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문인 탐구>.............................................

부부가 함께 걷는 문인의 길

조만연, 조옥동 부부의 삶과 문학

     

                                                                              진행, 정리: 장소현


 같은 길을 걷는 부부는 아름답다. 문학이라는 험한 자갈길도 부부가 서로 격려하고 자극하며 함께 걸으면 즐겁고 보람찰 것이다.

미주 문단의 대표적 부부 문인 조만연, 조(김)옥동 부부를 만나 자유롭게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 고향 이야기부터, 지금 우리 문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앞으로의 계획까지…



맞닿은 이마 사이로

침묵으로 흐르는 깊은 강

주고받은 따뜻한 눈빛은

노을보다 고운 신뢰였습니다.

세월이 함께 누운 베갯머리

건너지 않아도 만나는 강

어지러운 바람의 날개를 접고 접어

맑은 물속

꿈의 조약돌을 건져 올리며

나란히 손잡고

눈물로 잠재운 미움의 의미는

사랑의 앓음이었습니다.

    

-조옥동 시 <부부> 전문


같은 길을 걸으며


사회자: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부부 문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부부 공동 에세이집 <부부>를 펴낸 것이 2008년이죠? 벌써 세월이 꽤 지나갔네요. 부부가 같은 길을 걷다보면 좋은 점도 있고, 더러는 나쁜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조만연: 저희가 함께 문인활동을 하고 있으나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크게 좋고 나쁜 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조력자가 되고 동지의식을 갖고 있지요. 활동을 함께 하니 상대적으로 자유롭고요. 반면에 아내는 상대적으로 대외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나 싶습니다.


조옥동: 이렇게 <문학세계>에서 귀한 지면을 마련하여 저희 내외와 열린 대화마당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외가 어찌하다, 장르는 좀 다르나, 문인 부부로 살다보니 간혹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좋은 점은 어떤 글에 관한 조언이 급히 필요할 때 바로 조언을 구할 수 있고, 문학 서적이나 자료를 공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문인들 또는 문학 행사에 비교적 많이 참석하는 편인데, 혼자서 집에 남아 기다리기 보다는 동등한 회원으로 문인으로 동행하여 좋고, 저는 제 자신이 운전하지 않아도 되고요.

나쁜 점은 정반대의 얘기가 되겠는데, 저만의 세계를 옹호해주기보다 반대의견이 맞설 때 전적으로 받아드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맞서기도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사회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 새로 작품을 쓸 때마다 첫 번째 독자가 부인이고, 부인이 지적한 부분은 비록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에라도 손을 본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소설가 조정래 선생도 부인이자 첫 독자인 김초혜 시인이 지적해준 부분은 반드시 고친다고 합니다만, 두 분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조만연: 저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내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으나 부탁하는 경우 제 의견을 반영합니다만, 제3자적 입장에서 엄격하게 평하지요. 하지만 그것을 따르느냐는 순전히 아내에게 달려있습니다.


조옥동: 저희도 작품을 쓰면 서로 첫 독자가 됩니다. 특히 저는 작품이 되었을 때 프린트하여 남편의 책상위에 가만히 놓아두면, 빨간 글씨가 이곳저곳에 삽입되거나 또는 ?마크가 붙어 있곤 하지요. 여하간 내 독자의 의견을 참조하는 마음으로 다시 생각합니다. 제가 미처 발견치 못한 점이나 문장 속의 오자가 지적되어 부끄러운 때도 있어요.


글쓰기의 시작


사회자: 두 분께서는 전공이 상과대학 경제과와 사대 화학과이고, 직업도 그런 쪽이라서 글쓰기와는 좀 거리가 있는데,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이 있으셨는지요?


조만연: 초등학생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나도 좋은 글, 특히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특별한 사람(예를 들어 국문과 출신)이 아니면 문인이 될 수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학생시단에 나온 아내의 시 <꽃과 천력>을 보고, 별난 사람이라고 여겨 데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직장생활에 이어 미국 이민의 과정에서 문학은 까맣게 잊혀 졌다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자 문학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났습니다. 그러고도 10년이 지난 뒤인 1997년 아내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입상하자, 아내와 함께 활동하기 위해 2년 뒤 본국 문예지를 통해 문단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조옥동: 저는 여학교 국어 선생님이 주신 한 마디를 잊지 못하고 지금껏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 숙제로 일기쓰기를 내주셨어요. 목표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매일 도서실에 머물다, 도서실을 떠날 시간이면 그날 일기를 아주 간결하게 매일 써서 개학날에 제출했어요. 한번은 국어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어떤 학생의 일기를 읽어주시는데 바로 제 것이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지요.

