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두 도시이야기 - 1

2017.09.17 16:43

김영교 조회 수:25

 

  동경 데이코쿠 호텔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두 도시 이야기
 

최근 '백제와 한일관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있었고 스피치를 하게 되어 동경엘 갔다. 어느 곳을 가든 나는 호텔 이름에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경만은 데이코쿠帝國 호텔 Imperal Hotel이어야 한다.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 때문이다

데이코쿠 호텔은 일본 황궁 바로 앞에 있어 궁이 내려다 보이고 수 많은 나라의 왕과 국가 원수가 머물며 일본의 하나 뿐인 공주가 결혼식을 했을 정도로 긴 역사와 전통이 있다. 프랑스의 요리를 본고장에서 배워 와 연구해 온 역사가 120년이 넘고 룸이 천개를 넘으며 그 뒷문으로 나오면 화려한 긴자가 시작이 된다

비자받기 어렵던 시절, 한일 청소년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동경을 처음 갔고 대한민국의 '발명의 날'을 제정하시고 특허, 상표, 지적재산권의 선구자요 개척자인 아버지는 그때 일본에 특강을 하러 자주 가셨다. 아버지가 서울 집과 동경 강연을 왕복하는 동안 내가 그 호텔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혼자 남게 된 나는 문명의 새로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서양 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그들은 문화와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역사가 길다.
그 호텔 한쪽 벽면 전체의 벽화 설치가 아름다운 로비에서 인상적인 만남들이 있었다. 공산주의라면 벌벌 떨던 시절, 김일성 뱃지를 단 북에서 온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말을 걸어와 무척 놀랐으며 로비에서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한 아버지와의 정감있는 대화는 물론, 구석구석 참으로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몇 번 나를 거기에 남겨두고 서울로 떠나셨던 아버지는 얼마 후 나를 아주 이 땅에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이 노래진 순간이 그렇게 가슴에 있다

여러 국제 회의와 세계 음악회에 함께 한 기억이 있지만 특히 동경의 데이코쿠 호텔 정문에 들어서면 화안한 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듣기 좋은 음성으로 해주신 모든 말이 유언되어 내 귀에 울려 온다. 그러면 나는 사방을 향해 아버지를 향해 눈물어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번에도 정겨운 그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려왔다

회의 참석과 볼 일을 보고 여정이 다할 무렵 호텔 커다란 로비 한쪽 켠에 'Tales of Two Cities'라는 전시가 눈에 들어온다. 챨스 디킨스의 소설과 같은 제목이다. 도쿄와 파리의‘두 도시 이야기'이다

1887년 데이코쿠 호텔이 세워진 도쿄와 당시 파리에 세워진 에펠탑과 그 곳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 그리고 프랑스 화가들의 인상파 화풍이 한창 시작된 두 도시의 역사와 문화예술 이야기가 호텔의 옛 사진과 모형으로, 맥아더 장군의 거처였으며 당시에 화제를 뿌린 신혼여행으로 온 마릴린 몬로, 에바 가드너, 챨리 채플린, 처칠과 대처 수상, 헬렌 켈러 등 그 곳의 단골인 세계명사의 이야기 그리고 그림과 당시의 메뉴까지 보기좋게 전시되어 있다


'전통은 미래를 떠올린다' 라는 시적인 구호가 보이고 호텔 창립 12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 올세이Orsay 미술관의 그림 전시회가 동경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문구도 있다. 단숨에 달려갔다

동경대학 연구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국립신미술관은 롯봉기 미드타운 근처에 위치하는데 건축도 좋고 150점의 전시 내용이 무엇보다 훌륭했다. 담는 그릇도 중요하지만 역시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다.언젠가 서울에 왔던 올세이 전시회 60여점과는 내용에 차이가 있다. 특히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일어 번역은 별이 내리는 밤'과 폴 고갱의 '타히티 여인 Tahitian Woman' 은 캔버스에서 튀어나온 듯 살아 생동하고 있었다

미국에 살았을 때 워싱톤과 뉴욕에서 오래 전 그걸 보았지만 정작 파리 올세이 미술관은 몇 번을 갔어도 보지 못한 귀한 작품들이다. 고흐는 살아서 빵과 바꾸었을 뿐 제대로 그림을 팔아보지도 주위와 세상에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원망스런 세상에 들을 것 하나 없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긴 세월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그를 100년 후의 사람들은 열광하며 이제야 숨죽이고 긴 줄을 서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100년을 시대에 앞서 갔고 그의 아둔한 후대는 그의 심령을 깨우치는데 100년이 걸린 셈이다. 이 땅에 한번 사는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빛나는 불후의 그림과 비참한 환경을 견디어내며 그려나간 그의 영혼을 나는 바라보았지만 100년 전 그의 혼과 자신의 마음을 교류하고 있는 일본 관람객들의 얼굴도 찬찬히 바라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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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l Gauguin, Tahitian Women on the Beach - 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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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  - 1889

  삶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보다듬어 예술로 끌어 올린 그 깊이와 높이와 섬세함의 극치, 새카만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항구의 바다에 비춰지는 그 찬란한 장면 그리고 타히티의 원초적 평화를 원주민의 야생적 색깔로 표현해 낸 고갱의 스피릿은 책이나 엽서에 프린트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외롭고 외롭게 묵묵히 화폭과 마주했을 고흐와 고갱.지독한 고독과 맞서며 고뇌와 고통을 견디어내어 그와 이제 마주하는 나와 후대의 인류에게 위안과 영감을 주는, 실로 그림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다. 누구도 예견못한 그의 한참 후의 승리를, 끝없는 그 기다림과 인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물론 그림을 값으로 매기자면 반 고흐는 역사상 그 어느 누구보다 부자다. 그러나 그 험난한 삶을 죽어서라도 기어코 뛰어넘고야 만 그의 분신인 그림 앞에서 감히 '이 작품은 값으로 치면 얼마가 될까'라는 천한 생각을 떠올릴 순 없다인류의 역사가 있는 한 영원히 함께 할 예술가와의 정겨운 만남의 순간이요 귀한 시간이다동경의 내 어린 날 '추억의 고향'이요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와 함께 했던 데이코쿠 호텔 2층, 밤을 밝히며 연구해 온 쉐프들의 긴 역사가 배어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는 프랑스 올세이 전시회 그림을 테마로 한 요리 예술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두 도시 이야기'에 전시되고 있는 120년 전 쉐프의 꼼꼼한 메뉴노트와 고심의 흔적이 스며있는 아름다운 일기장도 눈여겨 보아야 할 품목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보이는    아버지의 미소   동경 데이코쿠 호텔 로비에 서면   마주하는 그림   백년을 앞서 간 고흐의 영혼   별은 빛나는데  전시실 벽에 걸린 에바 가드너, 마릴린 몬로, 대처, 헬레 켈러, 챨리 채플린의 모습 120년전 프렌치 레스토랑 쉐프의 유니폼  - 동경 데이코쿠 호텔  2017  8  27    아버지와 미래를 이야기를 했던 로비 찻집 - 데이코쿠 호텔  2017 8 27 포스터 우편에 쓰여진 문구   '연애하는 나로 돌아오는 곳, 데이코쿠'호탤 -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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