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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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종이별

2008.10.16 13:24

윤금숙 조회 수:698 추천:111

                               종이별
                      
                                
  “굿 모닝! 케티.”
  “굿 모닝! 영주.”
  케티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수퍼바이저 간호사이다. 그녀의 아침 인사는 항상 상냥한 톤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한껏 띄워 준다. 내 한국 이름을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주기 때문에 가끔은 한국친구가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다.
  케티의 키는 육 피트나 되어 왠만한 남자들도 그녀를 올려다본다. 블론드 머리에 눈이 파랗고 피부는 투명하리 만큼 희다. 색깔의 조화가 예쁘다. 매부리코만 아니었더라면, 아니 키라도 조금 작았다면 전형적인 미인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나와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생긴 이래로 십오 년을 같이 일을 하고 있어 누구보다도 호흡이 잘 맞는다. 억세게 생긴 큰 체격과는 달리 인정이 많아 남의 일에도 곧잘 눈물을 흘리는 등 극히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 특히 나의 실력을 인정해주므로 나와는 서로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편한 사이다.  
  “영주! 어제 입원한 스미스 아기 상태가 좋지 않은데 오늘은 그 아기만 담당해줘. 고마워!”
  그녀는 크게 쌍거풀 진 한쪽 눈을 찡긋하며 애교를 떨었다.
  이 병실에는 스물네 개의 아기침대와 인큐베이터가 있다. 병실 뒷쪽 여덟 개의 인큐베이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속에 파묻혀 있는 아기들의 몸은 하도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어떤 아기들은 아직도 자궁 속에 안주하고 있는 착각을 하는지 울지도 않고 배냇짓까지 한다. 아기의 숨을 대신 쉬어 주는 인공산소호흡기의 숨소리가 쌕쌕거리며 주위에 퍼져나간다.
  잔잔한 소음 속에 스미스 아기는 두 파운드도 안되는 조그만한 몸을 웅크리고 있고, 그 옆에는 당뇨병 엄마가 낳은 열한 파운드나 되는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을 꽉 채우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여러가지 병을 가진 아기들의 모습은 부모들은 물론이고 보는 이의 마음을 끝없이 애잔하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아기는 마약중독 증세를 가진 아기다. 임신 중에 엄마가 마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아기는 마약 양성반응을 가지고 태어난다.    
  
  햇살이 미니블라인드 사이로 수줍게 병실을 기웃거리는 조용한 아침이다. 어디선가 자스민 향기가 살며시 스며 들어와 크레졸 냄새를 밀어내고 있다. 신기하게도 아기들은 밤과 낮을 구별할 줄 안다. 아침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밤새 고통에 시달린 얼굴을 찡그리며 꼼질꼼질 깨어 일어난다. 그러나 마약중독이 된 아기는 밤낮을 가리지 못해 아침에도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한다.
  마약아기 침대 옆에는 앳되 보이는 동양 여자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손으로 접고 있었다. 희고 가는 손가락으로 종이의 모서리를 꾹꾹 눌러접을 때마다 보조개가 패이는 모습이 천진스러웠다. 핏기 없는 얼굴은 어딘지 회색빛을 띄워 어두워 보였다.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피다말고 시들어버린 동백꽃봉오리처럼 축 처져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갔는데도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지난 밤에 돌봤던 간호사로부터 아기의 상태를 인계받았다. 아기 챠트를 열어보니 엄마의 이름은 앤젤라 스미스였다. 아기 아빠의 이름을 적는 란은 비어 있었다. 성이 스미스인데도 왠지 한국사람 같았다. 나는 혹시 한국사람 아니냐고 영어로 물었다.
  그녀는 종이를 접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메마른 큰 눈망울을 더 크게 열었다. 반가움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만은 한국사람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점이 없이 멍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감당하기 힘들어 나는 시선을 얼른 옆으로 돌렸다.
  의자 옆에 놓인 바구니에는 온갖 색깔로 접은 크고 작은 종이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빨강, 파랑, 은색, 금색, 색종이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하듯 뽑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작은 별을 접을 수 있을까? 아기 코만하고, 눈만 하고, 제일 작은 별은 아기 새끼손톱만 했다. 그 별들은 창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영롱한 빛깔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 별을 접나 봐요? 별이 정말 반짝이는 것 같네!”
  그녀의 눈이 잠깐 반짝했다.
  “색깔도 곱고 진짜 별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별을 작게 잘 접어요? 정말 예뻐요.”