그때 국어 선생님 성함이 고광수(高光洙)이신데, 스스로 ‘자신은 춘원 이광수보다 높다’는 농담을 하시던 분이었죠. 선생님께서 저에게 “너는 시인이 되어라.” 하셨어요. 저는 화학과를 지망하려는데 고민을 좀 했습니다.

시나 산문을 써서 백일장에서 입상도 하고, 대학교 입학 후에는 전공과목보다 문과 시간에 청강을 많이 했습니다. 과 주임교수께서 경고를 주시는데도, 마침 김남조 선생님이 사대 국문과에서 시론 강의를 하셔서 수시로 도강을 하곤 했습니다.

3학년 때 <대학신문사> 주최 문예창작품 모집에 응모하여 시로 입상을 했습니다. 문과생도 아니면서 참 무모하리만큼 용기가 있었던 거죠. 그 후 작고하신 시인 조병화 선생님과 신석초 선생님께서 간혹 <동아일보>와 또 다른 신문의 학생시단에 제 작품을 올려주셨습니다. 그런 일이 계기가 되어 시를 쓰게 되었지요.


사회자: 이공계 전공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의사이면서 좋은 시를 쓰는 마종기 시인, 이창윤 시인 같은 이공계 작가들의 절제된 정서를 높이 평가하고, 부러울 때도 많습니다만…


조옥동: 기본적으로 문인은 시야가 넓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소현 선생님께서도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평론은 물론 희곡과 소설, 시와 칼럼 등을 쓰시지 않습니까.

저는 평생 생리학실험실에서 연구생활을 하면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 인간으론 도저히 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고, 알면 알수록 더 어려운 미궁(迷宮)을 발견합니다. 한 개의 의문이 풀리면 새로운 문제들이 보이곤 하지요. 이러한 체험에서 얻는 것이 겸허이며, 스스로 절제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자연과학이나 모든 생명과학의 연구는 사유와 정서를 주제로 하는 문학과 상호연관이 있겠지요.

세상은 빈틈투성이입니다. 아마도 시는 가장 빈틈이 많은 문장으로, 아예 보이지 않은 현상을 시인의 눈으로만 보이는 만큼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세계, 또 다른 빈틈으로 유도합니다. 사물의 표면 뒤에 숨은 상징적 의미는 쉽게 모두 표현되지 않으므로 말을 아낍니다.


사회자: 미주의 한인작가들이 거의 다 그렇습니다만, 밥벌이를 위해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글을 쓰다보면,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 느낄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만?


조만연: 요즈음 미주나 한국에서 모두 누구나 쉽게 등단이 가능하고, 문인이라는 호칭을 장식품처럼 즐기며, 글쓰기보다는 문단활동에 더 열심인 현상이 보입니다. 이런 풍조에서 좋은 작품, 훌륭한 작가는 원천적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전업 작가가 아니면 직업 유무가 작품 활동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현실적으로 글만 써서 생활을 할 수 없기도 하구요. 물론 저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문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조옥동: 어떤 글을 쓰든지 작가는 철저한 작가의식이 있어야 하지요. 대체로 훌륭한 작가는 창작에 전력투구하였고, 때로 세상일을 등지고 초월한 분도 계신데… 부족한 문인임을 자인하기에, 마음과 생각은 간절하면서도 그렇게 몰두하지 못해 부끄럽고 안타깝지요. 허나 현실에도 충실해야하는 형편이니, 문인의 길을 접을까 하는 위태로운 생각을 할 때도 가끔은 있습니다.

저의 생활 수칙은 직장과 개인생활을 엄격히 2분하고,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출근길에서부터 퇴근할 때까지는 연구실 일에 올인 하고, 퇴근 시간부터는 가정과 개인 일에 올인 합니다. 젊었을 때는 프로젝트에 연관된 서적과 아티클을 찾아 읽는 등 직장 일을 집에서도 계속했어요. 일에 욕심이 많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양쪽 모두 욕심을 많이 접었습니다.


