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 시인 이승하

2013.03.03 16:28

김영교 조회 수:656 추천:11

우리 시대의 광대를 찾아서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의 저자 이승하 교수

주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시집이 있다. 노래와 춤에서 조상들과 우리네 흥을 찾아내 유쾌하게 풀어낸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
저자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이다.

한(恨)평생의 흥(興)을 한 권의 시집으로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는 이승하 교수가 문예지에 발표해 온 작품모음집 형식의 시집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한평생의 흥을 담은 작품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동춘서커스단을 보고 연희에 관심을 가진 것이 쭉 대학까지 이어져오면서, 마당극 등을 보고 ‘언젠가는 내가 이 흥에 대한 시집을 내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과 작품을 준비한 3년이 흐른 지금 그의 작품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시집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광대를 찾아서’에는 붉은악마, 동춘 서커스단 등 완전한 끼를 가지고 온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누린 이들의 얘기가 펼쳐진다.

 

제2부 ‘구도자를 찾아서’는 혜초나 성철 같은 구도자의 이야기가 연작시 형식으로 묶여 있고 제3부 ‘노래를 찾아서’에는 예인 8명 등의 이야기와 「구지가」, 「가시리」, 「정선아라리」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옛 노래의 가락에 얽힌 이야기가, 그리고 마지막 4부 ‘예인을 찾아서’에서 비록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점점 그 맥이 끊겨가는 힘든 상황에도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다룬다.

 

이렇듯 그의 시집은 우리 민족 고유의 한보다는 흥을 다루고 있다.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의 흥을 대중들에게 재조명하고 더 많이 관심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에 담긴 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시절 그 사람이 되어 풀어낸 그의 시집은 화자가 인물을 지켜보기도 하고 때론 직접 화자가 되어 재밌는 흥을 풀어내고 있다.

 

 

작품에 취해 광대가 된 시인

 

그의 시집은 총 58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에 관한 20편의 시를 뺀 나머지 38편의 시는 코미디언, 예술인, 연구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있고 가상의 인물도 있다. 그의 시는 보통 한 명의 인물에 대해 한 편의 시를 지어내는 구성이지만, 백수광부의 설화에 관해서는 한 편의 시로는 만족할 수 없어 3편이나 되는 시를 지었다.

 

“술에 취했으면 취하기만 할 것이지 강은 왜 건넜으며, 그 영감이 빠져 죽는 걸 보고 한 판 춤을 추더니 또 빠져 죽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그의 시집에서 직접 만나본 이가 아니어도 작품 속 인물이 되고야 만다.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그의 열정 때문이다.

 

그는 문예지에 작품을 싣기 훨씬 전부터 평소 연극이나 마당극 등을 보며 우리 소리와 춤을 잇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에 대해 옛날 잡지부터 신문기사, 도서관 등을 뒤져가며 모든 자료를 모아 시를 작성했다고 한다.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선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소설가를 찾아가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 ‘내가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일이기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문학과 현대시는 인간의 체온과 체취

 

문학은 인간 연구로서 체온과 체취를 느끼는 것이고, 현대시는 머리보단 발로 쓰고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체험과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시의 소재가 되는 자료 취재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뜻으로 그는 건강하고 튼튼하고 생기발랄한 서정시를 쓰고 있고 지향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신념을 이 땅의 광대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광대 탐구 시집으로 선보인 것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영화 ‘서편제’나 ‘왕의 남자’에서의 소리와 춤이 주는 해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광대처럼 역마살이 좀 끼었으면 한다는 이승하 교수의 말을 들으며 그가 쓴 시집만큼이나 신명 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우울한 과거사에서의 한보다 깊은 마음속에 있는 흥을 찾아낸 그였다. 「처용과 붉은악마」라는 시처럼 다시 한 번, 그 순간만이 아닌 우리네 인생이 흥으로 넘쳐나길 바란다.(비전통신/중앙매거진)  

 

 

 

 



 

 

서커스단이 왔대여 동춘서커스단이 왔다누만

성내동 처녀총각들 입가에 묘한 미소 번지고

나 같은 아새끼들은 미치고 환장하는 거지

빰빠라빰빠 나팔소리 들리면 깃발 휘날리면

선생님 말씀도 엄마 잔소리도 귀에 안 들어오고

황금동 감천냇가 드넓은 모랫벌에 차일이 쳐지면

가슴이 벅차 잠을 못 잤었다 훔쳐낸 돈으로 보았던

 

