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을 (제 2 동화집)

2012.06.20 09:09

홍영순 조회 수:576 추천:57


                
                  아이들 마을

                                          

마을 아이들이 연못가에 모여들었어요.
아이들은 연못의 개구리 알을 보러 온 척 했지만 사실은 연못가에 있는 교장선생님 댁을 보러왔어요.
교장선생님은 그동안 서울에 사시면서 주말과 방학동안만 와 계셨어요. 그런 교장선생님이 요즘 집수리를 시작하십니다.  
"교장선생님이 왜 집수리를 하시지?"  
"정년퇴직을 하시고 앞으로 여기 와서 사신대."
"앗싸, 그럼 우리 동네가 앞으로 재미있겠다."
"야, 어른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인데 뭐가 재미있니?"
"어른들이 왜 걱정하시는데?"
"교장선생님은 학원에서 배우는 것 보다 더 좋은 과외공부는 산과 들에서 배우는 거라고 하시잖아. 그러니까 엄마아빠들이 좋아하시겠니?"
"그건 어른들의 쓸데없는 걱정이시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이야 교장선생님이 살러 오시면 신나지 뭐."
"히히히. 그건 그래. 교장선생님과 살면 좋은 일 많이 생길 거야."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떠들어댔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이 연못으로 개구리 알을 보러왔어요. 개구리 알은 아이들이 볼 적마다 눈이 더 새까매지고, 교장선생님 댁은 조금 씩 변해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 댁 대문 앞에 ‘아이들 집’이란 커다란 현판이 걸렸어요.
아이들은 궁금해서 더는 견딜 수 없었어요. 개구리 알을 보러 온척하던 아이들이 우르르 대문 앞으로 몰려갔어요.
"교장선생님!"
아이들이 소리쳐 부르자 교장선생님이 나오셨어요.
"어서들 와라."
"교장선생님, 안에 들어가 봐도 돼요?"
“그럼, 너희들 집인데 얼마든지 들어와 봐라. 그런데 그보다 먼저 여기 이 바깥마당이 어떠니? 이번에 좀 넓히고 잘 다듬었는데."
"운동장처럼 넓고 좋아요."
"앞으로 우리 여기서 탈춤도하고 사물놀이도 하자.”
"와아, 진짜 재미있겠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어요.
"여기가 사랑채인데 사랑방과 침방(침실)을 합해서 큰 방을 만들었다. 여기서 탈도 만들고 연도 만들자.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럼 제기도 만들고 팽이도 깎나요?”
“그래, 너희들이 잘 배워서 후손들에게 전해야 한다. 알았니?”
“예. 알았습니다.”
사랑채를 구경한 후, 행랑채로 들어갔어요.
“이 행랑채는 곡식과 물건들을 두던 광이었다. 이번에 광을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만들었다.”
“이 방과 부엌에는 누가 살아요?”
“행랑채에 딸린 이 방과 부엌은 어린이 집을 관리하실 분이 살게 된다.”
아이들은 점점 신이 나서 교장선생님을 따라 안채로 갔어요.
뜰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감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많았어요. 집처럼 나이가 많은 나무들은 예스럽고 아름다웠어요.
집안 곳곳에는 옛날 마루들이 아직도 반들반들 윤이 나고, 예전 생활품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어요.
“안채는 안방과 윗방, 대청마루, 건넌방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내일이면 너희들이 읽을 책들이 올 것이다. 많이 읽어라.”
“만화책이나 동화책도 있나요?”
“물론이지, 우리나라 책뿐만 아니라 외국 책들도 많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집안 구석구석을 설명해줬어요.
뒷마당에는 야트막한 토담이 있고 작은 사립문이 있었어요.
“자, 마지막으로 별채를 보러가자.”
교장선생님이 사립문을 열었어요.
별채에는 복숭아꽃, 살구꽃, 앵두꽃이 한창 피어있었어요. 그 꽃 속에 작은 기와집이 그림처럼 들어있었어요.  
“어머나! 이집은 누구네 집이에요?”
“이집은 내가 동화를 쓰며 살 집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놀러오면 동화도 읽어주고 옛날이야기도 해줄게.”
“와아, 멋있어요! 그런데 이집은 창호지문이에요?”
“그래. 예전부터 있던 창호지 문에 유리 덧문을 만들었다. 창호지 문은 공기가 잘 통하고 햇빛이 들어도 눈부시지 않아 아주 좋다. 비 오거나 추울 때는 유리덧문을 닫으면 되고.
이 집은 옛날 그대로 구들을 놓았다. 나무를 때고 아궁이에 밤도 구워먹고 고구마도 구워먹자.”
"예!"
아이들이 어찌나 큰 소리로 대답했는지 꽃들이 깜짝 놀랐어요.
“그럼 여긴 촛불을 켜나요?”
“그래. 촛불도 켜지만 램프모양의 전기 불도 있다. 램프하고 똑 같이 생겨서 분위기가 그럴싸하다.”
별채 뒤는 산인데 꽃들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었어요.  
“교장선생님! 언제부터 우리가 올 수 있어요?”
“앞으로 열흘이면 다 준비 된다. 그때 너희들이 제일 먼저 오너라.”
“예. 저희들이 제일 먼저 올게요.”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자 교장선생님이 허허허 웃으셨어요.  
‘아이들 집’이란 현판이 걸리자 마을 어른들은 여기저기 모여 쑥떡 새들이 되었어요.
"이 촌구석에 ‘아이들 집’이 뭐람? 아이들이 있어야 아이들 집이 필요하지?"
"그러게 말이야. 아이들이라야 열 명도 안 되고 죄다 노인들뿐인데."
"차라리 경로당을 만들지."
"어이구, 교장선생님이라 아이들밖에 몰라."
마을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동안 연못둘레에는 벤치가 생기고, 아름다운 음악이 들렸어요.
쑥덕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연못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할아버지들은 노송 밑 벤치에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기 시작했어요. 또 얼마 있으니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와서 놀다 갔어요.