이민생활과 문학의 어려움


사회자: 구체적인 문학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조만연 선생님께서는 수필가로 활동하시는 한편으로 10년 넘게 신문 칼럼 고정필자로도 글을 발표하고 계시는데, 수필과 칼럼은 어떻게 다르다고 보시는지요?


조만연: 문단에 나오자마자 <중앙일보>에 칼럼을 2년 썼고, 이어서 <한국일보>에 지금까지 14년째 쓰고 있습니다. 등단 초기에는 수필을 많이 썼으나 지금은 수필보다 주로 칼럼을 쓰고 있으니 명칭을 칼럼니스트로 바꿔야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수필과 칼럼의 가장 큰 차이는 대상과 범위라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쓰는 사람의 주관적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글로 문예지에 발표하고, 칼럼은 사회풍속이나 시사문제에 관한 객관적 논평으로 주로 신문, 잡지에 실립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수필은 경수필 또는 서정수필, 칼럼은 중수필 또는 에세이에 속한다고 할까요?


사회자: 조옥동 선생님께서는 시, 시조, 수필에 이어 평론가로도 등단하셨는데, 그처럼 여러 방면의 글을 쓰시게 된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특히 평론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물론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로 통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옥동: 화학을 공부하면서도 문학에의 동경과 관심이 많아 문학서적과 문예지를 읽고, 고전과 시에 관심이 많았지요. 이민생활을 시작한 중부에서 LA로 옮긴지 한참 후인 1997년 시조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의 모임에 안내를 받고 참석했다가 김호길 선생님을 만났고, 시조를 써보라고 권하셔서 시작했어요. 고전을 좋아했기에 고전시가의 율격에 좀 친숙했던 점이 시조문학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선 등단이란 생각을 못했고, 이민 후엔 문학을 아주 잊고 살았습니다. 한국인이 적은 중부에서 한국 소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요. 1970년대, 당시 마종기 선생님이 미주리 주와 가까운 오하이오 주에 계신 줄을 알았다면 어떻게든 연락을 했을 거예요. 저는 학생 때에 마종기 시인의 작품을 <현대문학>지에서 읽어서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 진학을 한 뒤에야 옛날에 시작했던 문학이 그리워져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작품 공모에 입상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니, 문단 활동은 아주 늦게 시작한 셈이지요. 기왕이면 남편도 함께 활동하기를 바라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저도 수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대로 가까이 계신 장 선생님도 어느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관심을 두고 제 작품집을 보신 것 같아요. 얼마 후 저보고 평론을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어요. 처음으로 평론을 해보라는 장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무식합니다.’고 말씀드렸지요. 저 자신을 살펴보아 도저히 자신이 없는 장르이며, 전문적인 학습과 자질도 없이 남의 글을 또한 문학작품을 이리저리 해석하고 논평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귀담아 두지 않았지요.

그 후 또 한 분이 자신의 작품집을 살펴 글로 쓰라는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미주 시조시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현대시조>에 20회에 걸쳐 시조시인들의 좋은 작품을 택하여 ‘조옥동의 시조산책’이란 작품론을 써 오고 있었기에 조금 더 공부를 해보자는 욕망으로 평론을 해보려 합니다. 평론가가 되려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기왕에 나 자신의 문학을 내가 알고 해야겠다는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창작은 하고 싶다거나, 하면 된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고, 어느 정도 풍부한 감성과 주어진 자질을 발견하고 탁마의 연금술을 필요로 합니다. 전에도 많은 시인이 평론을 하셨고, 현대 한국에서는 문예창작과 출신 많은 시인들이 평론을 겸합니다.


사회자: 작품의 소재는 주로 어디서 어떻게 구하시는지요?


조만연: 수필을 쓸 때는 글 소재를 자연히 제 주변에서 찾게 되는데, 큰일보다는 작은 일에서 찾고 있습니다. 세상사가 큰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조그마한 일로 시작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칼럼의 글감 자료는 평소 방송이나 신문에서 챙깁니다. 결론이 중요하므로 어떻게 전개시켜 마무리 지을까 여러 각도로 생각해둡니다. 필요하다 싶으면 얼개를 써놓거나 자료를 스크랩해 놓기 때문에 막상 글 쓰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옥동: 초창기엔 생활주변이나 자연에서 보고 느끼고, 오래된 기억에서 찾았어요. 이제는 인간과 글이 같이 동행합니다. 상실과 성장과 연륜이 진행할수록 아무래도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고 앎과 그리움이 많아지며, 인식과 사유의 상승, 굴곡 투영 침윤이 이뤄지고 동시에 감성과 사고도 변합니다. 황혼, 가을 잎 등 동양적 허무관을 멀리 하며, 고전적 심미성을 조금은 지나 어떤 현상을 그대로 느끼기보다 그 이전의 원인과 이후의 결과를 생각하며 소재를 찾는 편이지요.


