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keley literature class #5
2012.05.12 03:56
제7강 시의 운율과 창작의 원리
김완하(시인, 한남대 교수)
1. 시와 운율
동양 최초의 시집『詩經』의 시는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 수록
하고 있다. 風이란 민간 생활의 풍속이나 세태를 읊은 민간의 노래이다.
雅는 사대부들이 주로 지었으며 원래 바른 음악 즉 궁중의 정악正樂으로
정치에 관한 것이고, 頌은 선왕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말하며, 제사
때에 연주되는 제가祭歌이다.1) 이상의 사실에서도 시와 노래의 밀접한 연
관성을 살필 수 있다.
또한 시는“원초적 생명이 깃든 사물의 참된 모습”(조지훈)이라고 하였
다. 이렇게 볼 때 시의 출발점을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박동 및 율동, 리듬
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빅토르 위고도 가장 위대한 시를“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터뜨리는 최초의 울음소리”라고 하여 시를 생명의
바탕인 심장의 울림, 박동에 두었다. 그러므로 생명이 살아있는가 확인할
때 그 사람의 심장에 귀를 대보듯이, 한편의 시가 살아있는가를 확인해
볼 때는 시에 귀를 대보면 될 것이다. 이때 그 시에서 울리는 박동은 곧
운율인 것이다.
시는 운율과 리듬의 산물이다. 잘 된 시는 그 시의 운율이 있다. 좋은
시인들은 다 그만의 운율을 구사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와 한용운의 시,
김영랑의 시가 그러하고, 최근에 등장하는 시인들 가운데 좋은 시를 쓰는
신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이 많은 시인들의 시가 살아있는
운율 속에서 우리에게 정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운율이 현대시
의 변화2) 속에서 점차 변질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해체하고 의
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경향도 눈에 띈다. 운문
정신, 시정신이라 할 때의 바로 그 아이덴티티 가운데는 바로 운율이 깊
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시의 운율은 시인과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미적 장치이다. 그
런데,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
이다. 이러한 까닭이 독자로부터 시가 멀어져가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고 생각한다. 누구의 시가‘잘 읽힌다’는 것은 바로 그의 시에‘운율이 살
아있다’는 말로도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율을 잃어
버리면 시의 반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시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이
기도 하다.
2. 운율과 시창작의 원리 - 만해의 예
오늘날 독자들이 현대시에 대해 갖는 불편함은 장황한 설명식 문체, 알
수 없는 넋두리, 과도한 해체와 실험성에서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만해
의 시는, 현대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시에 내재하는 의
식세계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 창작방법은 독자가 그의 시를 무리
없이 읽어 내려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해의 시가 절대로 쉽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물 흐르
듯이 읽히면서도, 그 안의 의식세계를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해 준다.
다양한 비유와 형상화 방법으로 서서히 독자들을 이끌어가면서, 마침내
그의 사상적 깊이에까지 이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3) 이러한 바탕에는
그의 시에 지배적으로 깔려있는 운율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는 점차로 운율과 리듬을 잃어가고 있다. 난해한 표현과 산문 투
로 이어지는 현상이, 독자들과 멀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독자들과 시를 다시 가깝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운율의 중요
성과 시 낭송의 중요성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만해의 시는 시 낭송에 대
단히 적합하다. 그것은 그의 시가 운율과 리듬의 속성을 충실한 바탕으로
하여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시는 노래다’라는 사실을 만해는 누구보다
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면에서 시적 발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시적으로 구상해 나가는 데에 무엇보다도 운율의 원리에 입각해
서 시를 전개시켜 갔던 것이다. 이점은『님의 침묵』이「군말」로 출발해서
「독자에게」로 마감되고 있는 점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한 결과이고 운율을 통해서 독자와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시 창작방법에서 산문적 형태의 시와 리듬 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만해 시는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해는 시가 읽히기도 하는
것이지만 노래되는 것이라는 점을 깊게 인식하여, 시의 대중화에도 큰 관
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시인들은 만해 시를 낭송
해 보고, 그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언어의 힘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또
한 그의 시적 리듬감을 자세히 파악하여, 스스로의 시 창작에 원용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의 감상은 낭송하고 느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의
최고의 감상의 상태가 바로 낭송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시를 쓸
때의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낭송이 잘
되는 시가 바로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해의 시를 낭송하다 보
면, 그의 시 안으로 점차 한 발자국씩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발
자국씩 다가서다 보면, 그의 시 창작방법이 자연스레 전이되어 올 것이
다. 그러한 운율에 바탕을 두고 있는 스며듦과 파급효과, 그것이 바로 만
해 시 창작방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시를 퇴고하며 정리할 때 그 기초적 호흡은 운율의 바탕에 의한다. 다
른 사람에게 일정한 거리에서 낭송토록 하고 시를 퇴고하면 한결 그 운율
과 리듬감을 살릴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거의 완성이 되면 들길을 걸으
며 그것을 암송하면서 퇴고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시의 운율이 살아나게
되었다.