  그녀는 고개를 더 깊이 파묻은 채 손놀림을 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말문을 열게 하려고 계속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별을 접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인큐베이터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실컷 병원 놀이를 하다 던져놓은 구겨진 인형 같은 모습으로 아기는 지쳐 있었다.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수심에 찬 눈길이 더욱 애처롭게 보였다.
  
  스미스 아기의 마약 검사결과는 양성반응으로 나와 있었다. 마약 중독상태가 심했다. 보통 마약 아기들은 거의 미숙아로 태어난다. 그만큼 마약이 아기한테 미치는 영향은 큰 것이다. 임신 중에 마약은 물론 술, 담배도 아기한테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인큐베이터 안에 쭈글쭈글한 피부와 뼈만 남은 스미스 아기는 코에 산소줄이 연결되어 있고 머리에는 정맥주사 바늘이 꽂혀 있다. 머리카락이 땀에 촉촉이 젖은 채 아기는 눈을 감고 온몸으로 팔딱팔딱 숨을  힘겹게 쉬고 있었다.
  “아가야! 정말 어쩌다가 이 고생을 해야 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소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영! 너, 무슨 말을 혼자 중얼대고 있는 거야?”
  당뇨병 엄마가 낳은 십일 파운드나 되는 아기를 돌보고 있던 신디가 참견을 했다.
  “아무것도 아냐!”
  나는 신디에게 뭔가 책을 잡히기 싫어 얼른 대답을 했다.
  “그 스미스 아기 동양애 같은데! 혹시 한국애 아니니?”
  신디는 엄마가 마약중독자라는 것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새삼스럽게 소셜워커를 불러야 된다는 둥,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둥, 코케인 아기를 처음 보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이 아기가 한국애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내 마음이 아기에게 유별나게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넘겨짚고 하는 소리 같았다.
  “하필 왜 오늘 쟤가 오는 날이람.”
  신디는 백인 간호사로 키는 작은데 몸집은 헤비급이다. 어떤 날은 머리를 상투처럼 틀어올려 그 모습이 마치 일본 씨름꾼을 연상하게 한다. 그녀는 인큐베이터에 매달려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면서도 신경질적인 쇳소리를 냈다.
  “아이! 지겨워. 왠 애가 이리도 크담. 팔 끊어지겠네.”
  아침부터 코가콜라 깡통을 요란스럽게 따서 벌컥벌컥 들이키며 중얼대는 쇳소리에 오후만 되면 나는  골치가 아파 온다. 가끔 나를 향해 파란 눈을 치뜨고 힐끔거리며 코를 킁킁대기도 했다.
  “영! 너 마늘 먹었니? 아니면 말고, 그냥 물어보는 거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못들은 척 입을 꼭 다물고 코로 숨을 내쉬었더니 정말 마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럴수록 실력을 탄탄하게 쌓기 위해 필요한 과목을 찾아서 열심히 교육받고 영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력을 기르는 길밖에 없었다.
  나의 실력은 픽 라인(picc line)을 시도하는 데에서 나타났다. 동양사람은 손이 작아 섬세하다고 한다. 픽 라인이란 장시간 정맥주사가 필요한 미숙아나 중환자, 장기간의 항생제 치료를 요하는 환자에게 팔이나 다리 혈관에 가는 실리콘 튜브를 투입하는 것이다. 튜브를 통해서 고 칼로리의 영양제, 항생제 또는 다른 약들을 주입한다. 그 실리콘 튜브로 심장 근처 대정맥에까지 집어넣어야 한다. 이 작업을 할 때는 너무 긴장이 되어 눈이 충혈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한번에 튜브가 쭉 들어가서 정확하게 원하는 자리에 가 있다. 그럴 때의 내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고 성취감에 스스로 희열을 느낀다. 그렇지 않고 꼬이는 날은 아기 환자가 고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자신도 너무나 힘이 들어 온몸과 마음이 축 처져버린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픽 라인 작업하는 것을 보고 한 마디씩 한다.
  “너는 정말 간호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나는 동양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의 실력은 차츰 알려져 소아과나 응급실에서 혈관주사를 놓을 때도 내 도움을 청한다. 그런 나의 실력을 신디는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여러번 픽 라인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영! 요즘 네 영어 발음이 훨씬 좋아졌어! 다른 사람은 못 느껴도 나는 금방 알 수 있어. 정말이야!”
  “고마워! 신디!”
