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2
이월란(09/05/30)
말들의 담장을 허물고 중계 없는 직통의 길을 뚫는다 중도의 노선 위에서 나를 지탱하기 위해 좌우를 조작하는 어설픈 경비초소들이 즐비하다 오늘은 내안의 언어를 꿈꾸고 내일은 내밖의 언어를 꿈꾸는 유희로 휘청이는 말들의 스와핑은 기이한 체위를 꿈꾼다 나의 수액과 혈액과 빛과 영혼을 적당히 배합하고 정확한 용량을 달기 위해 계량스푼같은 언어의 저울눈 위에서 눈속임을 위한 진자운동은 끝이 없다 한 술 한 술 떠서 어느 쪽으로든 나를 나르고 있다
나는 어느 곳에도 닿을 수 없는 여행자, 키작은 언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아, 철거되어야 할 장애물, 언어의 술에 취한 주정뱅이, 나를 한번 씩 집어던지고서야 깊은 밤을 놓아준다 날아가버린 말들이 부메랑같은 운명으로 돌아와 복수할 때조차 허물어진 방파제 너머로 수평선을 끌고 오는 파도가 나를 삼켜주길 꿈꾼다 야비한 속성을 감추고 나타난 이성은 결코 말들의 난무를 믿지 않아 밀물과 썰물의 춤으로 다시 일어서는 조수를 타기 원한다 선택의 기준을 찾지 못하는 영원한 문맹인이어도 10cm의 말과 0.2kg의 문장들은 길지도 짧지도 못하며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처음부터 찢겨진 피와 살을 봉합하며 기어코 나를 입고 있다 나를 벗고 있다
꽃 피고 새 우는 대지의 악보 위에서 경박한 뒤꿈치로 불협화음을 찍어대는 나를 조율하면 가슴의 현은 너무 팽팽하다 현재진행을 도모하는 음소들의 난해한 악보 앞에서 두 손을 맞잡은 현은 너무 느슨하다 나의 호흡은 언어를 손상시키는 불필요한 악습이야 스스로 경계가 되어 경계 밖으로 밀려나버린 사족(蛇足)이야 폭로 중인 거짓의 실체는 출처불명의 아리아를 부르듯, 위령의 제식을 치르듯 반성 없는 질주로 경계를 달린다 나를 예증한다 화농 짙은 하늘의 종기같은 별들은 밤새 곪아서 폭발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