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午睡)의 나라(견공시리즈 5)
이월란(09/05/29)
나의 뼈들은 마디마디 도사리고 있었다
십자를 떠받치느라 직각으로 굽은 힘줄마다 핏대가 서 있었다
나를 어미로 점지해버린 완애의 미물 한 점, 뼈있는 내 무릎에 누워
뼈가 없다, 흐물흐물 어린 강이 범람하고 있다
파문 한겹 두르지 않은 물처럼 고여 있다
순도 높은 증류액이 머무는 사라진 뼈의 길
세상의 어느 한 구석도 궁금치 않은 부동의 실재
무의 리듬을 복원하는, 원초적 시간이 흐르는 등뼈 없는 등을 쓸어내리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태초의 시간들을
다 잃고 난 후의 종말의 시간들을
반인반마의 케이론이 놓아준 시간들을 숨쉬고 있다
이 작은 생명체로 인해 소환되어진 나의 천국은 지금 복원 중이다
시작과 끝으로 멀어져버린 나의 시간은 지금 서로 응답하고 있다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자연을 솎아 내어버린 인공의 세월을 버리고
나의 고등한 시간은 하등의 완전무결한 평화를 기웃거리고 있다
도사려 까칠했던 가시 품은 시간들이 풀잎처럼 눕고 있다
꽃가루가 증발하는 순도 백퍼센트의 평화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는다, 무아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네 발 짐승의 꿈
꼬물꼬물 번식 중인 정온이 나를 장악하고 있다
재채기 같은 귀여운 폭발물이 숨어있지나 않은지 나의 몸을 탐색해 보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예측할 수 있는 고등동물이길 원치 않는다
허망한 생존의 정치를 은퇴하고 현란한 욕망의 영토를 떠난다
벗겨질 날을 향해 껍질이 되어가는 육신은 창밖의 거리를 지우고 있다
내 과거의 알리바이는 지금 석방 중이다
꽃의 이데올로기를 숭배하던 나의 국적은 지금 말소 중이다
오수의 꿈속에서 한평생 녹지 않는 첫눈의 하얀 심장으로
나의 무릎 위에서 뛰고 있는 애완의 숨소리는
필터에 걸러지고 있는 데시벨 제로의 고요
귀가 쫑긋쫑긋, 자족하는 우주에게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