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소현의 시세계와 시인론,

여섯 번째 시집.「사막에서 달팽이를 만나다」를 중심으로

                 

사람냄새 널리 퍼지다

                                                      

                                                                                                   조옥동

♣ 사람 냄새를 詩로 그리는 회화적(繪畵的) 몸부림


장소현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시인은 시혼(詩魂), 시인의식을 지닌 자다. 보통사람들이 감동하지 않을 때 감동하며 찾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폭은 물론 깊이와 높이, 울림의 진폭까지 의식의 잣대로 꿰뚫어 잴 수 있는 날카로운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이 있어 사유의 골짜기에서 시인은 고뇌 한다. 현대는 시인의식을 갖지 못한 시인이 범람하고 시인의 잣대를 어찌 사용하는 줄도 모르고 시인의 대열에 서 있다. 우리가 말하는 시인의식은 배관공(配管工)이 도구를 사용하여 막힌 배수관을 뚫는 작업을 하듯 난맥상으로 뻗어 나간 우리의 실상을 표현하고 바로잡기 위해 지식과 철학이 동원되고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전통과 미래를 바라보는 예지와 뚜렷한 이상을 지녀야한다. 대체로 시인의식은 너그럽지 못하여 총체적 비판과 공격을 가할 자세를 하고 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하는 것인 줄만 알고 모방이나 똑같은 메커니즘에 흡착된 시정신과는 반대로 자연스럽게 삶의 일상에게 접근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시인의식, 그리고 함께 울고 웃고 공명하려는 시인이 있다. 시인에게 이성이 먼저인가 감성이 먼저인가는 시작(詩作)의 동기가 무의식적인가 의식적인가 또는 내포(內包)냐 외연(外延)이냐 따지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시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체험도 시화하지 못하면 성공한 시인이 아니다. 성공적 이매지네이션은 시인의 체험이나 관념을 시어의 조립과 배열로 무용가가 율동을 통한 몸부림으로 관객을 압도하듯 독자에게 전달하는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 냄새란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때가 있었다

좋은 냄새만 사람냄새라고

우기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도 짐승이라는 걸 알아버린

이젠 알겠다

아침저녁 비누로 박박 씻어내고

바르고 뿌린 냄새는

사람냄새 아니라는 걸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건

땀 냄새 눈물냄새 숨냄새

마음냄새, 넋 냄새…

그런 사람냄새라는 걸


-「사람 냄새」전문


"아, 시(詩)님 내리신다/창문 열어라 활짝// 지금 내게 필요한 건/온 몸 얼얼하도록/흥건한 시 세례,/시(詩)님 내리신다/창문 활짝 열어라./"


-「비님 내리신다」부분


"아침 일찍 일어나/안경을 닦습니다./마음 닦듯 정성껏, 기도하듯 경건하게/안경 닦으면,/무지개 같은 희망 보일지도 모르지요./내내 행복할지도 모르지요.//"- 혹시 속을지 몰라도/맑고 밝고 바르게 세상 보고 싶어,/때로는 물기 어려 흐릿하게 울렁이더라도/속지 않고 정직하게 세상 보고 싶어/안경을 닦습니다.// 바르게 본다는 것, 옳게 사는 것,/하늘의 뜻 읽는 일.//"


-「안경을 닦으며」부분


"아, 시(詩)님 내리신다", "별처럼 수줍게 초롱초롱 빛나는 행복 비슷한 부스러기들", "마음 닦듯 정성껏, 기도하듯 경건하게 안경을 닦으면" 그래서 바르게 정직하게 세상을 보는 일이 바로 하늘의 뜻을 읽는 일이라고 말하는 장소현 시인은 어린아이의 표현으로 마음을 그려 낼 만큼 시상이 맑고 순수하다.

비님, 즉 시(詩)님을 맞으려 창문을 활짝 열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만 남기고 벅벅 지우고, 세상을 바르게 보려고 안경을 닦는 시에는 회화적 몸짓으로 사유의 깊이와 본연의 의식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위를 가리키는 파란색 화살표/뭐야,/올라가라는 건가?/어떻게 올라가라는 거지?//" 그나저나/왜 빨간불에는 서고/파란불에는 가야하는 거지?//내 인생의 신호등은 지금?/조심조심 내려가라."


