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殮)
이월란(09/04/13)
시상(詩想) 위에 올린 시신을 씻긴다. 자주색 육판화가 피는 육신의 시월, 풍장에 살아남은 사프란의 암술머리로 구석구석을 씻긴다. 키처럼 정지된 일상 속에 숨쉬듯 자라던 손발톱을 잘라 조발낭에 담고 추억의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칼, 한 올 한 올 섬기듯 주워모아 곤두선 기억을 마저 재운다. 한지에 싸인 얼굴 위로 끝끝내 퇴고되지 못할 흘림체로 갈겨 쓴 이목구비가 수려하다. 과거를 하얗게 표백한 수의가 반듯하다. 종이로 만든 신을 신기고 열십자로 묶은 추상(追想), 소멸로 향하는 걸음 걸음이 찬연하다. 수눅처럼 곱은 핏줄마다 자라던 지평선을 늘이고 늘여 발등에 새기면, 너에게로 가는 길. 그리움의 관도 육신처럼 물컹하다. 뚜껑에 못을 박을 때마다 출렁이는 근육, 돌아보는 눈빛 속에 축문을 새긴다. 부활은 없어요, 라고. 펄럭이는 다홍천 명정 아래 언덕 위로 차오르는 눈부신 빈례행렬, 다시 내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