사회자: 두 분의 글쓰기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부분이 큰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좀 해주시지요.


조만연: 제가 문단에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종교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때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아내의 반대로 마음을 접었습니다. 일반인이나 평교인이 교회에 관한 글을 쓰기란 매우 기회가 적고 반향도 크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다보니 차츰 교회와 교인 그리고 목회자의 비리나 시정사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나, 누구도 이에 대한 지적이나 개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일간지에 이를 지적하는 글을 실었더니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함께 일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후 계속 글을 발표하고 있지만 나쁜 점만이 아니고 좋은 점, 개선할 점도 쓰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목회자와 교인은 하루 빨리 회심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3류 종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조옥동: 종교를 갖지 않을 때와 가진 이후의 삶의 태도와 생활에 변화가 왔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어떤 목표를 늘 바라보고 걸어가는 상태입니다. 평화와 감사와 기쁨이, 때로는 회심과 부끄러움이 글을 쓸 때 제 문학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겠지요. 종교와 예술은 영혼의 문제이며, 혼(魂)의 문제가 정신세계와 실생활을 다스리며 그 콘텐츠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글쓰기를 통해서 특별히 보람을 느낀 일이 있으실 텐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조만연: 간혹 제 글을 읽은 분들로부터 공감한다든가 격려하는 연락을 받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보람이지요.


조옥동: 저의 직장이 생명과학연구실이어서 항상 뇌리 속엔 ?????으로 복잡하지요.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려고 계속 생각하고 관찰하고 탐색하는 일입니다. 글을 쓰는 일도 사유와 관찰과 예리한 감각이 필요하구요. 연구실에서의 관찰은 주로 실험기기와 기구를 사용하지만, 글을 쓰는 작업은 깊은 사유와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종교가 깨달음을 통하여 사람을 인간답게 겸허하게 만드는 작용과 같이 저는 계속 글을 만들기 위하여 애쓰다보니 전에는 미처 의식 못하고 인식 못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런 면에서 감사함을, 그리고 보통 생활 주변에서는 알기 어려운 좋은 분들을 사귀며 인생의 깊은 통로를 찾아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고향, 그리고 이민생활


사회자: 이른바 이민문학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고향에 대한 기억과 거기서 비롯되는 나그네 정서, 이방인이라는 자각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좀 나눠보도록 하지요.

두 분 작품에도 나옵니다만, 고향이 충청도시죠?


조옥동: 네, 저희 내외는 모두 충청도 출신입니다. 제 고향은 부여에서도 한참 깊은 시골인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등학교까지 머물고, 대전에서 여학교를 다닌 후 서울로 대학진학을 했습니다. 남편은 충남 서천인데 해방 후 서울에서 자랐고 6.25 전쟁을 겪었지요.


사회자: 문학평론가 김현자 교수는 “고향은 시적 체험의 원형적인 공간이며 자아와 세계와의 화해를 유발하는 공간… 향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된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적 의지를 나타낸다”라고 말합니다만, 어릴 적 고향의 기억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조옥동 선생님의 시 중에도 어릴 적 고향집과 동네 사람들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노래한 작품이 여러 편 있지요?


조옥동: 제 첫 시집의 많은 작품이 고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실향민의 대부분이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살지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 고향 샛터마을 부엉산엔 봄이면 진달래 흐드러지고, 냇가의 갈대와 목화밭이 휘돌아가는 냇물을 배웅하고, 물속을 첨벙거리며 마을 개구쟁이들이 다슬기 잡으며 물장구를 치고, 빨래터에선 아낙네들의 빨래방망이 소리 맑게 울렸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부엉산 골짜기로 초승달이 기울면 검은 큰 바위 얼굴들이 깊은 수심에 잠긴 듯이 보였지요. 건너 마을 성당의 종소리가 온 마을을 감싸주듯 퍼지면 울타리를 오르는 나팔꽃과 가시 돋친 탱자나무 꽃까지 환히 피어나는데, 외톨이 소녀는 벌써 외로움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향의 정서가 제가 시인이 되고 글을 쓰는데 틀림없이 모티브로 작용했습니다. 초기에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만 시인이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 할 정도였습니다.


