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미주시문학회 5월 월례회 자료. -조옥동-

현대시조에서 언어의 참신성                      

※ 시와 구별되는 시조의 멋 억지스러움이 없는 운률, 세밀하고 따뜻한 장악력, 정감이 문자의 시와 노래의 시가 하나가 되는 경지  
    
   무진교를 건너며    

                                        -김진수-                            
너를 버려 나를 얻는, 기막힌 적막감이
수평으로 어우러진 저 여린 어깻죽지
때로는 화두처럼 어둠을 몰고 온다    
농게들 귀가하는 갈대숲이 젖어들 때
그 오랜 경계를 풀고 바람이 와 눕듯이
저 멀리 누가 부르나 등 밝히는 먼 마을
    
    옹기지붕            

                                         -김진수-

저수지가 건너 뵈는 가을 국도 건너편
새털구름 깔아주는 하늘 뜻은 다 몰라도
수백 개 항아리가 엎드려 참선중이다  
조붓하게 밀려드는 가슴을 열어보면
바람도 그 곁에 누워 기도하는 시늉이고
그곳에 꽃 이름 같은 동무들이 살고 있다
장독대 뒤에 피던 봉숭아 닮은 얼굴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가기까지
눈 감아도 암암하다 총청연색 필름이다  
물과 불을 내달려 온 발자국 시린 길을
살갑게 닿았던 자리 설핏하게 가렵다  
서로가 쓰다듬느라 불콰해진 저 놀

※ 자유시가 산문화의 수준을 넘어 최소한의 내재율마저 무시하는 본질적인 궤도를 이탈하려는 원심력 때문에 이탈 방지를 위한 구심력을 지킬 필요가 있다. 대조적으로 구심력을 견고하게 지키는 시조를 주목. 자유시가 가진 원심력과 시조가 지닌 구심력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함으로 서로 상승작용을 불러옴으로 시조의 존재는 역사적으로도 필연성과 당위성이 있다. 정형시조와 자유시는 서로 배타적 대립적 관계가 아니고 긴밀한 상보관계이다.    @시조의 기본 형식과 리듬과 호흡을 지키면서 정형의 답답한 틀을 벗어난 듯한 형식에 우주의 시학을 담아냄. <시에 대한 외도로서가 아니라 시에 대한 本道로서의 시조의 품격을 생각>
     비질소리        
          
                                    -유종인-

아파트 육층까지 비질소리 올라온다
귀뚜리가
지구 위에 두 줄 수염을 내려놓고,
뭘 쓸까
고민하다가
빈 마당에
소스라친다

※ 심도 있는 직관과 통찰력을 호흡의 가락으로, 디지털 시대의 사고를 아날로그 형식으로 표현. 꽁무니를 머리쪽에 갖다 댔다가 몸을 쭈욱 늘리는 자벌레의 움직임을 ‘길’이란 시어로 연결시킨 통찰력으로“길(路)에서 길(道)을 찾는 체화된 시학을 펴 보인다”
    
      자벌레 보폭으로      

                                   -강은미-              

움츠리면 몸이었고 쭉 펴면 길이었을
연체의 습성으로 한 생을 주무르던
곱사등 연초록 일념이 산 하나를 넘는다.
다 두고 나서는 길 하늘에 짐이 될까
절망이 늘 그렇게 희망 쪽으로 다리를 놓듯
내 삶의 가장자리엔 초록빛이 가득해!
인정 없는 세상에서도 굽힐 만큼 굽히리라
더도 아니 덜도 아니 딱 그만한 보폭으로
눈 뜨고 길 잃는 세상, 눈 감고 또 길을 낸다.  

※ ‘의자의 얼굴’은 노인이란 소재를 낡은 의자에 비유해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간 산뜻한 시상으로 시적 완성도를 높임. '쉿!’은 시조의 형식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자유시보다 더 자유롭게 시를 끌어 올리는 언어와 사물을 포착하는 감각의 산뜻함을 이룸.

