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中身)의 세월
이 월란
평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어 본 사람이라면 알리라
가만히 서 있어도 뒤로 밀리는 풍경들에 대해
그 위에서 평상시의 보폭으로 걷기라도 한다면
달리는 속도로 낚아채이는 풍경들에 대해
다급한 일로 뛰기라도 한다면
기둥서방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끌려간 화냥년처럼
눈 한번 맞출 새 없이 섬뜩하게 허물어지고 마는 풍경들에 대해
유년의 풍경을, 청춘의 풍경을 KTX의 차창 밖 풍경처럼
그렇게 초점 없이 잃어버리고 만 사람들이라면 이제 알리라
다급한 일도 없는 지금, 평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와 뛰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 늙어버린 땅 밑에 가속의 모터장치를 해 두어
오늘 하루가 또 그렇게 어이없이 휙휙 낚아채이고 말았다는 것을
2007-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