사회자: 그런 고향이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렸지요? 마음에만 남아 있을 뿐… 조만연 선생님의 수필 <인사동에서 한국을 잃다>에도 그런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지요. “한동안 인사동 거리 한복판에서 한국을 잃어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하느라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는 문장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는 동포라면 바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지요.


조만연: 고향이 정답게 느껴지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는 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 배어있는 그리움과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 갔을 때, 고향을 갔을 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확 달라진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큽니다. 매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


조옥동: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은 이제 마음속에만 있습니다. 1980년대 10년 만에 찾은 고향은 이미 옛 모습이 아니었고 그 후에 다시 찾아간 고국은 너무 변하여 서울에서 살던 집을 찾았으나 헤매다가 오히려 이방인이 된 듯 했어요.


사회자: 그리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다가 이번에는 바다 건너 미국으로 옮겨 오셨는데, 남의 땅에 뿌리 내리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조만연: 이민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에서만 지냈는데, 미국에서 할 것이라곤 장사밖에 없어 생전 처음 손을 댔다가 실패를 당하고 보니 큰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몇 년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부작용 없이 견딜 수 있었지요.


조옥동: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달라도 기성세대에겐 역시 언어소통이 어려웠어요. 이민 짐을 다 풀기도 전에 출근한 워싱턴대학교의 의과대학 연구실은 처음 접하는 기구와 기계들로 저를 압도했습니다. 처음 인사 후엔 꼭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이냐? 묻기에 한국인이라 대답하면 코리아가 어디 있는 나라인가 물어요. 1970년대는 미국인들조차 한국을 잘 몰랐어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잔재한 보수적 도시,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언어 장벽을 넘으며 한국인의 자존심과 긍지를 지키는 일이 좀 어려웠습니다. 적응하느라 문학은 생활에서 멀고 먼 영역으로 밀려나고 말았지요.


사회자: 고향을 떠나 사는 타향살이를 ‘실향’이라고 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고향이 2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조만연: 저는 이민을 한 번도 실향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요?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았으므로 서울이 제2의 고향, 서울을 떠나 미국 땅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이민 왔으므로 제3의 고향인 셈이지요. 호적에 원적은 충남이지만 본적은 서울로 되어있습니다. 사는 곳이 고향이지요.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세인트루이스를 제2의 홈 타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옥동: 미국으로 이민 온 뒤에도 세인트루이스에 정들만하다 다시 LA로 옮겨 35년을 살아오니 이곳이 고향이 된 셈이지요. 현대인에겐 농경시대와는 달라 산업혁명이후 자본주의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의 이동을 일으켜 고향의 개념조차 희박해지는 느낌입니다.

문제는 현대의 이민자들이 조국과 이주한 땅 양쪽 아무데도 소속감이 확실치 못한 감상(感傷)이 안타깝습니다. 현재 사는 곳에서 잘 동화하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따로 있기에…


사회자: 미주 한인 작가들의 많은 작품에도 고향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만, 고향이란 어머니의 이미지처럼 원초적인 정서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단순한 망향가나 회고에 그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보이는 건 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민이라는 것이 고향을 떠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고향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조만연: 이민 초기는 말할 것 없고 지금도 시와 산문 가리지 않고 여전히 두고 온 고향산천 또는 고생했던 한국이야기 같은 넋두리 글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민자로써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는 글입니다만, 이민 역사도 반세기가 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민문학이 아닌 이곳 미국에 뿌리를 둔 미주문학을 꽃 피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조옥동: 특히 이민 작가들의 초기작품에서 그런 성향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운 정서에 빠져 글에 많이 인용합니다. 좀 작품을 쓴다는 대부분의 작가가 고향을 그릴 때면 서정성에 익숙하다 할까요. 잘못 하면 넋두리로 전락할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연륜이 있는 작가라면 서구적 지성과 닿아 제2고향에 적응하면서 정신적 고향과 개척한 고향을 잇는 승화된 정서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사회자: 저는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많아지는 날 참으로 묘한 기분에 빠져 한 동안 몽롱했었는데… 두 분께서는 어떠셨는지요?