-「신호등」부분


"둘러보니 어지럽네, 저마다 목숨냄새/무엇이 잡초이고 어떤 것이 잡초 아닌지/내가 심지 않은 건 다 잡초?/내가 원치 않는 건 모두 잡초?/그러면 나는?//" "누군가 말했지 잡초는 없다*고// 그러니 뽑을 수 없네/그 삶을 뽑아선 안 되네// 나야말로 /아무 쓸데없는 잡초일지 모르는데/부질없이 목숨 부지하는 잡초일 텐데/구한 목숨 함부로 뽑을 수야 없지.//"(* 철학자 농부 윤구병 선생 말씀)


-「잡초를 뽑다」부분


 온전한 것, 영원한 것,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고통을 받아드리고 부딪치며 감당하는 행동으로 옮겨질 때에야 숭고하고 아름답다. 잡초하나를 뽑으며 목숨냄새를 맡는 투시력으로 이미지를 그려 놓는 시인의 사람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추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뒤풍의 “文은 人이다.”란 말은 시인은 먼저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시인은 대학에서 미술을,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는 동양미술사를 전공한 예술전통파다. 그의 삶은 혼란이 연속되는 세상에서도 오직 예술적 아름다움 곧 생성과 소멸 구원과 망각의 순환 속에서 질서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자연과 일상의 주변에서 얻은 생각과 감동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시인이다. 곧 하늘의 뜻에 맞게 바르게 보고 옳게 사는 법을 지나친 압축과 꾸밈없이 그려낸 그의 시는 고뇌하는 이들 뿐 아니라 순수한 이들을 위한 동화책속의 그림들이다.


♣ 시로 쓴 희곡, 희곡 같은 이야기 시


 장소현 시인은 만능작가라 해도 전혀 과장되지 않는다. 6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소설집과 희곡집, 미술평론집과 칼럼집을 발행하였고 희곡 40여 편을 창작하여 미주와 한국 양국 무대 위에서 공연된 극작가로도 이름이 나 있다. 미주에서 훌륭한 방송인으로 알려있고 지난 30년간 <밸리 코리언뉴스>를 매월 발행하는 언론인이다.

그의 작품에는 삶과 세상이야기를 과장 없이 그 인생철학과 실제 경험의 필터를 통하여 진실 되고 따뜻한 언어들로 조근조근 펼쳐낸다. 장시인은 작품을 어떤 형식으로 펼쳐 놓든 그의 작품 속에는 생을 관통하는 해학과 휴머니즘이 짙게 숨 쉬고 있다.


 예술작품이 아름답기 만하여 훌륭한 것은 아니다. 진솔한 표현이 우리 독자나 관객들의 피부로 휘감기고 때로는 끈적일 만큼 달라붙고, 감동이 목울대를 꿀컥 넘어가는 진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는 꿈꾼다. “ 내 시들이 강물처럼 천천히 굽이굽이 흐르기를 … 쉬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해, 가장 낮은 곳을 향해…” 그는 “내 시들이 허름해도 정직하기를…더 이상 뻔뻔스럽지 않기를… 사람냄새 울려 퍼지기를 …간절하여 마침내 사랑이기를.” 기도하는 시인이다.


 그는 끊임없이 시와 희곡, 소설, 평론, 콩트와 칼럼을 쓰므로 자신과 세상과의 화해를 도모하여 삶의 빛을 찾고 싶은 작가로 그를 손짓하는 불빛 하나 바라보며 쉼 없이 달려왔다. 작가의 영혼은 높은 곳을 향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발은 자신보다 낮은 곳을 밟고 있음을 알고 있다. 발밑이 허방이 되면 시선이 흔들리고 불안해짐을 정확하게 알기에 진지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있어도 없는 듯, 해도 사람 같은 사람, 향기로운 사람을 찾고 있다.


“하늘나라에서는 훤히 다 보이시죠/사람하나 찾아 주세요/있는 듯 없는 듯/ 향기로운 사람 하나” “사람 같은 사람 찾는다는/판에 박힌 말일랑 하지도 마시게나/~ 그런 사람/나도 찾고 있으니/혹시 만나거든 내게도 슬며시 알려 주시게나/누군가 말했지/그냥 거기 그렇게 없는 듯 있는 것이/사랑이라고,”


-「있는 듯 없는 듯」부분


 잠언에 “사람의 마음에 의논은 깊은 물과 같으나 명철한 자는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하였으니 아무리 깊이 감추어 놓았어도 없는 듯 있는 것을 찾아내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즉 명철이 있는 자라면 숨어 있는 모략이라도 찾아 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사실 진정한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명임을 시인은 알고 있다. 그는 매일 부딪치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에돌아 말하면 시인은 바로 스스로 향기로운 사람 곧 사람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며 살아왔고 주위에서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

