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발지진
이 월란
비가 내린다
가엾게만 떠돌던 열기들이 가슴을 식히는 찬기에 놀라
진앙의 하늘을 찢어 놓고 울음이 터졌다
한 뼘 한 뼘 모아 둔 천상의 기운를 몰고 와
창마다 고개 내민 가슴들을 뒤흔든다
홀로 가진 못하겠단다
기억의 줄을 타고 내린 가슴 한 귀퉁이에 지진파를 놓고
심상의 밭에 내린 추회의 닻은 사선으로 줄금을 내리긋는다
흉골의 축답 변두리에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었다
망각의 응력은 저 소리만 들어도 힘없이 풀어지게 된다
기억의 지반이 서서히 교차되고 지층은 갈라져 어긋나버린다
현실과 꿈의 해안선이 점점이 함몰되고
면억의 전답은 땅울림에 산붕으로 내려 앉는다
비는 그렇게 진동에 몸을 맡긴 넋마다 심발지진을 일으키고
거세된 굉음을 싣고, 열등한 영조물과 연약한 땅을 싣고,
매장된 지하파이프가 터지면 고뇌의 진갈색 수액마저 삼키며
망각의 선로를 꺾어, 현실의 지평선을 휘어,
고독의 못에 목탄 그리움 휘휘 저어가며
무너져 내리는 유혼들을 그렇게 싣고 간다
잔잔한 빗소리로 능청맞게도 저렇게 떠내려간다
우두망찰 가슴을 내어 준 빈 몸들 멍하니 남겨두고
혼절한 사령(邪靈)들을 싣고 샛강의 물소리 삼키며
외면의 손짓도 없이
하늘의 눈물이 되어 떠내려간다
땅의 눈물이 되어 떠내려간다
사랑이 찾아오던 날의 그 아름다운 혼돈으로
사랑이 떠나가던 날의 그 빙하의 찬 가슴으로
2007-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