3. 운율의 실제
시에서 모든 소리의 요소는 운율로 종합되어 의미로 전이된다. 가령 아
이들의 놀이에서 불려지는 모든 노래들은 그러하다. “리 리 리자로 끝나
는 말은 / 개나리 미나리 너구리 울타리 유리 항아리”에서 볼 수 있듯이,
‘리’자의 거듭된 반복이 운율을 형성하고 이 노래의 리듬감을 통해서 한
결 밝고 활달한 심상을 환기시켜줌으로써 함께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
을 묶어준다. 그만큼 운율은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미적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시창작에서 소리의 모든 자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고려되고 활
용되어야 한다.
좋은 시들은 모두가 운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서는 운율의 원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한 예를 찾아 몇 편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래의 시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운율을 따라서 낭송
해가다 보면 어느 사이에 우리 가슴에 깊이 와 젖는 것이다.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 남들은
명문세가를 쫓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
을 때 /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 사람들은 땅
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 그래서 한평
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
이다 - 임보,「 바보 이력서」전문
꿈들을 깨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내 무슨 욕망의 그물에 사로잡혀
그처럼 고된 꿈들을 엮었단 말인가. 요정들의 나라는 너무 어지럽다. 성인들
의 나라는 너무 무료하다. 도적들의 나라는 너무 무섭다. 그래도 내 체질에 가
장 지낼 만한 곳은 적당히 괴롭고 무던히 짭짤한 이승의 삶인가 보다. 오늘밤
엔 또 어느 나라에 붙들려 가 곤욕을 치르게 될는지 모를 일이로되, 만약 신
[夢神]이 있어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내 이르리라. 내 열서너 살 적 그 산과 들
판으로 되돌려 보내 달라고-. - 임보,「 몽화夢禍」부분
글씨를 모르는 대낮이 마당까지 기어나온 칡덩굴과 칡순들과 한 그루 木百
日紅의 붉은 꽃잎들과 그들의 혀들과 맨살로 몸 부비고 있다가 글씨를 아는 내
가 모자까지 쓰고 거기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한 줄근 소나기로 몸을 가리고
여름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매우 빨랐으나 뺑소니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상
스러웠다 그런 말엔 寂滅寶宮이 없었다 들킨 건 나였다 이르지 못했다 未遂에
그쳤다 - 정진규,「 未遂-알詩·6」전문
텃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기로 했다 / 텃밭에 나가 땀 흘려 수고하는 대신 /
낮잠이나 자 두기로 하고 / 흰 구름이나 보고 새소리나 듣기로 했다 // 내가 텃
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 / 이런 저런 풀들이 찾아와 살았다 / 작시풀, 쇠비름,
참비름, 강아지풀, / 더러는 채송화 꽃 두어 송이 / 잡풀들 사이에 끼어 얼굴을
내밀었다 / 흥, 꽃들이 오히려 잡풀들 사이에 끼어 / 잡풀 행세를 하려드는군
// 어느 날 보니 텃밭에 / 통통통 뛰어노는 놈들이 있었다 / 메뚜기였다 연초
록 빛 / 방아깨비, 콩메뚜기, 풀무치 어린 새끼들도 보였다 / 하, 이 녀석들은
어디서부터 찾아온 진객珍客들일까 // 내가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 / 하늘의
식솔들이 내려와 / 내 대신 이들을 돌보아 주신 모양이다 / 해와 달과 별들이
번갈이 이들을 받들어 / 가꾸어 주신 모양이다 // 아예 나는 텃밭을 하늘의 /
식솔들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 그 대신 가끔 가야금이든 / 바이올린이든 함께
듣기로 했다. - 나태주,「 게으름 연습」전문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 빈손이다 // 하루를 만지작만지작 하였다 //
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 // 빈손이로다 //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 보았
다 // 무른 나는 금강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
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 어
디로 갔을까 // 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 //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 문태준,「 그맘때에는」전문
껍데기는 가라. /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東學年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
