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어머니 (제 2 동화집)
2010.03.24 09:38
다섯 살 어머니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마을 놀이터로 왔어요.
"판사님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판사님에게 몰려들었어요.
"오늘도 사탕 가져왔어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눈웃음치며 흙 묻은 손을 내밀었어요.
"응. 사탕가지고 왔어."
판사님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할머니를 모래밭에 내려놨어요. 하얀 머리에 분홍색 머리핀을 꽂은 할머니는 판사님 어머니입니다.
할머니와 판사님은 코스모스 곱게 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어요.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놀러오고, 강아지도 아이들 옆에 앉았어요.
모래로 밥도 짓고 떡도 만들어 재미있게 소꿉장난 하던 아이들이 샐샐거리며 판사님에게 물었어요.
"판사님, 몇 살이세요?"
"나? 여덟 살."
"아~하하하, 여덟 살인데 왜 머리가 하얘요?"
"내 머리? 으음, 눈 오는 날 밖에 나가 눈을 맞아서 하얘졌나?"
“나도 눈 맞았는데 내 머리는 까만데요?”
“글쎄. 왜 그렇지?”
"할머니는 몇 살인데요?”
"우리 엄마 말이니? 다섯 살."
"에이, 어떻게 엄마가 아들보다 나이가 더 적어요?"
"우리 엄마는 나보다 키가 작잖아."
"키 작으면 애기인가요?"
"나도 몰라."
판사님이 허연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으~헤헤!" 웃었어요.
“하하하, 판사님인데 나이도 몰라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할머니는 아흔 다섯 살이고, 판사님은 일흔 한 살이에요. 알았죠?”
“아니야. 난 여덟 살이고 우리 엄마는 다섯 살이야.”
“하하하. 누구누구는 엄마보다 나이가 많데요.”
아이들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판사님을 놀렸어요.
저녁때가 되자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일어나며 말했어요.
“얘들아, 동화책 새로 사왔으니까 우리 집에 놀러와.”
“예. 동화책 보러 갈게요.”
아이들도 일어나 민 판사님과 할머니를 배웅하고 집으로 갔어요.
그림책을 읽던 할머니가 심심한지 판사님을 졸랐어요.
“오빠, 고기 잡으러 가자.”
“지금은 바쁜데.”
“오빠, 고기 잡으러 가자.”
할머니가 자꾸 보채자,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개울로 갔어요.
햇살이 아롱거리는 개울물속에는 고기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어요.
"고기가 많네."
판사님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울로 들어갔어요. 판사님은 고기들을 쫓아다니며 뜰채로 건졌지만 고기들은 언제 빠져나갔는지 빈 뜰채뿐이었어요.
"잡았다!"
판사님이 재빨리 뜰채로 송사리 떼를 퍼 올렸어요. 번번이 허탕이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몇 마리는 건졌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러나 뜰채 안에는 송사리새끼 한 마리 없었어요.
"어이구, 또 놓쳤네!"
민 판사님이 빈 뜰채를 들여다보며 울상이 되었어요.
"오빠, 신발로 잡으라니까."
개울가에서 어항을 들고 있던 할머니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어요.
"고무신이 없는데."
"그럼 운동화로 잡지."
"그럴까?"
민 판사님은 뜰채를 개울가에 내 던지고 운동화를 들고 송사리를 쫓아다녔어요. 판사님은 고기를 쫓아다니느라 옷이 다 젖는 줄도 몰랐어요.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들이 킬킬 거리며 고기 잡는 구경을 했어요.
"심심했는데 오늘 재미있는 구경 하게 생겼다."
승연이가 작은 눈을 생글거리며 말했어요.
"저 바보 판사할아버지 좀 봐. 송사리도 못 잡네."
벌써 신발을 벗고 개울로 들어가던 성질 급한 철민이가 말했어요.
"판사님은 바보가 아니고 치매에 걸린 거래."
별명이 백과사전인 명훈이가 개울바닥에다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치매가 뭔데?" 승연이가 물었어요.
"뇌가 고장 나는 병이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어린애처럼 되는 병인가 봐."
“옮기기도 하는 병이야?”
