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숲
이월란(09/03/31)
사선으로 눕기 시작한 오후의 햇살은
잠든 벽면 가득 블라인드와 나뭇가지들로 지은 벽화를 남겼다
콜라주로 자란 몸과 페이스페인팅으로 웃는 얼굴은
침실의 야간등처럼 홀로 철야를 하고 있다
나는 평면기호처럼 가지런히 누워 있다
꽃모종처럼 이곳 저곳에 심어진 시간들은 착실하게도 피고 져왔다
한 사람 죽고 한 사람 태어나는 사이
한 사람 알고 한 사람 잊어가는 사이
한 호흡 끊어지는 방음벽 사이론
발이 가벼운 벌목꾼이 되어 내일의 햇빛을 잘라야 해
수피처럼 무디어진 톱날은 어떻게 세우나
어둠 속에선 사람들과 부딪치면 안되지
굳은 살은 하늘로 가 별로 박혔어도
회전하는 연마석같은 시간에 날을 세우면
흩어지는 톱밥들이 베갯잇 속에 왕겨처럼 쌓인다
복사지같은 사각의 어둠 사이로
톱양이 씹어놓은 하루의 가장자리는
페이퍼컷처럼 날카롭지 않아
절단하는 나는 결코 마모되지 않는다
무디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