뒷산에 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토요일, 교장선생님이 꽹과리를 치며 동네에 나타났어요.
"웬 꽹과리 소리지?"
"교장선생님이 또 무슨 일을 꾸미겠지."
어른들은 혀를 차며 밖을 내다봤지만, 아이들은 금세 꽹과리 소리를 따라갔어요. 꽹과리로 동네 아이들을 모아온 교장선생님이 색색의 큰 페인트 통을 마당에 죽 늘어놨어요.
“얘들아, 우리 오늘은 페인트 놀이 할까?”
“예!”
아이들이 페인트 통 앞으로 우르르 모여들었어요.
“그럼 이제부터 이 페인트로 ‘아이들 집’벽에 그림을 그려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덜렁이들은 벽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림에 전혀 자신이 없는 몇 몇 아이들이 주뼛주뼛 서있자 교장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어요.
“아무걱정하지 마라. 나도 동그라미 세모 네모 줄긋기 밖에 못한다. 우리 가서 신나게 놀자.”
교장선생님이 "으 허허허, 아 하하하" 웃을 적마다 희한한 그림이 생겼어요.
그림이라면 겁내던 아이들도 차차 페인트 놀이에 신났어요.    
연못가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던 마을 할아버지들이 슬금슬금 다가왔어요. 할아버지들은 슬쩍 아이들의 페인트 붓을 뺏으며 말했어요.
“야, 이 개구쟁이들아, 그리려면 제대로 그려라!”
“이왕이면 우리 마을 자랑거리가 되게 잘 그려야지. 이렇게 말이야!"
할아버지들 중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분도 있고, 아이들만큼도 못 그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모두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며 하루 동안 행복한 화가들이 되었어요.

다음날 마을회관 게시판에 커다란 벽보가 나붙었어요.

