스레 말했어요.
“내 걱정은 말고 가봐라. 겨우 열 살밖에 안된 캐빈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어디서 떨고 있는지 모르잖니? 어서, 어서 가봐.”

캐빈 엄마아빠가 아파트에 와보니 집안은 캄캄하고 문이 잠겨있었어요. 엄마아빠는 놀이터로 뛰어갔어요. 넓은 놀이터엔 아무도 없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준 놀이기구들만 쉬고 있었어요.
“여보, 어떻게 해요? 경찰서에 알려야 할까요?”  
“아파트 주위를 찾아보고.”    
그러나 아파트주위를 다 둘러보아도 캐빈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낮에 얇은 옷을 입고 나가서 지금은 추울 텐데 어디 있을까요?”
“집에 가서 손전등을 가지고 와서 한 번 더 찾아봅시다. 그래도 없으면 할 수 없지. 신고해야지.”
캐빈 엄마아빠가 집으로 뛰어 갔어요.
  
한편, 캐빈은 그때까지 미끄럼틀 밑에 꼼짝도 못하고 숨어있었어요. 엄마 아빠가 왔을 때도 낯선 사람인줄 알고 더 옹크리고 숨어있었어요. 발자국소리가 멀어진 후에야 아파트 창문을 본 캐빈이 벌떡 일어났어요. 그렇게 오래도록 캄캄하기만 하던 창문에 환한 불빛이 보였어요.
캐빈은 바람처럼 집으로 내달렸어요.
“엄마! 아빠!”
캐빈은 엄마아빠를 부르며 한 번에 계단 두개씩 뛰어 올라갔어요.
손전등을 들고 캐빈을 찾아 나서던 엄마아빠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어요.
“캐빈아, 어디 있었어?”
엄마가 와락 캐빈을 껴안고 울자, 캐빈도 울고, 아빠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엄마는 부랴부랴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추위에 떨고 있던 캐빈을 따듯한 물로 씻어주었어요.
“이 히히 히! 아빠, 간지러워요.”
키득키득 캐빈 웃는 소리가 목욕탕에서 들렸어요.
“어이구 녀석, 잘도 웃네.”
시금치나물을 무치던 엄나도 캐빈을 따라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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