  건성으로 대답하는 나에게 두꺼비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엄지 손가락을 하늘로 쳐들어 보인다.
  “너는 수퍼 너스야!”
  얇은 입술에 웃음을 헤프게 흘리며 그녀는 내 기분을 한껏 북돋아 준다. 진심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필요에 따라 안면 바꾸는 짓을 하더라도 우선은 듣기가 좋다.
  조그만한 스미스 아기 몸에는 앙증스럽게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대로 다 붙어 있었다. 오목조목 이목구비도 반듯하다. 눈을 뜨면 쌍거풀이 깊게 져 있어서 볼수록 예쁘다. 눈동자는 갈색인데도 밝은 빛이 비치면 보라색이 약간 보이기도 하고 초록 빛이 섞이기도 해서 신비스럽다.
  이렇게 예쁜 아기가 무릎과 팔꿈치로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는 개구리 같다. 계란 속껍질 같은 피부는 금세 벗겨져 핏멍울이 묻어난다. 기운없이 까부러져 있다가도 울 때는 경기를 일으키며 발악적으로 울어제낀다. 작은 입이 귀까지 찢어지게 선하품을 하면서도 잠을 자질 못한다. 이런 모든 증상은 마약아기에게서 나타나는 금단현상이다.
  이럴 때는 진정제인 페노바르비탈을 먹여 안정을 시킨다. 아기는 엄마의 마약 증세 때문에 모유도 먹을 수 없지만 힘이 없어 우유 젖꼭지조차 빨지를 못해 정맥주사로 영양을 보충한다.
  “쯔쯧! 가엾은 것!”
  마약 엄마들에게는 전혀 동정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스미스 아기 엄마에게는 미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미스 아기 엄마가 인큐베이터를 향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걸어오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내가 한국사람이어선지 눈을 부딪쳤다가도 시선을 피했다. 이 병원은 한국사람이 잘 오지 않는 카운티 병원이다. 히스패닉 극빈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혹시나 한국사람들을 피해서 시골 같은 이곳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나도 그러한 그녀를 위해서 이 자리를 피해주고도 싶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목덜미에 솜털이 아침햇살에 뽀송하게 일어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상태를 엄마에게 설명해 주었다. 산모는 자연분만을 했으니 사흘 후면 퇴원할 것이고 아기는 완전히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당분간은 중환자실에 머물게 될 것이다. 아기는 퇴원을 해도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위탁모에게 맡겨진다. 법적으로 코케인 엄마에게는 아기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분신을 남에게 줘야 되는 아픔을 어린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기를 다른 곳에 보냄으로써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이것저것 아기 엄마의 주변 일들이 궁금했지만 한편으론 사연을 모르고 넘어가고 싶기도 했다.
  어느 간호사는 올 때마다 같은 환자를 돌보고 싶어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아기를 돌보게 되면 정이 들어 집에 가서도 아기의 얼굴이 떠올라 다른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왠지 스미스 아기를 계속 담당하고 싶어 우선 순위에 싸인을 했다.
  마약을 복용한 엄마들에게서는 대체로 비슷한 점이 있다. 새끼를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칠 듯 호들갑을 떨면서 주위의 시선을 끄는 것이 공통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타나서는 아기를 물고 빨고 법석을 떤다. 그러다가 훌쩍 떠나 며칠씩 나타나지를 않아 소셜워커를 애타게 만든다.
  얼마 전 일이다. 마약 중독에 조울증 환자인 산모가 있었다. 아기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엄마가  다음날 회복실에서 말도 없이 사라졌다. 며칠 만에 불쑥 나타나서 자기 아기를 보겠다고 했다. 아기를 버리고 도망 간 엄마는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는 자기 자식이라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보여줄 수 없습니다.”
  간호사가 친절하게 말을 하고 병실 입구에 있던 침대를 맨 뒤쪽으로 옮겼다. 그 사이에 원내 경찰이 곧바로 달려왔다. 한 명은 아기침대 근처에서 지키고 다른 한 명은 아기엄마의 접근을 저지시키고 있었다.
  “갓뎀! 내 아기를 왜 못 보게 하는 거야! 쇗!”
  눈썹 옆에 동그란 귀고리가 눈을 치겨뜰 때마다 처마 끝 풍경같이 대롱대고 있어 불안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혓바닥에 팥알만한 금속성 혀고리를 달아 말을 할 때마다 침이 튀어나왔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문을 발로 차며 온갖 쌍소리를 했다.