아이들 집 문 여는 날

일시: 2011년 5월 5일
아이들 집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
   1. 어린이
   2. 어린이처럼 옷을 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3. 참석한 모든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점심과 선물 증정

벽보를 보던 노인들이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눈살을 찌푸렸어요.
“이게 무슨 말이야?”
“노인들이 아이들 집에 들어가려면 아이들처럼 꾸며야 된다는 건가?”
“어떻게 늙은이들이 아이들처럼 옷을 입으라는 거야?”
  "쯔쯔쯔, 그럼 교장선생님도 애들처럼 옷을 입으시려나?"
“노인들이 아이들 집에서 뭘 해?”
“사물놀이와 풍물놀이를 한 대. 팽이도 깎고, 제기도 만들고, 연을 만들어 아이들이랑 논대.”
“그건 재미있겠네. 옛날처럼 놀 수 있으면 좋지.”
“에이, 그래도 늙은이가 아이들 옷을 입는 건 웃기잖아.”
“그래. 아무래도 애들 옷을 입어야 들어간다는 건 좀 그렇지?”
할아버지들이 끌끌 혀를 차자, 할머니들이 뒤에서 쏙닥거렸어요.
“아이고, 아이들 집에 안 들어가면 되지.”
“참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겠네. 왜 늙은이들에게 애들 옷을 입으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머리를 흔들며 돌아갔어요.

‘아이들 집’문을 여는 날입니다.
제일 먼저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어요.  
그 뒤로 애들처럼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타났어요. 모두들 수줍은 아이들처럼 얼굴이 빨갰어요. 할아버지들은 청바지에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었어요.
할머니들도 아이들처럼 옷을 입고, 머리핀을 꽂거나 방울로 머리를 묶었어요.
노인들은 부끄러워 팔로 얼굴을 가렸는데 행복한 미소는 숨기지 못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처럼 꾸민 것도 우습지만, 서로 곁눈질 하며 웃음을 참는 모습이 더 우스웠어요.
그 다음 날부터 전국에 있는 신문에는 ‘아이들 집’이 소개되었어요.
아이들 집 벽에 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들과 아이들 사진이 그 시작이었어요. 아이들과 똑 같이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랑방에서 아이들과 둘러 앉아 탈을 만드는 사진, 바깥마당에서 흥겹게 풍물놀이를 하는 사진, 제기차고 연 날리는 사진 등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한데 어울린 모습이 눈길을 끌게 했어요. 모두 아이들처럼 옷을 입고 같이 노니까 누가 아인지 노인인지 구별이 안 되었어요. 모두 개구쟁이 아이들 같고, 진짜 행복해 보였어요.
텔레비전을 본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졸랐어요.
“아빠, 아이들 집에 가보고 싶어요.”
“이번 내 생일 선물로 아이들 집에 보내줘요.”
“엄마, 방학동안 아이들 집에 가 있으면 안 돼요?”
노인들도 모이면 아이들 집 이야기였어요.
“노인들이 아이들 옷을 입고 있으니 보기 좋네!”
“아이들과 날마다 놀면 참 좋겠어.”
“그럼 우리 그 동네에 가서 같이 삽시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채마밭도 가꾸고 아이들과 놀면 안 늙을 거야.”

전국 각 지역에서 '아이들 집'을 찾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났어요.
연을 만들어 날리고, 제기를 만들어 찼어요. 그네를 뛰고, 풍물놀이를 했어요.
수리치떡과 느티나무 떡을 해먹고, 창포로 머리를 감고, 모깃불 옆에 멍석을 깔고 옛날이야기를 들었어요. 밤을 줍고, 곶감을 만들고, 눈이 오면 썰매를 타고, 토끼몰이를 하였어요.
후원 별채에선 교장선생님이 열심히 동화를 썼어요. 약속대로 아이들이 놀러 가면 동화를 읽어주고, 옛날이야기도 해줬어요.
연못에 연꽃이 가득피고 연꽃 향이 그윽할 때 시화전도 했어요.
날이 갈수록 마을에 어린아이들이 늘어나고 노인들도 늘어났어요.    
그런데 진짜 신기한 일이 생겼어요.
'아이들 집'이 문을 열고 일 년도 안 되어, 모든 마을노인들이 아이들처럼 옷을 입고, 아이들처럼 말하고, 아이들처럼 웃고, 아이들처럼 노래하고, 아이들처럼 춤추고, 아이들처럼 행복해졌어요.
더 놀라운 것은 이 마을을 찾아오는 노인들도 아이들처럼 옷을 입고 왔어요. 이 노인들도 아이들처럼 말하고, 아이들처럼 웃고, 아이들처럼 노래하고, 아이들처럼 춤추고, 아이들처럼 행복했어요.  
날이 갈수록 마을에 어린아이들이 늘어나고 노인들도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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