   의자의 얼굴        

                                    -고은희-

땡볕이 그늘을 끌고 모퉁이 돌아 간 곳  
살다 떠난 얼룩만이 가슴 깊이 내려앉은
누군가 내다버린 꽃무늬 애기 의자에
폐기물 딱지조차 못 붙이는 몸피여!
가난을 두르고 앉아 졸고 있는 할아버지            
사는 건 먼지 수북한
그리움 또 견디는 것
                                      
무거운 세월이고 허리 펴는 외로움이    
털어도 끈끈이처럼 온몸에 달라붙어
오늘도 먼 길 돌아 헤살 떠는 한 줄기 바람
허기진 세상은 온통                  
먼저 간 할머니 손길
덤으로 묻어온 듯
말줄임표로 갇혀있다                    
그 옆에 폐타이어도
슬그머니 이웃이 된다
                                          
       쉿!                
                                  -고은희-

아득한 하늘을 날아 온 새 한 마리
감나무 놀랠까봐 사뿐하게 내려앉아
노을이 하루의 끝을 말아쥐고 번져간다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져
한 알 홍시 붉디붉게 울음을 터트릴 듯
한 쪽 눈 질끈 감고서 가지 끝에 떨리고

쉬잇!쉬 잠 못드는 바람을 잠재우며
오래 전 친구처럼 깃털 펼쳐 허공 감싼다
무너져 내리고 싶은 맨발이 울컥 따뜻하다

※ 그림의 여백과 시에서의 여백: 행갈이와 연갈이를 통한 의미화의 변화
    옛시조-:듣는 시조로 행과 연이 없는 1행시의 형태에서,      
    현대시조-:보는 시조로 변화 1,2,3,연의 3행시로 발달,
    근래에 와서 연갈이와 행갈이의 발달 내지 여백의 의미화를 이룸.

     찔레꽃가뭄          

                                 -김일연-
미순이 흰자위 빛 찔레꽃

핀다
핀다

맨드라미 벼슬 빛 뻐꾸기

운다
운다

소나기 한 줄기 맞아라
사람아
가문 사람아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안시인은 주문한다. 어느 백일장에서 “가을”이란 주제가 주어지고 작품심사를 했을 때 대부분의 글이 낙엽, 바람 추수 등 너무 일반적인 소재를 벗어나지 못함을 보고 자신이 연탄을 소재로 한 글을 써다.

@과잉소통시대 정보화 시대에 글을 쓴다는 일은 무엇인가?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면 거의 모든 글이 정보를 주고받는 글로 넘친다. 글 쓰는 일을 웬만한 사람마다 쉽게 그리고 즐기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말은 단어와 단어가 이어진 소리의 연속일 뿐이며 내면의 진정한 욕망과는 거의 닿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진실은 말에 닿을 듯하면서도 미끄러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시는 내면의 갈구를 충족시켜줄 것 같은 한마디를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시가 언어의 의미보다는 몸의 감각과 기억과 정서 같은 울림을 살리려고 애쓰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문화를 발전시킨 주역은 (곧 예술가, 음악가, 작가) 고독하게 남겨졌기 때문에 눈물을 삼켜가며 결핍과 고독을 극복해 간 <결핍에서의 아름다움>을 창작한 Outsider들이다. '홀로 됨'과 '침묵'을 즐길 줄 아는 배짱은 진짜 자기 개성을 찾는 여유를 누리게 해 주는 선물이다.

@문단에서 어른행세를 하려는 선배들이 있다. 진정한 선배는 등단의 연도나 나이가 아니고나이가 어려도 글이 더 깊으면 그가 곧 선배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까마득한 후배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겠다는 그 태도는 웬만큼 넓게 열려 있는 마음이 아니라면 갖추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리라.
“좋은 시를 남기지는 못한다 해도 시를 쓰기 위해 애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진정성만 있다면 시를 쓰는 과정의 즐거움은 결과의 실패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다. 꼭 하고 싶은 절실한 한마디의 말을 끝내 찾지 못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찾는 일의 흥분과 긴장은 삶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상쇄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시인 김기택)

@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관심 어린 관찰”이라고 했다. 그가 사진기 대신 연필을 들고 아름다운 대상을 그려보라고 추천했던 이유다. 한 가지 덧붙쳐 말하라면 좋은 이메이지나 생각이 떠오를 때 글로 즉 시인은 “시”써 보라고 하고 싶다. ‘위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모이기만 하면 서로를 ‘디카’로 찍어대고, 문자메시지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각자의 근황을 알리는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관찰하고 있는 걸까.