조만연: 저희는 2016년 9월로 미주 이민 만40주년을 맞았습니다. 1976년 이민가방을 끌며 어린 세 아이들을 앞세워 하와이를 거쳐 L.A를 거쳐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내렸을 때엔, 마침 마중 나온 이도 없어 겁이 나 뒤로 돌아 고향으로 날아가고 싶었지요. 이젠 가고 싶어도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고, 고국은 변하여 오히려 이곳이 바로 머무를 곳이라고 타이르며 삽니다.


조옥동: 허나, 문 밖에 나서면 아직도 고국과 미국의 중간,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기분입니다. 이민초기엔 생활의 기틀을 마련하고 아이들 교육에 열중하느라 향수를 달랠 틈도 없었으나, 강산도 변하는 10년을 네 번이나 지나도록 삭혀내지 못한 그리움의 긴 그림자를 지울 수 없어요.


사회자: 이방인 또는 나그네 정서 역시 맥 빠진 넋두리에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건 이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절실하고 근원적인 정서인데 말입니다.


조옥동: 이민1세는 고향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속에 그리움을 앓고 있으나, 저희들의 2세나 후손은 고향도 없어요. 출생하고 자란 곳이 고향일 텐데, 이 땅이 그리 받아주지 않으니 우리 후손들은 언제나 이민자일 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들이 성인이 되고 정작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이 다시 후손대대로 이어갈 때, 우리 1세와도 다른 정서를 지니고 살아갈 그들이 받을 소외감 또는 이질감을 극복하도록 주체성을 키워줘야 합니다. 저들의 미래에, 저들의 꿈속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한국인의 긍지와 정서가 살아남아 누구에게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 깨우쳐 주는 일이 남아있어요.


사회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에 살면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요?


조만연: 세계어인 영어를 쓰는 미국에 와서도 떳떳이 한글로 글을 짓고 발표한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송매체나 신문에서 한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애쓰기는커녕 앞장서서 잘못 쓰고 훼손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분노와 걱정이 큽니다.


조옥동: 세상엔 아직 자기들의 생각이나 뜻을 글로 표현하거나 기록해 둘 문자가 없는 종족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우리글로 표현하고 기록할 때 정확하고 쉽게 서로 이해할 수 있지요. 우리의 생각을 영어나 외국어로 아무리 열심히 기록해도 그대로 전달되지 않아요.

한글이란 문자를 가진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한국문학을 할 수 있는 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문학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서로 나누어 살며 느끼는 감성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할 수 없는 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해요.


사회자: 조만연 선생님께서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한국어 보급에 앞장 서셨고, 지금도 교회 한글학교 교장으로 수고하시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런 일을 하시면서 어떤 점이 가장 아쉬운가요?


조만연: 저는 오늘날 한국이 이만큼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오로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 때문이라고 믿고 있으며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입니다. 미주에 한국어를 보급하려는 기관은 한국어진흥재단 뿐만 아니라 한국학교연합회, IKEN, 남가주한국학원(지역학교) 등 여러 단체가 많으나 한글을 배우려는 학생은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이 있고, 유관단체끼리도 협력치 않고 따로 활동하고 있어서 한국정부나 미국 교육기관에 대하여 통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제가 쓴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마종기 시인의 글 중에도 그런 안타까움을 토로한 글이 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자제분들은 우리말을 잘 하나요?


조옥동: 저희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행이 자랄 때 할머니가 계셔서 겨우 우리말로 대화는 가능하나 심도 있는 대화는 어렵고, 읽기는 해도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요. 장 선생님의 소원이 저희는 물론 다른 분들과 같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잘 가르치지 못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생각으로 주말학교나 교회학교에서 한글교사를 자청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글로 이메일을 보냅니다. 아주 작은 몸짓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나에게 당겨봅니다. 같은 감성의 파도를 타주기 바람이죠.


조만연: 요즘의 자녀들은 미주이민 초기보다 모국어를 배울 기관이나 기회가 많아 열심과 관심만 있으면 배울 수 있고, 고국의 위상이 높아지므로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구를 인식하여 일시적 한류에 좋아하지 말고, 지속적 고차원적 한류의 세계화를 위해 2세들에게 뿌리교육, 한글교육이 필요함을 부모들이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미주 한인문단의 어제와 오늘


사회자: 두 분께서는 문학단체 회장,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고, 지금도 다양한 문학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시는데, 현재 미주 한인문단의 현실에서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어떤 것인지요?