‘목매나무 전설’, ‘허허벌판에 서서’, '고철상 장씨' 그리고 '사막에서 만난 달팽이' 등 몇 작품은 '희곡 같은 시' 로 독자에게 무대에서 공연되는 작품을 보듯 대화체로 매우 친근감을 일으킨다. 시는 이같이 독자 누구에게나 똑바로 공감을 불러내야 한다는 시인의 뜻을 알 수 있다. 언제 시인스스로 자신의 시를 각색하여 무대 위에 올린다면 또는 “덩기덩기 쿵딱” 굿거리장단에 맞춰 창으로 뽑아낸다면 이 시집을 읽는 독자수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달팽이는 온 몸으로 기어서 사막 건너/ 어디로 가는 걸까?/무거운 집 등에 지고 어디로?/어디로가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지// 날마다 이민 떠나는 달팽이는…//까마득한 옛날, 사막 생긴 뒤로/얼마나 많은 달팽이들이/사막을 건너고 건너고 또 건넜을까?/덩기덩기 쿵딱//야, 얘기가 너무 슬프구나. 그 달팽이 지금 어디 있을까?/ 사막 건너고 있겠죠, 뭐. 부지런히…/그래야지, 건너야지… 죽진 않았겠지?/ 그럼요! 죽으면 안 되죠! 어머니, 죽으면 안돼요./너도 부디 조심해라. 잔꾀 부리면 사막 건널 수 없는 법이거든…//"


-「사막에서 달팽이를 만나다」부분


 시 속에서 어머니는 "잔꾀 부리면 사막 건널 수 없는 법"이라고 사랑의 훈계를 어린 달팽이에게 내린다. 세상은 아이러니하게 육지보다 더 넓은 면적이 물로 덮여 있고 지층 밑에는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물이 고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막이란 메마른 고통의 벌판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 이 시에는 두개의 이미지가 있다. 무거운 집을 등에 지고 사막을 건너가는 달팽이에 비교한 우리의 삶, 곧 시인의 표현으론 목이 타서 물 좀 달라 외치는 소리 들리는 땅은 모두 사막이라는 하나의 이미지와 잔꾀를 부리면 사막을 건널 수 없는 법을 설파하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어머니는 사랑의 모천, 계속 솟아 물을 공급하는 샘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이미지로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갈 때에 가장 소중한 힘은 모태에서 배어나는 어미의 사랑 그런 참사랑임을 나타낸다.


♣ 현실과의 화해는 고독을 길들이기


 시인 중 가장 외로움에 싸여 홀로 집안에 자신을 가두고 시를 쓰며 스스로 고독을 숙명처럼 택했던 에밀리 디킨슨에게 사람들이 그의 고독한 삶을 동정했을 때 "외로움이 없다면 더욱 외로워지겠다."고 대답했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33년을 홀로 보내며 쓴 시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주옥같은 시 천칠백여 편 이상이 그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든 것은 무엇보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 때문이었다. 작가의 본질은 보통사람과 구별되는 초월적 상상력과 현실을 직시하고 꿰뚫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현실적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써 자신의 고독을 길들이고 화해를 이루며 미래라는 이상향의 섬을 향해 노 젓는 존재들이다.


 장소현의 시에도 “어두운 듯 밝은, 밝은 듯 어두운/허허벌판/ 같이 있던 사람들은…?/ 그런 건 없어, 동행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어. 이 기차는 당신만 태우고 달려왔으니까./-사람은 늘 혼자지. 세상 모든 건 다 혼자야. 나무도 풀도 꽃도 짐승도 새도… 다 늘 혼자야. -늘 혼자?” “불빛 하나 가물가물/오라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불빛 하나 따스하게/허허벌판에도…//”


-「허허벌판에 서서」부분


 밝음과 어둠, 빛과 그림자는 상반된 이미지를 나타내어도 서로에게 호응하며 에너지를 부여한다. 화자는 자신만이 곧 인간만이 혼자가 아니고 심지어 흔하게 살고 있는 풀도 꽃도 짐승도 새도 나무도 생명이 붙어 있는 것 모두가 혼자라고 그래서 같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항상 외로운 존재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마지막 줄에 빛을 대비시켜 의기를 고양시키려 한다. 허허벌판에 서있을 때 비치는 불빛 하나는 어둠속을 헤쳐 나갈 생기를 준다.