“아니야. 치매는 절대로 옮기는 게 아니래.”
“그럼 왜 멀쩡하던 판사님이 시골 와서 치매 걸린 할머니랑 사시더니 치매에 걸리셨어?”
“그러게. 치매는 절대로 옮기는 병이 아닌데 왜 판사님도 치매에 걸리셨지?”
"아무리 치매라고해도 어머니가 아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건 너무 이상하다."
“그래. 치매가 무척 나쁜 병인가 봐.”
명훈이와 승연이가 이야기 하는 동안, 철민이가 개울에 있는 커다란 돌을 들추고 가재 한 마리를 잡았어요.
“할머니, 가재 드릴까요?”
철민이가 할머니의 빈 어항에다 가재를 넣었어요.
“와아, 정말 가재네!”
할머니가 가재를 만지자 성난 가재가 그만 할머니 손가락을 꽉 물었어요.
“아야, 아야, 아야!”
할머니는 손가락에 매달린 가재를 털며 아기처럼 막 울었어요. 민 판사님이 송사리 건지던 운동화를 집어던지고 첨벙첨벙 뛰어와 할머니 손가락에 매달린 가재를 겨우 떼어냈어요.
"어유, 많이 아프겠네!"
민 판사님이 피가 맺힌 할머니 손가락을 호호 불며 달래는 동안, 아이들은 놀라서 개울둑을 넘어 바람처럼 마을로 달아나 버렸어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던 할머니가 두리번거리며 일어났어요.
"오빠!"
할머니가 판사님을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오빠 어디 있어?"
할머니가 부엌으로, 화장실로 찾아다녔지만 판사님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울먹울먹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꼬부라진 허리를 펴며 웃었어요.
"호 호 호! 오빠가 없을 때 해 봐야지."
할머니는 부엌 서랍에서 팝콘 봉지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어요.
"2분인가? 20분인가?"
한참동안 생각하던 할머니가 20분을 눌렀어요. 조금 있자 전자레인지 속에서 퐁 퐁 퐁 팝콘이 튀겨졌어요. 할머니는 커다란 플라스틱 양푼을 들고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아이들처럼 좋아했어요. 잠시 후, 퐁 퐁 퐁 소리 나던 전자레인지 속이 조용해지더니 연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아이고, 큰일 났다. 강냉이가 탄다. 강냉이가 탄다."
할머니가 어쩔 줄 모르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부엌에 연기가 찼어요. 할머니는 식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콜록콜록 기침을 하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판사님 댁에 동화책을 보러 온 아이들이 연기 나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명훈이가 재빨리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으며 소리쳤어요.
"큰일 났다. 얘들아, 빨리 할머니 모시고 나가!"
승연이와 철민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가는데, 판사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어요.
"어머니, 괜찮으세요?"
울상이 된 판사님은 할머니를 안고 여기저기 살펴보며 물었어요.
"오빠, 나 너무 무서워."
할머니가 판사님 품에 안겨 울었어요,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이제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어요."
민 판사님이 할머니 눈물을 닦아주며 달래자, 철민이가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며 판사님에게 꽥 소리 질렀어요.
"판사님은 효자라던데 왜 할머니만 두고 다니세요?"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서 잠깐 나 혼자 호호빵 사러 갔었어. 할머니가 호호빵이 잡수시고 싶다고 하셨거든."
"그래도 할머니 혼자 두고 가면 어떻게 해요?"
"잘못 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머리가 허연 민 판사님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어요.
집으로 가던 승연이가 실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어요.
"치매에 걸리면 정신이 들락날락 한다는 말이 정말 맞기는 맞나봐. 판사님이 아까는 정신이 말짱하셨지?”
“그래. 아까는 판사님이 치매에 걸리신 것 같지 않으셨어.”
아이들이 머리를 갸우뚱했어요.
겨울 방학을 시작하면서 민 판사님 댁 사랑방은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어요. 아이들이 읽을 만화책과 동화책이 많고, 과자나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가 언제나 넉넉했기 때문이었어요.
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듯한 봄이 왔어요.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이 피고, 목련꽃과 벚꽃도 피었어요.
