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을

                                                                          조옥동


세상을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영원을 바라보는 삶의 형태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멸망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것을 남기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기에 귀할 뿐 아니라 그 삶 자체가 고귀하다.

우리에겐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영원한 것을 바라고 영원한 일을 이루는 일은 보통 인생의 희망이며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종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믿음은 영원한 것인가. 많은 사람이 영원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산다. 반대로 영원이란 의미를 알면 알수록 영원한 것을 이루고저 무한한 경주를 하다 결국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닌가.


 친구가 보내준 나가이 다카시의 자전적 소설 “ 영원한 것을” 최근 읽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일생을 길지 않게 살다 간 자신의 생활 기록이다. 유럽에서는 큐리부처의 방사선 발견을 토대로 이미 방사선 연구와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일본은 1900년대 초기까지 방사선의 연구와 특히 의학에 활용단계는 미미한 상태였다.

다카시 교수는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최초로 방사선학과를 설립하고 10여년의 연구와 열정으로 독립된 학과로 만들기까지 청진기만을 이용한 환자진료에 방사선을 이용하도록 진료의학을 발전시킨 개척자이다. 후학을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하며 자신이 표본이 되었고 연구를 진행하느라 너무 많은 방사선에 노출되어 백혈병을 얻는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난 후 일본의 패전이 다가올 무렵, 전문적 의학지식을 활용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가사키에 드디어 원폭이 투하되고 눈에 보이던 도시는 모두 잿더미로 변하고,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진 방사선과 병원까지 무너진 날 학생도 동료들도 죽었거나 산 자는 도망쳤다. 그는 그 속에 홀로 남아 밀려드는 원폭사상자들을 치료하느라 자신의 몸을 생각지 않았다.

 

 하루는 목이 없는 어린 아이의 시체가 있었다. 목이 없어 통통한 손과 손가락이 가여웠고 발엔 신을 신고 있어 조금 전까지도 아장아장 걸어 다닌 모습을 떠 올리며 그는 피에 젖은 앞치마를 동그랗게 뭉친 다음 머리대신 어깨위에 놓고 붕대를 감는다. 그런 후 울타리에 핀 흰 장미 한 송이를 꺽어 가슴에 꽂는다. 후에 시체를 인수하러 온 가족이 졸도하는 일은 없으리라 기대를 하면서……


 동료와 찾아오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방사선 치료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일하다 기력이 소진하여 쓰러진다. 구호의 기본은 사랑임을 실천한 그를 나는 본 일이 없어도 계속 마음속에서 만나고 있다.

고난과 아픔은 영원한 것을 바라는 자들의 삶과 동행한다. 고난과 시련이 없는 삶은 영혼이 영원히 죽은 삶과 같다. 원래 의학의 아버지로 칭하는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자는 높은 인격과 도덕을 닦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그 당시 병의 치료를 의술보다는 점술과 미신과 같은 마술에 의존하던 시대 그는 마술과 철학에서 의학을 독립시키고 의학을 공부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의 생명은 짧으니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학문은 오래 걸리고 인생은 짧다."는 그의 말을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바꿔 말했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기에 오래 보존하기를 원한다. 예술품을 창작한 사람의 호흡은 그쳤어도 그 예술품을 남김으로 예술품이 존재하는 한 그 예술가를 기억하므로 오래 사는 것과 같다. 예술작품 나아가 어느 발명품이 오래 기억되고 호감을 얻는 데는 그것이 이루어진 과정이나 배경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그 작품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감동과 특별한 사상 또는 주의(主義)가 오래도록 인류의 정신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발밑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가까이 보면 곱게 물든 입새에도 많은 점들과 작은 상흔(傷痕)이 있다. 인생의 낙엽을 바라보는 듯하다. 지난 수 십 년간 차를 운전했는데도 어둠이 짙은 시간이면 이젠 두려움을 느낀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은 세월의 바퀴가 어찌 빨리 달리는지 점점 힘이 빠지는 다리로는 쫓아감이 어려워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멈추고 싶은 심정들을 많이 토로한다. 인생에 황혼이 젖어들면 지나온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자신을 깨우고 좀 더 보람 있는 것을 찾아 음미하고 사색하며 높은 차원의 세상을 동경한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평균수명을 연장한다 해도 어느 나이에 이르면 몸의 상태뿐만 아니고 마음과 정신까지 흐려짐을 또한 피할 수 없다.


 젊었을 때는 늘 분방하였고 판단력이 부족하여 혼돈스러웠고 너그럽지 못했다. 인생의 끝에 다다르면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풀은 마르고 꽃이 지듯 상실감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는 존재라고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정의하였다. 이 말은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보다는 인생의 참다운 목적을 일깨우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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