  마약을 한 산모들은 대부분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스미스 아기엄마는 지켜 볼수록 그런 사람들과 달랐다. 그림자처럼 나타나서는 종일토록 아기 옆에 앉아 종이 별을 접고 있었다. 주위사람들에게 눈길 한번 안 주는 스미스 엄마에게 나는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도 나에게만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구! 그 동안 많이도 접었네, 나도 좀 접어볼까?”
  반짝거리는 은색 종이 한 장을 말없이 내민다. 나도 따라서 접기 시작했다.
  “어머! 재미있네요.”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별을 접기 시작했다. 둘의 숨결이 한데 어우러져 종이별 속에 스며들었다. 종이별도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하나씩 살아나 꿈의 별로 하늘에 떠오를 것 같았다.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밝은 얼굴로 그녀가 병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뜻밖에도 스미스 엄마의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느닷없이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영어로도 한국말로도 대답을 못하고 바보처럼 미소만 짓고 있었다. 나하고 마음이 통했다는 것일까? 갑작스런 변화에 반가워서 그녀에게 물었다.
  “앤젤라는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아니면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니 금방 흉금을 털어 놓을 것 같은 친근감이 생겨 처음으로 앤젤라 이름을 불렀다.
  “열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이 되었어요. 그때 내 이름은 은희였어요. 서은희.”
  갑자기 잃어버렸던 이름을 다시 찾아 확인하듯 그녀는 서은희라는 이름 석자에 힘을 주었다.
  “미국 부모와 살았으면 한국말을 다 잊어버렸을 텐데...”
  “입앙되기 전까지 고아원에서 같이 있었던 언니가 여기 LA에 살고 있어요. 텍사스에 있을 때 가끔 언니랑 전화로 한국말을 실컷 하곤 했지요. 그리고 언젠가 엄마와 동생을 만나게 되면 말이 통해야 될 것 같아서요.”
  잠깐 그녀는 무엇인가 결심을 한듯 침을 꼴깍 삼켰다.
  “시간 있어요? 잠간 얘기해도 돼요?”
  앤젤라는 조금 서툰 한국말로 더듬더듬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앤젤라가 입양이 되어 간 곳은 텍사스 시골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자식이 없는 양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고 친절했다. 두 사람 다 학교 선생이었다. 특히 양아버지는 친자식처럼 그녀를 살갑게 대했다. 은희에서 ‘앤젤라’라는 새 이름도 양아버지가 지어 주었다. 자신도 양부모와 같이 선생이 되기를 원했다. 명랑하고 밝은 그녀는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고 친구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앤젤라는 왠지 양아버지가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느낌이 달랐다. 양엄마가 없는 날에 양아버지는 유난히도 친절히 굴며 가까이 다가와 손을 만지기도 하고 어깨에 손을 얹기도 했다. 눈빛도 전과는 전혀 달랐다. 뭔지 모르게 끈적대는 느낌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앤젤라는 학교에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등뒤에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양아버지가 소리 없이 샤워실 문을 열고 안을 빠끔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 눈은 도둑 고양이의 퍼런 눈빛 같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앤젤라는 자기도 모른 사이에 꽈당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걸어잠궜다. 가슴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양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가 징그러워서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고양이를 유난히 싫어 했다. 어쩐지 그 눈빛이 살기가 있어 섬뜩하게 느껴졌다. 고양이의 몸에 살갗이 닿으면 뭉클하게 느껴지는 그 감촉도 싫었다. 고양이가 그의 몸에 꼬리라도 스치고 지나가면 소름이 끼치고 그 징그러운 느낌이 오랫동안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양아버지를 생각만 해도 곧바로 검정고양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곤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비는 밤새도록 줄기차게 나무를 흔들고 창문을 때렸다. 그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꿈 속인듯 싶었다. 갑자기 가위에라도 눌린듯이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바위 같이 무거운 힘이 가슴을 누르고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문득 잠이 깨었다. 소스라치게 놀랬다.
  “플리스, 플리스! 앤젤라...”
  귓가에 낮고 탁한 신음소리가 뜨거운 입김과 함께 양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마이 베이비! 릴랙스, 릴랙스...”