조만연: 좀 거칠게 말하자면, 유명무실한 문학단체가 너무 많습니다. 각 단체의 회원수는 점점 감소하는데 오히려 단체 수는 증가하여, 사이비 단체장만 늘어났습니다. 진정한 문학인의 모임보다는 동호인 아니면 끼리끼리의 패거리 모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현재 미주 한인사회에는 참 많은 문학단체가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고, 연륜도 제법 되었습니다만… 연륜이 깊어지면서 원숙해지는 점도 있지만, 노쇠 현상 같은 것도 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조옥동: 미주문단의 창립멤버들 그리고 선배들 여러분이 작고하셨고,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데, 신인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참여도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어요. 현제 문인들은 이민 1세들이고 1.5 또는 2세들 중 한국문학을 하는 후진들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봅니다.


사회자: 많은 문인들이 해바라기처럼 한국 문단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한국 문단에서는 교포문인이나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조만연: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상인데… 한국문단에서는 미주 문단에 별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처음엔 좀 관심을 갖고 작품을 살펴보고, 되도록 교포문학작품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현재 실정은 한국의 정평 있는 문예지에서 작품을 의뢰받는 이곳 문인들은 모든 장르를 합쳐 극히 소수입니다.

한국의 문단 환경도 많이 변해서 각 문예지마다 회원제로 되다시피 하여, 자체 문예지 출신 작가들의 작품으로 책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 미주 문인들에게 할애할 지면이 없는 셈이지요.

또 한 가지 심층적 문제는 이곳 문인들 작품 수준이 너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낮게 평가받고 있어요. 이점은 우리가 반성하고 변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작품 몇 개 쓰고 어떻게든지 빨리 등단을 희망하는 신인의 욕심도 문제이고,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한국에선 유명무실한,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문예지에 등단을 의뢰해주는 분이 있고… 등단이란 문을 통과하면 기성작가로 자처하고, 창작보다 문단 활동만 하려는 문인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손해 보는 편입니다.

어떤 소수의 작가는 작품집을 내면 무슨 상이라도 받을 목적으로 이리저리 손을 펴고, 심지어 해마다 작품집을 내는 슈퍼문인(?)이 있는데 그리 작품을 양산할 때 그 작품들이 얼마나 좋은 작품들인가 생각할 문젭니다.


사회자: 미주 문단이 내실을 기하고 튼튼해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있는지요?


조옥동: 해외작가는 특수한 환경에서 얻는 체험과 정서와 생각을 살려 본국의 작가와 구별되는 작품을 써야 합니다.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 문학에 나타나야 됩니다. 즉 몸과 피와 살과 행위로부터 마음 속 떨림까지 온 몸으로 쓰는 작품이어야 합니다.


조만연: 문단의 노화를 막기 위해서 젋은 세대의 발굴이 필요하고,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각 문인협회는 각 단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연합하여 미주문단 화합과 협력을 도모하며, 회장이나 임원은 무슨 명예의 자리로 생각지 말고, 끼리끼리 소수의 의견보다 오픈되어야 하고, 나아가 봉사와 헌신의 마음을 바랍니다.


사회자: 새로 오는 이민이 늘지 않고 미주 한인사회의 성장이 멈추면, 한글문학도 결국은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염려가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조만연: 한국인의 이민자 수가 줄어들면서 한국문학의 쇠퇴는 불가피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이 우수하고 자랑할 만한 글자와 역사를 가졌지만 외국인이 한국학이나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필요성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어를 배우는 자녀들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현상입니다. 한국 태생 아이들이 한국어와 역사 그리고 풍습을 모른다고 해서 한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정체성을 가진다면 크게 문제시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옥동: 유대인의 자녀교육 방법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이민자들은 계속 늘지 않아도 그들의 민족과 유대주의는 존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이민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한국의 얼과 모국어를 비롯하여 훌륭한 전통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겠지요. 현실적으로 한국학이나 한국문학이 뿌리를 내리려면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지도록 본국의 적극적 지원도 필요하구요.


꿈, 그리고 내일


사회자: 젊었을 때와 비교해 나이가 든 지금, 문학을 대하는 자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요?


조만연/조옥동: 철들지 않았을 때가 좋았어요, 문학이, 시가 무엇이다 말하고 정의내리기 전에는 그때그때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었습니다. 물이 흐르듯 석양이 내리듯 때로는 쓰지 않으면 잃을 것 같은 감정의 분출을 마치 화가가 순간적인 영감을 종이 위에 그리지 않으면 영 사라질 걱정 같은 생각으로 페이소스를 글로 적었습니다.