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中立
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漢拏
에서 白頭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전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네가 본 건, 먹구름 / 그걸 하늘로 알고 / 一生을 살아갔다. //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 쇠 항아리,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 // 닦아
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 아침 저녁 /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 티 없이 맑은 永遠의 하늘 / 볼 수 있는
사람은 / 畏敬을 / 알리라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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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시인
1987년『문학사상』신인상 당선. 시집으로『길은 마을에 닿는다』『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네가 밟고 가는 바다』『허공이 키우는 나무』등이 있음.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현재,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 전문 계간
지『시와정신』편집인 겸 주간. kimwan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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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에서도 발라드 댄스에서 원시 종합예술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2) 현대시는‘노래하는 시 -> 읽는 시 -> 보는 시’로의 변화를 겪고 있다.
3) 김완하, 『창작방법론을 통해서 본 만해 시의 이해』『문학사상』, 2005.10.
김완하(시인, 한남대 교수)
1. 시와 운율
동양 최초의 시집『詩經』의 시는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 수록
하고 있다. 風이란 민간 생활의 풍속이나 세태를 읊은 민간의 노래이다.
雅는 사대부들이 주로 지었으며 원래 바른 음악 즉 궁중의 정악正樂으로
정치에 관한 것이고, 頌은 선왕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말하며, 제사
때에 연주되는 제가祭歌이다.1) 이상의 사실에서도 시와 노래의 밀접한 연
관성을 살필 수 있다.
또한 시는“원초적 생명이 깃든 사물의 참된 모습”(조지훈)이라고 하였
다. 이렇게 볼 때 시의 출발점을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박동 및 율동, 리듬
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빅토르 위고도 가장 위대한 시를“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터뜨리는 최초의 울음소리”라고 하여 시를 생명의
바탕인 심장의 울림, 박동에 두었다. 그러므로 생명이 살아있는가 확인할
때 그 사람의 심장에 귀를 대보듯이, 한편의 시가 살아있는가를 확인해
볼 때는 시에 귀를 대보면 될 것이다. 이때 그 시에서 울리는 박동은 곧
운율인 것이다.
시는 운율과 리듬의 산물이다. 잘 된 시는 그 시의 운율이 있다. 좋은
시인들은 다 그만의 운율을 구사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와 한용운의 시,
김영랑의 시가 그러하고, 최근에 등장하는 시인들 가운데 좋은 시를 쓰는
신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이 많은 시인들의 시가 살아있는
운율 속에서 우리에게 정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운율이 현대시
의 변화2) 속에서 점차 변질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해체하고 의
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경향도 눈에 띈다. 운문
정신, 시정신이라 할 때의 바로 그 아이덴티티 가운데는 바로 운율이 깊
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시의 운율은 시인과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미적 장치이다. 그
런데,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
이다. 이러한 까닭이 독자로부터 시가 멀어져가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고 생각한다. 누구의 시가‘잘 읽힌다’는 것은 바로 그의 시에‘운율이 살
아있다’는 말로도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율을 잃어
버리면 시의 반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시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이
기도 하다.
