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다 사랑을 원한다
윤금숙
새 집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친구가 감나무 한 그루를 사왔다. 발가벗겨진 앙상한 나무가 5갤런 플라스틱 통에 초라하게 서 있었다. 뼈를 앙상하게 들어낸 나무는 추워 보였지만, 아무 욕심 없이 겉옷을 훌훌 벗어버린 모습이 초연하기까지 했다.
뒷마당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반듯하게 심었다. 가는 나무에 세 개의 가지가 뻗어 있어 자라면 모양이 좋을 것 같았다. 심고나서 바라보니 초겨울에 홀로 남겨진 허수애비 같았다. 내친김에 감나무 한 그루
를 더 사다가 쌍으로 심었더니 한결 따뜻해 보였다.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대추나무나 살구나무는 암, 수 쌍으로 심어야 과일이 잘 열린다는데... 어쨋거나 한 그루 보다는 서로 의지가 되어 외롭지 않아 보였다. 오른 쪽에 아담한 나무는 어쩐지 각시 같고 새로 사다 심은 나무는 실하게 생긴 가지 모습이 신랑 같았다. 혼자서 이름을 지어놓고 은밀한 미소를 감나무에게 보냈다. 그들 신랑, 각시나무가 사이좋게 잘 자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초겨울에 심은 감나무는 겨우내 바람과 비에 시달리며 아무 불평 없이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혹시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봄 바람이 슬그머니 감 나무를 유혹했다. 사랑을 느낀 감 나무는 금세 민둥한 가지에 여드름을 부끄럽게 피워냈다. 새순이 반짝하고 눈을 튀우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너도나도 연초록 이파리를 수없이 내밀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맞은 감나무는 봄바람에 이파리를 팔랑팔랑 뒤집으며 까르륵거린다. 그럴 때마다 흰 감꽃들이 살랑 바람에 꽃향기를 내뿜었다. 짙은 감꽃 향기가 코끝에 살짝 스며드니 문득 가지 사이로 사내 아이의 눈물 먹음은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을 갔었다. 내 짝은 시골 애답지않게 잘 생겼고 노래를 잘해 인기가 있었다.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그 노래를 부를 때는 큰 눈에 슬픔을 가득 담아 눈물 방울이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찌나 슬프게 잘 부르는지 반 애들은 덩달아 울먹이곤 했었다. 그애가 노래를 부를 때는 유난히도 크게 벌린 입이 약간 비뚤어졌다. 그래서 노래를 잘 하는 줄 알았다. 그 애는 언제나 혼자였고 어딘지 엄마 없는 애같이 슬퍼 보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애의 집엘 갔었다. 뒷 곁에 큰 감나무가 있었다. 그 애는 감나무 위로 다람쥐같이 잽싸게 올라가 크고 실한 단감을 많이도 땄다. 나는 씻지도 않은 감을 껍질째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그 애는 환하게 처음으로 웃었다.
다음 해에 나는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 애는 진주알 같은 감꽃으로 목거리를 만들어 나에게 던져주고는 도망을 쳤다. 손등으로 눈물을 문지르며 뛰어가는 뒷모습이 슬퍼 나도 울었다.
벌새가 흰꽃 사이로 날개짓을 하더니 금세 세월을 날개 속으로 접어버린다.
찌는 듯한 여름 동안, 감 이파리는 웃음을 거두고 진초록색을 온 몸에서 뿜어냈다. 보석처럼 반짝거렸던 이파리는 초록을 열매에게 다 내어주고 스스로는 퇴색해 갔다. 열매는 이파리의 희생을 아는 듯 꽃들 속에 감추어 두었던 얼굴을 살짝 선 보인다. 네모 난 납작한 단감은 어쩐지 우리들의 얼굴 모습 같아 더 정이 갔다. 시골 어디서나 지천으로 볼 수 있었던 감 나무이기에 더 친근하고 금방이라도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열매를 맺기까지 감나무는 겨우내 벗은 채로 비바람 추위에 잘 견뎠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뿌리는 끊
임없이 흙과 타협을 했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이민 와서 뿌리내리기 위해 발버둥 쳤던 일이 생각 나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민의 뿌리를 내리기까지 나는 얼마나 힘들어 하고 아파했던가.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그네의 설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옮겨 심은 나무는 묵묵히 자연에 순응하며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나무의 진리를 배우고 싶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사랑을 원한다.’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침마다 꽃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렸고 대화를 해봤다. ‘너를 사랑한다’며 관심을 가진 나무에는 탐스러운 꽃이 피고 손길이 가지 않았던 나무의 꽃은 역시 생기가 없었다. 꽃도 사랑을 원할진대 하물며 사람이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것은 원초적인 욕망일 것이다.
이삼 년이 지나자 감 나무는 새끼 가지를 많이 쳐 우산 모양으로 자리가 잡혔다. 그런데 모양이 괜찮을 것 같아 사온 감나무는 한쪽으로 치우쳐 삐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균형을 잃고 씰그러진 모습이 어찌보면 꼬인 내 마음 같아 보였다.
밑동 가까이까지 잘라 버린다면 곁가지들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다시 시작하는 셈치고 몽땅 잘라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자연스럽게 나무의 모양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내 마음에 들게 하려는 억지가 보이자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와 뒷마당엘 나가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나무가 완전 삭발을 당했다. 남편이 그 감나무를 겨울에 장미가지 쳐 주듯이 거의 밑동만 남겨 놓고 싹뚝 잘라버렸다. 기가 막혀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한테 의논을 할 일이지 독단적으로 자를 것이 뭐람.’ 생각할 수록 괘씸했다.
아침이면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습관처럼 뒷마당으로 나가 꽃들을 둘러 보았었다. 이제는 속이 상해 뒤뜰에 나갈 마음이 없어졌다. 천만 다행히도 각시 감나무는 약간 다듬기만 했을뿐 그대로 있었다. 그나마 그 감나무라도 있어줘 위안이 되었다.
몇 해가 지났는지 거의 잊고 있다가 삭발 당했던 감나무를 어느 날 보게 되었다. 그 사이에 그 감나무는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니 다른 감나무를 능가하게 가지가 뻗쳐 탐스러운 모습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그 감나무에는 다른 감나무 보다 더 많은 감꽃이 올망졸망 하얗게 달려 있었다. 은은한 감꽃 향기가 뒷마당을 향기롭게 다시 가득 채웠다. 다닥다닥 붙은 감꽃을 하나씩 솎아냈다. 아깝지만 크고 좋은 열매를 위해서 미리 따줬다.
높고 파란 가을 하늘에 주황색깔 감은 보석인양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초가집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 그 아래는 멍멍이가 팔자 좋게 낮잠을 자고 토종 닭들은 모이 찍기에 바쁜 그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감을 따서 소쿠리에 가득 담았다. 꼭대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탐스러운 감 몇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다. 금방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우선 감나무 임자인 친구 몫을 넉넉하게 담아 놓았다. 항상 퍼주기를 좋아하는 친구의 웃는 얼굴이 감나무 사이로 환하게 다가온다.
2011년 12월 <재미수필 13집>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