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이 월란
발간 홍시 한 알 내 어미 발 뒤꾸머리에 영글었다
짓무른 종기의 살갗이 영판 연시 껍질이다
손톱으로 누르니 눈가의 주름이 발밑으로 내려와 쪼글쪼글 웃는다
한 땐 장마당이 닳도록 누비던 발치 끝의 난각막
해를 따라가던 영면의 그림자 반신에 드리워지고
천국으로 먼저 가버린 반신은 고통을 모른다
마데카솔 분가루 일흔 해의 겨울에도 녹지 못한 눈처럼 떨어지면
365일 밧줄에 매달린 낮은 침대는 그녀의 험준한 산
밤새 가파른 벼랑을 타던 그녀의 몸은 고적한 알피니스트처럼
여기저기 부딪혀 몇 번 남지 않은 아침을 마저 깨운다
곧 닫힌다는 그녀의 관 속에 난 며칠 방문 중이다
내가 그녀의 자궁 속에 있었던 그 때를 기억하는
내리사랑의 탯줄은 세월이 다 갉아 먹었는지
투두둑 끊어지는 소리 밤새워 들렸고
치사랑의 성긴 밧줄이 그녀를 근근이 건사하고 있는데
후회의 순간이 훤히 그려지면서도 다리를 주무르다 곧잘 잠에 곯아 떨어졌다
조금씩만 먹어 엄마 자꾸 찔끔찔끔 나오잖아
삶과 죽음의 땅따먹기에 정신이 팔려도 허기만은 잊지 못하는 질긴 몸뚱어리
그림자가 해를 따라 나머지 반신에 마저 드리우면 쾅쾅 못이 박힐 것이다
눈물도 없이 관 속을 빠져나온 은빛 동체가 활주로에 드리워진 관 위에서
비상을 준비하며 발을 떼고 있다
미세한 전율 속에 은익의 굉음은 새끼 잃은 어미짐승의 붉은 심장소리 같아
꺼이꺼이 염치 없는 눈물 그 때서야 다시 볼 수 없는 어미라 숨통을 꺾어 놓고
옆에 앉은 파란 눈이 안절부절 묻는다 한국을 처음 떠나시는군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목 빼고 관 속을 들여다 보던 햇살도 눈부신 봄 날
낯선 전화벨 소리에 가지 끝에서 철 잃은 홍시가 철퍼덕 떨어졌다
잘 살거래이
어릴 때 놓쳐 버린 풍선 하나 하늘하늘 하늘로 날아오르고
- 2007년 늦가을 어느날 -
<시작메모>
오래전에, 더 오래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써 놓은 글이다. 아직도 엄마에 대해 쓰고 싶은 말들이 가득 차 있다. 퍼내고 퍼내어도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오늘 같은 날, 순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드는 오늘 같은 날. 이유도 없이 우울해지는 오늘 같은 날. 허공에 대고 엄마를 불러 본다. 엄마가 듣고 계신 것만 같아. 엄마 냄새가 나는, 지난 생일날 깜빡하고 끓여 먹지 못했던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도 날 낳아 놓고 드셨을, 비릿하고도 고소한 미역 냄새가 꼭 엄마냄새 같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니도 참, 생일날 미역국 끓여 먹는 거 이자뿌는 사람, 니밖에 없을끼다. 우리 새끼, 씩씩하게 잘 살거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