  그녀는 소리를 질러야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생각뿐 입에서는 소리가 나오질 않아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소리를 질러서는 안될 것만 같은 어떤 위압감에 그냥 숨을 죽이고 말았다. 문득 양아버지 숨결에서 풍기는 그 역겨운 냄새가 왠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고국에서 친아버지가 술주정을 할때 풍기던 그 끈적끈적하고 후줄근한 냄새였다. 이럴때 왜 하필이면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황소만한 커다란 검은 고양이는 숨이 넘어갈듯 끽끽 댔다. 그러다가 이내 경련이라도 하듯 힘을 쏟고 일을 끝냈다. 일을 끝낸 황소 만한 검은 고양이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잽싸게 방을 빠져나갔다. 앤젤라는 본능적으로 고양이 꼬리라도 붙들려고 벌떡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랫도리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아팠다. 그리고 더러운 시궁창 물이라도 쏟아놓은 것처럼 질펀하고 끈적거렸다. 앤젤라는 긴장이 풀리고 가눌 수 없는 몸에 맥을 놓아버렸다. 가슴속으로부터 서서히 서글픔이 목으로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이 모두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비릿한 냄새가 작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빗발이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속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발자국 소리가 아슴푸레 들렸다.
  몸은 자꾸만 천길 만길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엄마와 동생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르다가는 멀어져 갔다. 불쌍한 동생의 울고 있는 얼굴 모습이 나타났다가 지워졌다.  
  그 날부터 앤젤라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검은 고양이 탈을 쓴 양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아빠, 그녀를 버린 엄마, 그리고 늘 울고있는 동생의 모습과 착한 양엄마, 앤젤라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앤젤라는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는 아예 안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다. 며칠만에 들어와서도 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아 양엄마의 속을 썩였다. 양엄마는 대화를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렇지만 양엄마에게 검은 고양이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앤젤라는 공부에서 점점 마음이 멀어졌고 반대로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했다. 친구 중에 초등학교 때 한국에서 이민 온 조앤이라는 한국애가 있었다. 앤젤라는 조앤과 가장 친한 사이였다. 조앤은 이혼한 부모로 인해 상처를 받고 항상 분노에 차 있었다.
  며칠씩 조앤 집에서 기거했다. 그녀의 엄마는 밤에 일을 하기 때문에 둘이서는 무슨 짓을 해도 간섭을 받지 않았다. 조앤을 따라 담배를 시작했고 술도 배웠다. 자연스럽게 마리화나에 손을 대었다.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근심이 다 사라졌다. 학교 생각도 까마득히 잊어 갔다. 공부를 잘 해서 선생이 되려던 꿈도 이제는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양아버지 같은 위선자인 교육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그만두고 자립해서 혼자 힘으로 살아야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조앤과  학교를 그만 두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그 사이 양엄마가 몇 번이나 찾아 왔지만 앤젤라는 다시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친구를 따라 마약 운반책 노릇을 했다. 수입이 괜찮았다. 아슬아슬하게 경찰의 눈을 피한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한탕해서 돈을 벌자면 자본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양부모 집을 털었다. 양부모는 앤젤라의 짓인 것을 알고도 모른 척 했다. 앤젤라는 그러는 그들을 더 증오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더 기승을 부리고 못되게 굴었다.
  앤젤라의 생활은 점점 더 문란해졌다. 동료들과 어울려 마약을 하며 몸을 마구 굴렸다. 삶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한번 망가진 몸이니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꿈 속에서 검은 고양이가 뱀처럼 자신의 몸에 기어올랐다. 꿈에서 깨어보면 온 몸은 땀에 흠벅 젖어 있곤 했다.
  이제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수렁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갔다. 자포자기에서 마약을 하는 횟수는 잦아지고 그럴수록 몸은 자꾸 망가졌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동료들과 어울려 살았다. 이제는 양엄마도 찾아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어느 날 아침, 앤젤라는 늦잠에서 깨어 문득 무언가 뱃곳에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배에 손을 가만히 가져다 대 보았다. 바깥 세상을 향해 암호를 보내는 것 같은 작은 발길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몇 번인가 속이 메스꺼웠고 있어야 할 것이 없어 편했던 기억이 났다.
  임신?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머리털이 젤을 바른 것처럼 곤두섰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절대로 태어나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몰래 없애 버리자. 마약을 더 하면 아기가 뱃속에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앤젤라는 분별력을 잃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혼란이 왔다.
  앤젤라는 그 날부터 엘 에스 디, 엑스타시, 헤로인을 마구 남용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기를 죽여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약에 찌들어 죽을 줄 알았던 아기는 점점 더 발길질이 심해지고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눈앞이 캄캄했고 자나깨나 불안한 생각뿐이었다. 왠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아갔으나 임신중절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의사의 말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지금 유산을 하면 산모에게도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대로 그냥 죽고만 싶었다.