민 판사님이 바깥마당을 쓸고 있는데, 할머니가 소쿠리를 들고 나왔어요.
"오빠, 진달래꽃 따다 화전해먹어."
"진달래 화전?"
"저것 봐. 뒷동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잖아!"
"마당 다 쓸고 가면 안 될까?"
"싫어. 난 지금 가고 싶어. 당장 지금 가 잔 말이야."
민 판사님이 빗자루를 놓고 집에 들어가 처네를 내왔어요.
“자, 그럼 업고 가야지.”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집을 나서자, 옆집 승연네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쑤군거렸어요.
"야, 몰래 따라가 보자."
"그래. 오늘도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몸을 숨기며 판사님 뒤를 살살 따라갔어요.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뒷동산 오솔길로 들어섰을 때입니다. 할머니가 판사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어요.
"민 판사, 아버지 산소로 가."
"예? 어머니 지금 어디가자고 하셨어요?"
민 판사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어요.
"너희 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할머니가 다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정말 아버님 산소에 가자고 하셨어요? 그럼 제가 누군지 아세요?"
"누구긴 누구야. 우리 효자아들 민 판사지."
"어머니!! 어머니가 오늘은 정신이 맑아지셨네요."
민 판사님의 발걸음이 거뿐거뿐하여지고, 입에서는 ‘허허 허허’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민 판사님이 아버지 산소 앞에 처네를 깔고 할머니를 앉혔어요.
농부들이 논을 갈고 있는 들판이 저만치 내려다보였어요.
"양지바르고 앞이 탁 트여 참 좋구나!"
산소 앞에 앉은 할머니의 모습이 아기처럼 마냥 평화로워보였어요.
판사님은 할머니가 쉬는 동안 부지런히 진달래꽃을 따왔어요.
진달래꽃을 만져보던 할머니의 눈이 반짝 빛났어요.
"민 판사. 우리 꽃싸움할까?"
"예 .우리 꽃싸움해요."
민 판사님과 할머니가 빨간 진달래꽃술을 하나씩 들고 마주앉았어요.
민 판사님이 먼저 꽃술을 걸고 확 잡아당겼어요.
“어? 내께 끊어졌네요.”
"호호호, 내가 이겼다!"
할머니는 웃으시고, 민 판사님은 울상이 되었어요.
"다시해요. 이번에는 제가 이길 자신이 있어요."
이번에도 민 판사님이 먼저 꽃술을 잡아 당겼어요.
"호호호, 내가 또 이겼어!"
"어머니, 한번 만 더해요."
"민 판사, 먼저 잡아당기면 쉽게 끊어지는 거야."
"그럼 이번에는 어머니가 먼저 잡아당기세요."
"알았어."
할머니가 꽃술을 걸고 잡아당겼어요. 할머니의 꽃술이 끊어졌어요.
"어머니 이번에는 제가 이겼어요!"
민 판사님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요.
춤추는 판사님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던 할머니가 말했어요.
"민 판사, 이제 그만 집에 가."
"예, 어머니. 피곤하시죠? 얼른 집에 가서 진달래 화전 해드릴게요."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진달래꽃 담은 소쿠리를 들려드렸어요.
할머니가 피곤한지 판사님 등에 살포시 기댔어요.
판사님이 산을 반쯤 내려갔을 때, 할머니가 들고 가던 소쿠리에서 진달래 꽃송이가 하나씩 둘씩 떨어졌어요.
“어머니, 소쿠리를 꼭 잡으세요. 진달래꽃이 떨어지잖아요.”
“......”
할머니는 대답이 없고 다시 진달래 꽃 몇 송이가 떨어졌어요. 민 판사님이 등에 업힌 할머니를 추슬러 올리며 말했어요.
“어머니, 졸지 말고 소쿠리를 잘 들고 가야 진달래 화전을 하지요.”
“........”
대답대신 소쿠리가 땅에 툭 떨어졌어요. 소쿠리가 솔밭사이로 도르르 굴러 가며 분홍색 진달래꽃을 뿌렸어요.
"어머니! 어머니! “
“......."
민 판사님이 아무리 불러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어요. 판사님이 어깨 너머로 할머니를 보더니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울었어요.
