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자
이월란(09/06/03)
교정에 핀 샐비어가 너무 붉어서 교실로 가지 못했었지
이앓이같은 사랑쯤 쏙 빼버리고도 인생을 씹어삼키는데 하등 불편이 없었지
한식과 양식을 최음제처럼 교묘히 섞어 환각의 식단을 차려놓고
인디언의 이두박근처럼 솟아오르는 생의 심줄을 먹여살리던
오늘의 세트장은 잠수교처럼 떠 있는데
죽음으로든 삶으로든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플러그를 꽂아
목숨을 담보로라도, 빛이라도 관통해보고 싶었지
상체와 하체는 의젓하게 맞붙어 있어 오늘의 모니터링도 운좋게 통과야
오늘의 포즈도 그럴 듯 했다고 (존재란 만들어지는 것)
더욱 숙련된 내일의 연기를 위해
속눈썹처럼 파르르 떨리는 결핍증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일랑
태생이 형벌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일랑 이 순간부터 효능 만기야
그저 수시로 일어나는 예외일 뿐인, 시간 밖에서 서성이는 저기 저 여자
사고의 흐름에 뛰어든 자를 찾아 헤매어도
일정한 체온으로 눕고 일어나 모호한 부호처럼 떠 있다
기어코 가라앉고 있는 무거운 섬이 되었지
팔은 날고 싶어 했고 발은 뛰고 싶어 했지
비밀한 영역을 숨쉬고 싶어 했던 가슴은 인간시장을 배회하고 있지만
나를 속이고 남을 기만하는 꿈은 아직도 설계 중이야
있지도 않고 없지도 못하는 위기의 여자
헐거워지는 장부같은 전신에 언어의 빔을 감아 끼우고
누운 시간들을 밟고 지나온 자리마다 꽃같은 환지통 피어있어
늪과 대지의 징검다리가 흔들리면
한 발이 디디고 선 우울한 본성, 또 다른 한 발이 디딘 환희의 순간
발이 많았음 좋겠다고, 수직의 시간들이 눕고 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