2. 운율과 시창작의 원리 - 만해의 예
오늘날 독자들이 현대시에 대해 갖는 불편함은 장황한 설명식 문체, 알
수 없는 넋두리, 과도한 해체와 실험성에서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만해
의 시는, 현대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시에 내재하는 의
식세계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 창작방법은 독자가 그의 시를 무리
없이 읽어 내려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해의 시가 절대로 쉽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물 흐르
듯이 읽히면서도, 그 안의 의식세계를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해 준다.
다양한 비유와 형상화 방법으로 서서히 독자들을 이끌어가면서, 마침내
그의 사상적 깊이에까지 이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3) 이러한 바탕에는
그의 시에 지배적으로 깔려있는 운율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는 점차로 운율과 리듬을 잃어가고 있다. 난해한 표현과 산문 투
로 이어지는 현상이, 독자들과 멀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독자들과 시를 다시 가깝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운율의 중요
성과 시 낭송의 중요성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만해의 시는 시 낭송에 대
단히 적합하다. 그것은 그의 시가 운율과 리듬의 속성을 충실한 바탕으로
하여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시는 노래다’라는 사실을 만해는 누구보다
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면에서 시적 발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시적으로 구상해 나가는 데에 무엇보다도 운율의 원리에 입각해
서 시를 전개시켜 갔던 것이다. 이점은『님의 침묵』이「군말」로 출발해서
「독자에게」로 마감되고 있는 점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한 결과이고 운율을 통해서 독자와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시 창작방법에서 산문적 형태의 시와 리듬 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만해 시는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해는 시가 읽히기도 하는
것이지만 노래되는 것이라는 점을 깊게 인식하여, 시의 대중화에도 큰 관
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시인들은 만해 시를 낭송
해 보고, 그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언어의 힘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또
한 그의 시적 리듬감을 자세히 파악하여, 스스로의 시 창작에 원용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의 감상은 낭송하고 느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의
최고의 감상의 상태가 바로 낭송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시를 쓸
때의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낭송이 잘
되는 시가 바로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해의 시를 낭송하다 보
면, 그의 시 안으로 점차 한 발자국씩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발
자국씩 다가서다 보면, 그의 시 창작방법이 자연스레 전이되어 올 것이
다. 그러한 운율에 바탕을 두고 있는 스며듦과 파급효과, 그것이 바로 만
해 시 창작방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시를 퇴고하며 정리할 때 그 기초적 호흡은 운율의 바탕에 의한다. 다
른 사람에게 일정한 거리에서 낭송토록 하고 시를 퇴고하면 한결 그 운율
과 리듬감을 살릴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거의 완성이 되면 들길을 걸으
며 그것을 암송하면서 퇴고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시의 운율이 살아나게
되었다.
3. 운율의 실제
시에서 모든 소리의 요소는 운율로 종합되어 의미로 전이된다. 가령 아
이들의 놀이에서 불려지는 모든 노래들은 그러하다. “리 리 리자로 끝나
는 말은 / 개나리 미나리 너구리 울타리 유리 항아리”에서 볼 수 있듯이,
‘리’자의 거듭된 반복이 운율을 형성하고 이 노래의 리듬감을 통해서 한
결 밝고 활달한 심상을 환기시켜줌으로써 함께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
을 묶어준다. 그만큼 운율은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미적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시창작에서 소리의 모든 자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고려되고 활
용되어야 한다.