판사님이 울며 동산을 내려가자, 여태까지 몰래 따라다니던 아이들이 소나무 사이에서 소쿠리를 집었어요. 진달래꽃 몇 송이가 소쿠리에 남아있었어요.
"명훈아, 오늘은 뭔가 이상하지?"
승연이가 실눈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오늘은 할머니도 판사님도 정신이 말짱하셨는데 무슨 일이지?“
철민이도 부리부리한 눈을 껌벅이며 말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나 봐."
명훈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어요.
삼일 후,
할머니의 마지막 잠자리가 할아버지 산소 옆에 준비되었어요.
사람들은 치매에 걸린 민 판사님을 많이 걱정했어요.
“여덟 살 같은 판사님이 어찌 상주 노릇을 할까?”
“그래도 외아들이시니 상주 노릇을 하기는 해야겠지요.”
그러나 뜻밖에 민 판사님은 상주노릇을 썩 잘 했어요.
장례가 끝나자 민 판사님은 눈물을 닦으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세상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가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치매에 걸리지 않았었습니다. 치매에 걸려 어린애처럼 되신 어머니께서 저를 오빠로 아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왕 어머니를 모실 바에야 어머니에 맞춰 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께 사실을 말씀 드릴까도 생각했지만, 코흘리개처럼 노는 저를 보고 여러분들이 민망해 하실 것 같아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동안 어머니와 저를 늘 사랑으로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판사님의 느닷없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어요. 어떤 사람들은 판사님 효심에 감동해 눈물을 닦고, 어떤 사람들은 판사님이 노망났다고 수군거린 게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어요. 그때까지 바위 뒤에 숨어서 장례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털썩 주저앉았어요.
"야, 지금 판사님이 뭐라고 하셨니?"
"글쎄 말이야. 그럼 가짜로 노망난 것처럼 하신 거야?"
"와아, 맙소사. 큰일 났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완전히 바보 취급했잖아."
"어떻게 하냐?"
"어유, 창피해. 판사님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창피한 게 문제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
얼굴이 빨개진 아이들은 도망치듯 산을 내려왔어요.
그 다음 토요일 명훈이가 승연이와 철민이를 데리고 판사님 댁에 갔어요. 마침 판사님이 사랑방에서 동화책과 만화책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어요. 판사님은 마당에 서 있는 아이들을 보자 무척 반가워했어요. 물론 판사님은 아이들처럼 옷을 입지도 안았고 얼굴 표정이나 말도 애들 같지 않았어요.
"어서들 와라.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을 찾아갈 까 했는데 와줘서 고맙다."
아이들이 얼굴이 빨간 채 쭈뼛쭈뼛 서있자 판사님이 불렀어요.
"왜들 거기 있니? 어서 방으로 들어와."
판사님이 다정하게 말하자 아이들이 마당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어요.
"판사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왜들 이러니? 어서들 일어나."
판사님이 마당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사랑방으로 데리고 갔어요. 아이들이 다시 무릎을 꿇고 말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저희들은 판사님도 치매에 걸리신 줄 알았어요."
"괜찮다. 너희들이 우리 어머니랑 재미있게 놀아줘서 고마웠다. 내가 아무리 아이들 흉내를 내도 우리 어머니는 너희들을 더 좋아하셨어."
"잘못 했습니다."
"괜찮다니까. 오히려 너희들이 고마웠다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젠 이 만화책이랑 동화책이 필요 없어서 너희들에게 주려고 했다. 여기 있는 장난감들도 가져가라."
판사님이 아이들에게 책과 장난감을 나눠주고, 과자를 내놓았어요.
아이들은 판사님의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얼굴을 힐끔힐끔 곁눈질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눈치 챈 판사님이 "우~헤헤” 웃으며 말했어요.
"우리 누가 과자를 많이 먹나 내기할까?"
아이들도 판사님의 마음을 알고 “으~ 해해” 웃으며 맞장구를 쳤어요.
"과자 다 먹으면 또 주실 거죠?"
"그럼, 그럼. 얼마든지 줄께."
민 판사님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날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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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마을 놀이터로 왔어요.