  뱃속에서 마약을 받아먹고서도 죽지 않고 태어난다면 불구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뱃속에 든 아기가 괴물같이 무서웠다. 이런저런 불안한 생각에 잠기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문득 LA에 사는 정희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니한테 가서 모든 것을 의논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의지할 곳이라고는 언니밖에 없었다.
  LA에 온 후 아기를 낳았다.  
무려 열 시간의 진통 끝에 출산을 했다. 탯줄을 자르고 간호사가 예쁜 딸이라며 아기를 앤젤라 얼굴 앞으로 처들었다. 눈을 감아 버렸다. 아기를 보는 것이 무서웠다. 옆에 있던 언니가 앤젤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손을 꼭 잡아 주며 속삭였다.
  “예쁜 아기야. 눈 떠 봐!”
  눈, 코, 입 모두가 여느 아기들과 똑 같았다. 의외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앤젤라는 마음속으로 열 번도 더 부르짖고 있었다.
  “언니! 고마워요.”
  언니의 손을 다시 꼭 잡았다.
  “그래 순산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
  앤젤라는 어디에서 힘이 솟아나는지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출산모답지 않게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늘 외톨로 세상을 살아온 자신에게 이젠 자기에게도 곁에 피붙이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서든지 아기와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진통 때도 울지 않았던 눈물이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줄줄 흘렀다.
  이야기를 끝낸 앤젤라는 다시 아기를 들여다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앤젤라!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나도 다시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쌍거풀 진 예쁜 눈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깊고 아름다운 앤젤라의 눈이 들어 있었다.
  아기가 엄마한테 못가게 되면 앤젤라가 다시 수렁으로 빠지지나 않을까. 나는 갑자기 소셜워커와 얘기를 해봐야 되겠다는 급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앤젤라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이 모녀를 위해서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앤젤라는 잠시도 아기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기가 깨어 있을 때는 아기를 들여다보고, 잠이 들면 다소곳이 앉아 색종이로 별을 접었다. 오직 그 일만이 아기한테 용서받는 길인 것처럼.
  앤젤라는 종이별을 접으며 무엇을 빌고 있을까. 나도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틈틈이 그의 곁에 앉아 종이별을 접었다.
  “뭐 도와줄 것 있으면 말해요. 소셜워커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줄게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간 또 눈물 한 방울이 반쯤 접은 종이별 위에 뚝 떨어진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 돼 버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돌볼 게요. 다 잘 될 거예요”
  나는 앤젤라가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갑자기 내가 대리모가 되면 어떨까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포기했던 꿈을 찾아 열심히 종이별에 다시 접어넣고 있는 앤젤라의 모습에서 생의 의욕이 엿보였다. 얼굴에서 그늘이 많이 걷히고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기가 태어난지 한 달쯤 되는 날이었다.
  어제는 비번이라 아기를 보지 못했다. 아기가 보고싶고 궁금해서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까운을 입고 아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기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갸름하고 흰 얼굴에 엷은 입술이 정말 귀엾다.
  아기 챠트를 살펴보고 모니터에 나타난 숫자도 책크를 했다. 혈압에 조금 변화가 있고 모든 게 정상이다. 데스크로 옮겨가서 이것저것 아침이면 해야될 일들을 마치고, 아기병실 곁에 붙어있는 대기실로 갔다. 아기가 잠이 들면 앤젤라는 대기실에 가서 종이별을 접거나 아니면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육아에 관한 책들을 읽는다. 앤젤라가 단정히 앉아서 종이별을 접고 있었다.
  앤젤라는 일요일인 어제도 아기 병실에만 붙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언니가 와서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산책도 했다며 환한 얼굴이다. 어쩐지 못 보던 장미꽃이 방안 가득히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신디가 쫓아 왔다. 스미스 아기한테 이상이 있어 수간호사 케티가 부른다는 것이다. 나와 앤젤라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 말고 바삐 일어나 병실로 뛰어갔다. 아기의 혈압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케티의 지시에 따라 이것저것 처방을 했다. 상태가 크게 위급하거나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앤젤라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복도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내가 시선을 돌려 그를 향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뒤에 온 닥터가 아기를 살펴보고 괜찮을 것이라면서 케티와 함께 자리를 떴다. 잠시 뒤에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라 싶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이기 병실을 나와 대기실로 들어가자, 앤젤라가 탁자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앤젤라, 아기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눈을 뜬 앤젤라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근심어린 눈빛이다.