“가령, 우리가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흑백영화에 나온 것 같은 텅 빈 거리에 쓸쓸하게 서 있을 때, 쓰레기 조각만 바람에 날리는 황량한 거리, 그림자마저 나른한 그 거리를 비쩍 마른 개 한 마리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지나갈 때…

부르르 진저리 치며 생각한다

툭하면 외롭다고 투덜대는 건,

걸핏하면 징징대는 건

사람 할 짓이 아니다

나른한 그림자 안에 신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가령, 우리가」부분


  화자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을 물질적 풍요, 과학이나 첨단 전자공학의 발달과 종교간 또는 이념과 사상의 날카로운 대립과는 단절된 환경, 전혀 다른 풍경 속에 등장시켰다. 바람에 쓰레기 조각만 날리는 거리, 또 다른 황량한 벌판에 인간이 아닌 비쩍 마른 개 한 마리를 세워놓고 지겨워 죽을 표정으로 진저리를 치게 한다. 인간을 마른 벌판의 개 한 마리에 빗대어 외롭다고 투덜대거나 징징대지 말라 한다. 그 그림자 안에 신이 계실지도 모른다고.

인간이 인간들 속에 묻혀서도 진정 외로울 때, 고독이란 어름으로 꽁꽁 얼려있을 때가 있다. 우리는 외로움이 두렵다. 수없이 전자문자를 보내고 받지만 마침내 절대자의 존재를 생각할 만큼 호흡의 단절만큼이나 고독에 몸부림한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 아마도 절대능력자의 도움을 찾게 될 때이다.


저녁 무렵 노을 바라보다가

문득 부끄러워

그림자에 몸 숨길 때

그림자 웃으며 말 걸어 왔는데

미처 알아듣지 못 했네

곰곰이 되씹으니

“사람이란

사람에 무엇이냐? “는 말씀

그래

알아듣지 못하길

차라리 잘 했지.


-「사람이란 참 무엇이냐」전문


 시인은 하루라는 언덕을 넘고 쉼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 대신 저녁의 노을을 바라본다. 온 몸으로 스며드는 어둠을 스스로 받아드리려 자신의 그림자란 어둠에 말을 건다. 내면적 진실을 찾아 항상 삶을 반추하는 시인에게서 한 줄기 빛을 찾아가는 진정한 구도자의 믿음을 발견케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사람, 집을 등에 지고 사막을 건너는 달팽이, 비쩍 마른 개. 향기로운 사람 하나, 뜬 구름, 그리고 붙박이 식물성 인간, 이들은 하나도 통일성이나 유사한 점이 없는 단어들 같이 보이나 시인은 이들 속에서 사람다운 사람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 먼저 마음에 이룬 통일


 우리 한민족의 염원은 남북통일, 꿈에도 소원은 조국통일이다. 어찌하다 고향과 고국을 떠나 해외를 떠돌며 변두리 인생을 살아갈지라도 조국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조금도 바래지 않고 오히려 가슴속 응어리로 뭉쳐 뜨겁게 뭉클거린다. 태평양바다는 넓어도 고국의 소식과 형편은 거의 같은 시간에 해외로 전해지고 있다.

고국이 오히려 해외동포를 홀대할지언정 해외동포들의 고국사랑은 해가 지면 별이 뜨고, 달이 지면 어두워도 아침태양이 다시 떠오름 같이 변함이 없다. ‘디아스포라’원어는 ‘디아’와 ‘스포라’ 두 단어가 합성된 것으로 ‘움직이는 씨앗’이란 말이다.

우리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 디아스포라는 한국의 얼이 박힌 씨앗으로 어디에서 삶을 살더라도 조국의 얼을 펼치는 존재들이다.


“허름한 뚝배기 하나 빚고 싶어/백두산 흙/한라산 흙/합토(合土)해서/동해바다 서해 바다/합수한 물로 정성껏 반죽해/널문리 한 가녘 오래된 가마에서/지리산 나무 묘향산 나무로 불때/금강산 나뭇재 넉넉히 입혀/투박한 뚝배기 몇 개/형제들 둘러 앉아 넉넉하게/밥 담아 먹을/막걸리 넘치게 그득 담아/시원하게 마실/정겨운 뚝배기//”


-「뚝배기 하나」전문


“우리 아바지 소원이라서… 우리 아바지가 삼팔따라진데 통일 되는 날 온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개지구 삼팔선 철조망 짤라내면 얼머나 신나겠나, 얼머나 좋겠나, 덩기덩기 춤추고 노래하면서 말이다…그때 쓸라구 모으기 시작했다는구만, 삼팔선 철조망 잘라내는데 쓰자구 말이야요./”“통일이 어느 세월에 되겠냐구? 그런거야 내가 어찌 알겠나…하지만 되긴 꼭 되겠지,” “그때까지 그냥 모아야지, 뭐, 가만히 있는 거보다야 낫지 않나. 뭔가 해야지, 아이구, 허리가 그렇게 모질게 묶였으니 얼머나 아프시겠나…// 고철상 장씨네 특별 헛간엔 철사 짜르는 연장들 한 가득…나라 허리 가로막은 철조망 끊는데 쓰일 날 기다리면서, 신바람 나는 잔칫날 기다리면서…//”