"판사님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판사님에게 몰려들었어요.
"오늘도 사탕 가져왔어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눈웃음치며 흙 묻은 손을 내밀었어요.
"응. 사탕가지고 왔어."
판사님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할머니를 모래밭에 내려놨어요. 하얀 머리에 분홍색 머리핀을 꽂은 할머니는 판사님 어머니입니다.
할머니와 판사님은 코스모스 곱게 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어요.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놀러오고, 강아지도 아이들 옆에 앉았어요.
모래로 밥도 짓고 떡도 만들어 재미있게 소꿉장난 하던 아이들이 샐샐거리며 판사님에게 물었어요.
"판사님, 몇 살이세요?"
"나? 여덟 살."
"아~하하하, 여덟 살인데 왜 머리가 하얘요?"
"내 머리? 으음, 눈 오는 날 밖에 나가 눈을 맞아서 하얘졌나?"
“나도 눈 맞았는데 내 머리는 까만데요?”
“글쎄. 왜 그렇지?”
"할머니는 몇 살인데요?”
"우리 엄마 말이니? 다섯 살."
"에이, 어떻게 엄마가 아들보다 나이가 더 적어요?"
"우리 엄마는 나보다 키가 작잖아."
"키 작으면 애기인가요?"
"나도 몰라."
판사님이 허연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으~헤헤!" 웃었어요.
“하하하, 판사님인데 나이도 몰라요? 내가 가르쳐줄게요. 할머니는 아흔 다섯 살이고, 판사님은 일흔 한 살이에요. 알았죠?”
“아니야. 난 여덟 살이고 우리 엄마는 다섯 살이야.”
“하하하. 누구누구는 엄마보다 나이가 많데요.”
아이들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판사님을 놀렸어요.
저녁때가 되자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일어나며 말했어요.
“얘들아, 동화책 새로 사왔으니까 우리 집에 놀러와.”
“예. 동화책 보러 갈게요.”
아이들도 일어나 민 판사님과 할머니를 배웅하고 집으로 갔어요.
그림책을 읽던 할머니가 심심한지 판사님을 졸랐어요.
“오빠, 고기 잡으러 가자.”
“지금은 바쁜데.”
“오빠, 고기 잡으러 가자.”
할머니가 자꾸 보채자,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개울로 갔어요.
햇살이 아롱거리는 개울물속에는 고기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어요.
"고기가 많네."
판사님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울로 들어갔어요. 판사님은 고기들을 쫓아다니며 뜰채로 건졌지만 고기들은 언제 빠져나갔는지 빈 뜰채뿐이었어요.
"잡았다!"
판사님이 재빨리 뜰채로 송사리 떼를 퍼 올렸어요. 번번이 허탕이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몇 마리는 건졌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러나 뜰채 안에는 송사리새끼 한 마리 없었어요.
"어이구, 또 놓쳤네!"
민 판사님이 빈 뜰채를 들여다보며 울상이 되었어요.
"오빠, 신발로 잡으라니까."
개울가에서 어항을 들고 있던 할머니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어요.
"고무신이 없는데."
"그럼 운동화로 잡지."
"그럴까?"
민 판사님은 뜰채를 개울가에 내 던지고 운동화를 들고 송사리를 쫓아다녔어요. 판사님은 고기를 쫓아다니느라 옷이 다 젖는 줄도 몰랐어요.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들이 킬킬 거리며 고기 잡는 구경을 했어요.
"심심했는데 오늘 재미있는 구경 하게 생겼다."
승연이가 작은 눈을 생글거리며 말했어요.
"저 바보 판사할아버지 좀 봐. 송사리도 못 잡네."
벌써 신발을 벗고 개울로 들어가던 성질 급한 철민이가 말했어요.
"판사님은 바보가 아니고 치매에 걸린 거래."
별명이 백과사전인 명훈이가 개울바닥에다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치매가 뭔데?" 승연이가 물었어요.
"뇌가 고장 나는 병이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어린애처럼 되는 병인가 봐."
“옮기기도 하는 병이야?”
“아니야. 치매는 절대로 옮기는 게 아니래.”
