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렁뱅이 어사또
이월란(09/06/09)
프리웨이 출구마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걸인 같지 않은 거지들을 볼 때마다
대문처럼 나를 두드리는 환영 하나 있다
우리집 해피라는 강아지의 밥그릇보다도 더 불행하게 찌그러진 양은밥그릇을 들고
막다른 골목처럼 경이롭게 서 있던 땟국 젖은 열손가락
비행접시로 생을 빌어먹는 동냥아치는
해 떨어지는 지구 밖에서 외계인처럼 그렇게 딱 버티고 서 있었다
여행 중 똑 떨어진 노잣돈처럼 생의 여정 중에 희망이 똑 떨어지고
벼랑처럼 타인 앞에 서서 꿈을 빌어먹기도 했을까
비천해진 노숙의 마음으로 골판지에 혈서처럼 쓰인 구걸의 슬로건은
생에 대한 불경죄를 선고받았을까
제목이 떨어져나간 소설의 한 페이지처럼 서 있다
맨손으로 세상을 구원할 듯 그들은 위대한 혁명가의 자손처럼 서 있다
세상에 짓밟힌 듯, 세상을 짓밟고 서 있는 듯
공수래공수거를 평생을 걸고 증명해주겠다는 듯
불타는 우파니샤드의 형이상학 속에 물구나무 선 아트만의 육신으로
현대인의 착한 유령들은 스톱사인에 걸린 나의 의식에 주술을 건다
하쿠나 마타타 비비디 바비디부 사바라 사바사바
가장 큰 자를 찾기 위해 가장 작은 자로 변장한 어사또처럼 당당해
마패같은 구걸판이 인장처럼 내 생의 영수증에 선명히 찍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