-「고철상 장씨」부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음속에 먼저 통일이 와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리 통일이 현실로 이루어져도 남과 북 우리의 마음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진정한 통일을 이뤘다 할 수 없고 심각한 부작용의 소용돌이에 국력을 소모할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부모의 세대보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적다는 통계수치를 읽었다. 실제로 그들이 조국통일을 이루어 내야 할 세대들이 아닌가. 시인은 고철상 장 씨를 내세워 조국통일을 위한 준비를 부르짖는다. 시인이 은근스럽게 토해내는 통일의 염원은 우리 모두의 염원이다.


♣ 말은 생각의 몸, 글자는 말의 집, 말의 집은 시(詩)


시(詩)는 말씀(言)의 절간(寺)일까?

향내 번지는 노래

엎드려 절하는 말씀,

아니면 절간의 말씀일까?

고요히 솟아오르는 춤사위

말없이 모든 것 통하는 말씀

모르겠네, 아는 건 오로지

사람(人)의 말(言)은 곧

믿음(信)이어야 한다는 것.


-「말과 시」전문


“생각과 뜻”을 “바른 소리로” 그리고 “근본”을 “하늘 소리”로 “물 흐르듯” 말의 집을 글자로 수축(修築)하여 시집을 펴낸 시인의 삶은 맑은 새벽 아침과 같이 향기롭다.


아침이 이토록 그윽하고 향기로운 건

밤이 캄캄하고 고요하고 깊기 때문,

무겁고 진한 어둠 속에서

온 누리 맑고 차가운 이슬로 세수하고

마음 깨끗이 닦으니

새들의 노래는 아마도 찬송이겠지,

나무들 기도하고 꽃들 저마다 춤추고

향기 멀리멀리 아주 멀리 은은하게…

아침(朝)이란 글자 쪼개보면

햇님(日)과 달님(月) 다정히 마주보고

그리고 십자가 두개,

햇님 아래 위로 십자가 있는

깊은 뜻 머리 숙여 헤아리는

아침은 향기로워라.

향기 안에 담긴 그 말씀…


-「아침은 향기로워라」전문


 시인의 마음을, 생각을 거울 같이 비추는 작품이다. 작품과 시인 곧 작가를 연결하는 징검다리는 바로 시인이 선택한 시어들이다. 시인이 생각을 이미지화 하는데 어떤 시어를 선택하여 모자이크하는 지는 선택한 시어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장소현 시인은 의식을 자랑하듯 난해한 표현이나 생경스러운 시어를 쓰지 않는다. 본 시집을 상재하기 2개월 전엔 "그림은 사랑이다"와 그리고 앞서 "그림이 그립다"라는 두 권의 미술논집을 발행하였다. "그립다' "사랑이다'라는 말들은 도심의 거리에 날아다니는 비닐조각만큼 흔하게 그리고 가볍게 현대인의 입술위에 붙어 있다. 허나 장소현 시인은 그 언어들의 본뜻을 심각하게 사유하므로 잊혀져가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독자의 마음과 머리에 심어 주고 환기시킨다.


 그를 만났을 때 가까이 다가가서 얘기를 하고 싶은 시인, 장소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듯 즉 난해한 현대시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독자 누구에게나 그의 시는 공감을 일으키게 하고 그래서 독자가 시와 가까워지게 하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존경하는 시인 한 분이“좋은 시인은 현재형의 시제를 가진다.” 는 말이 기억난다. “한 때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란 그 시인의 말대로 장 시인의 새 작품을 다시 기다린다.


 현대 시인들이 발표하는 작품들이 무슨 주의(主義)다 또는 무슨 지파(支派)다 하여 각자 주장하는 시류(詩流)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맑고 깨끗한 시류(詩流)가 강같이 흘러들어 혼란과 거품으로 들끓는 사회를 정화하고 힐링하는 역학적 에너지를 발휘하기를 소원한다. 「그림은 사랑이다」와 이에 조금 앞서「그림이 그립다」는 미술논집을 출판하여 손에서 그 온기가 채 식지를 않았는데 이번 시집을 받아들고 솔직하게 그의 쉼 없는 창작열정 앞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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