“그럼 왜 멀쩡하던 판사님이 시골 와서 치매 걸린 할머니랑 사시더니 치매에 걸리셨어?”
“그러게. 치매는 절대로 옮기는 병이 아닌데 왜 판사님도 치매에 걸리셨지?”
"아무리 치매라고해도 어머니가 아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건 너무 이상하다."
“그래. 치매가 무척 나쁜 병인가 봐.”
명훈이와 승연이가 이야기 하는 동안, 철민이가 개울에 있는 커다란 돌을 들추고 가재 한 마리를 잡았어요.
“할머니, 가재 드릴까요?”
철민이가 할머니의 빈 어항에다 가재를 넣었어요.
“와아, 정말 가재네!”
할머니가 가재를 만지자 성난 가재가 그만 할머니 손가락을 꽉 물었어요.
“아야, 아야, 아야!”
할머니는 손가락에 매달린 가재를 털며 아기처럼 막 울었어요. 민 판사님이 송사리 건지던 운동화를 집어던지고 첨벙첨벙 뛰어와 할머니 손가락에 매달린 가재를 겨우 떼어냈어요.
"어유, 많이 아프겠네!"
민 판사님이 피가 맺힌 할머니 손가락을 호호 불며 달래는 동안, 아이들은 놀라서 개울둑을 넘어 바람처럼 마을로 달아나 버렸어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던 할머니가 두리번거리며 일어났어요.
"오빠!"
할머니가 판사님을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오빠 어디 있어?"
할머니가 부엌으로, 화장실로 찾아다녔지만 판사님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울먹울먹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꼬부라진 허리를 펴며 웃었어요.
"호 호 호! 오빠가 없을 때 해 봐야지."
할머니는 부엌 서랍에서 팝콘 봉지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어요.
"2분인가? 20분인가?"
한참동안 생각하던 할머니가 20분을 눌렀어요. 조금 있자 전자레인지 속에서 퐁 퐁 퐁 팝콘이 튀겨졌어요. 할머니는 커다란 플라스틱 양푼을 들고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아이들처럼 좋아했어요. 잠시 후, 퐁 퐁 퐁 소리 나던 전자레인지 속이 조용해지더니 연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아이고, 큰일 났다. 강냉이가 탄다. 강냉이가 탄다."
할머니가 어쩔 줄 모르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부엌에 연기가 찼어요. 할머니는 식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콜록콜록 기침을 하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판사님 댁에 동화책을 보러 온 아이들이 연기 나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명훈이가 재빨리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으며 소리쳤어요.
"큰일 났다. 얘들아, 빨리 할머니 모시고 나가!"
승연이와 철민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가는데, 판사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어요.
"어머니, 괜찮으세요?"
울상이 된 판사님은 할머니를 안고 여기저기 살펴보며 물었어요.
"오빠, 나 너무 무서워."
할머니가 판사님 품에 안겨 울었어요,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이제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어요."
민 판사님이 할머니 눈물을 닦아주며 달래자, 철민이가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며 판사님에게 꽥 소리 질렀어요.
"판사님은 효자라던데 왜 할머니만 두고 다니세요?"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서 잠깐 나 혼자 호호빵 사러 갔었어. 할머니가 호호빵이 잡수시고 싶다고 하셨거든."
"그래도 할머니 혼자 두고 가면 어떻게 해요?"
"잘못 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머리가 허연 민 판사님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어요.
집으로 가던 승연이가 실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어요.
"치매에 걸리면 정신이 들락날락 한다는 말이 정말 맞기는 맞나봐. 판사님이 아까는 정신이 말짱하셨지?”
“그래. 아까는 판사님이 치매에 걸리신 것 같지 않으셨어.”
아이들이 머리를 갸우뚱했어요.
겨울 방학을 시작하면서 민 판사님 댁 사랑방은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어요. 아이들이 읽을 만화책과 동화책이 많고, 과자나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가 언제나 넉넉했기 때문이었어요.
긴 겨울이 지나가고 따듯한 봄이 왔어요.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이 피고, 목련꽃과 벚꽃도 피었어요.