  “아기가 죽으면 나도 죽어요.”
  앤젤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걱정 말아요. 하느님이 지켜주실거예요.”
  내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자, 그녀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주루룩 쏟아진다. 눈물을 훔치고 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 밖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선을 그곳에 둔 채,
  “아기가 죽으면 하늘에 별이 된다지요...?”
  하고 힘없이 말한다.
  나도 창 밖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정말 하얀 아기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만약 아기가 죽게 되면 나도 죽어요.”
  그리고 앤젤라는 무언가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단호하게
  “그리고 꼭 죽어야 할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어요.”
  하고 입술을 지긋히 깨문다.
  “앤젤라, 마음을 편히 가져요. 아기가 죽기는 왜 죽어요.”
  앤젤라는 다시 색종이를 집어들고 별을 접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 동안 아기와 정이 너무 많이 들어 이젠 애틋한 마음으로까지 변해 있었다. 그날도 애잔한 심정으로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앤젤라가 인큐베이터 안에 놓아둔 아기 종이별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빛깔을 발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갑짜기 모니터에서 삑삑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모니터를 바라봤다. 심장박동 그래프에 변화가 오더니 100에서 80, 60 이라는 숫자가 빨간 색깔로 숨가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보통 아기의 심장박동 숫자는 일 분에 120 에서 160 사이라야 정상이다.
  “어머! 케티!”
  나는 다급하게 케티를 불렀다. 그녀도 모니터의 이상 신호를 듣고 호흡기의료원을 부르면서 후다닥 뛰어왔다.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말끔히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닥터를 빨리 불러요.”
  케티는 모니터를 보자마자 옆에 있는 신디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때 순간적으로 내가 할 일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두 손가락을 아기의 가슴에 대고 하나 둘을 속으로 세며 박동을 가했다. 살아있는 인형의 몸뚱이가 두 손안에 들어왔다. 아기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 저 눈! 아기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이상해 다시 모니터를 점검했지만 역시 위험한 상태였다.  
  “아가야! 제발! 나를 쳐다만 보지 말고 숨을 제대로 쉬어 봐. 제발!”
  나는 속으로 수없이 외치고 있었다.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다. 아기의 눈을 외면한 채 나는 코를 박고 조그만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온 힘을 다해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을 반복했다.  
  케티는 퍼런 가운을 펄럭이며 큰 덩치를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빛 바랜 낡은 가운은 시커먼 박쥐 날개처럼 펼쳐져 주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닥터가 가운에 한 팔을 마저 끼워 넣으며 뛰어 들어온다. 목에 걸린 청진기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엑스 레이!”
  차고 냉정한 소리는 주위를 한층 더 긴장시켰다.
  가슴 엑스레이, 심전도, 뇌파검사 담당자를 부르는 등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았다. 스태프들 이십여 명이 침대 주위를 둘러쌌다. 어느 틈에 소셜워커가 와서 앤젤라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인공호흡을 위한 기관지내 튜브를 넣기 위해 신속하게 준비를 했다.
  “영주! 계속 해”
  케티는 옆에서 불론드 머리를 흐트러트린 채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검지와 장지 두 손가락은 이미 감각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계속 가는데도 모니터에 나타난 그래프의 싸이클은 변화가 없이 불안정하다.
  그 사이에 케티는 응급실로 뛰어가서 체외 심장박동기를 가져오고 약국에 전화를 하는 등 순발력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응급약을 가져왔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팀웍은 빈틈이 없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심장박동 그래프를 지켜보던 닥터는 다급한 소리로 주위를 다시 한번 긴장시켰다.
  “특수 처치실에 알려요!”  
  담당 전문의는 마지막 결단을 내린 듯 체내 심장박동기를 장치하기 위해서 특수처치실로 옮기라고 명령을 내렸다. 옮기는 중에도 나는 심폐소생술을 계속했다. 옆에 바짝 따라붙은 케티는 정맥주입약 주머니를 들고, 나머지 스태프들도 아기침대 주위를 빙 둘러싼 채 우루루 몰려 특수처치실로 옮겨갔다.