좋은 시들은 모두가 운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서는 운율의 원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한 예를 찾아 몇 편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래의 시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운율을 따라서 낭송
해가다 보면 어느 사이에 우리 가슴에 깊이 와 젖는 것이다.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 남들은
명문세가를 쫓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
을 때 /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 사람들은 땅
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 그래서 한평
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
이다 - 임보,「 바보 이력서」전문
꿈들을 깨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내 무슨 욕망의 그물에 사로잡혀
그처럼 고된 꿈들을 엮었단 말인가. 요정들의 나라는 너무 어지럽다. 성인들
의 나라는 너무 무료하다. 도적들의 나라는 너무 무섭다. 그래도 내 체질에 가
장 지낼 만한 곳은 적당히 괴롭고 무던히 짭짤한 이승의 삶인가 보다. 오늘밤
엔 또 어느 나라에 붙들려 가 곤욕을 치르게 될는지 모를 일이로되, 만약 신
[夢神]이 있어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내 이르리라. 내 열서너 살 적 그 산과 들
판으로 되돌려 보내 달라고-. - 임보,「 몽화夢禍」부분
글씨를 모르는 대낮이 마당까지 기어나온 칡덩굴과 칡순들과 한 그루 木百
日紅의 붉은 꽃잎들과 그들의 혀들과 맨살로 몸 부비고 있다가 글씨를 아는 내
가 모자까지 쓰고 거기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한 줄근 소나기로 몸을 가리고
여름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매우 빨랐으나 뺑소니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상
스러웠다 그런 말엔 寂滅寶宮이 없었다 들킨 건 나였다 이르지 못했다 未遂에
그쳤다 - 정진규,「 未遂-알詩·6」전문
텃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기로 했다 / 텃밭에 나가 땀 흘려 수고하는 대신 /
낮잠이나 자 두기로 하고 / 흰 구름이나 보고 새소리나 듣기로 했다 // 내가 텃
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 / 이런 저런 풀들이 찾아와 살았다 / 작시풀, 쇠비름,
참비름, 강아지풀, / 더러는 채송화 꽃 두어 송이 / 잡풀들 사이에 끼어 얼굴을
내밀었다 / 흥, 꽃들이 오히려 잡풀들 사이에 끼어 / 잡풀 행세를 하려드는군
// 어느 날 보니 텃밭에 / 통통통 뛰어노는 놈들이 있었다 / 메뚜기였다 연초
록 빛 / 방아깨비, 콩메뚜기, 풀무치 어린 새끼들도 보였다 / 하, 이 녀석들은
어디서부터 찾아온 진객珍客들일까 // 내가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 / 하늘의
식솔들이 내려와 / 내 대신 이들을 돌보아 주신 모양이다 / 해와 달과 별들이
번갈이 이들을 받들어 / 가꾸어 주신 모양이다 // 아예 나는 텃밭을 하늘의 /
식솔들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 그 대신 가끔 가야금이든 / 바이올린이든 함께
듣기로 했다. - 나태주,「 게으름 연습」전문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 빈손이다 // 하루를 만지작만지작 하였다 //
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 // 빈손이로다 //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 보았
다 // 무른 나는 금강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
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 어
디로 갔을까 // 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 //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 문태준,「 그맘때에는」전문
껍데기는 가라. /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東學年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
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中立
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漢拏
에서 白頭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전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네가 본 건, 먹구름 / 그걸 하늘로 알고 / 一生을 살아갔다. //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 쇠 항아리,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 // 닦아
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 아침 저녁 /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 티 없이 맑은 永遠의 하늘 / 볼 수 있는
사람은 / 畏敬을 / 알리라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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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시인
1987년『문학사상』신인상 당선. 시집으로『길은 마을에 닿는다』『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네가 밟고 가는 바다』『허공이 키우는 나무』등이 있음.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현재,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 전문 계간
지『시와정신』편집인 겸 주간. kimwan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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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에서도 발라드 댄스에서 원시 종합예술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2) 현대시는‘노래하는 시 -> 읽는 시 -> 보는 시’로의 변화를 겪고 있다.
3) 김완하, 『창작방법론을 통해서 본 만해 시의 이해』『문학사상』,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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