민 판사님이 바깥마당을 쓸고 있는데, 할머니가 소쿠리를 들고 나왔어요.
"오빠, 진달래꽃 따다 화전해먹어."
"진달래 화전?"
"저것 봐. 뒷동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잖아!"
"마당 다 쓸고 가면 안 될까?"
"싫어. 난 지금 가고 싶어. 당장 지금 가 잔 말이야."
민 판사님이 빗자루를 놓고 집에 들어가 처네를 내왔어요.
“자, 그럼 업고 가야지.”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집을 나서자, 옆집 승연네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쑤군거렸어요.
"야, 몰래 따라가 보자."
"그래. 오늘도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몸을 숨기며 판사님 뒤를 살살 따라갔어요.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뒷동산 오솔길로 들어섰을 때입니다. 할머니가 판사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어요.
"민 판사, 아버지 산소로 가."
"예? 어머니 지금 어디가자고 하셨어요?"
민 판사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어요.
"너희 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할머니가 다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정말 아버님 산소에 가자고 하셨어요? 그럼 제가 누군지 아세요?"
"누구긴 누구야. 우리 효자아들 민 판사지."
"어머니!! 어머니가 오늘은 정신이 맑아지셨네요."
민 판사님의 발걸음이 거뿐거뿐하여지고, 입에서는 ‘허허 허허’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민 판사님이 아버지 산소 앞에 처네를 깔고 할머니를 앉혔어요.
농부들이 논을 갈고 있는 들판이 저만치 내려다보였어요.
"양지바르고 앞이 탁 트여 참 좋구나!"
산소 앞에 앉은 할머니의 모습이 아기처럼 마냥 평화로워보였어요.
판사님은 할머니가 쉬는 동안 부지런히 진달래꽃을 따왔어요.
진달래꽃을 만져보던 할머니의 눈이 반짝 빛났어요.
"민 판사. 우리 꽃싸움할까?"
"예 .우리 꽃싸움해요."
민 판사님과 할머니가 빨간 진달래꽃술을 하나씩 들고 마주앉았어요.
민 판사님이 먼저 꽃술을 걸고 확 잡아당겼어요.
“어? 내께 끊어졌네요.”
"호호호, 내가 이겼다!"
할머니는 웃으시고, 민 판사님은 울상이 되었어요.
"다시해요. 이번에는 제가 이길 자신이 있어요."
이번에도 민 판사님이 먼저 꽃술을 잡아 당겼어요.
"호호호, 내가 또 이겼어!"
"어머니, 한번 만 더해요."
"민 판사, 먼저 잡아당기면 쉽게 끊어지는 거야."
"그럼 이번에는 어머니가 먼저 잡아당기세요."
"알았어."
할머니가 꽃술을 걸고 잡아당겼어요. 할머니의 꽃술이 끊어졌어요.
"어머니 이번에는 제가 이겼어요!"
민 판사님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요.
춤추는 판사님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던 할머니가 말했어요.
"민 판사, 이제 그만 집에 가."
"예, 어머니. 피곤하시죠? 얼른 집에 가서 진달래 화전 해드릴게요."
민 판사님이 할머니를 업고 진달래꽃 담은 소쿠리를 들려드렸어요.
할머니가 피곤한지 판사님 등에 살포시 기댔어요.
판사님이 산을 반쯤 내려갔을 때, 할머니가 들고 가던 소쿠리에서 진달래 꽃송이가 하나씩 둘씩 떨어졌어요.
“어머니, 소쿠리를 꼭 잡으세요. 진달래꽃이 떨어지잖아요.”
“......”
할머니는 대답이 없고 다시 진달래 꽃 몇 송이가 떨어졌어요. 민 판사님이 등에 업힌 할머니를 추슬러 올리며 말했어요.
“어머니, 졸지 말고 소쿠리를 잘 들고 가야 진달래 화전을 하지요.”
“........”
대답대신 소쿠리가 땅에 툭 떨어졌어요. 소쿠리가 솔밭사이로 도르르 굴러 가며 분홍색 진달래꽃을 뿌렸어요.
"어머니! 어머니! “
“......."