  전문의가 대퇴부 정맥에 체내 심장박동기를 장치하기 시작했다. 그때 모니터의 그래프가 수직선의 간격을 넓혀 갔고 빨간색 숫자는 피를 토하듯 빠른 속도로 깜빡거리며 60, 50, 40 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기의 심장 박동은 멎었다.
  아기는 죽었다.
  그러나 나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다시 시도했다. 아기의 작은 가슴이 원망스러운듯 온 힘을 다했다. 아무도 말이 없이 조용한 가운데 내 숨소리만이 허덕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만히 잡아 아기에게서 나를 떼어냈다. 땀에 흥건히 젖은 내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다.
  아기를 담요로 싸서 안고 삼 층 신생아 중환자실로 올라가는 케티 뒤를 나는 휘적휘적 따라갔다. 다리는 자꾸만 헛디뎌지고 무중력의 상태를 허깨비가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케티의 풀어헤쳐졌던 블론드 머리가 눈앞에서 늦가을 강냉이 수염처럼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아기의 마지막 눈동자가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고 사라졌다.
  병실에 들어서자 다른 간호사들이 케티 앞으로 몰려왔다. 스태프들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흠뻑 젖은 듯 후즐근한 몸을 의자에 털썩 부려놓았다. 병들어 태어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십여 명이나 되는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케티는 아기를 안고 엄마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앤젤라는 넋을 잃고 아기 침대 옆에 멍하게 서 있었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소셜워커도 잠시 자기 할 일을 잊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갑자기 앤젤라의 휑하게 큰 눈동자에 아기의 마지막 눈동자가 겹치면서 내 눈앞이 흐려졌다. 케티는 아기를 안고 허물어질듯 서 있는 앤젤라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이 엠 쏘리! 아이 엠 쏘리!”
  케티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케티 옆에서 방관자가 되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앤젤라는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시간 전까지도 아기는 말똥하게 엄마를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한 차례 전쟁을 치루고 난 허탈감에서 말을 잃고 있어 분위기는 무거웠다. 신디는 뭐가 그리도 못 마땅한지 건조한 소리로 중얼대고 있었다.
  “지금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말을 신디는 거침없이 뱉어냈다. 앤젤라에게 그 말이 들렸을까. 갑자기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노오! 내 아기 죽지 않았어! 노오, 노우!”
  앤젤라는 앞에 있는 케티를 향해 몸을 획 돌렸다. 마치 솔개가 닭을 나꿔채듯 케티가 안고 있는 담요 속의 아기를 빼았았다. 그리고 아기의 볼에 뺨을 마구 비벼대며 울부짖는다. 앤젤라의 눈물이 아기 얼굴에 범벅이 되어 아기가 마치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참고 참아 이겨낸 농축된 슬픔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앤젤라의 핏멍처럼 붉은 아픔이 내 가슴을 때린다. 케티 뒤에 서있는 내 작은 몸은 큰 덩치에 가려 더욱 조그맣게 숨고 싶었다. 그대로 그 자리에 폭삭 꺼져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치 아기가 죽은 것이 내 책임이나 되는 것처럼 앤젤라 앞에 도저히 나타날 수가 없었다.
  앤젤라가 아기를 안은 채 갑자기 케티 앞에서 푹 쓰러졌다.
  “앤젤라! 아유 오케이?”
  케티의 숨넘어가는 다급한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가 비상전화를 넣었다.
  “코드 불루! 신생아 중환자실!”
  병원 안내방송에서 긴박한 전시의 상황을 알리듯 딱딱 끊어지는 소리로 두 번을 반복했다. 냉랭한 목소리는 주위의 모든 소음을 진공소제기처럼 빨아들였다. 케티 뒤에 숨겨졌던 내몸이 용수철처럼 앤젤라 앞으로 튕겨 나왔다.
  “앤젤라! 앤젤라! 정신 차려요!”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얇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앤젤라의 손에서 아기를 빼내어 안았다. 아기를 다시 그녀의 손에 안겨 준다면 아기는 눈을 반짝 뜨고 살아나지 않을까.
  갑자기 그녀의 두 손길이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요술쟁이가 빈손에서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꽃을 피워내듯 색색의 별들이 반짝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별들은 하얀 병실을 가득 채우고 다시 창 밖으로 밤하늘에 흩어져 반짝인다. 빨간별, 파란별, 은색별, 그리고 슬픈 별들이 저마다 꿈을 꾸듯 고운 빛깔로 온 우주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는 창밖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흰 작은 별 하나가 아름답게 빛을 발하며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