서커스 동춘서커스 봐도 봐도 신기하고 희한하대이

온갖 기기묘묘한 것들 갖가지 기상천외한 것들

이 세상 진기한 것들, 우스꽝스런 것들, 미치도록 예쁜 것들,

흥분케 하는 것들, 황홀케 하는 것들을 보며

내지르는 비명과 탄성, 내던지는 헐벗음과 배고픔

나이도 잊고 환호작약 귀천도 잊고 박장대소

 

사람이 어쩜 저렇게 몸을 휙휙 돌릴 수 있을까

잽싸게 놀릴 수 있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처럼

메뚜기처럼 개구리처럼 다람쥐처럼 강아지처럼

돌고 뛰고 돌리고 굴리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재주 참말로 신기하대이 뭘 먹어 사람 몸이 저렇노

 

오금이 저리고 오줌이 지리고 방귀도 뀌어가면서

웃다 보면 감천냇가에도 아랫장터에도 밤이 내리고

 

내 생애 최초, 최고의 황홀경을 그렇게 왔었네

나 그날 밤에 난생 처음 몽정이란 걸 했다네

동춘서커스 그 가시나가 자꾸 눈웃음을 치며

내 옷을 벗기고 자기도 옷을 벗고서 이상한 짓을.....

서커스 동춘서커스 봐도 봐도 신기하고 희한해서

연짱 사흘을 나 그차일 안에서 살았네 나 그때

아부지한테 들켜서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고

 

나 지금도 `동춘 서커스단` 그 펄럭이는 깃발을 보면

흥분을 못 이겨..... 반은 미치네, 아니, 미쳐버리네.

 

 

 

 

 

광대를 찾아서

백결

 

말이 영 말 같지 않고

노래가 도무지 노래로 나오지 않을 때

백 번을 기운 누더기옷 입었다고 붙여진 이름

백결이여

무엇을 바라 금(琴)을 탔는가

누구를 위해 악(樂)을 만들었는가

세상에는 지금 음(音)이 없다

음(音)이 없는데 어찌 시(詩)가 나오랴

 

영해박씨 족보에 나온다는 백결이여

죽고 사는 것이 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매인 일이라고?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서라, 한 곡조 또 한 곡조로

방아 찧고 절구 빻아

풍성한 새해 상을 차렸다는 백결이여

음(音)을 갖고 악(樂)을 만들었으니

세상 꽉 채운 것이 음악이로구나

 

광대여, 거문고 끌어안고서

아픈 이 세상 크게 울게 하라

배고프고 목마른 저마다의 생애

음악으로 제대로 한번 위로도 해보고

서럽지 않게……마음이라도 옹골차게

 

 

 

 

노래를 찾아서 14
처용가

내 이럴 줄 알았어 히히
열사흗날 온몸이 근질거리더니
오른팔을 젖혀 들어 왼팔을 젖혀 들어
탈 쓰고 춤출 일 생길 줄 알았어
에라, 뵈기 싫은 놈들 탈탈 털어부러
두 팔을 앞으로 확 뿌리며 발디딧춤
야 이놈아, 그냥 누워 눈치보들 말고
냉큼 일어나 따라 해보라니깐
에멜무지로 할라거든 일찌감치 관둬 관두란 말여
우리네 유한 인생 은사죽음으로 끝내서야 될라?
스르르 앞으로 끌어 산작화무(散作花舞)여
배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짓도
우스운 거여 배곯을 애밖에 더 생겨?
땀을 다 뺏으니 힘들 거구먼 히히
농지거리 그만 하고 자, 해보는 거여
좌우로 크게 벌려 뿌려 좌선회무(左旋回舞)라니깐
크게, 크게 내딛는 거여
행여 재수 영 더러워
낼모레 비명 횡사를 하더라도 말이여
힘을 다해, 힘을 다해 뛰어보는 거여
내 처음 맺은 마음 말로 다 못하거니
흐르는 물에다 꽃잎 뿌려 띄우며
그래도 제출물로 옹골지게
옹골지게 살아보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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