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갈치
이월란(09/08/29)
눈 오는 밤을 하얗게 견디고
맵싸한 양념처럼 칠십 평생 육질에 스민 붉은
김장독, 그 속엔
한 땐 바다와 한 몸이었을 펄떡이는 세월로 묻힌
은갈치 몇 마리 뼈째 삭고 있었지
그녀가 나고 자란 해안선을 닮은 화단 속에
뭍에도 바다를 심는 어미근성으로
물엽맥 같은 심줄마저 시린 해조음에 익어가던 갈칫살
번득이는 비늘 한 조각 없던 그녀의 알몸처럼
그리움도 한스러움도 마른 땅위에 해감내처럼 익어
해면을 차고 오른 은빛 물결 띠는
그 때도 꿈 같아라
피라밋처럼 쌓여있던 배추들은
그녀, 온 생애의 가을걷이처럼 높고 성스러워
버무린 세월 속 수건 두른 삶의 허리가 뻐근해지는
혹한의 문을 열고 나가 한 포기씩 꺼내주시던 나의 유년은
절절 끓는 아랫목에 시린 발을 들이민 것만큼이나 저린 것이라
김장도 없이 묻은 장독도 없이
갈치 한 조각 꺼내먹는 중년의 가을에도
어제인 듯 그제인 듯 결코 얼지 않는 겨울 강을 헤치고
버릇처럼, 백악기의 화석 같은 어미를 꺼내 먹는다