@시 쓰기의 관건: ‘세계의 투시자’로 시각을 벼리고 담글질 한다. 시를 짓기에 필요한 요소는 사무물의 얼개를 투시하고 그 급소를 찌르는 시선의 명징함과 예리함이다. 시 쓰기의 관건은 낯선 단어를 모아 짜깁기하는 낯설기가 아니고 성찰을 동반한 시선의 깊이에 있다.
김 시인은 또 “이만한 가락 타기와 호흡이면 시인의 길을 훌륭하게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애정어린 한마디도 덧붙였다.

또다른 강 씨의 당선시 ‘겨울삽화’는 중산간 어디쯤에서 본듯한 제주 겨울의 풍경을 시어로 붙잡았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줌/하루 한 끼로 사육되는/번영로 삼나무 숲이/아랫도릴 보인다’ ‘먼발치 오름딜이/오래 참던 눈발을 부를 때/까맣게 원심력 키우는/아, 저기 바람까마귀!’와 같은 시구들은 시어로 그림 그리듯 한다.

시인 강 씨는 언제나 걷고 있다. 자벌레가 되었을 때 느리지만 산 하나를 넘겼고, ‘길이 되기 위해 생의 날줄을 지우리라’(‘겨울삽화’)하고 생각하던 때에도 그는 번영로에서 삼나무들을 만나고 있었다.
강 씨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그렇게 막막했다. 하지만 걷는 자에게만 별도 달도 보인다는 믿음, 그 안에 내가 숨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며 “그 희망의 불씨에 큰 힘 하나 더 보태 주는 행운이 또한 내려졌다”고 말했다.

글쓰기란 “삶의 군더더기를 깎아내리는 것과 같다”는 강 씨는 “이 세계를 이루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며 좋은 벗이라는 걸, 다시 시작하는 길 앞에서 밝은 눈과 맑은 가슴으로 세계를 마주하겠다”고 말한다.
강 씨는 현재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인 ‘젊은시조문학회’ 창립멤버기도 하다.
                  







                  미주시문학회
                  Korean Poetry Society of America
       
                     문서: 미시회 제 2011-5
                     수신: 미주시문학회원 및 동호인
                     제목: 2011년 5월 월례회 공지  
 
 
 
▣ 5월 월례회 안내
    ▲ 일   시 : 2011년 5월 17일 (셋 째 화요일) 오후 6시 30분
    ▲ 장   소 : 한미교육원 630 Wilshire Place (중앙일보사 옆)
    ▲ 회   비 : $ 20 (저녁식사 포함)
    ▲ 준비물  : 자작시 30부 복사
     ▲ 강   의 : 이번 달에는 시인, 시조시인이며 수필도 쓰시는  
                 조옥동 선생님이 <현대시조에서의 언어의 참신성>
                                  라는 주제로 강의하실 예정입니다.
 
<조옥동 선생님 양력>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현대시조] [한국수필] 등단
제1회 재외동포문학상 입상, 현대시조 좋은 작품상  
수상,
경희사이버대학 및 한국평론가협회 재외문학상 수상
미주시문학회 제6대 회장
시집  [여름에 온 가을 엽서]
[내 삶의 결정을 만지고 싶다]
부부공저수필집 [부부]                                    
                  
     
 
 
        회    장 : 정국희 213-458-9858  
        사무국장 : 이  일 213-880-3027 (kenneth000kr@yahoo.co.kr)
        http://cafe.daum.net/shi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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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창작강의]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안도현 시인,교수 조만연.조옥동 2012.03.19 527
7 엘에이 시문학의 내일을 위하여/2010년 한국<시와시>겨울호 대담 조만연.조옥동 2012.03.13 570
6 그곳에, 문도文徒의 땅이 있다/박양근 교수 조만연.조옥동 2011.08.13 352
5 좋은 수필/윤재천 조만연.조옥동 2011.06.09 549
4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조만연.조옥동 2010.11.27 568
3 좋은 수필 창작론 -----박양근 (부경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 조만연.조옥동 2010.11.20 834
2 우리는 왜 문학을 하는가/박태순 소설가 조만연.조옥동 2010.11.15 517
1 시인의 꿈과 상상력(시 창작을 위한 몇개의 메모)---김완하 조옥동 2007.06.03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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