민 판사님이 아무리 불러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어요. 판사님이 어깨 너머로 할머니를 보더니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울었어요.
판사님이 울며 동산을 내려가자, 여태까지 몰래 따라다니던 아이들이 소나무 사이에서 소쿠리를 집었어요. 진달래꽃 몇 송이가 소쿠리에 남아있었어요.
"명훈아, 오늘은 뭔가 이상하지?"
승연이가 실눈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오늘은 할머니도 판사님도 정신이 말짱하셨는데 무슨 일이지?“
철민이도 부리부리한 눈을 껌벅이며 말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나 봐."
명훈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어요.
삼일 후,
할머니의 마지막 잠자리가 할아버지 산소 옆에 준비되었어요.
사람들은 치매에 걸린 민 판사님을 많이 걱정했어요.
“여덟 살 같은 판사님이 어찌 상주 노릇을 할까?”
“그래도 외아들이시니 상주 노릇을 하기는 해야겠지요.”
그러나 뜻밖에 민 판사님은 상주노릇을 썩 잘 했어요.
장례가 끝나자 민 판사님은 눈물을 닦으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세상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가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치매에 걸리지 않았었습니다. 치매에 걸려 어린애처럼 되신 어머니께서 저를 오빠로 아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왕 어머니를 모실 바에야 어머니에 맞춰 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께 사실을 말씀 드릴까도 생각했지만, 코흘리개처럼 노는 저를 보고 여러분들이 민망해 하실 것 같아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동안 어머니와 저를 늘 사랑으로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판사님의 느닷없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어요. 어떤 사람들은 판사님 효심에 감동해 눈물을 닦고, 어떤 사람들은 판사님이 노망났다고 수군거린 게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어요. 그때까지 바위 뒤에 숨어서 장례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털썩 주저앉았어요.
"야, 지금 판사님이 뭐라고 하셨니?"
"글쎄 말이야. 그럼 가짜로 노망난 것처럼 하신 거야?"
"와아, 맙소사. 큰일 났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완전히 바보 취급했잖아."
"어떻게 하냐?"
"어유, 창피해. 판사님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창피한 게 문제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
얼굴이 빨개진 아이들은 도망치듯 산을 내려왔어요.
그 다음 토요일 명훈이가 승연이와 철민이를 데리고 판사님 댁에 갔어요. 마침 판사님이 사랑방에서 동화책과 만화책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어요. 판사님은 마당에 서 있는 아이들을 보자 무척 반가워했어요. 물론 판사님은 아이들처럼 옷을 입지도 안았고 얼굴 표정이나 말도 애들 같지 않았어요.
"어서들 와라.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을 찾아갈 까 했는데 와줘서 고맙다."
아이들이 얼굴이 빨간 채 쭈뼛쭈뼛 서있자 판사님이 불렀어요.
"왜들 거기 있니? 어서 방으로 들어와."
판사님이 다정하게 말하자 아이들이 마당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어요.
"판사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왜들 이러니? 어서들 일어나."
판사님이 마당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사랑방으로 데리고 갔어요. 아이들이 다시 무릎을 꿇고 말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저희들은 판사님도 치매에 걸리신 줄 알았어요."
"괜찮다. 너희들이 우리 어머니랑 재미있게 놀아줘서 고마웠다. 내가 아무리 아이들 흉내를 내도 우리 어머니는 너희들을 더 좋아하셨어."
"잘못 했습니다."
"괜찮다니까. 오히려 너희들이 고마웠다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젠 이 만화책이랑 동화책이 필요 없어서 너희들에게 주려고 했다. 여기 있는 장난감들도 가져가라."
판사님이 아이들에게 책과 장난감을 나눠주고, 과자를 내놓았어요.
아이들은 판사님의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얼굴을 힐끔힐끔 곁눈질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눈치 챈 판사님이 "우~헤헤” 웃으며 말했어요.
"우리 누가 과자를 많이 먹나 내기할까?"
아이들도 판사님의 마음을 알고 “으~ 해해” 웃으며 맞장구를 쳤어요.
"과자 다 먹으면 또 주실 거죠?"
"그럼, 그럼. 얼마든지 줄께."
민 판사님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날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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