지금은 제 자신을 알고 제 문학의 틀과 빛깔을 알기에 조금은 깨우쳐서 돌아보고 고치고 기다리며 발효시켜 숙성시키기를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기에 진지하고 순수하게 문학의 한 모퉁이를 개간하고 싶습니다. 열정적인 감정의 분출보다는 생각, 감성과 사유의 깊은 골을 만들어 무엇인가 안고 다독이며 사랑하고 울고 싶습니다.


사회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작품집을 낼 때가 되신 것 같은데, 출판 계획은 없으신지요?


조만연: 제2 수필집을 아내와 공동으로 지난 2008년 출간했지만, 남이 읽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책을 수십 권 내어본들 자기만족과 공해일 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동안 2권 분량의 글을 써 놓기는 했지만, 제 자신 만족하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출판할 계획은 없습니다. 하지만 뜻이 맞는 문인이 있으면 여럿이 공동 수필집 한, 두 권은 내고 싶습니다.


조옥동: 제2 시집과 저희 부부 공저인 부부수필집을 낸지 10년이 다가오고 있어요. 분량은 다음 작품집을 낼만큼 준비되었어도 망설입니다. 누가 작품을 읽어 줄까요? 사실 작년부터 출판을 미루어 왔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 애처롭게 끼어 있을 모습을 생각합니다.


사회자: 글공부는 어떤 식으로 하고 계신지요?


조만연: 부끄러운 고백인데, 글공부에 무척 게으른 편입니다. 욕심은 아직 살아서 이런저런 문학서적과 문예지를 많이 구독하지만 읽고 쓰는 데는 늦장을 피웁니다. 하지만 어떤 소재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옥동: 시가, 문학이 저를 아프게도 기쁘게도 합니다. 왜? 하며 그 실체를 보여주기를 희망해서, 아니 제가 찾아내기 위해 작가들을 만나려고 그들의 글을 읽고, 특히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문예지 몇 개를 구독하여 새로운 작품이나 주목받는 작가들의 특징을 통하여 새로운 경향과 풍조를 알고자 합니다.

계속 쓰고 지우며 다듬고 좌우전후로 살펴보는 것이 저의 글공부입니다. 아주 막힐 땐 하늘로 날려 자유롭게 놓아주고 제 사유의 필터에 다시 잡힌 언어만을 고릅니다. 매우 생각이 멈출 때면 고전과 같은 명작이나 성경을 펴들기도 합니다.


사회자: 어떤 문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조만연: 희망사항입니다만, ‘바른 길을 고집한 문인, 그래도 괜찮았던 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불감청 고소원이겠습니다.


조옥동: 어떤 문인으로 보다 어떤 사람, 어떤 이웃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다 제 글의 한 줄을 기억해 줄 만한 작품을 써 남겨놓고 싶음도 솔직한 심정이나, 지금의 인공지능이 더 나아가 마이크로칩기능과 함께 진화하면 인공지능문학과 인공지능문학사전이 만들어 질 미래에 어떤 문학을 하고 어떤 문인이 되어야 할까 상상에 빠지게 합니다.


사회자: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라시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조만연/조옥동: 장 선생님께도 기쁜 일들이 늘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긴 시간 저희 얘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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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연


충남 서천 출생. 서울대 상대 경제과, 고대 경영대학원. New Covenant 신학대학원 졸업.

<순수문학> 수필 신인상. 제1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입상. 제11회 순수문학상 수필 본상.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과 이사장 역임.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역임.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제8회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

<문학세계> 편집인 역임.

에세이집 <새똥>, 부부 공동 수필집 <부부>


조(김)옥동


충남 부여 출생. 서울대 사대 화학과 졸업. 미주리 주 워싱턴대학교 수학.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상,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입상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현대시조> <한국수필> 등단.

제1회 재외동포문학상, <현대시조>작품상, 경희 및 한국평론가협회 해외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미주한국문인협회, 재미시인협회, 재미수필가협회 회원

시집 <여름에 온 가을 엽서> <내 삶의 절정을 만지고 싶다>

부부 공동 수필집 <부부>

현재 UCLA 의과대학 생리학 연구실 리서치 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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