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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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녹색 우편함

2007.03.04 01:45

윤금숙 조회 수:929 추천:88

녹색 우편함


  어느 날, 야드 세일에서 새집 모양의 녹색 우편함이 반짝하고 눈에 띄었다. 그 우편함의 지붕은 기와를 이듯 작은 나무 조각으로 어슷어슷 이어졌고, 아치형의 문에는 참새 한 마리가 손잡이를 대신하고 있어 운치가 있었다. 나무로 뭉툭하게 깎은 새를 찬찬히 보니 문득 까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치가 금방이라도 상큼한 아침 공기를 가르고 짹짹거릴 것만 같았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손이 온다는 속설이 아련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세일을 하는 할머니한테 우편함의 값을 물었다. 할머니는 값은 말하지 않고 우편함을 들어 무릎에 놓더니 강아지를 쓰다듬듯 애정어린 눈으로 어루만졌다. 아쉬운듯 내게 내밀며 “세상 떠난 영감이 손수 만든거유!” 했다.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그 안에 새가 있기라도 한듯 날마다 새집 안을 들여다 봤단다. 혹시라도 집 나간 아들의 소식이 그 안에 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러나 새집 안은 언제나 빈 둥지뿐이었다고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선을 멀리 보내며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에는 아들보다도 남편에 대한 쓸쓸한 연민이 배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는 그 우편함도 거둬들였다.
  누구든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선물로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이지만 어쩐지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그 사연에서 묻어났다. 우편함에 금방 정이 갔다.
  집에 오자마자 기존 우편함을 떼어내고 녹색 우편함으로 대치했다. 은은한 녹색은 한층 더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웬지 좋은 소식이 올것만 같았다.
  이렇게 해서 그 때부터 녹색 새집 우편함과 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우편함을 열어 본다. 우편함을 열어 볼 때의 기대감은 언제나 잔잔한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 설레임은 지난 날, 잠못 이룬 밤에 쓴 누군가의 편지가 들어 있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우편함에 싱싱한 청춘과 파란 꿈이 들어 있었다. 오래 사귀였던 친구에게서 온 절교의 편지, 화해하자는 편지, 슬픈 소식, 기쁜 소식, 절망과 희망을 그 우편함은 내게 서슴 없이 전달했었다.
  청춘이 빛바랜 지금도 우편함을 열어 볼 때는 젊은 날, 그때의 설레임이 스쳐지나간다. 아직도 추억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나보다. 번번히 허전함을 안겨 줄 뿐인데도.    
  고국을 떠나 와 살다보니 자연히 우편함과 더 친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편지할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전화값도 싸고 이메일도 있어 한국이 가깝지만 70년 대 초만 해도 편지로 소식을 전하고 했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조용히 앉아 편지 쓰는 시간을 즐겼다. 하얀 종이를 앞에 놓고 있노라면 보고 싶은 얼굴들, 돌아가고 싶은 고국이 꿈 속인양 아른거려 향수에 젖곤 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내 돌파구였고 화두였기에 나는 끊임없이 자정이 넘도록 편지를 썼었다. 일 주일이 멀다하고 어머니께 편지를 보냈고 동생들과 친구들에게도 보냈었다. 그러는 나에게 어머니는 “너는 편지도 팔자로 잘 쓴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국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의 머릿장 안에는 그 편지들이 대리미로 다린 듯 깨끗하게 잘 접어져 있었다.
  그 많은 편지나 글들을 육필로 적다가, 드디어 몇 년 전부터 컴퓨터를 배워서 한글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서울에 있는 작가 친구에게 컴퓨터로 편지를 쳐서 보내겠다고 했다. 그 친구는 손사래가 눈에 보일 듯이 “절대 컴퓨터로 쳐 보내지 말고 친필로 써서 보내! 알았지! 멀미난다.”하며 내 자랑스러움을 묵살해 버렸다.
  늘상 컴퓨터를 대하고 있는 친구가 손사래를 치는 이유를 알듯도 했다. 편지까지 사무적인 활자체로 받는다면 얼마나 생활이 건조할 것인가. 세상이 변해가도 역시 편지는 친필이 그 사람의 숨결과 마음 상태까지를 알아 볼 수가 있어 더 정이 간다.
  그 친구는 언제나 바쁜 중에도 친필로 편지를 써 보내 나를 더 기쁘게 했다. 편지를 뜯기 전에 먼저 그의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 나는 입 안에 박하사탕을 굴리듯 그와의 지난 일들을 떠올려 달콤함에 젖어본다. 기다림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편지를 뜯기 전에 차 한잔을 끓인다. 설레임을 오래 음미라도 하듯 천천히 차를 마시며 편지를 뜯는다. 편지를 읽노라면 찻잔에 어느새 그와의 묵은 추억이 한 폭의 수채화로 아름답게 피워난다.
  오늘도 혹시나 하고 우편함을 열어 광고지까지도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들어왔다. 어떤 이는 광고를 공해라고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에 보내진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귀한 느낌이 들었다. 광고에 나온 세일 품목도 마크해 놓고 쿠폰도 오려서 잘 간수해 둔다. 일단 우편물이 많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함을 열어 볼 때마다 설레이던 기다림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래 전에 받아보았던 길고 하얀 봉투가 낯설게 편지함에 들어 있었다. 빨갛고 파란 항공편 봉투가 아닌 재래식 긴 흰 봉투였다.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가 달필 한문으로 쓰여있었다. 전혀 기억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혹시 연서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잔잔한 호수에 엷은 파문이 일었다.
  지나간 얼굴들이 낡은 필름 속에서 빠르게 돌아갔다. 혹시 C일까, H일까? 아!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갑자기 외딴 섬에 나 혼자 와 있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편지의 윗 부분을 가위로 정갈하게 잘랐다. 정성들여 쓴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나갔다.
  “아름답고 따뜻한 글을 만나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쓰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온 한 남자 독자였다. 내 생애에 남자 독자한테서 글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엘 에이가 아니라 먼 한국에서 온 독자의 편지였으니. 혹시나 했던 연서(?)보다도 더 소중한 편지 내용이었다.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자탄하고 있던 차에 그 독자의 글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편지가 담겨있던 녹색 우편함까지도 사랑스럽고 예전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또 한번 까치가 짹짹거려 주기를 바라며 다시 꿈 같은 기대를 녹색 우편함에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