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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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창밖엔 백일홍이

2012.08.14 13:51

윤금숙 조회 수:557 추천:8

                                            창밖엔 백일홍이
                                                                    
  
  봄의 끝자락을 잡고 피어난 목백일홍꽃은 칠 월의 하늘을 받쳐 들고 있었다. 진분홍 꽃구름을 뭉게뭉게 피워 올려 하늘을 덮을 듯 진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목백일홍꽃이 피는 여름은 세상이 온통 화사한 진분홍색으로 채색되어 황홀했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어느 해 여름, 한국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친구는 시골에 있는 자기네 별장으로 백일홍꽃 구경을 가자고 했다. 꽃 이름과 꽃말을 많이 알고 있는 그녀는 대화의 표현을 꽃에 비유해 다른 친구들 기를 죽여놓건 했다.
  친구의 별장은 초가집 같은 분위기라 친근감이 느껴졌고, 풀 먹인 삼베적삼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 시골의 정취를 맘껏 맛 볼 수 있었다. 별장 앞에는 크지 않은 호수가 있었고 주위는 얕트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아늑하고 한가로웠다. 시골의 풍경에 한껏 젖어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얘! 백일홍꽃은 어디 있어?” 했다. 친구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얘 좀 봐! 돈 떨어졌을까봐 땅만 내려다 보고 걷냐? 시야를 넓혀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고개도 들어 보고!” 하며 눈을 정답게 흘겼다.
  “어마! 저 큰 나무가 백일홍이란 말야?” 놀라는 나보다 더 놀란 친구는 일 년 초인 백일홍과 목백일홍도 구별 못 하는 미국 촌사람과는 대화가 안된다며 깔깔거렸다. 어렸을 적, 햇빛 내려쬐는 장독대 앞에 눈부시게 피어있던 색색깔의 백일홍을 나는 찾고 있었다. 목백일홍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목백일홍과 나와의 첫만남이 이루워졌다.
  목백일홍은 중국이 원산지로 궁중의 황제들이 즐기는 꽃이었고,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신들의 꽃으로 불리었다 한다. 일명 배롱나무, 간지럼나무, 자미화라고도 불린다. 백일홍 차를 만들어 마시면 사랑이 더 강해진다고 해서 신부의 부케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꿈에 백일홍꽃을 보면 오래 살고 행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또한 백일홍 나무를 집에 심으면 사랑과 평화를 가져 온다니 얼마나 의미가 깊은 꽃인가.
  뜻을 생각하며 목백일홍을 새로운 애정으로 바라보았다. 꾸불꾸불 휘어진 가지들이 화관무처럼 펼쳐져 나무는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나무를 바라보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아무렇게나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가로수가 목백일홍이었음을 떠올렸다. 사계절이 항상 온화한 기후와 좋은 토질을 갖추고 있는 여건에서 아무런 시달림 없이 마음껏 자라고 있는 그곳의 나무들. 꽃도 잘 피고 열매도 잘 맺지만 멋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무들. 그런 식물들 일수록 꽃향기는 덜했다.
  추위와 바람에 시달린 나무들은 그 고통을 이겨낸 만큼 운치있게 가지가 휘어져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꽃 또한 제 본래의 향을 은은하게 뿜어냈다. 목백일홍의 아름다운 자태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봤다. 고민 없는 인생에서 무엇을 깨달을 것이며, 안일하게 살아온 삶에서 무슨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므로 더 한층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좀 더 나은 삶으로 가꾸어 나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악조건에서 자란 나무는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바람에 시달려도 끄떡없이 자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진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이 교훈을 주고 있다. 나무들도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을 우리 인간들은 추위나 바람에 시달리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의 별장에 있는 목백일홍은 겨우내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고 가지들 위에 작은 꽃송이들을 매달고 있었다. 작은 꽃들이 한무리로 꽃다발을 만들어 내어 가지들이 낭창하게 휘어졌다. 오밀조밀 서로 엉켜 있는 백일홍꽃은 마치 가족이 서로 보이지 않은 끈으로 얼기설기 얼켜 있는 모습 같았다. 이민 와서 서로 옹기종기 모여사는 우리들을 연상하게도 했다.
  백일홍과 가까워진 나는 뒷마당에 한 그루를 심었다. 그곳은 설거지를 하다가 무심코 눈이 머무는 곳이었다. 비록 열매는 맺지 못하지만 뜨거운 여름 내내 온몸을 불태워 가지가 휘어지게 꽃을 피워내고 있는 백일홍. 뒷마당으로 향한 창들을 온통 진분홍 색깔로 가득 채워놓고 주위를 은은하게 물들여 놓아 내 마음까지 설레이게 했다. 꽃이 피어있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내내 나는 행복했다. 사랑과 평화가 내 마음, 내 가정에 가득해지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백일홍꽃을 바라보며 오늘도 멀리 있는 친구에게 꽃말을 곁들여 안부를 두런두런 전한다.


8월6일 2012년
미주 중앙일보 문예마당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